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보이지 않는 자를 봄 - (Q & A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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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8-16 18:00 조회2,63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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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보이지 않는 자(者)를 봄
(08월20일 (안) / 일몰: 19시19분)
<서언(緖言)>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예수님에 관하여 믿고 신뢰하라고 배웠고 오늘 여기까지 이르러 왔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족속의 신앙을(보이는 형상(形狀))을 보고 자주 실족 하곤 하였다. 심지여 대 제사장인 아론까지도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보이지 않는 그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즉 예수님에 대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이다.(고전 1:18~31)까지의 “십자가의 도(道)”인 것이다. 우리가 최악(最惡)의 상황(狀況)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비결은 십자가(十字架)이다.
(08월 14일(日) <우리 아버지의 풍성하심>
(Q)~(로마서 8:28~39)은 우리를 향(向)한 하나님의 선(善)하심을 묘사(描寫)하는 매우 강력(强力)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선(善)하심을 의심(疑心)하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生覺)을 지켜주는 어떤 근거(根據)들을 찾을 수 있습니까?
(A)~○.(로마서 8:28절)은 성도(聖徒)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에 대한 보답(報答)으로 주어졌다는 인상(印象)이 본 절(節)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聖徒)를 선택(選擇)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인간(人間)의 어떤 행위(行爲)에 대한 보답(報答)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성도(聖徒)로 선택(選擇)함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인 은혜(恩惠)에서 비롯된다. 또한 본 구절(句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부르심을 입은 자’를 동격(同格)으로 취급(取扱)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독생자(獨生子)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풍성한 은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그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통하여 모든 의심을 날려버릴 수 있다.
(08월 15일(月) <예수님의 이름으로>
(Q)~(요 14:13, 1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A)~○.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祈禱)하는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도(使徒)들(신자(信者)들)의 기도(祈禱)를 응답(應答)해 주시겠다는 약속(約束)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求)해야 하지만, 응답(應答)을 주는 분이 예수라는 사실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임을 강조(强調)한다. 예수 이름으로 구(求)하라고 하신 말은 예수님 안에 모든 응답(應答)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말씀이다.
(08월 16일(火) <부활(復活)의 능력(能力)>
(Q)~(엡 1:18~23) 예수님의 부활(復活)의 능력(能力)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며 우리 자신을 위한 어떤 확신(確信)과 희망(希望)과 약속(約束)을 발견(發見)할 수 있는가?
(A)~○.죽음에 무능력(無能力)한 인간도 예수님의 부활(復活)을 믿고 신앙(信仰)하면 부활(復活)에 대한 소망(所望)뿐만 아니라 죽어도 살아 하늘에 하나님 우편보좌(右便寶座)에 이르는 확신(確信)은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必要)를 채우실 수 있는 능력(能力)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8월 17일(水) <우리의 모든 염려(念慮)를 내어 맡김>
(Q)~(베드로전서 5:7) 베드로는 우리의 모든 염려(念慮)를 하나님께 맡김으로 참된 마음의 안식(安息)과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解決)할 수 있다고 권면(勸勉)하는데 그 기별(寄別)의 핵심(核心)은 무엇일까요?
(A)~○.맡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꼴”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굴린다”라는 뜻입니다. 큰 돌을 짊어지고 가던 사람이 이 짐을 짊어지고 가지 않고 내려놓아 굴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고 끙끙거리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아 달라고 굴려 보내는 것입니다.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짐이 내 짐이 아닌 주님(主任)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08월 18일(木) <하나님을 볼 수 없어도 신실(信實)히 행(行)함>
(Q)~(사 40:27~31) 스스로 해결(解決)할 수 없는 위기(危機)에 빠졌을 때 우리가 기억(記憶)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約束)은 무엇일까요?
