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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질문, 대답, 설명) 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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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11-04 12:02 조회5,3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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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11월 1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4분)

 

연구 범위: 마 27:62~66, 요 10:17, 18, 마 27:51~53, 요 20:11~29, 고전 15:5~8ㅣ

기억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 18).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바울은 이렇게 힘있게 진술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16~18). 우리는 이 말씀에 관해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쳤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희생도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과 구원의 계획에 있어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하늘에 올라가 주님 앞에서 이미 최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공로에 따른 우리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에 부여하는 의미와 전혀 조화되지 않는다.

이번 주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사실을 믿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확실한 증거들을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예수님의 부활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깨닫는다. 

- 느끼기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분을 믿는 우리 또한 그렇게 될 것임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 행하기

부활이 제공하는 확신과 소망을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TMI 위로

2. 예수님을 무덤 안에 가두어 두기 위한 행동들이 도리어 부활의 확실한 증거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마 27:62~66)

※ 예수께서 부활하신 증거를 남게 하였다.

3. 누가 예수님의 부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습니까?(마 28:1~6, 요 10:17, 18, 롬 8:11) 

※ 아버지, 성령, 예수님, 천사.

4.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함께 부활한 성도들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마 27:51~53)

※ 예수님 운명하실 때 큰 지진이 날 때 일어났고 예수님 부활하시고 무덤에서 나오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증거하였다.

5.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요 20:11~29)

※  기뻐하기도 하고 의심한 사람도 있고 상처를 보고 확신한 사람도 있다.

6. 그리스도를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고전 15:20)

※ 예수님이 부활의 창시자라는 뜻이다.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먼저나신 이’는 ‘프로토토코스’인데 으뜸, 창시자 등의 뜻이 있다. ‘으뜸’은 ‘프로튜오’인데 프로토토코스와 같은 계통의 말이다. 

 

결론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무덤 안에 가두어 두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부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모든 믿는 자들 또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실한 보증이 됩니다.

 

11월 6일(일) 봉인된 무덤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명은 멈춘 듯, 마치 실패한 듯 보였다. 사탄은 유다가 구세주를 배반하도록(눅 22:3, 4, 요 13:26, 27),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분을 처형하도록 요구하라고(마 26:59, 마 27:20) 부추기는 데 성공했다.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으며(마 26:56),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마 26:69~75). 이제 예수님께서는 단단한 반석을 깎아서 만든 무덤 속에 누워 계셨는데, 큰 돌로 봉인된 무덤을 로마 경비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으며(마 27:57~66),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사탄은 그리스도를 무덤 안에 가두어 두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원고 12권, 412).

예수님께서는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9, 40)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구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임을 당하겠지만 삼 일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하셨다(마 16:21, 17:22, 23, 20:17~19). 예수님의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마태복음 27:62~66을 읽어 보라. 이와 같은 그들의 행동이 훗날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도리어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마27:62~66]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답: 파수꾼을 두고 무덤을 봉했는데, 파수꾼은 예수님 부활을 맨 먼저 목격한 증인이 되었고 그들이 거짓말 한 것이 부활을 확신하는 증언이 되었다.

 

예수님을 무덤 안에 가두어 두기 위해 그들이 취했던 모든 행동들은 오히려 죽음과 악한 영의 무리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더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에 관해 들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목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덤 앞에 경비병을 세워 놓으면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또한, 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간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덤 주위에 경비병들을 세워 두었다. 이와 같은 그들의 행동은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그분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실까 두려워했다.

 

<묵상>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그들의 노력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록한 성경 말씀 대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므로 사망을 폐하셨다.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다(히2:14). 사망을 폐하셨다는 증명은 예수님의 부활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으려고 그들이 생각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큰 돌로 무덤을 막았고 인봉했다. 상부의 허락없이 아무도 무덤을 막은 돌을 옮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사람은 아무도 무덤 돌문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 능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일찍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7,18).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찾아오셨고(롬8:11 참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있는 다시 얻을 권세로 생명의 부활을 하셨다. 예수님이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의 승리하셨다는 증명이 부활이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로 사망에 매여있을 이유가 없어졌다(고전15:22). 누구든지 이것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뜻이고 구원받은 상태이다. 유대 지도자들의 조치로 파수꾼들이 예수님 부활의 첫째 증인들이 되었다.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결코 부인할 수 없도록 그들의 조치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사탄의 하는 일은 그렇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사탄의 계략이나 권세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교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하는 바람으로 그분의 무덤을 봉인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11월 7일(월) “그가 살아나셨다!”

