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시련 중에 기다림(질문, 대답, 설명) 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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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9-02 16:07 조회5,255회 댓글0건본문
제11과 시련 중에 기다림
(9월 1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8분)
연구 범위: 롬 15:4, 5, 롬 5:3~5, 삼상 26, 시 37:1~11
기억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 오래 참음과 …”(갈 5:22).
마시멜로를 사용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실험자가 4살짜리 아이에게 마시멜로 한 개를 준 뒤 자기가 볼일을 보고 돌아올 때까지 그것을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한 개를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떤 아이들은 그 과학자가 떠나자마자 마시멜로를 입 안에 집어넣었지만, 어떤 아이들은 끝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아이들의 십대까지를 추적했는데, 끝까지 기다린 아이들은 기다리지 못한 아이들보다 적응력이 뛰어나고, 모범적이었으며, 학교 생활에서도 더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내는 인간의 품성 중에 매우 중요하고 위대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내심을 계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가장 감당하기 힘든 시련의 배후에 있는 기다림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 이번 주 학습 포인트: 우리는 왜 종종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는 시련 중에 참고 기다림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게 함을 깨닫는다.
- 느끼기
주 안에서 기뻐하는 법을 가르쳐 주심으로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 행하기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간다.
TMI 위로
2. 로마서 15:4~6에서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래 참는 것.
3. 하나님의 실수함 없으신 시간표에 대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롬 5:6, 갈 4:4)
※ 약속대로 역사에서 다 성취된 사건으로 확실할 수 있다.
5. 갈멜산에서의 성공적인 사역 이후 엘리야가 광야로 도망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왕상 19)
※ 기대한 개혁이 이루어지 지 않고 오히랴 자기를 죽이겠다는 위협이 있어서 낙심했으므로.
6.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시 37:1~11)
※ 그분이 내게 베푸시는 섭리를 다 받아들이고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때 오는 기쁨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결론
인내를 배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하신 때에 모든 것을 온전하게 이루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9월 4일(일) 인내의 하나님
로마서 15:4, 5을 읽어보라. 이 구절에서 우리를 위한 어떤 교훈을 발견할 수 있는가?
[롬15:4,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답: 옛날 이스라엘의 모든 행적, 특히 광야의 그들의 행적은 오래 참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을 그들의 역사적 사건으로 배울 수 있다. 예수님도 세상에 살 때에 핍박고 고난을 인내로 모든 일을 성취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말 갖고 싶거나 이미 받기로 약속된 어떤 것을 받지 못했을 때 잘 참지 못한다. 우리는 자주 갖고자 열망하던 것을 갖게 된 후에야 비로소 만족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때에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짜증과 조급함에 빠져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되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다림은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참고 기다리다’(시 37:7)를 나타내는 말은 ‘많은 고통을 감수하다,’ ‘떨며 전율하다,’ ‘상처를 품다,’ ‘슬픔에 잠기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에서부터 왔다. 인내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시련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다.
시편 27:14, 37:7, 그리고 로마서 5:3~5을 읽어보라.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인내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가?
[시27: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롬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답: 인내는 성도를 소망으로 이끌어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다음의 둘 중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신 그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기다리느냐가 본질적인 차이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의 삶을 그분의 손에 맡겼다면,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굴복시켰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가장 최선의 때에, 가장 최선의 길로 우리를 이끄실 것을 신뢰할 수 있다. 비록 때때로 그런 믿음이 쉽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묵상>
“주님의 시간에”라는 찬양을 부르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묵상해 보세요.
찬양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하루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기다려 그때를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넉넉히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다. 그분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이 세상에는 영원 대신에 시간이 들어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체 운행 규례를 정하신 것뿐이다.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 생명은 영원하였다(요일2:25). 그런데 사람이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지자 지구 창조의 모든 질서가 변질이 되었다. 생명이 사망으로 변질하고 영원함은 시간으로 변질하였다. 그래서 이 지구 사람들은 시간에 매여 살다가 사망이 된 각자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나면 사망으로 들어가고 존재와 생명을 상실한다. 사람들은 기다릴 때 시간이 지루하다. 그래서 인내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나님도 사람을 위하여 오래 기다리신다.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벧후3:15). 하나님께서 참지 않으시고 공의를 즉시 시행하셨다면 아담 부부는 즉시 죽었을 것이고 이 지구는 헛되게 창조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사45:18).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를 결단코 헛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참으시고 또 참으신다.
