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 십일조 계약 -(핵심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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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1-17 01:01 조회3,79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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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십일조 계약(十一條 契約)
(1월 2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3분)
<서언(緖言)>
십일조(十一條)와 헌물(獻物)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感謝)와 사랑의 표시(表示)이며, 믿음의 행동이고, 믿음을 자라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事業)을 돌보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사업을 확장(擴張)시키는 것이고, 그와 같은 믿음의 실천(實踐)은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獻身)한다는 최소(最小)한의 증거(證據)가 십일조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십일조나 헌금을 드리는 방법(方法)역시(亦是) 하나님께서 지정(指定)해 놓으신 방법대로 실천(實踐)하는 것이 십일조와 헌금의 기본정신(基本精神)임과 동시(同時)에 착하고 충성(忠誠)된 청직(廳直)이의 사명(使命)이라 할 것이다.
(1월15일) (일) <십일조(十一條)>
(Q)~십일조(十一條)의 정신(精神)과 근거(根據)와 유래(由來)와 방법(方法)은 ? (레27:30, 32 ; 창14:18~20 ; 창28:13~14, 20~22 ; 히7:1~9)
(A)~○.십일조 제도(十一條 制度)는 하나님께서 제정(制定)하신바 하나님께 대한 순종(順從)과 감사(感謝)의 표시(表示)와 믿음의 행동(行動) 및 실천(實踐)준행 여부(與否)가 따른다. 십일조제도(十一條制度)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認定)하는 표시(表示)이자 하나님께 드리는 최소한(最小限)의 헌신(獻身)의 증거(證據)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目的)과 근거(根據)대로 준행(遵行)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도리(道理)일 것이다.
(1월16일) (월) <창고(倉庫)는 어디인가?>
(Q)~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十一條)와 헌금(獻金)의 “중앙창고(中央倉庫)”는 어디인가? (말 3:10 ; 신12:5~14 ; 출23:14~17 ; 대하31:11~21 ; 느12:44~47 ; 느13:8~14)
(A)~하나님께서 제정(制定)하신 십일조(十一條)와 헌금(獻金)들은 교회(敎會)를 통하여 성도(聖徒)들이 드려질 때 성경에 나타난 “중앙창고(中央倉庫)”원칙에 따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합회(合會), 연합회(聯合會), 지회(支會), 대총회(大總會)를 세계교회(世界敎會)를 대신(代身)하는 창고(倉庫)로 지정(指定)하여 각종복음사역(各種福音使役)이 효과적(效果的)으로 선교(宣敎)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方式)이다.
(1월17일) (화) <십일조(十一條)의 목적(目的)>
(Q)~십일조(十一條)의 목적(目的)은 무엇입니까? (레27:30, 32 ; 창14:18~20 ; 창28:13~14, 20~22 ; 히7:1~9) (시 116:12 ; 고후9:6~8 ; 행20:35 ; 민18:21, 24)
(A)~○.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는 법(法)을 배울 수 있으며 속(俗)된 것과 거룩한(聖)것을 구별(區別)하는 표(表)이며 믿음을 행동(行動)으로 나타내는 방법(方法)이고 믿음이 성장(成長)할 것이며 하나님의 복음사역(福音使役)에 동참(同參)하는 것이 되며 레위인(사역자(使役者)들의 기업(企業)이 되며 복음을 땅 끝까지 전(傳)하기 위한 목적(目的)이 있다.
(1월18일) (수) <총수입(總收入)에 대한 십일조(十一條)인가 순수익(順收益)에 대한 십일조인가?>
(Q)~십일조를 어떻게 구분(區分)하여 드려야 하는가? 즉 총수입(總收入)에 대한 십분(十分)에 일(一)인가, 아니면 순수익(順收益)에 대한 십분(十分)의 일(一)인가? (열왕기 상17:9~16 ; SDA 1990년 판 “십일조 원칙과 지침”22p 참조 ; 교회증언 4권469p 참조)
(A)~○.십일조(十一條)에 대하여는 편의(便宜)상 쉽게 구분(區分)하기를 봉급(俸給)을 받는 사람과 자영업(自營業)을 하는 사람들로 크게 구분(區分)할 수 있다. 이에 봉급 받는 자는 봉급 총액(總額)에서 제세공과금을 다 공제한후 실 수령액수만으로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경우와 자영업자(自營業者)의 경우 매출액과 사업제반 비용을 다 차감(差減)하고 남은 금액으로 십 분에 일을 구별하여 기준으로 삼는 자의 경우등이 있다. 그러나 어는 분은 봉급의 전체 액수의(공제하지 않는 전 금액)으로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드리는 사람도 있으며 자영업자(自營業者)도 매출금액으로(차감(差減)하지 않고)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1990년도에 대총회에서 발간된 ‘십일조 원칙과 지침’ 22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십일조(十一條)는 법적(法的)인 세액공제(稅額控除)나 기타 근로자공제(勤勞者控除) 전(前)의 총수입(總收入)을 기준(基準)으로 계산(計算)하여 드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증언 4권, 469)에는 “각 사람은 스스로 자기재산(自己財産)의 평가자(評價者)가 되어 마음의 의도(意圖)대로 드리게 되어 있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론적(結論的)으로 십일조(十一條)는 어떤 방식으로 드리느냐는 각자(各者)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그에 중요한 핵심(核心)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느냐에 관(關)한 말씀이다.