 

사탄과 그의 악한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십자가 위에서 보증되었으며 빈 무덤을 통해 확인되었다.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누워 계실 때에 사탄은 승리의 개가를 불렀다. 그는 대담하게도 구주께서 그분의 생명을 다시 취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주님의 시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죄수로서 갇혀 있도록 무덤 주위에 그의 파숫군들을 세웠다. 하늘의 사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천사들이 도망했다. 그때 사탄은 심히 분노하였다. 무덤에서 나오시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발걸음을 보고 그는 그의 왕국의 종말이 올 것을 알았고 마침내 자기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시대의 소망, 782). 비록 그리스도의 인성은 죽었지만, 그분의 신성은 죽지 않았다. 그분의 신성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끊을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마태복음 28:1~6, 요 10:17, 18, 그리고 로마서 8:11을 읽어 보라. 누가 예수님의 부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는가?

[마28:1~6]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요10:17,18]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답: 아버지 성령 예수님 자신 그리고 천사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와 페래아 지방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자신에게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10:17, 18). 마르다에게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1:25). 다른 성경 구절들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한다(행 2:24, 롬 8:11, 갈 1:1, 히 13:20). 하나님의 힘 센 천사도 이 영광스러운 사건에 관련되어 있었다(마 28:1, 2).

마태복음 28:11~15에는 예수님과 계속해서 싸우려고 하는 지도자들의 어리석고 헛된 노력이 나타난다. 로마 경비병들은 지도자들에게 “모든 된 일을”(마 28:11) 말해 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목격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이었겠는가? 예수님의 시신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병사들이 두려움에 기절하고, 무덤이 텅 빈 것만으로도 종교 지도자들이 당황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조용히 하게 하도록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었다는 이야기는 군인들이 그들에게 한 말이 그들을 심히 불편하게 했다는 뜻이었다. 군인들이 그들에게 전한 이야기는 분명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묵상>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로마 병사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앞으로 일어날 일, 즉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을 어떻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까?

 

<부가설명> 참 아이러니하게도 부활의 첫 증인들은 파수꾼들이었다. 그리고 부활 소식을 맨 먼저 들은 사람들은 유대인 지도자들 제사장들이었다. 이들은 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뭉개버리며 불신했고 거짓을 퍼뜨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재물을 낭비했다. 사탄은 예수님의 부활 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것은 사탄의 영원한 패배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의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고전15:55)라고 외친다. 사망은 패배했고 이미 예수님 안에서 그 권세를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 종교와 신앙의 핵심이다. 성경에는 십자가만이 아니라 부활이 더 강조되어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증거를 주셨다(행17:31). 부활하지 않았으면 우리 믿음이 헛것이고 속죄가 되지 않는다. 예수 믿고 죽은 자도 다 망하였다(고전15:17,18). 이런 것을 짐작하는 사탄은 기를 쓰고 예수님의 부활을 막으려고 했으나 사망은 생명을 이길 수 없다. 아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사망을 생명으로 이긴 승리자들이다. 

 

<교훈>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의 부활을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결코 감출 수 없었다.  

 

11월 8일(화) 많은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일어남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1~53).

 

위에 기록된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그것이 성취한 것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답: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부활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먼저 있었던 지진은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냈으며(마 27:50, 51), 후에 일어난 또 다른 지진은 그분의 부활을 나타냈다(마 28:2).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마 27:51~53, 새번역). 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살아났으며, 그들은 최후의 부활의 때에 살아나게 될 자들에 대한 원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직후, 많은 유대인들에게는 그분의 부활을 믿고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증거가 주어졌다. 실제로 제사장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참조, 행 6:7).

“당신의 봉사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분은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과 관원의 딸과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불멸의 옷을 입지는 못했다. 살아난 후에도 그들은 역시 죽음에 정복당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무덤에서 나온 자들은 영생으로 일으킴을 받았다. 그들은 죽음과 무덤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전승 기념으로서 그분과 함께 승천하였다.…그들은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우리도 그분과 같이 일어났다고 선포했다. 그리하여 부활의 성스러운 진리가 불멸의 것이 되었다”(시대의 소망, 786).

