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찬양하는 삶(질문, 대답, 설명) 08/27/22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9과 찬양하는 삶(질문, 대답, 설명) 08/27/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8-19 16:44 조회5,337회 댓글0건

본문

제9과 찬양하는 삶

(8월 2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9분)

 

연구 범위: 빌 4:4~7, 수 5:13~6:20, 시 145, 행 16:16~34, 대하 20:1~30

 

기억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기쁠 때는 주님을 향해 기쁨의 찬양을 외치기가 쉽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최악의 상황으로 곤두박질칠 때, 상상하지 못했던 시련이 엄습해 올 때는 찬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이러한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데, 찬양은 우리의 믿음을 지탱해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찬양은 우리가 처한 가장 암담한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찬양이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꾸지는 못 할지라도,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을 변화시킴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을 담대히 맞서게 해준다.

찬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이다. 찬양하는 일이 우리에게 항상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찬양하는 일이 우리 삶에 자연스러운 부분이 되도록 연습할 때, 그러한 노력은 변화와 승리를 위한 힘을 제공한다.

 

- 이번 주 학습 포인트: 찬양이란 무엇인가? 시련의 때에 찬양이 어떻게 강력한 영적 무기가 될 수 있는가? 찬양이 어떻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주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학습 목표

- 깨닫기

찬양의 삶을 통해 고난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귀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 느끼기

고난 중에도 찬양할 수 있도록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 행하기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찬양의 삶을 살아간다. 

 

TMI 위로

2.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간직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빌 4:4~7)

※ 그는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은 무엇이었습니까?(수 5:13~6:20)

※ 하나님을 찬양하는 외침이었다.

4. 시편 145편에서 다윗이 제시하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분의 광대하심과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에 관한 것이다. 

5. 감옥에서도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의 모습은 간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행 16:16~34)

※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굴복하도록 하는 영향

6. 찬양을 통해 적을 물리친 여호사밧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대하 20:1~23)

※ 오직 주만 바라보며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승리의 능력임을 보여준다.

 

결론

찬양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마음은 외부적인 요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삶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 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8월 21일(일) 찬양을 위한 조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감형되어 수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다. 그는 감옥에서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모든 사람이 다 타락하고 혼자만 신실하게 남는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믿으라. 그러한 상황 중에도 예물을 가져오며, 고독한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는 이미 지난 교과들을 통해 바울이 엄청난 반대와 핍박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하는 대신 빌립보에 있는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간절한 편지를 쓰고 있다.

 

빌립보서 4:4~7을 읽어보라.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와 같은 편지를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가 ‘하나님의 평강’을 간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빌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했으므로.

 

모든 일이 잘될 때 기뻐하기는 쉽다. 하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한다. 이와 같은 바울의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바울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속에서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만약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한다면, 그 말은 기뻐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기뻐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만약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한다면, 우리가 기쁠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울은 찬양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찬양은 믿음의 행동인 것이다. 

 믿음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진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찬양 또한 우리의 기분이 아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느냐에 근거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믿음이 마침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묵상>

찬양이 가진 힘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을까요?

 

답: 고난 중이라서 찬양이 필요하다. 기도를 찬양으로 읊조리는 것이다. 

 

<부가설명> 찬양은 때때로 하소연이기도 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말했다. ‘찬미는 곡조가 있는 기도다.’ 찬미는 찬양이기도 하고 하소연이기도 하고 기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모두 주님께 올리는 것들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희비간에 다 들으시고 주님의 뜻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형통하도록 주님이 보시는 시간에 응답하실 것이다. 찬양은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는 쉼이 없는 찬양으로 즐겁고 영광스럽다(계4장).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면 우리 마음이 보좌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22:3).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찬미는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열매인 제사라고 했다(히13:15). 그러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고난 중에서도 찬양하는 것은 성도들의 생리현상이 되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교훈>

바울은 주변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신실하신 약속을 기억하며 항상 기뻐하고 늘 찬양하라고 권면한다. 

 

8월 22일(월) 기도로 성벽을 무너뜨림

 

영어 표현 가운데 ‘궁지로 몰아넣는다’(to be painted into a corner)라는 말이 있다. 방바닥에 페인트칠을 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런데 페인트칠을 해 나가다가 방구석에서 작업이 끝난다면, 방금 칠한 마르지 않은 바닥을 밟고 나오는 것 외에는 빠져나올 길이 없다. 그 구석에서 페인트가 마르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방구석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의 믿음이 마치 페인트가 마르지 않은 방바닥처럼 우리를 ‘가두어’ 놓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과 믿음, 그리고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든지,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믿든지를 선택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다른 길로 인도하셨다. 40년간 광야를 방황하게 하신 후에 평화로운 초장이 아닌 그 지역에서 가장 견고한 성읍으로 데려가신 것이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침묵 가운데 엿새 동안 돌아야 했다. 일곱째 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팔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여호수아 5:13~6:20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셨는가?