(1월19일) (목) <정직(正直)한 십일조(十一條)를 충성(忠誠)스럽게 드림>
(Q)~정직(正直)한 십일조(十一條)를 충성스럽게 드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意味)인가? (고전4:1~2 ; 고후9:6~8 ; 마태25:19~21 ; 말3:10)
(A)~○.십일조는 선택(選擇)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命令)(말3:10)이다. 그러므로 수입(收入)에 첫 번째 것으로 정직(正直)하게 올바로 충성(忠誠)스럽게 하늘 창고(倉庫)에 드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또한 올바로 목적대로 사용(使用)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임의(任意)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부여(附與)된 책임(責任)이며, 최후(最後)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의(公義)롭게 판단(判斷)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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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제3과 십일조 계약(十一條 契約)
(1월 2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3분)
<기억절(記憶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十一條)를 창고(倉庫)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糧食)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試驗)하여 내가 하늘 문(門)을 열고 너희에게 복(福)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서언(緖言)>
십일조(十一條)와 헌물(獻物)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感謝)와 사랑의 표시(表示)이며, 믿음의 행동이고, 믿음을 자라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事業)을 돌보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사업을 확장(擴張)시키는 것이고, 그와 같은 믿음의 실천(實踐)은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獻身)한다는 최소(最小)한의 증거(證據)가 십일조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십일조나 헌금을 드리는 방법(方法)역시(亦是) 하나님께서 지정(指定)해 놓으신 방법대로 실천(實踐)하는 것이 십일조와 헌금의 기본정신(基本精神)임과 동시(同時)에 착하고 충성(忠誠)된 청직(廳直)이의 사명(使命)이라 할 것이다.
(1월15일) (일) <십일조(十一條)>
(Q)~십일조(十一條)의 정신(精神)과 근거(根據)와 유래(由來)와 방법(方法)은 ? (레27:30, 32 ; 창14:18~20 ; 창28:13~14, 20~22 ; 히7:1~9)
(A)~○.십일조 제도(十一條 制度)는 하나님께서 제정(制定)하신바 하나님께 대한 순종(順從)과 감사(感謝)의 표시(表示)와 믿음의 행동(行動) 및 실천(實踐)준행 여부(與否)가 따른다. 십일조제도(十一條制度)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認定)하는 표시(表示)이자 하나님께 드리는 최소한(最小限)의 헌신(獻身)의 증거(證據)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目的)과 근거(根據)대로 준행(遵行)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도리(道理)일 것이다.