(A)~○.<(사40:27) 내 사정(事情)은…숨겨졌으며.>
많은 유다 사람이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셨고 그들을 공의(公義)롭게 취급(取扱)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것을 스스로 잊고 있었다. 하늘 위 하나님의 보좌(寶座)에 앉으셔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고려하신다. 그분은 과거(過去)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모든 요인(要因)을 면밀(綿密)히 검토(檢討)하신다. 그분이 고려하지 않으시는 것이 없고 그분이 주목(注目)하지 않으시는 사항(事項)이 없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현명(賢明)하고 바르고 의(義)롭고 선(善)하다. 하나님이 잊으셨거나 불의(不義)하게 취급(取扱)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 (사 40:27, 재림교주석) 성경(聖經)과 역사(歷史)통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苦難)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特別)한 섭리(攝理)를 보지 못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해 십자가(十字架)에 고난(苦難)받으신 구원자(救援者) 예수님그분을 신뢰(信賴)하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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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08월14일 (日) <우리 아버지의 풍성하심>
(Q)~(로마서 8:28~39)은 우리를 향(向)한 하나님의 선(善)하심을 묘사(描寫)하는 매우 강력(强力)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선(善)하심을 의심(疑心)하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生覺)을 지켜주는 어떤 근거(根據)들을 찾을 수 있습니까?
(A)~○.(로마서 8:28절)은 성도(聖徒)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에 대한 보답(報答)으로 주어졌다는 인상(印象)이 본 절(節)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聖徒)를 선택(選擇)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인간(人間)의 어떤 행위(行爲)에 대한 보답(報答)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성도(聖徒)로 선택(選擇)함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인 은혜(恩惠)에서 비롯된다. 또한 본 구절(句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부르심을 입은 자’를 동격(同格)으로 취급(取扱)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독생자(獨生子)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풍성한 은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그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통하여 모든 의심을 날려버릴 수 있다.
(08월15일 (月) <예수님의 이름으로 >
(Q)~(요 14:13, 1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A)~○.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祈禱)하는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도(使徒)들(신자(信者)들)의 기도(祈禱)를 응답(應答)해 주시겠다는 약속(約束)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求)해야 하지만, 응답(應答)을 주는 분이 예수라는 사실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임을 강조(强調)한다. 예수 이름으로 구(求)하라고 하신 말은 예수님 안에 모든 응답(應答)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말씀이다.
○.이는 성경(聖經)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요한복음 14:13-14)절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榮光)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求)하면 내가 행(行)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求)하든지 행(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求)하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求)하면 다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23-24)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求)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求)하지 아니하였으나 구(求)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充滿)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求)하는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求)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구(求)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신실(信實)과 성실(誠實)의 길은 장애물(障碍物)이 없는 길이 아니요 기도(祈禱)가 요청(要請)되는 것을 알게 되는 매우 어려운 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能力)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으며, 그 능력(能力)의 근원(根源)은 가장 연약(軟弱)한 인간에게도 열려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求)하든지 내가 시행(施行)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因)하여 영광(榮光)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求)하면 내가 시행(施行)하리라”고 말씀하셨다.(소망, 667-677)
○.그리스도께서는 “내 이름으로” 기도(祈禱)하라고 제자(弟子)들에게 명(命)하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들을 위하여 희생(犧牲)하신 희생의 가치(價値)를 통해서만 그들은 주님이 보시기에 가치(價値)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끼쳐 주신 의로 말미암아 그들은 귀중(貴重)하게 헤아림을 받는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주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용서(容恕)하신다. 그분은 그들에게서 죄인(罪人)의 비루(鄙陋)함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안에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아들과 동일(同一)함이 있음을 인정(認定)하신다.(소망, 667-677)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祈禱)하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意味)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품성(稟性)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정신(精神)을 나타내며 그분의 사업(事業)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구주(救主)의 약속(約束)은 조건(條件)하에 주신 바 되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誡命)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구원(救援)하시되 죄 가운데서 구원(救援)하지 않으시고 죄(罪)로부터 구원(救援)하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순종(順從)으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소망, 667-677)
(08월16일 (火) <부활(復活)의 능력(能力)>
(Q)~(엡 1:18~23) 예수님의 부활(復活)의 능력(能力)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며 우리 자신을 위한 어떤 확신(確信)과 희망(希望)과 약속(約束)을 발견(發見)할 수 있는가?
