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예수에 대한 더 많은 증언들(질문, 대답, 설명) 1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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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11-01 09:34 조회1,612회 댓글0건본문
제6과 예수에 대한 더 많은 증언들
(11월 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5분)
연구 범위: 요 3:25-36, 1:32-36, 단 7:18, 요 6:51-71, 5:36-38, 7:37-53
기억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누가 보내셨는지, 어디에서 오셨는지와 같은 놀라운 일을 단순히 말씀으로만 알려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행하신 이적과 표적을 통해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요 7:31)하고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예수님은 말씀의 진실함을 행동으로 뒷받침하셨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시작된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를 고치신 일은 일부 지도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5,000명을 먹이신 후에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논쟁은 군중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죽은 나사로의 부활은 어떤 이들에게는 믿음을 주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예수의 재판과 처형으로 이끌 적대감을 가지게 했다.
이번 주 교과는 예수님을 목격하고 증언한 몇몇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각의 사건은 예수가 실제로 누구인지에 대한 몇 가지 측면을 나타내며, 함께 모여 메시아이신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더 잘 이해하게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성경은 십자가에 달리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가리킨다.
느끼기: 말씀을 통해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 수 있지만 많은 이는 삶을 변화하여 그를 따르기를 거절했다.
행하기: 세상의 이론이 아닌 성경 말씀을 따르며 예수께서 구주이며 메시아심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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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에 대한 침례 요한의 자세는 증인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요 3:31)
*답: 자기는 숨기고 오직 증언할 대상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3.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요 1:33, 34)
*답: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들을 통해 확신할 수 있다. 성령께서 확인하신다.
4. 예수께 환호하며 따르던 무리들이 그분을 떠나간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요 6:51)
*답: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5. 아버지 하나님의 증언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요 12:28)
*답: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6. 군중들의 증언에 대해 반박하는 지도자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요 7:48)
*답: 그들은 자기들의 편견을 따라 말하는 것이다. 우리도 조심해야 한다.
7.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한 베드로의 증언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요 6:68)
*답: 예수님 외에는 따를 자가 없다는 것을 증언한 것이다.
결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따를 때 메시아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은 많은 이에게 믿음을 주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적대감을 가지게 했다. 침례 요한은 겸비한 증인으로 인간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께서 예언을 성취하시며, 의의 나라를 세우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군중들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따랐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과 삶을 변화함으로 그분을 따르기를 거절했다.
11월 3일(일) 영혼의 겸비: 침례 요한이 다시 증언하다
2과에서 침례 요한의 증언이 어떻게 첫 번째 제자인 안드레, 요한,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이끌었는지를 보았다.
침례 요한이 증언을 마쳤기에 이제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요한복음에서 몇 차례 더 등장한다.
요한복음 3:25-36을 읽어 보라. 침례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과 어떻게 비교하는가?
[요3:25~36]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침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답: 요한은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자신은 쇠해야 하고 예수님이 흥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침례 요한의 제자와 한 유대인 사이에 침례의 효력에 대한 질문으로 추정되는 정결예식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막 1:4, 5. 비교). 제자들이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요한에게 왔을 때, 그들은 흥미롭게도 예수님을 언급하며 "침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 3:26)라고 말한다. 제자들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형편과 스승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질투하고 있다.
요한도 이런 질투에 빠지기 쉬웠겠지만,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적이 없음을 상기시킨다. 오히려 그분을 가리키고,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예비하며, 그분의 증인이 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요 1:6-8).
그는 예수님을 결혼식의 신랑으로 비유한다. 이 비유에서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이며(호 2:16-23, 사 62:1-5) 자신은 신랑 친구로서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말은 요한의 진정한 위대함을 보여준다.
요한복음 3:31-36은 예수와 요한을 비교하면서 메시아의 우월하심을 보여준다.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기에, 다시 한번 증인이란 어떤 자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증언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 그분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물러 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요 3:16, 17). 그러나 선물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영원한 죽음)를 받을 것이다.
<교훈> 요한은 겸비한 증인으로 메시아를 가리키고 증거하는 데 충실하였다. 그는 인간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충실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참 증인의 모본이다.
