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죄악 세상에서의 죽음(질문, 대답, 설명) 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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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9-30 16:44 조회5,392회 댓글0건본문
제2과 죄악 세상에서의 죽음
(10월 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6분)
연구 범위: 창 2:16, 17, 창 3:1~7, 시 115:17, 요 5:28, 29, 롬 5:12, 고후 5:21
기억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대리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온 우주와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요 1:1~3, 10, 골 1:16, 히 1:2).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특별한 영예를 주시고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겠다고 발표하셨을 때, “루시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질투하고 시기하였”고(살아남는이들, 14) 그분께 대항하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은 지구에 있는 아담과 하와의 행복을 파괴하고 하늘에 슬픔을 초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만일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아담과 하와) 불순종하도록 미혹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용서하실 방법을 세우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기와 다른 모든 타락한 천사들도 하나님의 은택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살아남는이들, 27). 사탄의 계략을 이미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사탄의 유혹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셨다(창 2:16, 17). 이 사실은 세상이 완벽하고 흠이 없던 때에도 인간들이 따라야 할 분명한 규율이 이미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번 주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공부할 것이다. 죄와 죽음이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집어삼켜 버렸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에덴에서부터 이미 인류를 위한 소망의 씨앗을 심어 두셨음을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죄가 지구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한다.
- 느끼기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세 전부터 구원의 계획을 세워두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다.
- 행하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 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따라 살아간다.
TMI 위로
2. 하와의 입장에서 뱀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던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3:1~4)
※ 자기의 감각에 의지하여 판단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 사이에서 하와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창 3:1~7)
※ 자기의 생각이었다.
4. 창세기 3:4에 나타난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뱀의 거짓말은 어떤 다른 모양들로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고 있습니까?
※ 영혼 불멸 사상으로 지금도, 세상 끝까지 반복될 것이다.
5.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창 3:7~19)
※ 생명이 사망이 되고 땅이 변질 되었다.
6. 죄에 빠진 인류에게 허락된 소망의 약속은 무엇입니까?(창 3:15, 21)
※ 여자의 후손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분은 피를 흘려 우리의 죽음을 처리하고 생명의 옷을 입혀주실 것이다.
결론
뱀의 모습으로 하와를 찾아온 사탄은 인간의 논리와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하와는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완벽했던 세상에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세 전부터 계획된 구속의 경륜을 드러내심으로 절망 중에 있던 인류에게 회복에 대한 소망을 허락하셨습니다.
10월 2일(일) 상반된 진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것이 완벽했다(창 1:31). 아담과 하와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바로 그런 상황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에덴의 완벽함 속에서 허락된 자유 의지의 실체를 창세기 2:16, 17절은 어떻게 보여 주는가?
답: 완벽하게 찬조하신 세상을 첫 사람이 그대로 수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임의로 먹되’라는 말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라는 말은 충돌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언약이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경고를 주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탄은 뱀의 모습으로 에덴에 들어왔다. 하와는 뱀이 금지된 열매를 먹고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뱀이 직접 그 과일을 먹었다”(부조와 선지자, 54).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세기 3:1~4을 읽어보라. 하와의 입장에서 뱀의 말이 그토록 설득력 있게 들렸던 이유는 무엇인가?
[창3:1~4]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답: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먹는 것으로 죽음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솔깃하게 들렸을 수 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첫째, 그때까지 이 세상에 죄와 죽음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었다. 둘째, 뱀이 아무런 문제 없이 너무나 맛있게 금지된 열매를 먹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하와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 제한적이며 비상식적인 것처럼 보였다.
불행히도 하와는 이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했다. (1) 영적인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인간의 사고가 항상 가장 안전한 수단은 아니다. (2)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눈에 비논리적이거나 심지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옳으며 신뢰할 만하다. (3) 어떤 상황이나 사물이 그 자체로는 악하거나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실 수 있다.
우리는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경험했던 일을 하와만 경험하고 지나가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온다.