 인간적으로 볼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라의 종교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계획을 돕도록 로마 당국의 관계자들과 군중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단 4:32) 잊고 있었다. 그들의 거짓말은 부활한 성도들의 존재를 통해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묵상>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 비록 절망적일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사망을 이기시고 사망을 폐하신 주님의 부활이(딤후1:10)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 파수꾼들에게 보이셨다. 그들이 무덤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부활하여 돌을 굴리고 무덤에서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겁에 질렸을 것이고 예수님이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자 급히 보고하러 갔을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유대 지도자들의 놀람은 어땠겠는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날까봐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사람들을 사망의 두려움에서 구워하여 생명의 즐거움을 주시려는 분이 아니신가. 그래서 그를 죽인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실체를 나타내보이지 않으셨다. 그분을 믿는 제자들에게만 보이셨다. 예수님은 복수하실 마음이 없었고 구원하시려는 사랑만이 간절했다.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10:40,41). 부활한 성도들은 거룩한 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한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그들의 부활을 목독한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교과 저자의 추측대로 제사장들에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승천하실 때 그들은 사망을 정복한 승리의 전리품으로 하늘로 데리고 가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4:8). 그분이 승천하실 때 사망에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함께 가신 것이다. 이 일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도 그날 경험할 것이다. 얼마나 설레는 소망인가!

 

<교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성도들의 존재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확실히 증명했다.

 

11월 9일(수)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들

 

요한복음 20:11~29과 고린도전서 15:5~8을 읽어 보라.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요20:11~29]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고전15:5~8]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답: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의심도 했으나 확인을 한 후에는 대단히 기뻐했다. 

 

빈 무덤에 있던 두 천사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해주었다(마 28:1, 5~7, 막 16:1~7, 눅 24:1~11). 얼마 있지 않아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은 그분께 경배했다(마 28:1, 9, 10, 요 20:14~1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도(눅 24:34, 고전 15:5),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졌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막 16:12, 눅 24:13~35)에게도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 다락방으로 찾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게 되자 그들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했다(눅 24:33~39, 요 20:19~23). 일주일 후에 예수님께서 문도 열지 않고 같은 곳으로 다시 찾아오셨을 때, 의심 많은 제자 도마까지도 그분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요 20:24~29).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고전 15:6)을 뿐만 아니라 야고보에게도 보이셨다(고전 15:7).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과 아침 식사를 하셨고 이어서 베드로와 특별한 대화를 나누셨다(요 21:1~23).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눅 24:50~53, 행 1:1~11), 제자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셨을 수도 있다(행 1:3). 바울은 자신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자기를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했다고 이야기한다(고전 15:8, 비교, 행 9: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현장에 없었던 도마에게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일주일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 자리에는 도마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그러자 도마가 고백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묵상>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우리가 비록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기록된 말씀의 증언으로 확실할 수 있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으로 믿을 수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부활로 인류는 두 무리로 현저하게 갈라지게 되었다. 부활을 믿고 부활의 생명이 영생하는 생명임을 확신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생명을 얻어 영적 존재가 된 사람과 이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육체뿐인 사람들로 구분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건의 진리는 이 세상을 심판하는 척도가 되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죄가 그들의 실상이며 진노의 자식으로 지내다가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날 흙으로 돌아갔다가 둘째 부활에 일어나서 불못으로 들어가 영벌을 받음으로 존재가 영원히 없어진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롬2:16)라고 표현했다. 예수께서 심판하신다는 뜻도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의 척도가 된다는 것도 포함된 구절이다. 즉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생명을 가졌는지 가지지 않았는지를 구별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 세상에서 진행되는 심판이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예수 이름을 부르지만 영혼불멸을 믿는 신자들이 대다수다. 그들은 부활의 소망이 절실하지 않다. 이미 영혼이 천국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인데, 이런 주장이야말로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사탄의 교리를 믿는 신자들이다. 좀 지나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신앙은 사탄이 진리라고 믿는 신앙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부활을 믿고 부활의 생명을 가졌는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 속에 거하는 사람들이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기록하였다(요일5:11,12).

 

<교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까지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셨다.

 

11월 10일(목)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신명기 26:1~11의 말씀에 비추어 고린도전서 15:20을 읽어 보라.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일컬었는가?