<부가설명> 사람은 각각 그가 걸어갈 길이 있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20:24).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10:23). 사람이 자기가 걸어갈 길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은 복이다. 침례 요한은 자기 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 사람이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 빛이 아니라 빛을 증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메시아가 아니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친구로서 신랑 예수님이 신부를 취하도록 인도하는 자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 예수님은 뒤로 돌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자기를 나태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은 자기의 사명과 위치를 올바르게 깨닫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위하여 충성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증어하는 성도로서 우리 각 개인의 감당할 위치가 어딘가? 자기 위치를 알고 충성하는 것이 겸비이다.
11월 4일(월) 메시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요한복음 1:32-36을 읽어 보라. 침례 요한은 여기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의 모습과 사뭇 다른 예수의 어떤 모습을 말하고 있는가?
[요1:32~36]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답: 요한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성령이 임하는 그분이 메시아라고 가르쳐줘서 알았다고 고백한다. 그가 바로 희생 제물이신 어린양이심을 분명히 선포하였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에서 그들을 구해줄 메시아를 기다렸다. 오랫동안 억압을 받아온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로마를 무너트릴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대하고 강력한 나라로 재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침례 요한은 예수의 속죄 희생을 직접적으로 가리기켜 그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말을 잘못 이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요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통해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바꾸어 그들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오실 왕과 그 왕이 하실 일에 관한 예언의 성취를 알게 되기를 원했다. 그분은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러 오셨다. 그것이 그분이 하실 일이었고 그 일이 마치고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단 7:18).
"예수의 침례 시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가리켰을 때 새로운 빛이 메시아의 사업을 환히 비추었다. 요한의 마음은 ‘그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사 53:7)이라는 이사야의 말씀으로 향하고 있었다"(시대의 소망, 136).
요한복음 1:31에서 침례 요한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예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를 보내신 주께서 사전에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 1:33, 34). 그것은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계시하셨음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 1:24)이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지식은 성령의 확신시켜 주시는 능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이다. 이 주제는 요한복음에 자주 나타난다. 구원은 세상의 철학이나 과학, 고등 학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께 믿음과 순종으로 드려진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교훈> 침례 요한은 메시아의 속죄 희생을 말했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도 요한은 그분이 예언을 성취하시며 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을 보여주기 원했다.
<부가설명>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던 침례 요한도 성령께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을 때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았다. 그랬다면 육체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역사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세상 지식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른다. 그들이 신학자이고 목사라도 알 수 없다. 세상 지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6~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이 구주라는 것을 깨닫고 믿는다면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다. 그들이 기록된 말씀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 말씀 밖으로 결코 발을 내디디지 않는 사람들이다.
11월 5일(화) 환호와 거절
2과에서 요한복음 6장의 5,000명을 먹이시는 장면을 설명했지만, 이제 공부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
요한복음 6:51-71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기에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는가?
[요6:51~7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답: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면 생명을 얻고 목마르지 않다는 기별, 곧 예수님 희생의 기별을 말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그분을 왕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요 6:1-15). 그러나 나중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그들과 대화하실 때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말씀하시며 기적의 영적 의미를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이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시는 당신의 살이라고 더 자세히 설명하신다(요 6:51).
이 말씀을 들은 군중들은 예수께서 이 땅의 왕이 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생각이 고안한 기대와 맞지 않았다. 그들은 사고방식을 바꿈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삶을 변화시키기를 거절했다. 이때 그분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주님을 떠났다(요 6:66).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일은 예수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군중들의 환호는 기쁜 일이다. 누가 추앙받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자신의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낙담할 만한 일이다. 군중이 떠나는 것을 본 예수님은 핵심 세력인 열두 제자들도 떠나고 싶은지 물으신다.
이때 베드로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무엇을 하시며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또 다른 증언이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 69).
제자들은 예수님과 몇 년을 같이 지내는 동안 함께 여행하며, 그분의 기적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예수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고 주변 상황이 절대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자들은 예수가 분명히 메시아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마침내 그분이 오신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교훈> 주님이 세상의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생각과 삶을 변화하기를 거절하고 그분을 떠났지만, 제자들은 그분이 메시아라는 믿음을 고백하며 그를 따랐다.