<묵상>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과 세상의 방법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 체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과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부가설명>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야기는 언약이라는 관계를 이해할 때 바른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명 언약을 체결하셨다(호6:7). 그런데 아담이 그 언약을 어겼다(호6:7).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아담은 이 생명을 받아 누리기로 대답하였다. 그래야 언약이 성립된다. 창조주와 아담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다면 이렇게 생명을 약속하시고 아담은 받아누리겠다고 약속할 때 언약이 성립된다. 이 언약은 생명 언약이다. 생명 나무는 창조주의 약속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 아담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조건이다. 그래서 두 나무로 이 언약을 나타낸 것이다. 두 나무가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다. ‘약속과 조건’ 이것이 언약에 필수적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아담은 이 언약을 어겼다.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갈3:15). 언약은 상방 합의 없이는 고치거나 폐할 수 없다. 그런데 아담은 아내의 말을 듣고 창조주와 합의 없이 언약을 어겼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을 이행하실 수 없다. 즉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실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 세상에 사망이 들어왔다.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아담에게 없어진 것이다. 그것이 사망이다. 즉 ‘반드시 죽으리라’가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하여 언약이라는 말씀으로 바르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지 자유 선택을 이해시키려고 이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지는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위치와 사고방식으로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생명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우리의 이해도 성경이 가르치는 언약과 상관없이 인간의 생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교훈>
뱀의 모습으로 하와를 찾아온 사탄은 인간의 논리와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했다. 하와는 그 유혹을 거부하는 대신 죄에 빠져들었다.
10월 3일(월) 뱀에게 속음
창세기 3:1~7을 읽어보라. 하와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 사이에서 선택했는가?
[창3:1~7]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답: 자기의 감각적인 기능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창세기 3장은 유혹의 심리를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예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된 열매를 먹으면 분명히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창 2:16, 17). 뱀의 모습으로 찾아온 사탄은 하와를 죄 가운데로 이끌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던 금지 사항을 일반화시켰다. 뱀이 하와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하와는 금지된 것은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나무에 국한된 것이며, 그 나무의 열매를 먹거나 만지면 죽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주장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그리고 마침내 사탄은 하나님께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중요한 지식을 감추고 계신다고 비난했다. 속이는 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하와의 호기심은 그녀를 사탄의 매력적인 유혹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하와는 그곳에서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끝까지 충성하든지, 아니면 사탄의 매력적인 유혹을 받아들이든지 선택해야 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말 사이에서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자기 자신의 느낌, 자기의 경험을 의지하기로 선택했다.
첫째, 그 열매는 “먹음직”스러웠다. 둘째, 그 열매는 “보암직”하기도 했다. 셋째, 그 열매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 했다. 하와 스스로 판단하기에 뱀의 말을 듣고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불행히도 하와는 그렇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좋은 것”(살전 5:21)만을 취한다면, 모든 형태의 지식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비극적인 경험은 지식, 혹은 지식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 중 어떤 것은 매우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르는 편이 더 나은 것이 분명히 있다.
<묵상>
오늘 함께 공부한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의 죄된 선택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가 얼마나 쉬운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답: 우리가 판단할 때 자기 감각과 지식으로 할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부가설명> 먹음직 하고 보암직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감각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9). 창조주께서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다. 이것은 창조하신 사람에게 좋은 것을 먹고저 하는 식욕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자 하는 심미안(審美眼)을 주셨다는 뜻이다. 여자는 이것을 활용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탐스럽더라는 표현인데 좋은 것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나가면 탐하게 된다. 아담 부부는 이 탐심이 자기 속에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뱀의 말을 들었을 때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감각이 강하게 발동되면서 탐하는 경지로 나간 것이 아닐까? 아무튼, 그래서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말을 따랐다. 뱀은 금지한 나무 열매를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라고 물었다. 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나타나는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공격한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으로 진리를 공격한다. 이런 수단에 우리는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지혜를 구하고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고전4:6).
<교훈>
금지된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확실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사탄의 유혹에 빠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열매를 먹었다.
