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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구약에 나타난 소망(질문, 대답, 설명) 10/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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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10-09 08:31 조회5,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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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상 일찍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제4과 구약에 나타난 소망

(10월 2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6분)

 

연구 범위: 욥 19:25~27, 딤전 6:16, 시 49, 시 71, 사 26:14, 19, 단 12

 

기억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 19). 

 

구약에 나타난 소망은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한 영혼 불멸 사상이 아닌, 죽은 자의 최종적인 부활을 말하는 성경적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화장되어 재가 되어버렸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완전히 손상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신비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 안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삶을 누린다. 생명의 초자연적인 기원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능력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심으로 생명을 존재하게 하셨음을 알고 있다(창 1, 시 33:6, 9). 만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ex nihilo)에서 이 지구에 생명을 창조해 낼 수 있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재창조하심으로 그것의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시리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번 주 우리는 최종적인 부활에 관한 개념이 구약시대, 특별히 욥과 시편 기자, 이사야 그리고 다니엘이 한 말 속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구약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들의 삶에 나타난 부활에 대한 소망을 확인한다.

- 느끼기

하나님께 충성한 의인들에게 부활이라는 최고의 상급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 행하기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간다.

 

TMI 위로

2. 욥이 가지고 있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욥 19:25~27)

※ 욥의 고백으로 확실하게 나타났다.  

3. 시편 49편에 기록된 어리석은 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영원히 죽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삶을 회복하는 차이다. 

4.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려 달라는 다윗의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시 71:20)

※ 무덤에서 부활로 일으켜주시기를 기도하는 말이다. 

5. 영원히 멸망할 자들과 영생을 얻을 자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사 26:14, 19)

※ 영원히 멸망할 자들은 죽음과 함께 생각이 소멸되고, 영생할 사람들은 첫째 부활에 완전한 사람으로 부활한다.

6. 다니엘서에서 보게 되는 부활의 소망에 관한 기별은 무엇입니까?(단 12:2) 

※ 티끌 중에 자는 자들이 다 부활할 것이다. 

 

결론

부활에 관한 분명한 가르침은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발견됩니다. 욥은 그의 삶에 닥친 고난 가운데서 자신을 다시 살려내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했으며, 다윗 또한 절망 가운데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부활의 소망을 고백했습니다. 부활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끝까지 충성한 당신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는 최고의 상급임을 기억하며 그 소망을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10월 16일(일) 내가 하나님을 보리라

 

욥기 19:25~27을 읽고 요한복음 1:18 그리고 디모데전서 6:16과 비교해 보라. 욥은 언제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가?

[욥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답: 구속자가 땅위에 서실 때 구속자를 볼 것이라고 믿었다. 죽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이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우리는 의인이 고통당하고 악인이 번성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게 느낀다(참조, 시 73:12~17, 말 3:14~18). 예를 들어 욥은 “온전하고 정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욥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그를 여러 가지 참혹한 고통에 빠트리도록 허락하셨다. 육체적으로는 질병으로 고통당했고(욥 2:1~8), 물질적으로는 많은 가축과 재산을 잃었다(욥 1:13~17). 그는 자기 식솔 중 종들뿐만 아니라 친자식들까지 잃었다(욥 1:16, 18).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일이 회개하지 않은 그의 잘못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욥 4:1~5:27, 8:1~22, 11:1~20). 심지어 그의 아내마저도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다(욥 2:9).

욥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주적 쟁투의 정중앙에 놓여 있음을 알지 못했다. 위에 언급된 어려움들로 인해 고통당하던 욥은 자신의 출생을 한탄하며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후회한다(욥 3:1~26).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욥 13:15, NKJV)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명이 곧 다할 것으로 생각하는 중에도, 그는 죽음이 자기 삶의 끝이 아닐 것임을 확신했다. 욥은 강한 신념을 가지고 비록 자신이 죽을지라도 구속주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이며, 그가 여전히 자신의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말했다(욥 19:25~27). “이것은 욥이 부활을 확실히 이해했음을 의미한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5권, 718쪽).