<부가설명>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기담으로나 또는 신화나 설화로 듣고 그렇게 치부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 몸을 먹도록 주겠다고 하니 그것이 당시 청중들에게 깨달아졌겠는가? 역사적으로 네로 황제 때는 그리스도인을 식인종이라고 몰아부친 사실을 안다. 성만찬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말을 엿들은 사람들의 오해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런 것은 1800년 대 후반에 한국에서도 있었다. 제중원 교회에서 성만찬 하는 것을 동네 건달들이 듣고 보고 인고기 잔한다고 교회를 공격한 사건이다. 그렇게 성만찬 예식은 오해를 일으킬만한 예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복음 6장을 자세히 읽으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먹는 것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다. 기록된 말씀은 그 자체로 예수님을 표상한다.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다. 성만찬 예식에 참석하여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만으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말씀을 매일 읽고 연구하고 증거하는 삶이 6장의 내용을 신자 개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충분히 이해 못 해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11월 6일(수) 아버지의 증언
요한복음은 말씀(logos)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 것, 즉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신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시작한다(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 성령은 침례를 받으신 그분 위에 머무심으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셨다(요 1:32-34). 아버지도 예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그분에 대해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5:36-38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요5:36~38]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답: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이 아들이심을 증언하시고 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형상도 보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한 일과 기적을 아버지와 연결시키신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셨고 또한 자신에 대해 증언하셨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3:17, 17:5, 마가복음 1:11, 누가복음 3:22을 읽어 보라(벧후 1:17, 18 참조).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마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막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벧후1:17,18]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답: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침례 때 아버지와 성령은 이 중요한 사건, 즉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선포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이 당신이 기뻐하는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의 또 다른 결정적인 때에 아버지께서 다시 한번 말씀하셨음을 요한은 기록한다.
그분의 사역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며 상황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막을 수 없었기에(요 12:19)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예수님을 죽이기를 원했다. 군중은 예수에게 열광했고, 특히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본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요 12:17, 18)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유월절에 찾아온 헬라인들조차 예수님을 뵙고 싶어 했다.
이때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아버지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 12:28)라고 하늘에서 다시 말씀하신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영광의 시간은 십자가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향한 아버지의 증언은 세상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위대한 희생을 가리킨다. 그것은 그분의 지상 사역의 정점이다. 우리를 대신하신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완전한 값을 지불했으며, 그분 안에서 믿음을 통해 우리는 죄의 형벌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교훈> 아버지는 태초부터 말씀과 함께 계셨으며 예수의 사역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에 대해 증언하셨다. 특별히 십자가의 증언은 어린양의 위대한 희생을 가리킨다.
<부가설명> 요한복음 1:1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에서 ‘함께’라는 헬라어가 ‘프로스(πρός)’는 ‘함께’라는 헬라어의 여러 단어 중에서 ‘끊임없이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어떤 주석가가 말했다(이상근 요한복음 주석 요1:1). 그래서 예수께서 육신이 되어 세상에 계셔도 아버지와 성령과 끊임없는 연결로 ’프로스‘하신 것이다. 그래서 삼위가 함께 나타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실 때 그렇게 사람들이 알도록 나타나셨다. 그것이 침례 때, 변화산, 헬라인이 찾아왔을 때, 등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비록 육신이 되었어도 예수님은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다만 십자가 상에서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를 외치실 때 하나님과 단절되셨다. 그래서 그분은 사망이 되셨다. 말씀 하신대로 ’버릴 권세‘를 행하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다시 얻을 권세를 행하셨다(요10:17,18). 이것은 예수께서 여호와이심을 우주에 증명하는 사건이다. 그분은 자존하실 수 있는 여호와라는 것을 선포하셨다. 그래서 그날 온 우주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0,11). 그날 우리도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할렐루야!