10월 4일(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4을 읽어보라. 이 거짓말은 어떤 다른 모양들로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어 왔는가?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답: 영혼불멸설로 오늘날 불신자나 기탄 종교나 심지어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교회까지 온 세상을 사로잡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인 것처럼 자리 잡은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이 거짓말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많은 고대 종교와 철학이 이 거짓말을 기초로 삼고 있다. 피라미드나 미라와 같은 이집트 유적에서도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영혼 불멸은 그리스 철학의 주된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예컨대 플라톤의 국가론(The Republic of Plato)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질문한다. “그대는 우리의 영혼이 불멸하며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플라톤의 파이돈(Phaedo)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비슷한 어조로 주장한다. “영혼은 불멸하며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은 분명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에서도 존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철학적 개념들은 서양 문화의 많은 부분뿐만 아니라 사도시대 이후의 기독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에덴동산에서 사탄에 의해 시작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시험의 중심에는 사탄이 하와에게 한 이 거짓말이 자리 잡고 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사탄은 이와 같은 단호한 주장을 통해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었다.
영혼 불멸과 대조적으로 다음 성경절들은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혼 불멸에 대한 거짓말을 반박하기 위해 이 성경절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시 115:17, 요 5:28, 29, 시 146:4, 마 10:28, 고전 15:51~58)
[시115:17]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요5:28,29]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시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고전15:51~58]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답: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활의 날에 승리로 나올 것이다.
사탄이 고안해 낸 영혼 불멸에 대한 이론은 오늘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책, 영화, 그리고 TV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죽게 되면 그저 또 다른 의식 상태로 넘어간다는 생각을 이어간다.
많은 기독교의 설교 단상에서도 같은 오류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과학 또한 이에 동조하고 있다. 미국에는 죽음 이후에 ‘탈물질 상태’(postmaterial persons)로 존재하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기술을 개발한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을 정도다. 이 속임수는 분명 인류 역사의 마지막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묵상>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이 우리 문화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감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무당, 신접한 자, 그리고 영화 소설 게임 등등, 또 대부분의 종교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다 오류라는 것을 확신하고 오직 말씀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부가설명> 영혼불멸 주장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서는 영혼이라는 말은 없었으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뱀이 주장이, 사람이 죽는 것으로 거짓임이 드러날 때 사탄은 영혼불멸설을 고안하고 사람들로 믿게 하였다. 그렇기 위하여 사탄은 자기 부하 천사들을 동원하여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서 활동하는 것과 같은 일을 인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것이 점치는 자들과 신접한 자들이라는 무당들을 동원하여 영혼 불멸 전도자들을 삼았다. 그들을 통하여 영혼을 부를 때 사탄의 부하 천사들은 죽은 사람의 살아있는 영혼처럼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그래서 교인들도 영혼 불멸을 믿는다. 천주교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개신교도 그렇게 믿고 가르친다. 그들은 구원받는 것이 죽은 사람의 산 영혼이 천국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장로교회 다닐 때 그렇게 믿었으니까. 성경대로 신앙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한 사람 죽은 후의 상태에 관하여 확실한 지식과 확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은 무덤속에 있다고 요5:28,29이 분명히 계시하였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부활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곳은 무덤속이다. 영혼이 살아서 하늘에 있다면 이 소리를 하늘에서 듣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전설과 오류인 신학과 오랜 전통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이 문제를 확인하기 바란다.
<교훈>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거짓말은 영혼 불멸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월 5일(수) 죄의 결과
창세기 3:7~19과 로마서 5:12에 의하면 죄가 가져온 주된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창3:7~19]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답: 죄와 사망.
뱀의 간교한 말에 사로잡힌 하와는 자신의 선택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예상하지 못했다. 금지된 열매를 먹는 행동 자체는 그 행동이 실제로 나타내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하와는 그와 같은 불순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깨 버렸으며 사탄에게 새로운 충성을 나타내 보였다.
창세기 3장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그것이 초래한 비극적인 결과들을 묘사한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숨겼다(창 3:8).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창 3:7, 9~13). 육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땀을 흘리며, 고통을 느끼고, 마침내 죽게 될 것이었다(창 3:16~19).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퇴화하였다(창 3:17, 18).