 그처럼 참혹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영화로운 소망을 말하고 있는가! 질병과 고통, 경제적 몰락과 사회적 비난, 그리고 절망적인 정서 가운데서도 욥은 여전히 죽음에서 일어나 사랑하는 구속주를 보게 될 날을 고대했다. 부활에 대한 욥의 확신은 수세기 후 마르다가 예수님께 나사로에 대해 말씀드릴 때에도 반복된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 마르다와 마찬가지로 욥 또한 믿음으로 이 약속을 주장했다.

 

<묵상>

부활에 대한 욥과 마르다의 확신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대도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답: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부가설명> 욥19:25~27은 부활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다. 그런데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26절)라는 말씀은 많은 논란을 빚어내는 구절이다. ‘육체 밖에서’라는 표현이 영혼 불멸을 뜻하는 말로 설명하는데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때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는가? 육체 밖에서 본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이래서 논란이 되는 구절이 되었다. 어떤 번역은 ‘육체로부터’(영어 RV역, 개정역)라고 번역했고, KJV는 ‘육체 안에서’라 번역했다(한글킹, 킹흠정역). 이것은 히브리 전치사 ‘민’이 문장에 따라 다양하게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 구절 자체의 문장에 매여서 번역하기 보다는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성경 전체의 계시에 의하여 바른 이해를 해야 한다. 성경은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고(전9:5), 번죄한 영혼은 죽는다고 분명히 말했다(겔18:4). 그렇다면 육체 밖에서 본다는 번역이 영혼 불멸을 뜻할 수 없다. 이렇게 번역했을 때는 이 말을 하는 당시의 병들고 상한 그런 육체를 벗어나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그 육체로 예수님을 볼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께서 육체가 있다고 하셨다(눅24:39). 육체 밖에서라는 번역을 취할 때는 위에 설명한 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고 육체 안에서라고 번역하면 부활한 신령한 육체라고 이해해야 성경적이다. 아무튼, 이 말은 욥이 부활을 확신했다는 것은 나타낸다. 부활에 관한 진리를 구약성경에도 확실히 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26:19). 이외에도 여러 곳에 부활에 관한 말씀이 있다.

 

<교훈>

욥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고통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끼는 중에도 자신의 부활과 자신을 다시 살려내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변함없이 지켰다.  

 

10월 17일(월) 무덤의 권세로부터

 

시편 49편을 읽어 보라. 무엇이 시편 기자로 하여금 부활의 소망 없이 죽는 자들과 달리 자신의 최종적인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했는가? 

[시49:1~20]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답: 부활의 소망 없이 죽는 것은 짐승이 죽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스올(음부=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시편 49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며(시 49:6),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며(시 49:11), 자기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해 사는(시 49:18) 어리석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확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집과 영광이 영원할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시 49:11, 17).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의 영예가 사라지며, 그들 또한 짐승들과 같이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시 49:12).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시 49:14).

수 세기 전 욥이 말했던 것과 같이 그들 또한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욥 1:21, 딤전 6:7). 시편 기자는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할 것 없이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시 49:10) 떠날 것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한쪽에는 스쳐 지나가는 재물과 업적에서 확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 멸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반대로, 지혜로운 자들은 인간이 이루어 낸 것들과 무덤이라는 감옥 너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영광스러운 상급을 본다(벧전 1:4).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시 49:15).

이 말씀은 시편 기자의 영혼이 죽는 순간 하늘로 올라간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망에 관한 구약의 다른 구절들과 일치하는 표현이다. 시편 기자는 단순하게 자신이 무덤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부터 자신을 구원하시어 하늘 궁정으로 데리고 가실 때가 올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소망과 확신을 주며, 현재의 삶에 의미를 더해 주는 미래의 부활에 관한 확실성이 묘사되었다. 지혜로운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이 땅에서의 짧은 생애 동안 자신들을 위해 거둬들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묵상>

자신들의 부와 업적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 것이 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 주나요? 