○.<십일조(十一條)>
“십일조와 헌금(獻金)에 대한 불 충성(不忠誠). 일반적(一般的)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청(廳)지기 직분(職分)의 거룩한 원칙에 대해서 무지(無知)하며 또한 그것을 무시(無視)한다. 심지어(甚至於)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까지도 소수(少數)만이 청지기로서의 그들의 역할(役割)을 인정(認定)한다. 이스라엘의 불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反應)은 그분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간주(看做)하시는가에 대하여 분명한 통찰력(洞察力)을 준다.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그들 자신의 유익(有益)을 위하여 사용했을 때, 그분께서는 그것은 결국 도적(盜賊)질과 같은 것이며(말 3:8)그들이 번영(繁榮)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불 충성된 회계(會計) 때문이라고 경고(警告)하셨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詛呪)를 받았느니라" (말 3:9).”(교리, 255)
○.“금전(金錢)에 대한 청(廳)지기 직분(職分)
금전에 대한 청지기 직분이란 우리의 경제(經濟)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要求)와 관련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報答)할꼬”란 질문(質問)을 하자(시 116:12). 주는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요한복음 3:16)을 읽으라. 이기적(利己的)인 사람은 그 누구도 하늘에 들어 갈 수 없다. 주는 사람에는 세 가지 종류(種類)가 있다. 부싯돌, 스펀지, 꿀 벌집. 그대가 망치로 부싯돌을 두드려 본댔자 기껏해야 깨어진 조각과 불꽃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스폰지는 비틀어 짜야만 물이 나온다. 그러나 벌집에서는 향긋한 냄새와 함께 꿀이 저절로 넘쳐 흐른다. 우리는 결코 인색(吝嗇)하고 짜게 구는 부싯돌 같은 사람이나 스폰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이들은 주도록 압력(壓力)을 받아야만 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마땅히 꿀 벌집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한다(고후 9:7).
(1) 재물(財物)은 누구의 능력(能力)으로 얻어지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記憶)하라 그가 네게 재물(財物) 얻을 능(能)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盟勢)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8). 잠언 10:22을 읽으라.
(2) 얼마만큼이나 하나님께 속(屬)하는가?
“땅과 거기 충만(充滿)한 것과 세계와 거기에 거(居)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시편 100:3; 50:10, 11; 학개 2:8)을 읽으라.
(3) 우리의 수입(收入) 중 얼마만큼이나 하나님께 성별(聖別)된 것인가?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穀食)이나 나무의 과실(果實)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聖物)이라…소나 양(羊)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通過)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레 27:30, 32). (창세기 14:20; 히브리서 7:2, 4)을 읽으라.
○.☞ 십일조(十一條)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약탈(掠奪)해간 왕들을 추적(追跡)하였다. 성경은 그가 돌아오는 길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한다. (창 14:19, 20). (히브리서 7:2~4)에는 그가 십분의 일을 드렸다고 설명(說明)한다.
(4) 수입(收入) 중 어느 부분(部分)으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네 재물(財物)과 네 소산물(所産物)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恭敬)하라”(잠 3:9).
☞ 어떤 이들은 빚을 갚으려면 전체가 필요하므로 십일금을 꼭 드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하나님께 십일금(十一金)을 먼저 드리게 되면 십분(十分)의 구(九)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祝福)을 받게 될 것이다. (잠언 3:10을 읽으라).
(5) 십일조 외(外)에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要求)하시는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合當)한 영광(榮光)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禮物)을 가지고 그 궁정(宮廷)에 들어갈 지어다”(시 96:8).
☞ 예물(禮物)은 특정 분량이 없다. 예물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에 따라 드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6:2; 고린도후서 8:12; 9:7을 읽으라). 우리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돌려야 한다.
예물(禮物)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분량(分量)중에서 그분께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에서 우리는 의무(義務)를 완수(完遂)하고 예물(현물)에서 우리는 그가 베푸신 수많은 축복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게 된다.
(6)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충성(忠誠)스럽게 돌려 드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축복이 선언되었는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倉庫)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門)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蝗蟲)을 금(禁)하여 너희 토지소산(土地所産)을 멸(滅)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果實)로 기한(期限) 전(前)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말 3:10, 11).
(7) 십일조와 예물(禮物)(헌물)에 불충실(不忠實)한 자(者)들은 무엇을 당할 것인가?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盜賊)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詛呪)를 받았느니라.(말 3:9). (학개 1:5~11)을 읽으라.
(8) 십일조는 무엇을 위하여 사용(使用)될 것이었는가?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企業)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會幕)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 18:21).
(9) 오늘날 목회자(牧會者)들이 십일조로 살도록 되어 있는가?
“성전(聖殿)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祭壇)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福音) 전(傳)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 14).
(10) 예수께서는 십일조제도(十一條制度)를 시인(是認)하셨는가?
“화(禍) 있을진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書記官)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薄荷)와 회향(茴香)과 근채(芹菜)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行)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11) 우리는 어디에 십일조(十一條)를 두어야만 하는가?
“만군(萬軍)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穩全)한 십일조를 창고(倉庫)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糧食)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試驗)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 창고(倉庫)는 하나님의 교회(敎會)의 금고(金庫)를 일컫는다. (느헤미야 13:12)을 읽으라. 하나님의 목회자(牧會者)들을 살 도록하기 위하여 십일조를 분배(分配)하는 것은 재무(財務)의 임무(任務)이다. (느헤미야 13:13)을 읽으라.