[신26:1~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답: 곡식의 첫 열매가 다음 열매도 그와 같을 것임을 확증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은 그분을 믿고 부활하는 사람들도 예수님과 같은 몸과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확증한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농사와 관련된 관습으로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당신의 청지기들에게 작물들을 기르고 수확할 수 있는 땅을 맡겨주신 하나님을 은혜로운 공급자로 인정하는 행위였다(참조, 출 23:19, 출 34:26, 레 2:11~16, 신 26:1~11). 첫 열매는 수확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수확물의 질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첫 열매’라고 비유한 바울은 농사에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첫 열매’가 나머지 모든 수확물도 그와 같을 것임을 나타내는 것 같이, ‘첫 열매’ 되신 그리스도 또한 당신께서 우리를 죽음에서부터 살려 내시고 우리를 당신의 임재 안으로 데리고 가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수확의 때, 부활한 우리의 몸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조직신학, 615).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된 인간의 몸을 입고 무덤에서부터 나오셨을 때, 그분께서 여전히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계셨다는(요 20:20, 27)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부활하게 될 하나님의 자녀들 또한 그들의 고통에 관한 육체적 표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뜻인가? 사도 바울의 경우 그의 영화롭게 된 몸에 여전히 “육체의 가시”(고후 12:7)와 “예수의 흔적”(갈 6:17)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죽기 전까지 바울은 “몸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표 즉, 하늘 영광으로 시력을 잃었던 흔적, 그리스도의 붙들어 주시는 은혜의 확증을 항상 가지고 있기를 갈망하였다”(살아 남는 이들, 275). 그러나 이것은 영화롭게 된 구원 받은 자들이 그들이 겪은 고난에 대한 표시를 가지고 부활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비교, 고전 15:50~54). 

 그리스도께서는 “이 잔혹한 표적을 영원히 지니고 계실 것이다. 그분의 손과 발의 못 자국들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놀라운 구속과 그 구속을 위하여 지불한 무한한 값에 대하여 계속 말해 줄 것이다”(초기문집, 179). 그분의 몸에 남겨진 표적은 우리의 모든 고통이 영원히 사라질 것임을 확증한다.

 

<묵상>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얻게 된 자신의 상처를 영원히 간직하실 것입니다. 그 상처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치러졌는가에 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셔야 했습니까?

 

답: 그분의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하셨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부활하셨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4). 이 영의 몸은 영광의 몸이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일어나실 때 영광의 몸, 영위 몸으로 부활하셨다. 그는 이 죄의 세상의 물질계에 구애받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는 천연계의 모든 법칙이 창조하신 대로였다. 그러나 시조가 언약을 어겼을 때(호6:7) 천연계는 변질되었다. 그것을 땅이 저주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는 말로 나타내셨다. 가시와 엉겅퀴는 창조하실 때 그런 모양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조하신 어떤 식물(植物)이 변질한 것이다. 오늘날 지구는 천연계 법칙이 변질된 상태로 운행된다. 창조주께서 그런 상태로도 붙들어 주신다. 신령한 몸은 변질 세상의 변질된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우리가 천사들을 볼 수 없는 것고 이런 이유다. 그래서 예수님은 문을 닫은 방에 자유롭게 드나드셨고 사람의 눈에 보였다가 금방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도 그와 같은 몸으로 부활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형상을 입는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3:2)라고 계시하셨다. 감사합니다.

 

<교훈>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모든 믿는 자들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임을 보증해 주신다.  

 

11월 1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769~778, ‘요셉의 무덤에서,’ 779~787, ‘주께서 살아나시고,’ 788~794, ‘어찌하여 우느냐,’ 795~801, ‘엠마오로 가는 길,’ 802~808,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를 읽어 보라.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봤다는 기록은 모두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절하셨다가 십자가에서 내려지셨을 때 정신을 차리신 것이며,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예수님께 쌍둥이 형제가 있었으며 그 쌍둥이 형제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착각했다는 이야기까지도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그것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부활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기에 수많은 증거가 주어졌고, 그래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이 죽은 자들 가운데도 들렸다. 이 음성은 무덤의 벽을 뚫고 들어가 자는 자들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스도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리게 될 때도 그러할 것이다. 그 음성이 무덤을 뚫고 들어가 무덤의 문을 열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일어날 것이다. 구주께서 부활하시던 때에는 몇몇 무덤 밖에 열리지 않았으나 그분이 재림하실 때에는 값있게 죽은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영광스러운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다”(시대의 소망, 78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다 이루었다”와 “그가 살아나셨느니라”라는 선언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말 중에 가장 의미 있는 말이다. 이 말들은 구속의 역사 가운데서 서로를 어떻게 보완해 주는가? 우리는 이 말들 속에서 어떤 위대한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구원을 위하여 사람들이 따로 더 해야 할 것이 없다는 선포이고 그 결과가 살아나셨느니라라는 말씀으로 확증한 것이다.

 

2. 처음에 종교 지도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키기를 원했다. 후에 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말하도록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었다. 이 이야기가 그리스도의 빈 무덤이 사실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빈 무덤이 그렇게나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수님을 장사하고 돌로 문을 막고 인봉까지 한 것이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그 무덤은 열렸고 그 속은 비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물질적 증명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빈 무덤에 관한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는 귀한 진리의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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