 

<부가설명>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과 생명 관계를 영원토록 가지라고 권고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을 주시고 구주의 약속을 하셨다. 원래 아담을 창조하실 때 그와 맺은 언약은 영원한 생명의 언약이었다(요일2:25). 그런데 아담이 언약을 어기므로(호6:7) 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은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되었다(고전15:22). 창조주이신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다시 영원한 생명을 회복할 수 있게 하시려고 육체의 생명을 주시고(창6:3, 레17:11, 시78:39) 육체의 생명이 있는 동안 구주를 영접하여 영생을 얻으라고 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 안에서 삶을 얻는다. 이 삶은 영생하는 삶이다. 그것은 곧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드러내어 주신 생명이다(딤후1:10). 예수님은 출애굽기 3장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이(출3:6) 부활에 관한 말씀이라고 마가복음 12:26,27에 설명하셨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부활의 소망을 약속하신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뜨려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언약을 어기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고 아담은 언약을 어기자마자 하나님의 영생의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에 일어나서 예수님과 함께 새하늘 새땅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아멘.

 

<교훈>

어리석은 자들은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의지하고 살아가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세상의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바라본다. 

 

10월 18일(화) “땅 깊은 곳에서”

 

시편 71편을 읽어 보라.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을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시 71:20) 올려 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그 말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시71:20]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답: 다윗을 부활의 소망 중에 잠든 것이 확실하고 부활은 땅 깊은 곳, 곧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는 것으로 믿었다. 

 

우리는 시편 49편에서 자신들의 재물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잘못된 확신과 달리 부활에 소망을 둔 지혜로운 자들의 감동적인 믿음의 표현을 살펴보았다. 다윗은 시편 71편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이야기하는 원수들과 거짓된 고발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안전과 소망을 찾으려 한다(시 71:10, 11).

다윗은 시련 가운데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보살피셨는지를 기억함으로 위로와 확신을 발견한다. 첫째,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셨으며 어머니 배에서부터 나오도록 인도하셨음을 깨닫는다(시 71:6).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음을 인정한다(시 71:17).

하나님께서 자신의 반석이요 요새임을 확신하면서 다윗은 하나님께 간청한다.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시 71:3).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시 71:9).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 71:12). 그리고 다윗은 이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시 71:20).

“땅의 깊은 곳에서”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시편 기자의 미래의 육체적 부활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맥상, 이 표현은 마치 땅이 그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과 같이 깊은 절망에 빠진 다윗의 상태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표현이 “비유적이기는 하지만 육체적 부활을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Andrews Study Bible, 726, 시 71:20 해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살피고 계심을 굳게 붙잡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얻게 될 영원한 생명에 있다.

 

<묵상>

누구나 최악의 순간들을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과거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이는 때에도 믿음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줍니까? 

 

답: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과거에 함께 하셨다면 현재의 난관도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부가설명> 성경의 종교와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아데네 지식인들이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행17:18, 32). 바울이 이방지역에 다니면서 전환 복음은 죽은 자의 부활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다(행17:31). 부활이 없으면 성경종교의 믿음은 헛것이고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도 망했다(고전15:17,18). 만일 영혼불멸설이 진리라면 부활이 없어도 예수를 믿는 믿음은 헛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혼이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죽은 자도 망하지 않았다. 그 영혼이 천국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말씀은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것이고 죄 사함도 없고 믿고 죽는 것도 망하는 것이라고 고전15:16~19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계시하셨다. 그런데 영혼불멸설에 최면당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재림하실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사람들이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이나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이 다 무덤 속에 있다가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무덤속에서 나온다.(요5:28,29).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않아야 한다. 말씀에 굳게 서면 속을 이유가 없다.

 

<교훈>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어야 한다.

 

10월 19일(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이사야 26:14, 19을 읽어 보라. 영원히 멸망할 자들(사 26:14, 말 4:1)과 영생을 얻을 자들(사 26:19)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26:14,19]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말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답: 멸망할 자들은 둘째 부활에 참여하고 불 못에 던져 태우지고 재가 된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생한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극명한 대조를 보여 준다. 우리는 마르는 풀과 시드는 꽃과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사 40:6~8).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열려있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고 안식일을 지키는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사 56장).

이사야서에서 부활의 소망은 더욱 확장되어 나타난다. 부활에 관한 성경의 이전 언급들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표현되었으나(욥 19:25~27, 시 49:15, 시 71:20), 이사야 선지자는 부활에 관하여 자신 그리고 언약적 관계 속에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사 26:19).