(A)~○.죽음에 무능력(無能力)한 인간도 예수님의 부활(復活)을 믿고 신앙(信仰)하면 부활(復活)에 대한 소망(所望)뿐만 아니라 죽어도 살아 하늘에 하나님 우편보좌(右便寶座)에 이르는 확신(確信)은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必要)를 채우실 수 있는 능력(能力)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復活)시키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세상(世上)에 선포(宣布)한 것이며 자기 백성(百姓)들을 구원(救援)하시겠다는 확고(確固)한 증거(證據)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萬物)의 주로 삼으시겠다는 선언(宣言)이기도 하다(행3:15, 4:10, 10:40, 17:31, 롬 1:4). 그러나 본 절에서의 강조(强調)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宣布)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부활(復活)시키신 하나님의 능력(能力)에 있다(Lincoln).(엡 1:18~23, 재림교주석)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에 역사했던 동일(同一)한 능력(能力)이 지금 신자(信者)의 심령(心靈) 속에서도 역사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 능력(能力)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은 육체(肉體)에 임했듯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에게도 임(臨)한다(엡 2:1; 참조 롬 8:11; 고후 4:14). 그리스도는 영광(榮光)스러운 몸으로 일어나서 하나님 우편(右便)에 앉는 권위(權威)를 얻으셨다. 그분의 부활(復活)은 성도(聖徒)의 부활(復活)을 보증(保證)하며(롬 4:25; 고전 15:20~22), 그분이 높임 받으신 것 역시(亦是) 성도(聖徒)가 마지막에 높임 받을 것을 보장(保障)한다(참조 엡 1:18).(엡 1:18~23, 재림교주석)
○.<다음은 부활(復活)의 능력(能力)에 관한 성경구절(聖經句節) 8가지를 소개(紹介)한다.>
⑴. (고린도전서 15장: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⑵. (로마서 8장:34절)
“누가 정죄(定罪)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右便)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懇求)하시는 자(者)시니라”(롬8:34)
⑶. (로마서 8장: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靈)이 너희 안에 거(居)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居)하시는 그의 영(靈)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⑷. (고린도전서 6장:14절)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權能)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6:14)
⑸. (로마서 6장: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浸禮)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葬事)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榮光)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生命) 가운데서 행(行)하게 하려 함이라”(롬6:4)
⑹. (베드로전서 1장: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讚頌)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矜恤)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復活)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所望)이 있게 하시며”(벧전1:3)
⑺. (고린도전서 15장:21~22절)
“사망(死亡)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復活)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1~22)
⑻.○.(요한복음 11장:25~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復活)이요 생명(生命)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永遠)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08월17일 (水) <우리의 모든 염려(念慮)를 내어 맡김>
(Q)~(베드로전서 5:7) 베드로는 우리의 모든 염려(念慮)를 하나님께 맡김으로 참된 마음의 안식(安息)과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解決)할 수 있다고 권면(勸勉)하는데 그 기별(寄別)의 핵심(核心)은 무엇일까요?
(A)~○.맡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꼴”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굴린다”라는 뜻입니다. 큰 돌을 짊어지고 가던 사람이 이 짐을 짊어지고 가지 않고 내려놓아 굴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고 끙끙거리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아 달라고 굴려 보내는 것입니다.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짐이 내 짐이 아닌 주님(主任)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人生)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 중 가장 무거운 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罪)의 짐입니다. 물질(物質)의 짐도, 질병(疾病)의 짐도 무겁지만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해결(解決)할 수 없는 짐이 가장 무거운 것입니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죄(罪)의 짐을 대신 져 주시고 해결(解決)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죄의 값을 다 지불(支拂)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생명(生命)의 구주(救主)로 주인(主人)으로 영접(迎接)하면 죄 사(赦)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죄 씻음을 받습니다.(벧전1:19)이것이 기독교(基督敎)의 복음(福音)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提示)한 죄의 짐을 해결(解決)하는 유일(唯一)한 방법(方法)입니다.
○.<성경(聖經)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 11:28) 수고(受苦)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다.