에덴동산은 더 이상 예전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아니었다. “시드는 꽃과 떨어지는 잎 가운데서 최초의 쇠퇴 현상을 목격하고 아담과 그의 반려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죽은 자를 인하여 슬퍼하는 것보다 더 깊이 슬퍼하였다. 연약하고 우아한 꽃들의 죽음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수려한 나무들이 잎들을 떨어뜨릴 때에 그 광경은 죽음이 모든 생물의 운명이라는 엄숙한 사실을 마음에 생생하게 심어 주었다”(부조와 선지자, 62).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는다는 의미로는 즉시 죽지 않았지만, 그들은 바로 그날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타락은 실로 모든 인류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에덴에서 일어난 일의 결과로 인해 고통당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십자가를 통해 다시는 죄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소망이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묵상>
하와의 비극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 각자가 지은 죄와 그 결과에 대해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요?
답: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생명을 영원히 잃는다.
<부가설명> 성경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했다. 이 말의 원어는 먹는 날에는 ‘죽고 죽는다’라는 것이 직역이다. 이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히브리어적 표현이다. 그런데 그날 당장 죽지 않았기에 이 구절 해석이 구구하다. 그런데 그들은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대답했다. 창2:25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대답했다. 2:25에는 왜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빛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8:5에는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 씌웠다고 했다. 그들은 창조될 때 영광과 존귀를 입었다. 관 씌었다는 말 ‘아타르’는 둘러쌌다는 뜻이다. 그들을 영광과 존귀로 둘러싼 것이다. 즉 영광과 존귀로 옷을 입었다는 뜻이다. 부조와 선지자에는 그들이 빛의 옷을 입었다고 했다. “이 무구(無垢)한 부부는 아무런 인조 의복을 입지 않았으며 그들은 천사들처럼 빛과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다.”(부조45). 그런데 요1:4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했다. 예수님에게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여호와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을 때 그 생명은 그들에게 빛의 옷을 입힌 것이다. 그런데 금지한 그 열매를 먹자마자 빛의 옷이 없어졌다. 즉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부는 하나님의 생명 영생의 생명에는 죽은 자가 되었다. 그러나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신 약속을 위하여 육체의 생명을 주시고 수명을 주신 것이다. 그동안 여자의 후손의 구원사업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후6:1,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먹는 순간 없어졌기에 죽은 자가 되었다. 이것을 성경은 하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전15:22)라고 계시하였고 롬5:12에 죄가 들어오면서 사망의 존재가 된 것을 기록하였다.
<교훈>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음에도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의 선택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10월 6일(목) 첫 번째 복음의 약속
창세기 3:15, 21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에서 모든 인류를 위한 어떤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창3:15,21]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답: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며 아담 후손은 어린양의 피로 생명을 회복할 수 있다는 약속을 주셨다.
창세기 3장은 타락 이후에 이 세상을 집어삼킨 끔찍한 비극을 묘사한다. 모든 것이 변했고 아담과 하와는 세상의 이전 모습과 변해버린 모습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좌절감과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현재를 위한 확신과 미래를 위한 소망을 허락해 주셨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통해 뱀을 저주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라고 선언하셨다.
“원수가 되게 하고”라는 말은 계속해서 이어질 선악 간의 우주적 쟁투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의 마음 속에 심겨진 죄에 대한 개인적인 적대감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완전히 타락했으며(엡 2:1, 5) “죄의 종”(롬 6:20)이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에게 심어주신 은혜는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사탄에 대한 적대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인 이 악에 대한 적대감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회심하게 하시는 은혜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없다면 모든 인류는 계속해서 사탄의 명령에 따르는 종, 곧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동물의 희생을 통해 이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보여주셨다(참조, 창 3:21).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따라 아담이 속죄 제물을 드렸을 때 그것은 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생명을 그의 손으로 취해서 속죄 제물을 드려야 했다. 그것이 그가 처음으로 목격한 죽음이었다.
그는 목숨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 피를 쏟는 희생 제물을 바라보면서 그 희생 제물이 예표하는 하나님의 아들, 즉 인류를 위하여 죽으실 분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었다”(살아남는 이들, 50).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을 떠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창 3:19, 22~24). 그러나 그들은 벌거벗은 채로 또는 그들이 만든 무화과 나뭇잎으로 된 가리개(창 3:7)만 걸친 허름한 차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만드셔서 입혀주셨는데(창 3:21) 이는 하나님의 ‘입혀주시는 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참조, 슥 3:1~5, 눅 15:22). 에덴의 첫 시작에서부터 인류에게 복음이 드러났다.