<교훈>
인내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릴 수 있다.
9월 5일(월) 하나님의 시간에
로마서 5:6과 갈라디아서 4:4을 읽어보라.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답: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가장 합당한 때에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기 위해 정확한 때에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때가 왜 정확한 때였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이미 오래 전에 온 우주에 죄의 흉악성이 알려졌음에도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어야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왜 그토록 오래 기다리시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그처럼 지체하시는지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가리키는 다니엘 9:24~27의 칠십 이레의 예언을 생각해 보라(필요하다면 이 예언을 복습하라). 이 예언은 얼마나 긴 기간을 가리키고 있는가? 비록 우리에게 매우 긴 시간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함에 대해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답: 성경의 예언의 때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시간표에 의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고 그 때가 되면 반드시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기다림을 경험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영적 이유들이 있다. 첫째, 기다림은 우리의 관심을 ‘사물’로부터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 둘째, 기다림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동기와 욕망을 더욱 분명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셋째, 기다림은 인내, 곧 영적 체력을 기르도록 도와준다. 넷째, 기다림은 믿음과 신뢰와 같은 많은 영적 힘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섯째, 기다림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섭리가 성취되도록 이끌어준다. 여섯째, 우리는 기다림의 이유를 전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다림을 허락하시는 또 다른 이유들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라.
<묵상>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대를 위해 당신이 정하신 때에 당신의 일을 이루심을 가르쳐 주는 어떤 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된 아들을 주시는 사건)
답: 대표적인 것이 70이레 예언이 예언된 그때에 다 이루어진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다. 그러나 죄의 세상이된 이 지구는 시간의 지배에 갇혔다. 그래서 모든 일을 시간으로 잰다. 인간의 수명도 시간으로 계산한다. 그것이 사망의 성질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을 인간의 시간으로 계산하여 때에 관한 예언을 하셨다. 그리고 예언한 그 때에 정확하게 이루어주심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그들이 있어야 할 신앙의 자리에 있도록 하셨다. 오늘날은 2,300주야로 예언한 때가 지난 후 시대이다. 성경에는 2,300주야 후에는 예언한 역사적 때가 없다. 그래서 지체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계10:6). 이 말은 ‘남은 때가 없으리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직역이다. 오늘 우리는 시간 예언이 다 지난 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더 지루한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더욱 정신차리고 인내로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사탄은 예언 되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1:7)라고 하셨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매일을 충성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교훈>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굳센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면, 그와 같은 기다림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다.
9월 6일(화) 다윗: 기다림의 실물교훈
우리는 사무엘상 16:1~13에서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 부음 받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양을 치던 때부터, 예루살렘 왕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매우 길고 험난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종종 시련의 도가니에 빠져있음을 느꼈다.
먼저 청년 다윗은 사울의 불안정한 정신을 달래주기 위해 수금을 타도록 부름을 받았고(삼상 16장), 후에 골리앗을 죽임으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지만(삼상 17장), 그 후 수년 동안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은 다윗이 다음 왕으로 등극할 것을 알고 있었다(삼상 23:17, 24:20).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운명을 앞당기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도, 그는 왕의 겉옷을 조금 베었을 뿐이었는데 그러한 일을 한 것조차 후회하였다(삼상 24:5~7). 후에 사울이 다시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도리어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삼상 26:7~11).
사무엘상 26:1~11을 읽어보라. 다윗이 사울을 죽이기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당신의 계획을 실현시키시는 방법에 대한 어떤 원칙을 배울 수 있는가?