◎ 십일조(十一條)에 관한 결론(結論)
○. 천연계(天然界)에서 어떤 것들은 나눔으로써 증식(增殖)된다. 어떤 것들은 찢어냄으로써 증가(增加)한다. 식물(植物)들은 씨앗을 풍부(豊富)하게 뿌려야만 번성(蕃盛)한다. 풍족(豊足)히 거두려는 농부(農夫)는 풍족히 뿌린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물(萬物)에 대한 그분의 소유권(所有權)을 인정(認定)하기 때문에 우리 수입(收入)의 십일조를 드려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축복(祝福)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길로 우리에게 축복(祝福)을 베푸신다. (핵심, 청지기로서의 인간>4. 금전에 대한 청지기 직분)
(1월16일) (월) <창고(倉庫)는 어디인가?>
(Q)~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十一條)와 헌금(獻金)의 “중앙창고(中央倉庫)”는 어디인가? (말 3:10 ; 신12:5~14 ; 출23:14~17 ; 대하31:11~21 ; 느12:44~47 ; 느13:8~14)
(A)~하나님께서 제정(制定)하신 십일조(十一條)와 헌금(獻金)들은 교회(敎會)를 통하여 성도(聖徒)들이 드려질 때 성경에 나타난 “중앙창고(中央倉庫)”원칙에 따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합회(合會), 연합회(聯合會), 지회(支會), 대총회(大總會)를 세계교회(世界敎會)를 대신(代身)하는 창고(倉庫)로 지정(指定)하여 각종복음사역(各種福音使役)이 효과적(效果的)으로 선교(宣敎)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方式)이다.
○.☞ 창고(倉庫)는 하나님의 교회(敎會)의 금고(金庫)를 일컫는다. (느헤미야 13:12)을 읽으라.
하나님의 목회자(牧會者)들을 살 도록하기 위하여 십일조(十一條)를 분배(分配)하는 것은 재무(財務)의 임무(任務)이다. (느헤미야 13:13)을 읽으라.” (핵심, 청지기로서의 인간- 4. 금전에 대한 청지기 직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역사상(歷史上)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조직적 자선과 헌물과 연보제도를 실천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과 비례하여 그들의 모든 활동에 번영이 따를 것이라는 불변(不變)의 약속을 깨달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고 그분의 요청에 응함으로 그들의 물질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할 때에, 그들의 창고는 풍성하게 채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때 그들은 하나님뿐 아니라 자신들의 것도 도적질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을 제한한 것에 비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실 축복을 제한하셨기 때문이다.”(1보감, 375)
○.하나님의 사업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신중한 고찰과 능숙한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목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바쳐진 자금을 사용하는 일에 빈약하거나 인색한 계획에 따라서는 안 된다. 만일 빈약하거나 인색할 때에 주님의 창고는 얼마 안가서 텅 비게 될 것이다(서신 40, 1897).”(2기별, 209)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일에 돈을 주는 것은 정말 잘못 되었다. 사업에 해만 끼치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창고는 고갈되었다. 목사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온전히 헌신하고 사업을 세우는 일에 모든 정력을 다 바친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일상적인 것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주님보다 나은 삯을 받고 있으며 그분께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라고 내보내신 그분의 택하신 제자들보다 나은 삯을 차지하고 있다. (2증언, 345)
○.“하나님께서 지상의 재물로 번영케 하신 모든 이들이 그들의 모든 증가액의 십분의 일을 충성스럽게 바침으로 그분의 계획을 수행한다면, 그들의 속건제와 감사제를 붙잡고 있지 않는다면, 창고는 끊임없이 채워지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조직적인 헌금 계획을 준수하는 일을 등한히해 왔으며, 그 결과로 창고는 고갈되고 교회는 뒤로 미끌어졌다.”(3증언, 408)
○.“주의 우편에는. 하나님의 손은 그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기쁨의 창고는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한하신 자와 더불어 영원히 공존한다(참조 고전 2:9; 각 시대의 대쟁투, 674~ 678; 교육, 301~309).”(성경주석, 시 16:11)
(1월17일) (화) <십일조(十一條)의 목적(目的)>
(Q)~십일조(十一條)의 목적(目的)은 무엇입니까? (레27:30, 32 ; 창14:18~20 ; 창28:13~14, 20~22 ; 히7:1~9) (시 116:12 ; 고후9:6~8 ; 행20:35 ; 민18:21, 24)
(A)~○.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는 법(法)을 배울 수 있으며 속(俗)된 것과 거룩한(聖)것을 구별(區別)하는 표(表)이며 믿음을 행동(行動)으로 나타내는 방법(方法)이고 믿음이 성장(成長)할 것이며 하나님의 복음사역(福音使役)에 동참(同參)하는 것이 되며 레위인(사역자(使役者)들의 기업(企業)이 되며 복음을 땅 끝까지 전(傳)하기 위한 목적(目的)이 있다.
