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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최고의 충성: 전장에서 경배함(질문, 대답, 설명) 11/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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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11-07 15:15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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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최고의 충성: 전장에서 경배함

(11월 1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1분)

 

연구 범위: 수 5:1–7; 출 12:6; 고전 5:7; 수 8:30–35; 신 8:11, 14; 히 9:11, 12

 

기억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번 주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머무는 동안 주님께 스스로를 재헌신했던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것은 때로 위험에 직면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여호수아는 적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고(수 5:1–9), 임박한 위험 속에서도 유월절을 기념하며(수 5:10–12), 정복이 한창일 때 제단을 쌓아 주님을 경배하고(수 8:30–35), 이스라엘의 일곱 지파가 아직 기업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여호와의 성막을 세우는(수 18:1, 2) 등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을 내렸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삶에 닥치는 긴급한 일들에 주의를 빼앗기기 쉽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고 잠시 멈춰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셨던 일과 지금도 매일 행하고 계시는 일에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구별된 시간을 마련하는 데 매우 소홀하다. 아침, 저녁 예배를 드리고 가족 제단을 쌓는 것은 과중한 일정과 편의 중심의 성취 지향적인 삶 가운데서 때로는 비현실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유한한 시간을 가장 값지게 사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전쟁 한가운데서 언약부터 갱신하고 제단을 쌓은 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해야 함을 말해준다. 

느끼기: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주님의 계획 중 하나에 불과하며 항상 그보다 더 궁극적인 일을 생각해야 한다. 

행하기: 바쁘고 무거운 삶 속에서도 먼저 주님을 경배하고 그분에 대한 헌신을 매일 새롭게 한다. 

 

TMI 위로

2. 전쟁이 임박한 때 어떤 불합리한 듯한 일이 진행되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수 5:3) 

*답: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을 아는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경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시행했다. 성막을 세우고 제사를 드렸다.

3.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킨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수 5:10)

*답: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얻도록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것이었다.

4. 여호수아가 전장에서 제단을 쌓은 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수 8:30)

*답: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 우선 주의로 충성해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5. 돌비에 언약을 새긴 것은 당신과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시 78:7)

*답: 그것을 잊지않고 기억하여 생활하라는 의이다.

6. 지파들의 땅 분배가 마치지 않은 때에 모여서 회막을 세운 일이 기록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수 18:1) 

*답: 땅 분배나 전쟁이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께 예배하는 것이 모든 일의 우선 순위인 것을 드러낸다.

7. 에발산은 무엇을 상징하며 그곳에 제단을 쌓은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신 11:29)

*답: 죄와 저주를 상징하며 그곳에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께서 저주와 죄에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하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결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언약을 갱신했다.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기념하며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제단을 쌓고, 성막을 세우는 일련의 행위는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돌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할 것을 말한다. 아무리 중요한 전쟁일지라도 그것은 주님의 계획 가운데 한 단계에 불과하며 그보다 더 궁극적인 일을 생각해야 한다. 복잡한 삶과 과중한 일정 가운데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에 대한 헌신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한다. 

 

11월 9일(일) 언약 먼저

 

여호수아 5:1–7을 읽어 보라. 정복이 임박한 이 시점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출애굽 두 번째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수5:1~7]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답: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할례를 행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넘으로 언약의 땅에 왔다. 그러니까 당연히 언약의 증표를 확인해야 했다.

 

땅을 정탐하고, 정탐꾼의 고무적인 보고를 들은 뒤, 요단강까지 기적적으로 건넜으니 우리는 곧바로 적과의 전투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 정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새 세대가 땅을 찾으러 싸움에 나서기 전에, 그들이 땅의 주인이신 분과 맺은 특별한 관계를 온전히 깨달아야 했다. 언약의 표징을 새롭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요단강을 무사히 건너게 하신 은혜롭고 기적적인 역사에 대한 응답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언약은 언제나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어야 하며, 결코 그분의 요구에 형식적으로 순응함으로 어떤 이익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적 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방인 남성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던 이들과 맞섰던 바울의 논쟁에서 이 개념은 분명히 핵심적인 주제였다. 이 사실은 갈라디아서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군사 작전을 눈앞에 두고 있기에, 우리는 온 진영이 전쟁 준비로 분주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랬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전쟁 준비가 아니었다. 말에 마구를 채우고 칼을 가는 대신, 그들은 전투 병력 대부분을 최소 3일 동안 취약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의식을 진행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렇게 하였는가? 그들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승리와 성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도 같은 원리를 약간 다른 말로 표현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너무 많은 중요한 일들에 대한 일상의 압박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곧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을 잊어버린다. 

 

<교훈> 군사 정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일이며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이 모든 일의 주인이신 분과의 관계를 온전히 깨닫는 것이다. 

 

<부가설명>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최우선순위는 하나님과 관계를 날마다 올바르게 정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그런 신자는 다른 것을 하나님과 관계를 확인하는 것보다 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도 우상 숭배의 한 단면이 아니겠는가? 이런 일은 생활의 소소한 일 때문에 자주 일어난다. 가정의 예배하는 일도 종종 뒤로 미루지 않는가?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오늘 교과 공부하면서 이 문제를 생활에서 더 확실히 챙겨야 하겠다고 굴복하는데 항상 그럴 수 있을른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을 잊지 않고 생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더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뿐만 아니라 성도는 호흡마다 걸음마다 기도를 생활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삶이 기도이고 삶이 예배라야 할 것이다. 시간을 내어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생각과 말과 감정과 태도 그 자체가 산 제사가 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영적 예배라고 성경이 계시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 구절의 예배는 ‘라트레이아’인데 생활예배를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존재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1월 10일(월) 유월절

 

여호수아 5:10; 출애굽기 12:6; 레위기 23:5; 민수기 28:16; 신명기 16:4, 6을 읽어 보라. 약속의 땅을 정복해야 하는 막중하고 엄청난 임무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유월절을 기념하기로 선택한 것은 왜 중요한가? 