[수5:13~6:20]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16: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답: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고 승리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리고 성벽은 크게 외침으로 진동이 생겨 무너지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치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다윗이 시편 66편에서 기록한 외침과 같은 것이었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시 66:1, 2). 이 외침은 곧 찬양이었다! 엿새 동안 거대한 성벽을 바라본 그들은, 결코 스스로는 성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뭔가 새로운 일을 행하려 하실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여리고로 데리고 가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승리의 비결이 우리의 힘과 능력에 있지 않음을 가르쳐 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밖에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든지, 어떤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든지, 우리의 역할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믿음인 것이다.

 

<묵상>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외침이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이었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11:30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부가설명> 오늘 교과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감사하고 즐거워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어떤 경우에서도 돌보시고 섭리하시고 이끄시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항상 기뻐할 수 있으므로 찬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럴지라도 사람에게는 감성이 있으므로 즐거울 때 노래하기가 쉽다. 즐거울 때는 즐겁게 노래하고 슬플 때는 구슬프게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언제나 즐거움의 노래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찬양하는 것이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찬양이 있었다. 창조하실 때로 새벽별들이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즐겁게 소리쳤다(욥38:7). 여리고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것을 7일간 돌면서 이스라엘 군대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참 어리석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들은 돌았고 외치라고 했을 외쳤다. 그 외치는 소리는 이스라 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오늘의 교과 내용을 보아서 이 외치는 소리는 기도의 찬양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교훈>

비록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해도 우리는 믿음의 찬양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8월 23일(화) 찬양하는 삶

 

우리에게는 평안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조차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힘든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찬양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찬양을 연습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고유한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시편 145편을 읽어보라. 다윗이 제시하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편의 내용이 어떻게 그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시145:1~2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6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7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9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0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11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12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15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답: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찬양한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찬양의 연습(The Practice of Praise)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시편 145:7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스펄전은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찬양을 계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세 가지 중요한 비결을 소개한다.

1. 우리는 주변을 둘러봄으로 찬양을 연습할 수 있다. 만약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창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천연계를 바라보라. 하나님을 찬양할 만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아직 미숙한 그리스도인의 심령에서 믿음이 자라나는 것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도 찬양할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가?

2.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기억함으로 찬양을 연습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찬양의 분위기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찬양할 이유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에 관한 진리가 우리 생각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나님에 관한 위대한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가(예컨대,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게 하는 새로운 예식이나 상징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찬양의 말을 소리 내 말함으로써 찬양을 연습할 수 있다. 찬양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찬양은 우리의 입에서 나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것이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 그와 같은 찬양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묵상> 

다윗이 기록한 여러 시편을 묵상해 보십시오. 다윗의 삶에 나타난 찬양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교과는 찬양을 곡조가 있는 노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찬양의 말을 항상 하라고 말한다. 곡조가 있으면 도욱 좋다. 시도 좋고 산문도 좋다. 그 내용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면 된다. 여리고를 돌다가 외친 소리가 곡조가 있는 찬양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과 광대하심을 외치면 곧 찬양이 된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그런 고백으로 살면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다. “찬양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찬양을 연습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고유한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월요일 공부에 있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성령님 감사합니다. 마음으로나 입으로나 이렇게 읊조리면 찬양이 된다. 그렇게 믿음으로 고백하면 그것이 기쁨으로 가슴을 채운다. 우리는 이 곤고한 때에 기도와 찬양이 생활이 되도록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살자.

 

<교훈>

찬양이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항상 그분을 찬양함으로 선한 감화를 끼쳐야 한다.

 

8월 24일(수) 찬양을 통해 구원함

 

사도행전에서 찬양은 그것을 들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사도행전 16:16~34을 읽어보라. 바울과 실라는 심한 매를 맞고 벗겨진 채 감옥에 던져졌다. 그들의 등에 깊이 파이고 멍든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발이 차꼬에 채워진 채 쓰라린 신체적 고통을 느끼며 가장 깊고 어두운 감옥 속에 던져졌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다른 죄수들에게 들리도록 기도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에 간수는 바울과 실라 뿐 아니라 다른 죄수 중 한 사람도 달아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29, 30)하고 물었다.

 

간수는 왜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가? 바울과 실라가 드린 기도와 그들이 부른 찬양은 다른 죄수들로 하여금 도망치지 않게 하고, 간수와 그 가족이 회심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답: 죄수로 상처를 입고도 찬양과 기도의 삶을 나타낸 바울과 실라를 자기의 모습과 대조하여 봤을 때 그는 구원이 절실함을 느꼈고 성령께서 역사하셨다.

 

우리의 찬양이 주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바울과 실라가 어둠 속에 앉아 다른 죄수들처럼 불평만 늘어놓았다면, 그날 밤에 누가 구원받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그 간수와 가족들이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이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다음의 편지를 읽었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 1:29, 30). 만약 그들이 이 편지를 읽고 바울의 고통이 그들에게 어떻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는지 회상했다면, 그들은 마음으로 찬양했을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신실하게 믿음 안에 남아 있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대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사람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찬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 보라. 그대의 찬양이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묵상>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하므로 귀한 영혼을 구원했던 바울의 삶을 묵상해 보십시오. 오늘 그대는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습니까? 