[삼상26:1~1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답: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사람이 해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제 사무엘상 26:12~25을 읽어보라. 다윗이 사울 죽이기를 거절했다는 사실이 사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 사실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의 유익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삼상26:12~25]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17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18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9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20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21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22 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답: 사울이 자기의 행위를 뉘우치게 하였고 다윗이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추진하고 계셨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 여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직 주시지 않은 것을 미리 움켜잡으려 하지 말라.’ 하나님의 선물은 그분의 손을 통해, 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받을 때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이것은 아마도 기나긴 기다림을 요구할지 모른다. 콩나물은 불과 며칠 만에 자라지만, 도토리나무는 자라는 데 여러 해가 걸린다. 하지만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이 나무는 결코 뿌리째 뽑히지 않는다.
<묵상>
다윗이 사울을 죽인 후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가 얼마나 쉬웠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다윗의 행동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다윗의 경험에서 어떤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까?
답: 다윗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추진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그 때가 오기를 인내로 기다렸으며 자기가 그 일을 앞당기는 수단을 쓰지 않았다.
<부가설명> 다윗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을 철저히 지키며 인내하는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하심을 그대로 이루신다. 그분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다(호6:3). 서두르지도 않으시고 변경하지도 않으신다. 왜냐하면 사람을 위한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이미 아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믿음을 배웠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배우는데 실패를 몇 번 하면서 배웠다. 조상의 이런 역사적 사건을 다윗은 잘 알았던 것 같고 그것을 거울삼아 믿음을 배우고 훈련한 것 같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갈을 취하고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그것은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만드는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위에 앉히는 날까지 고난을 견디면 인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기고 믿음으로 기다렸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교훈>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림으로 복을 받았다. 우리 또한 믿음의 여정 가운데 기다림을 통해 이런 축복을 경험해야 한다.
9월 7일(수)
엘리야: 조급함의 문제
갈멜산 정상에서의 대결이 끝났다(왕상 18장).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모든 사람들이 참되신 하나님을 인정했으며, 거짓 선지자들은 처단되었다.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엘리야가 큰 힘을 얻고 영적으로 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는 소문을 듣고 죽기를 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머지 이야기를 열왕기상 19:1~9에서 읽어보라. 주어진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의 염려하시는 음성이 들린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엘리야의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엉뚱한 곳으로 도망하게 하였다.
갈멜산 위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엘리야는, 마땅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로 충만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목숨을 위해 도망한다. 우리는 이 부정적인 예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답: 엘리야는 자기 기대대로 결과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두려워 도망쳤다.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나타내 보여준다. 우리의 조급함이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곳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엘리야로 하여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며 크게 실망하여 광야로 도망하게 했던 것은, 그가 가진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밖으로 달아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이 구절들을 읽어보라.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 밖으로 도망하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창 16:1~3, 민 20:10~12, 사 14:1~3, 마 20:20, 21, 눅 9:52~56, 행 9:1).
[창16:1~3]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민20:10~12]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14:1~3]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마20:20,21]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눅9:52~56]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행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답: 아래 설명이 답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법으로 이루려 하였고, 모세는 인내의 한계에 이르러 하나님의 일을 그러쳤다. 야고보 요한은 야망이 강했고 사마리아인들이 자기들을 무시했다고 느낄 때 노했다. 사울은 자기 소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대적했다.
야망, 분노, 정욕, 믿음의 결핍, 심지어 여호와를 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열심 등이 얼마나 쉽게 우리로 하여금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달려가게 하는지 모른다. 아무도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무엇이 우리에게 최선인지를 아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을 계발하는 것만이 유일한 안전책이다. 이러한 신뢰심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선물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꾸고 양육하며 최선을 다해 돌보아야 할 선물이다.
<묵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곳으로 도망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안전책은 무엇입니까?
답: 순간마다 주님께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가설명>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이런 분들은 다 믿음의 용사요 하나님께서 직접 들어서 쓰신 신앙의 영웅들이다. 그래도 그들은 역시 인간의 약점이 활동에 작용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그것을 활용한다. 그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궤휼에 지혜로운 존재다.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며 그 야망을 이루어달라고 요청한다. 또 자기들을 대접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를 내고 사울은 자기의 소신과 다른 신앙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이다. 우리는 자기를 돌아보는 일을 자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어떤지, 언어가 어떤지, 감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태도는 어떤지. 그래서 진리의 말씀과 맞지 않은 것을 찾을 때 곧 무릎을 꿇고 주님의 도우심, 성령의 능력으로 바르게 되도록 굴복하는 믿음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승리는 생명의 성령으로부터 온다(롬8:2).