이사야 26장은 악인과 의인의 확연히 구분되는 운명을 대비한다. 한편에서 악인들은 “둘째 사망”(계 21:8) 이후에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죽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멸망 당하고, 그들의 모든 기억은 영원히 없어지게 될 것이다(사 26:14). 이 말씀은 죽음 후에 살아 있는 영혼이나 영이 없다는 가르침을 확인한다. 나중에 있을 악인의 최종적인 멸망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완전히 불에 타 없어짐으로 “그 뿌리와 가지”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말 4:1). 

한편 의인들은 축복의 상급을 받기 위해 죽음에서 일으켜 세움을 받을 것이다. 이사야 25장은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라고 강조한다(사 25:8). 우리는 이사야 26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발견한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부활한 모든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실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사 25:6). 최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의인들을 하나로 모을 것이다.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4:13~17을 묵상해 보십시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위대한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까? 

[살전4:13~17]

 

답: 성도들은 호흡이 끊어져서 땅 속에서 잠을 잘 것이지만 예수님 재림하실 때 다 부활해서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이다.

 

<부가설명> 만일 부활이 없다면 성경은 거짓말 책이다. 또 성경을 경전으로 교리가 형성된 성경의 종교는 가장 큰 사기 집단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예언과 그 성취라고 하셨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 성경이 믿을 수 있는 책이며 예수님은 믿을 수 있는 구주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신원조회하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예언을 하셨고 그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되면 성경은 믿을 수 있는 말씀이고 예수님은 믿을 수 있는 구주라고 예언을 확인하도록 말씀하셨다. 또 바울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 그분을 믿을 증명이라고 하셨다(행17:31). 사도행전에는 십자가 이야기보다 부활 이야기가 훨씬 많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예수 부활 증거 행전이다. 만일 영혼이 불멸하여 몸은 죽었는데 몸을 떠난 영혼이 의식있는 존재로 살아있다면 성경은 영혼 불멸이 예수 믿을 증명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예수님 음성을 듣고 부활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성경은 어디에도 그런 표현이 없고 암시도 없다. 암시처럼 보는 것은 영혼 불멸을 믿는 의식으로 성경을 읽을 때 나타나는 착각일 뿐이다. 속지 말자. 

 

<교훈>

최후의 날 하나님을 거절한 악인들은 흔적 없이 소멸하겠지만 하나님께 충성한 의인들은 부활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

 

10월 20일(목)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신약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굉장히 많이 언급한다. 그리고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개념이 등장한다. 구약 시대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최후의 부활에 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르다는 이미 부활에 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요 11:24). 의심의 여지 없이 구약 시대에도 유대인들은 마지막 때 있을 부활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믿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참조, 행 23:8)

 

다니엘 12장을 읽어 보라. 위대한 선지자의 글에서 부활에 관한 어떤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단12:1,2]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답: 띠끌 가운데 자는 자 중에 의인과 악인이 함께 부활하여 의인은 영생으로 악인은 영원한 수치로 간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니엘 12:1은 그 정체가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미가엘을 가리켜 “큰 군주”라고 부른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모든 핵심적인 이상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의 나타남으로 그 절정에 이르기 때문에, 이 본문 또한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같은 거룩한 존재를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들을 발견한다. “군대의 주재”(단 8:11), “만왕의 왕”(단 8:25),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단 9:25), “큰 군주 미가엘”(단 12:1). 그러므로 우리는 미가엘 또한 그리스도라고 이해해야 한다. (4기1과 목요일 부가설명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약의 모든 본문들은(욥 19:25~27, 시 49:15, 시 71:20, 사 26:19) 의인의 부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다니엘 12장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미가엘이 일어날 때,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다(단 12:2).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절이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특별 부활에 대해 말한다고 보는데, 이 부활에는 어떤 특정한 의인들과 악인들이 포함된다.