11월 7일(목) 군중의 증언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 38).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에 대해 담대하게 말씀하신 것을 여러 번 기록했다. 요한복음 7:37, 38은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신 한 예이다. 이것 역시 놀라운 주장이었다.
예수께서 초막절에 참석한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군중 속의 다수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요 7:37-53).
[요7:37~53]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답: 그리스도, 그 선지자라 하고 바리새인이 보낸 하인들은 ’그 사람처럼 말하는 자가 이때까지 없었다‘했으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저주받은 자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오래전에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라고 말했다(신 18:15-19). 다른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 이 주장에 반박하여 메시아는 갈릴리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고 다윗의 혈통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했지만, 바로 예수께서 그런 배경을 가지고(마 1-2장) 계셨다!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던 성전경비대도 예수님의 위엄과 그분의 권세있는 말씀 때문에 주저했다. 바리새인들은 다른 질문으로 경비대를 다그쳤다. "관원들이나 바리새인들 중에 그를 믿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요 7:48, 쉬운). 바리새인들의 이 질문에 요한은 예수님을 만난 후 바리새인들의 계략으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했던 니고데모를 다시 등장시킨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 7:51).
니고데모는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었는가? 이 구절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하지는 않지만, 이 장면에서 니고데모의 행동과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가 한 일(요 19:39, 40)을 통해 성경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신뢰할만한 증거를 제공한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니고데모의 대답은 결국 존귀한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훈> 군중들은 그분을 그리스도,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라고 했다. 지도자들은 반박하며 체포하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를 위해 증거하며 자신의 믿음을 나타냈다.
<부가설명> 요한복음 7장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께 초막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자기 때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시고 그분이 가셔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올라가셨다. 그분이 명절 중간에 서서 오치신 것이 자신에게 오는 자는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라고 외치셨다. 명절이라서 예루살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서로 말하는 내용들을 요한이 기록했다. 그들의 말은 셋을 나누어진 것 같다. 메시아,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 이것은 메시아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다른 이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 날 것인데 어떻게 갈릴리 사람이 메시아겠는가 했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라고 욕했다. 이 군중들의 말 속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인식이 온 나라에 퍼져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래서 당국자들이 두려워하고 걱정한 것이다. 수하 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그들도 예수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가지고 왔다.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말을 할 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변호하여 그가 예수님을 지지한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어려울 때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이 참된 믿음의 용기일 것이다.
11월 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시대의 소망 41장 “갈릴리에서의 위기,” 68장 “바깥 뜰에서”를 읽어 보라.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스라엘의 교사들은 형식주의의 노예였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항상 다투었다. 예수를 떠난다는 것은 율례와 규례를 고집하는 자들과 자신의 영화를 구하는 야심이 가득한 사람들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후에 그들이 그 이전에 살았던 모든 생애보다 더욱 큰 평화와 기쁨을 발견하였다. 그런 그들이 죄인들의 친구되시는 예수를 조롱하고 핍박하는 자들에게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사모하여 왔다. 이제 그분이 오셨으니 그 임재하심을 떠나,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그분의 생명을 노린 자들에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과 자비의 교훈을 떠나서 불신의 흑암과 사악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구주께서 당신의 놀라운 이적을 목도하였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실 때 베드로는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는 말을 함으로써 제자된 믿음을 고백했다. 영혼의 닻을 잃는다는 생각만 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찼다. 구주를 잃는다는 것은 캄캄하고 폭풍우 치는 바다에 표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시대의 소망, 39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기독교의 진리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증거가 주어졌을 때, 어떤 이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토의해 보라.
*답: 그들의 주관적 의식 문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진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중요한 진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과학, 자연법칙, 물리적 신학, 논리, 이성이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 제1원인, 부동의 원동자 또는 다른 것을 믿도록 이끌 수 있지만, 이러한 학문 중 어떤 것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이 모든 학문이 원칙적인 차원에서조차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단 하나의 진리로도 인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신앙 문제에 있어서 성경을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권위로 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답: 성경을 떠나서 예수님이 구주라는 것을 발견할 곳이 없다.
3.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에서 행하신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답: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더욱 굳게 세우는 신앙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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