 

<부가설명> 바울의 삶은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20:24). 그는 언제나 천국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천국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바울은 하늘의 분위기를 지니고 다녔다. 그와 교제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감화를 느꼈다.”(사도행적 510.2).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셨다고 하여 이사야 43:21과 같은 내용을 가르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5,6). 또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찬송이 되게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나타낸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 바울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바울이 그랬다면 우리도 성령 안에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성령님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도록 복을 주소서.

 

<교훈>

우리의 찬양이 누군가를 구원하는 귀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날마다 훈련해야 한다.

 

8월 25일(목) 적을 물리치는 무기

 

역대하 20:1~30을 읽어보라. 여호사밧이 발견했듯이 찬양은 강력한 무기이다. “큰 무리”가 왕을 치러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여호사밧은 즉각 군사적 행동을 취하는 대신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였다(대하 20:3). 유다 사람들이 금식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이자, 여호사밧은 현실적인 상황을 인정하면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라고 부르짖었다. 

 

“큰 무리”가 공격하기 위해 접근해 오는 것을 볼 때, 그대는 본능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가? 역대하 20:3~12에 기록된 여호사밧의 반응을 통해, 압도적인 상대를 마주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대하20:3~12]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5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답: 본능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고 최대한 대비하려고 반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호사밧은 오직 주만 바라보는 반응을 하였다. 우리도 믿음으로 이런 반응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여호와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시자 그는 담대히 선언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대하 20:17). 그 후에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다(대하 20:19).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적을 대항하기 위해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터로 나가는 일상적인 진군이 아니었다. 여호사밧은 진군할 때에 여호와께 찬양하는 자들을 임명하였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다(대하 20:22). 역대하의 기자에 의하면, 그들이 여호와의 거룩하심의 영광을 찬양함으로(대하 20:2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행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

 

<묵상>

오늘 교과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특별히 고난과 시련의 때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 위한 어떤 영적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답: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원칙을 발견한다.

 

선과 악의 대쟁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삶의 고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애쓰는 자들을 사탄이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확실한 약속에 의지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에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가설명> 찬양에는 능력이 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3). 이 말씀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새 노래는 많은 사람을 여호와를 의지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 ‘경관과 찬송가’라는 이야기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게 하는 일화로 볼 수 있다.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이 당장 잠잘 곳이 없다. 저녁을 먹을 돈도 없다. 그는 도로 감옥에 가서 여기서 오늘 밤 재워달라고 했다. 간수는 여기 들어오려면 죄를 짓고 와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는 할 일 없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어디선가 장엄하게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끌려 갔더니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소리였다. 그는 교회 문앞에서 귀를 대고 찬송가를 들으면서 마음으로 회개하고 새 삶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때 경찰이 와서 교회 침입이라는 죄로 그를 채포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오 헨리 소설을 누군가 각색해서 간단하게 편집자가 새로 쓴 내용인 것 같다. 실제 소설은 주제만 같고 전개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는 사람을 감동하고 두려워하게 하여 하나님을 찾게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전쟁 때 찬송가 위력, 2차 대전 때 찬송가 위력에 관한 이야기가 꽤 있다.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증거 하는 능력이 된다. 만히 스스로 감동받는 찬송이 생활되게 하자. 

 

<교훈>

인간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달은 여호사밧은 노래하는 자들로 찬양하며 진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을 나타내었다.

 

8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선지자와 왕> 190~203, ‘여호사밧’, <부조와 선지자> 487~498, ‘여리고의 함락’을 읽어보라.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길들여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길들여서 소망을 갖게 하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 왕의 자녀들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하나님께 말없이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치료봉사, 253).

 

“내가 그분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동안 나는 그대들도 나와 함께 찬양하기를 원한다. 그대들이 흑암에 빠질지라도 그분을 찬송하라. 시험 중에서도 그분을 찬양하라.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들의 가정에 우울함과 흑암이 덮일까? 아니다. 그것은 태양 광선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영광의 보좌에서 영원한 빛을 거두어 들여 그대들 주위에 전파할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기를 권고한다. 이 빛과 생명을 주위에 퍼뜨리라. 그대들의 길에만 뿌릴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교제하는 사람들의 길에도 그리하라. 그대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상시키고, 고양시키며, 그들에게 하늘과 영광을 가리켜 주고, 그들이 세상 사물을 떠나 영원한 것, 불멸의 기업, 썩지 아니할 부를 구하도록 인도하는 그 일을 그대들의 목표로 삼으라”(교회증언, 2권, 593, 59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찬양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대의 교회에서 안식일에 드려지는 찬양은 어떠한가? 그 찬양이 성도들로 하여금 시련 중에서도 신실하게 남도록 격려해 주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변화를 줄 수 있겠는가?

※ 찬양은 감사와 경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열매이다. 찬양은 진심으로 감사함으로 심령을 다하여 할 것이다. 

 

2. “그대들이 흑암에 빠질지라도 그분을 찬송하라. 시험 중에서도 그분을 찬양하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데 찬양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교과 저자가 월요일 설명 중에 “찬양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찬양을 연습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고유한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되면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데 그 자체가 도움이 된다.

 

3. 찬양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몇 사람의 간증을 들어 보도록 하라. 서로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서로 간증을 해보도록 하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