<교훈>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큰 승리 후에 이세벨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고 광야로 도망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계발하고 그것을 꼭 붙잡아야 한다.
9월 8일(목) 주 안에서 기뻐하기를 배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시편 37:4에는 놀라운 약속이 담겨 있다. 오래 전부터 갖기 원하던 것을 갖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나 마음에 소원한 바를 갖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주 안에서 기뻐하는 마음을 갖는 것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시편 37:1~11을 읽어보라. 시편 37:4의 배경은 조금 놀랍다. 다윗은 자신을,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할 때,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은 화를 내거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 다른 것을 제안한다.
다윗은 다음의 성경절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가?
시 37: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편 37:4을 다시 읽어보라. 이 구절의 배경을 통해 볼 때,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답: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다.
다윗은 반복해서 말하고 또 말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분이 일하실 것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를 위해 일하는 분이시니 실망하지 말라. 스스로 일을 감당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라.
다윗은 이와 같은 문맥에서, 주안에서 기뻐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완전한 신뢰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계시므로 그 무엇도 우리의 평화를 망가뜨릴 수 없다. 그 누구도 우리 하나님을 앞설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찬양할 수 있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나라를 포함하여 사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가장 적합한 때에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묵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갈 때 누릴 수 있는 축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답: 평안과 기쁨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가르친다(느8:10).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가 말씀하시매 있었고 명하시매 견고히 섰다(시33:9). 그런 분을 우리가 믿는다. 그렇다면 그분이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믿고 내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닥쳐도 기뻐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다윗은 신앙의 그런 비밀을 깨달은 것 같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깨닫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어도 다윗의 경험을 통하여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망의 세상이고 사망의 권세를 잡은 사탄이 자기 때가 다할 때까지 지배한다. 이런 세상에 생명의 사람들이 살면 그 존재 자체가 사망의 세력에게는 눈엣가시가 된다. 그래서 틈만 나면 공격하고 곤경에 빠뜨리려고 온갖 술수를 행한다. 이것을 항상 의식하고 곤경을 대하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그럴 때 내게 일어나는 곤경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풍성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자.
<교훈>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찬양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마침내 천국을 얻게 된다.
9월 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637~642,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음’을 읽어보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이 요구된다. 이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련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춤으로 기다림을 배울 수 있다. 기다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실현과 그분의 왕국의 도래와 관계가 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간다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지만, 그분을 신뢰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모든 시련을 측량하고 계신다.
“나는 나의 병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밝히 파악할 수 없으나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아시므로, 그분께 나의 혼과 몸과 영을 맡길 것이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만약 우리가 더 큰 믿음, 더 큰 사랑, 더 큰 인내 그리고 하늘 아버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신뢰심을 갖도록 우리 영혼을 훈련 시킨다면 매일의 투쟁 속에서 더욱 큰 화평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팔에 안기지 않고 멀리서 우리 스스로 애태우고 근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조용히 기다리며 살피는 그러한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우리들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무엇이 없는 한 바른길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경우에 알맞는 어떤 표징을 계속 찾는다. 그러나 심판의 표준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것이다.”(가려뽑은 기별 2권, 24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예수님께서 “모든 시련을 측량하고 계신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우리를 도우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면 절대적인 신뢰로 기다릴 수 있다.
2.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던 경험을 함께 나눠보라. 기다리는 동한 어떤 두려움과 기쁨을 경험했는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가? 기다림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시련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굳게 붙잡았는가?
※ 서로 이야기해보자. 그 시간에 더욱 많은 기도를 할 것이다.
3. 인내를 계발하는데 있어 기도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령께서 그들의 삶 속에 인내를 계발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 기도는 주님의 섭리를 깨달으며 내 모든 것을 친히 맡아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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