○.<십일조(十一條)의 사용목적>.
십일조는 신성하다. 그러므로 신성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주께서는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소나 양의 십분 일은...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레 27:30-32)라고 명령하셨다. 그분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말 3:10)고 말씀하셨다.”(교리, 254)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의 용도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하셨다.
그분께서는 자금의 부족 때문에 그분의 사업이 약해지도록 계획하지 않으신다. 아무렇게나 사업을 하지 않고, 또한 실수하는 일도 없도록 그분께서는 이 점들에 관해서 우리의 의무를 매우 분명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위하여 남겨두신 부분은 그분께서 명백하게 지정해 주신 것 외의 다른 목적으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십일조를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사용하고자 보류해 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사업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우에도 그들은 그것을 어떤 비상사태에 스스로를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합당하다고 여기는 대로 유용해서도 안 된다.” (9증언, 247) (성연1-3, 제402편)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대하여 참견하는 자들은 저희가 회개하지 않는 한 하늘 보화를 잃어버리게 한 죄목으로 징벌을 받을 것이다. 십일조의 용도에 대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목적 이외의 다른 여러 방향에 유용함으로 더 이상 사업이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다른 부서의 사업을 위해서는 이에 대처하도록 규정을 만들 것이다. 이런 부서들도 유지되어야 하지만 십일조에서 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 십일조는 아직도 목사의 부양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 9T, 247-250. (청지기, 102)
(1월18일) (수) <총수입(總收入)에 대한 십일조(十一條)인가 순수익(順收益)에 대한 십일조인가?>
(Q)~십일조를 어떻게 구분(區分)하여 드려야 하는가? 즉 총수입(總收入)에 대한 십분(十分)에 일(一)인가, 아니면 순수익(順收益)에 대한 십분(十分)의 일(一)인가? (열왕기 상17:9~16 ; SDA 1990년 판 “십일조 원칙과 지침”22p 참조 ; 교회증언 4권469p 참조)
(A)~○.십일조(十一條)에 대하여는 편의(便宜)상 쉽게 구분(區分)하기를 봉급(俸給)을 받는 사람과 자영업(自營業)을 하는 사람들로 크게 구분(區分)할 수 있다. 이에 봉급 받는 자는 봉급 총액(總額)에서 제세공과금을 다 공제한후 실 수령액수만으로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경우와 자영업자(自營業者)의 경우 매출액과 사업제반 비용을 다 차감(差減)하고 남은 금액으로 십 분에 일을 구별하여 기준으로 삼는 자의 경우등이 있다. 그러나 어는 분은 봉급의 전체 액수의(공제하지 않는 전 금액)으로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드리는 사람도 있으며 자영업자(自營業者)도 매출금액으로(차감(差減)하지 않고)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1990년도에 대총회에서 발간된 ‘십일조 원칙과 지침’ 22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십일조(十一條)는 법적(法的)인 세액공제(稅額控除)나 기타 근로자공제(勤勞者控除) 전(前)의 총수입(總收入)을 기준(基準)으로 계산(計算)하여 드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증언 4권, 469)에는 “각 사람은 스스로 자기재산(自己財産)의 평가자(評價者)가 되어 마음의 의도(意圖)대로 드리게 되어 있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론적(結論的)으로 십일조(十一條)는 어떤 방식으로 드리느냐는 각자(各者)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그에 중요한 핵심(核心)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느냐에 관(關)한 말씀이다.