(벧전 5:7) 너희 염려(念慮)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잠 16:3)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經營)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시 68:19)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救援)이신 하나님을 찬송(讚頌)할지로다.
(사53:6)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罪惡)을 그에게 담당(擔當)시키셨도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傷)함은 우리의 죄악(罪惡)때문이라.
(잠 16:3) 너희 행사(行事)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희 경영(經營)하는 것이 이루리라.
○.이 약속(約束)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穩全)히 드리는 의인(義人)들에게 주어진 약속(約束)들이다. 시인(詩人)은 이 약속(約束)들을 자기(自己) 자신(自身)에게 반복(反復)하여 말하고 또한 그것들을 자신의 경험(經驗)에서 교훈(敎訓)을 배우게 될 사람들과도 함께 나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항상(恒常) 제거(除去)해 주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앞을 향(向)해 나아가는 자들을 도우신다. (시 55:22, 재림교주석)
(08월18일 (木) <하나님을 볼 수 없어도 신실(信實)히 행(行)함>
(Q)~(사 40:27~31) 스스로 해결(解決)할 수 없는 위기(危機)에 빠졌을 때 우리가 기억(記憶)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約束)은 무엇일까요?
(A)~○.<(사40:27) 내 사정(事情)은…숨겨졌으며.>
많은 유다 사람이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셨고 그들을 공의(公義)롭게 취급(取扱)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것을 스스로 잊고 있었다. 하늘 위 하나님의 보좌(寶座)에 앉으셔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고려하신다. 그분은 과거(過去)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모든 요인(要因)을 면밀(綿密)히 검토(檢討)하신다. 그분이 고려하지 않으시는 것이 없고 그분이 주목(注目)하지 않으시는 사항(事項)이 없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현명(賢明)하고 바르고 의(義)롭고 선(善)하다. 하나님이 잊으셨거나 불의(不義)하게 취급(取扱)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 (사 40:27, 재림교주석) 성경(聖經)과 역사(歷史)통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苦難)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特別)한 섭리(攝理)를 보지 못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해 십자가(十字架)에 고난(苦難)받으신 구원자(救援者) 예수님그분을 신뢰(信賴)하고 믿어야 한다.
○.(사40:29) 능력(能力)을 주시며.
피곤(疲困)치 아니하시는 분이 피곤(疲困)한 심령(心靈)에 능력(能力)을 주신다. 사람의 필요(必要)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다. (참조 시 104:27; 145:15). 심령(心靈)이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하여 자신들의 연약(軟弱)함과 부족(不足)함을 통감(痛感)하는 자는 그들의 필요(必要)가 분명(分明)히 채워질 것이다. (사 57:15; 마 5:3~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과업(課業)을 수행(遂行)하기에 부족(不足)함을 느껴 하늘의 도움을 구(求)하는 자(者)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신다. 인간(人間)의 연약(軟弱)함 속에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머문다. (고후 12:9). 이런 사실은 무수한 사람들의 삶에서 입증(立證)되었다. (사 40:29, 재림교주석)
○.새 힘을 얻으리니. 그리스도인 생애(生涯)는 하나님께 받고 다시 돌려 드리는 과정(過程)의 연속(連續)이다. 기력(氣力)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使用)되지만(참조 막 5:30), 피곤(疲困)함을 모르시는 분께 은혜(恩惠)와 생명력(生命力)을 항상(恒常) 새롭게 공급(供給)받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能力)을 계속(繼續)받지 않는 자(者)는 그가 더 이상(以上)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위치(位置)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시대의 소망, 827).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仰望)하는 자(者)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依存)하고 하나님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의존적(依存的) 존재(存在)이므로, 그의 은혜(恩惠)를 받기 위하여 그를 바라보고 의지(依支)하라는 강(强)한 권고(勸告)의 말씀이다. (이사야 1장)은 이스라엘의 당면(當面)된 현실(現實)을 바라보면 소망(所望)이 없음을 강변(强辯)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所望)과 가능성(可能性)을 조금씩 비치기 시작하는데 그 절정(絶頂)은 (사 53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사 40:31, 만나주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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