<묵상>
고린도후서 5:21과 히브리서 9:28을 읽어보십시오. 이 성경절들은 에덴에서 처음 공개된 것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답: 예수께서 인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하여 행하신 구원사업을 가르쳐준다.
<부가설명> 창3:15을 원복음이라고 표현한다. 성경에 계시한 최초의 복음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을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깨닫기로는 이 구절은 성경 전체의 복음을 바르게 깨닫게 하는 마스터 키(關鍵)이다. 이 구절에 성경 내용 전체가 걸려있다. 예수님이 겪으실 구원사업 전체가 이 구절 안에 예언되었다. 1. 구주의 탄생=여자의 후손, 2. 구주의 고난=뱀이 그의 발꿈치를 상함, 3. 구주의 승리=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함이다.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를 창조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으로 세상 맨 마지막에 출생할 사람까지 창조하신 것이다. 세상에 살고 간 사람들이나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출생할 사람들은 다 아담 안에 있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 안에서 다 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생육할 영의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의 씨로 출생하는 사람들은 다 육체의 생명으로 출생하는데 그것은 옛사람이라고 한다(엡4:22). 옛사람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라는 사람이다(엡4:22). 이런 사람을 성경은 썩어질 씨로 되었다고 한다(벧전1:23). 그렇기 때문에 이런 옛사람을 구원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 구주는 아담의 썩어질 씨로 출생하면 안 된다. 자기도 썩는 옛사람이 되기 때문에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남자와 상관없은 동정녀에게서 출생해야 한다. 그러려면 생명의 씨가 남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동정녀에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성령으로 임신하였다고 성경은 계시한다(마1:18,23, 눅1:34,35). 그래서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 구주를 여자의 후손(씨=히브리언 제라)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계시한 말씀이다. 그분은 사탄에게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다. 발꿈치를 상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이제 사탄은 없어질 것이다(히2:14). 창세기 3장 15절을 질 이해했으면 좋겠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인류를 위해 영세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구속의 계획을 드러내심으로 회복에 대한 소망을 허락하셨다.
10월 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52~62, “유혹과 타락”, 63~70, “구속의 경륜”, <교육> 23~27, “선악에 대한 지식”을 읽어보라.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도 죄로 말미암아 악한 자의 권세 밑으로 들어갔었다. 그것들은 구속의 경륜으로 말미암아 회복될 것이었다. 아담은 창조될 때에 지구를 통치할 지위에 세워졌으나, 유혹에 굴복함으로 그는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벧후 2:19) 된다. 사람이 사단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가 가졌던 통치권은 그의 정복자에게 넘어갔다. 이같이 하여 사단은 ‘이 세상 신’(고후 4:4)이 되었다. 그는 원래 아담에게 주어진바 되었던 지상의 통치권을 찬탈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희생으로 죄의 형벌의 값을 치르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잃었던 통치권도 되찾으실 것이었다. 첫째 아담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둘째 아담이 회복하실 것이었다. 선지자는 ‘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이 네게로 돌아오리라’(미 4:8)고 말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엡 1:14)실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행복스러운 존재의 거처가 되도록 이 땅을 창조하셨다. 주께서 ‘땅도 창조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사 45:18)셨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땅이 새롭게 되고, 죄와 슬픔에서 해방되어 그것이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때 이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6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아담과 하와의 경험이 하나님의 용서가 죄의 모든 결과들을 되돌리는 것은 아님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용서는 구원받을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나타내고 누구든지 이것을 받아드릴 때 그는 새 생명을 얻는다.
2.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리기 위한 원수의 “유혹의 장소”였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유혹의 장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 각각 생각해보자.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진리를 왜곡하는 교훈이 가장 위험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핸드폰에도 있다. 그 외의 여러 장소가 있지 않겠는가.
3.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요구는 그들이 한때 믿었던 것보다도 덜 엄격하며, 세상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74) 믿게 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와 같은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오직 기록된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기록한 말씀 밖에 결코 나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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