*제3과 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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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춘선 작성일22-07-09 21:55 조회3,653회 댓글0건본문
제3과 새장
기억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시작하며
우리는 지금 새장안에 갇혀있는 새와 같다
그렇다면 새장안에 갇혀 있다고 불평만 할것인가?
주어진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할것인가?
나는 한 때 세상살이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왜 예수라는 짐을 하나 더 지고
이렇게 힘들어 하는가?
이 예수를 버리고 멋대로 살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바로 뒷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말로 표현 할수 없는 말씀이 들려 왔다
니가 예수를 모르니 버리려 하지........
그런 경험을 하고 생각해 보니 교회만 다녔지
예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예수님을 알기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어느순간 깨달게 되었다
인생은 예수 없이는 설명이 안되는 무 존재임을
깨달고 나니 삶이 너무나 자유롭고 평안해 졌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아신다
다만 우리가 그 하나님을 모를 뿐이다
혹 지금 고민중에 있다면 그 하나님을 만날 기회다
(일) 막다른 길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 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14:10)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을 나오게 되었는가?
그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였다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내려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항복하게 하여
드디어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다 길을 틀어
홍해를 건너가게 하셨는데
이때 백성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였다
왜 가깝고 좋은 길을 두고 홍해로 인도하셨을까?
종 살이에 지친 백성들에게
강력한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게 하여
그들의 사상까지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게 하시려는 계획이였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는가?
이스라엘보다 백배 천배 더 많이 경험했다
그럼에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것은
죄로인해 완악해졌기 때문이다
(월) 쓴 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출17:1)
놀랍고 흥분된 홍해의 사건
즉 큰 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이르게 되었는데
르비딤의 뜻은 쉬는곳이다
그런데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쉴수 없게 되자
불평이 시작 되었고 모든 상황이 정리 된 이후에
하나님은 이곳의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로 명하셨는데
맛사는 시험하다 유혹하다의 뜻이고
므리바는 싸우다 꾸짖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했음에도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믿음은 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정확히 알 때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아야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안을 즐길수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홍해의 큰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르비딤의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다만 하나님의 것이 된자는 평안을 누리고
아직 사단의 것인 자들은 불안속에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안속에 있는 자들을
안타깝게 보시며 속히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돌아오면 불행끝 행복시작이기 때문이다
(화) 광야에서의 대쟁투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 2)
광야에서의 대 쟁투 라는 제목은
예수님께는 어울리지 않는다
쟁투의 뜻이 서로 다투며 싸운다는 뜻으로
대 쟁투라 함은 더크게 다투며 싸웠다는 이야기인데
예수님은 사단과 다투며 싸우실 분이 아니다
예수님과 사단을 결코 동일 선상에 놓으면 안된다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예수님은 창조주시고
사단은 창조물에 불과한 존재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처럼 계셨다
성령께 이끌리실 때나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나
예수님은 한결같이 같은 마음이셨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것이 있는데
바로 사상이 하늘사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단사상이 장착된 상태로는 한결 같을 수가 없다
문제에따라 상황에따라 그때그때 바뀔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하늘사상이 장착된 분이셨기에
세상의 어떤것에도 흔들림이 없으셨다
신앙이란 사상 바꾸기이고
사상이 바뀐 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거듭남 또는 중생이라 한다
(수) 불멸의 유산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6~7)
백사람이 있으면 백사람 모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큰 바운더리로 같은 문제로 보지만 깊이 들어가면
다 다른 문제들을 가지고 괴로워 하는데
베드로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될것이라 했는데
이것을 몽상가같은 헛소리로 들으면 안된다
사상이 바뀌면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고
문제가 완수해야만 할 복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했듯이 신앙은 사상 바꾸기다
하늘사상으로 바뀐 사람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 날 수 있다
세상은 그런곳이다 그러니 세상에 의지하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목) 불 시험
교과에 소개된 알렉스의 경우를 묵상해 보자
...신학교 생활은 잘 되어 가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일이 하나씩 꼬이기 시작했고 그의 삶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친구도 등을 돌렸고,
억울한 누명까지 쓰게 되어 알렉스의 평판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게다가 건강까지 나빠졌는데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학업에 지장이 초래되었고
마침내 학교를 완전히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마약에 손을 대고 싶은 강렬한 유혹과 투쟁하고 있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인근에서 얼마든지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가 있었다.
마약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었다.
알렉스는 사면초가 즉 아무에게도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사면초가에 빠진 사람이 회생할 길은
머리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 없다
하나님께서 왜 사면초가에 빠뜨리시는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것이 어차피 죽을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그 사람은 그냥 둬도 죽을 사람인데
마지막 기회를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괴롭다고 마약을 하면 문제가 해결 되는가?
마약은 더 큰 문제로 들어가는 문이다
인생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의 답이
예수그리스도 이심을 마음판에 세기고
문제를 문제로 보지 말고
주님을 만날 기회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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