○.“땅과 바다와 하늘에 있는 자연의 요소들이 한계를 지키는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강한 능력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소들을 당신의 피조물들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신다. “여호와께서 …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인간의 손의 “모든 일에 복을”(신 28:12) 아낌없이 주신다.”(선지, 134)
○.“그래도, 대부분의 우리 교역자들은 실행해야 할 많은 큰 의무들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자금이 필요될 때마다, 그들은 그들의 모본의 감화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아낌없이 바치도록 하며 또 하나님의 사업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솔선수범해서 먼저 큰일을 한다. 새 지방에 깃대를 꽂으려는 열망이 강하므로 여러 사업을 돕기 위해서 돈을 꾸기까지 하는 자들이 많다. 저들은 인색한 마음으로 바치지 아니하고,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긴다. 저들이 이와 같이 자금 모집에 호응함으로 인해서 흔히 저들의 수중에 금전이 별로 남지 않는다.”(복음, 429)
(1월19일) (목) <정직(正直)한 십일조(十一條)를 충성(忠誠)스럽게 드림>
(Q)~정직(正直)한 십일조(十一條)를 충성스럽게 드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意味)인가? (고전4:1~2 ; 고후9:6~8 ; 마태25:19~21 ; 말3:10)
(A)~○.십일조는 선택(選擇)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命令)(말3:10)이다. 그러므로 수입(收入)에 첫 번째 것으로 정직(正直)하게 올바로 충성(忠誠)스럽게 하늘 창고(倉庫)에 드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또한 올바로 목적대로 사용(使用)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임의(任意)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부여(附與)된 책임(責任)이며, 최후(最後)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의(公義)롭게 판단(判斷)하실 것이다.
○.<정직한 십일조>
1. 액수 – 우리의 수입 또는 수익 증가분의 십분의 일 또는 10퍼센트
2. 창고에 드림 – 복음 교역자들의 급여를 지불하는 곳
3. 우리 수입의 첫 번째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
4. 올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함 – 복음 사역을 지원함
우리는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처음의 세 가지 요소들을 잘 지켜야 한다.
드려진 십일조가 올바르게 사용되도록 하는 것은 창고 관리자들의 책임이다.
다른 헌금들과 달리 십일조는 우리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창고에 드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교과 46p>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감독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이 일이 그에게 달갑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다른 어떤 사람이 하도록 맡기겠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는 충성된 교역자가 아니다. 그는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대한 도적질이라고 백성을 책망하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9)고 말하신다. 말씀과 교훈으로 봉사하는 자가 백성들에게 이 저주가 초래되는 길을 그들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교훈하고 경고하는 의무를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교인은 정직한 십일조를 내는 데 성실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9증언, 250)
“주께서는 십분의 일을 당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실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당신을 위하여 떼어 두어야 하는가를 말씀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먼저 자신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를 주님께 가져오는 것이 정직한 십일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떼어 놓으라. ― RH, 1902. 2. 4.”(청지기, 81)
○.“목사로 봉사하는 이들에게 부과된 엄숙한 책임이 이상하게도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설교하기는 좋아하지만 교회를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과 의무에 관하여 특별히 정직한 십일조를 드림에 관하여 교훈해야 할 큰 필요성이 있다. 우리 목사들은 저희들의 봉급을 즉시 받지 못하면 슬프게도 불만을 품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창고에 일꾼들을 부양할 양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충실히 바치도록 백성을 교육시켜야 하는 그들의 온전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주의 창고에는 주의 사업을 발전시킬 재정이 결핍되게 될 것이다.”(청지기, 104)
○.“하나님의 양떼의 감독은 자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만일 그가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서 자기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고 하여 그 일을(십일조에 대한 교육을) 남에게 맡긴다면 그는 충성된 일꾼이 아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백성을 고발하는 말라기서에 기록된 주의 말씀을 읽어 보라. 크신 하나님께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9)고 선포하셨다. 말씀과 교리로 봉사하는 목자로서 백성들이 저주받는 길로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교훈과 경고를 해야 할 그의 의무를 어떻게 등한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교인들은 정직한 십일금을 드리는 일에 충실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 9T, 250, 251.”(청지기, 104)
○. 그리스도인에게 거짓말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라합 같은 사람에게는 빛이 점진적으로 이르러 온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안식일에 대하여 무지함으로 그것을 범했던 때가 있다. 우리 역시 십일조나 건강한 삶의 원칙들을 알지 못했던 때가 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하나님은 비록 연약함과 무지가 혼재해 있다 할지라도 진실하고 정직한 의도를 가납한다. 라합의 믿음은 시험을 받았고 진실임이 드러났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해있는 곳에서 그대로 우리를 용납하지만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벧후 3:18).”(성경주석, 수 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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