 

<묵상>

다니엘 12:2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특별 부활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답: 첫째 부활은 의인의 부활이다. 둘째 부활은 악인의 부활이다. 그런데 단12:2의 부활은 의인과 악인이 함께 부활하는 것으로 기록했다. 그래서 재림교회에서는 특별부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무덤은 열리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단 12:2)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영화롭게 된 몸으로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을 듣는다. ‘그를 찌른 자’(계 1:7)들,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을 조소하고 조롱한 자들,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몹시 핍박한 자들도 또한 일어나서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을 쳐다보고 충성되고 온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보게 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637).

 

<부가설명>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계시한다(고전15:20). 예수님 부활할 때 부활한 성도들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마27:52,53). 모세도 부활했다(유 9). 사람들은 모세가 부활했다는 설명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혼불멸설을 믿기 때문에 변화산에 엘리야와 함께 나타난 모세는 모세의 영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또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들은 무덤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티끌 가운데서 자고 있다가 부활한다고 명백히 말씀하셨기에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는 부활한 모세일 수밖에 없다. 유다서는 사탄이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겠다고 할 때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과 다툰 사건을 기록했고 신명기는 모세의 무덤을 찾을 수 없다고 기록했으며(신34:6), 그 모세가 변화산에 나타났으니 부활한 모세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는데 어떻게 예수님 보다 먼저 부활한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라고 반문한다. 말이 되는 반문이다. 모세가 역사적 시간으로 먼저 부활했어도 그의 부활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철 열매라고 하는 말씀고 충돌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을 것이면 모세도 부활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고전 15:22~24은 부활을 세 단계로 나타낸다. 첫째는 예수님, 다음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예수님께 붙은 자, 다음은 예수께서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이다. 그런데 단12:2은 이 세 단계에 들지 않은 합동부활이다. 그래서 특별부활이라고 말하고 거기에는 모세, 예수님 부활 때 부활한 성도 등도 포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훈>

다니엘 12장에서는 부활에 관한 다른 구약의 말씀들과 달리 의인과 악인 모두의 부활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최후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선지자와 왕> 722~733, “미래의 영광에 대한 계시”를 읽어 보라.

 

현대 과학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모든 물리적 실체를 이루는 기본 요소라고 가르친다. 원자는 다시 그보다 더 작은 입자인 쿼크와 렙톤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물질 세계의 기본 단위가 쿼크와 렙톤이라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키실 때 쿼크와 렙톤을 재구성하실 수 없겠는가? 무신론자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부활을 조롱하면서 식인종에게 잡아 먹힌 사람의 몸이 식인종의 몸으로 부활할지, 희생된 사람의 몸의 일부로 부활할지 질문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다시 창조해 내실 수 있으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쿼크와 랩톤을 존재케 하셔서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하실 수 있으시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재창조하실 것이다. 

<러셀의 질문은 부활하는 몸을 말하는 질문이다. 부활의 요소는 생명의 역할이다.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식인종에게 먹힌 사람은 식인종의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관할하시기 때문에 죽은 그 사람의 생명으로 그 생명을 가졌던 그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당연하다. 식인종은 그의 생명으로 그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 둘째 부활할 것이고 먹힌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첫째 부활할 것이다. 부활의 핵심 요소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면 그런 엉터리 질문이 생길 수 없다. 엉터리 질문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생명의 시여자께서 값을 주고 사신 그의 소유된 백성들을 첫째 부활로 불러 내실 것이다.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지고 거대한 군대가 영원한 승리로 나아올 그 승리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잠자는 성도들은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며 귀중한 보석으로 간수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아신다. 살아있을 때 그들 속에 거하셨던 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을 것이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을 것이다”(화잇 주석, 사 26:1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주 공간에는 수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2조 개의 은하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별들은 태양계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그 별을 선회하는 행성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별들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유지하시며 모든 별들의 이름을 알고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라(시 147:4).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활시키시지 못하겠는가?

※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시는 분께서(롬4:17), 이미 있었던 사람을 부활로 불러내시는 것은 문제가 없다.

 

2. 히브리서 11장은 과거에 살았던 “믿음의 영웅”들의 신실함과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대를 강조하여 설명한다. 예수님의 부활 전에 살았던 구약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이 말씀이 우리의 소망을 어떻게 풍성하게 하는가?

※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기억하시는 존재가 될 것이며 그들이 부활할 그 때에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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