[수5: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출12: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레23: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민28: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신16:4,6]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답: 이날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구원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켜서 그들이 구원받은 백성임을 확신하게 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사명을 있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자들인 것을 확인하게 했다.

 

정복에 앞서 행한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는 그달 14일 저녁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시를 주의 깊게 따르며 거행된다. 여호수아서의 사건들은 출애굽의 사건들을 반영하며 유월절 준수의 상징적 중요성이 특별히 강조된다. 유월절은 주님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장자는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보호해 주신 열 번째 재앙이 내렸던 밤(출 12:)을 생각하게 한다. 이 경험은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서, 광야를 지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이와 달리, 두 번째 세대의 이야기는 광야에서 시작하여 요단강을 건너고, 할례와 유월절 절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적군인 가나안 거민들을 대적하면서 주님의 또 다른 기적적인 개입을 기대하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이어진다. 이전 모든 사건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된다. 

또한 유월절은 희생양의 상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받은 것을 되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유월절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36; 고전 5:7; 벧전 1:18, 19) 안에서 이루어질 실체적 성취를 가리키기도 한다. 마지막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시기 전에 가진 주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으로 바꾸셨다(마 26:26–29, 고전 11:23–26). 

그것만이 아니라 유월절과 주님의 만찬은 더욱 영광스러운 현실인 구원받은 무리가 하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상징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물을 “건너가는” 이 상징적인 사건을 하나님 보좌 앞에서 홍해와 요단강이 상징하는 유리 바다에 십사만 사천이(계 4:6; 계 7:9, 10) 있는 장면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유월절과 주의 만찬의 실체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마 26:29, 계 19:9). 

 

<교훈> 가나안 거민들 앞에서 여호와의 기적적인 개입을 기다리는 이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구원하는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시는지를 계시로 미리 알려주셨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신다는 사실을 창세기에서 말씀하셨고 홍수 사건에서는 방주를 예비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것을 암시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로 아담 자손들이 죄의 세상에서 생명의 세상으로 인도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구원 사업을 삼중으로 나타내셨는데, 하나가 출애굽과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이고, 또 하나는 성소 제도와 봉사이고 다른 하나가 일곱 절기다. 출애굽은 하늘나라까지 가는 여정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고, 성소는 속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계시한 것이고 일곱 절기는 구원 사업이 진행되는 때에 관한 것을 계시한 것이다. 유월절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여자의 후손이 뱀에게 발꿈치를 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며 무교절은 속죄로 사람이 속죄된 삶을 사는 방법을 나타내고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낸다. 이것은 다 정해진 날짜가 있다. 구주는 이 정해진 날짜에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하셨다. 유월절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을 나타낸다. 아울러 재림까지 약속하는 것이다(고전11:26, 소망 659).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만찬 예식을 하지 않을 때에도 십자가의 희생을 항상 우리 앞에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소망 660쪽에는 우리 식탁의 음식과 마시는 물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반사하다고 증언하였다. 

 

11월 11일(화) 새롭게 하는 제단

 

여호수아 8:30, 31을 읽고, 신명기 11:26–30, 신명기 27:2–10과 비교해 보라.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은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수8:30,3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신11:26~30]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신27:2~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답: 하나님의 지시를 순종한 것이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 법안에서 삶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족장들의 시대에 제단은 그들의 순례의 길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대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징표가 되었다. 이제 제단을 세움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선조들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를 증거한다. 이 제단을 세우는 것은 모세가 명령한 지시(신 11:26–30, 신 27:2–10)를 직접 성취한 것이다.

여호수아 8:30–35은 이 책 전체의 신학적 기별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쟁이라는 가장 끔직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언약 재확인과 예배의 장면과 연결하는 것은 우리를 서두에서 제시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 곧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이스라엘을 언약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라는 명령(수 1:7)으로 돌아가게 한다. 책의 마지막인 24장에서도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모습이 나타난다. 

전쟁과 정복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충성하는 것이다. 정복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와 온 인류의 회복에 있어서 그저 한 단계에 불과하다. 그보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질문은 율법의 교훈을 신실하게 따르는가이다. 

여호수아는 제단의 돌과는 다른 흰 석회를 바른 커다란 돌에 율법의 사본을 기록했다(신 27:2–8 비교). 십계명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돌들은 제단 근처에 별도의 기념비로 세워져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에 담긴 특권과 의무를 영원히 되새기게 했다. 

여호수아는 신약의 여호수아(예수)를 예표하는데, 그분의 사명은 무엇보다 인간을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분은 악의 세력과 싸우셔야 했다. 그분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를 대신해 언약의 요구사항을 이루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교훈> 전쟁이라는 끔직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언약 재확인과 예배의 장면과 연결함으로써, 주님은 언약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라는 명령으로 돌아가게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계획은 이 지구와 거기 사는 아담의 모든 후손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상태로 영원하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전쟁은 구원 사업을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실물교훈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주님의 영원한 계획 성취의 한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 모는 과정의 중요한 핵심은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다. 그래서 이 사업이 진행되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순복하는 것이 중심에 있다. 그래서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교회가 되어서 어디 있든지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의 뜻을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사실은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4~27).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그들의 생명이 되셔서 그 안에서 친히 생활하시기 때문이다(갈2:20, 빌2:13). 아멘.

 

11월 12일(수) 돌에 새겨진 말씀

  

여호수아 8:32-35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 묘사된 행동의 의미는 무엇이며, 오늘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수8:32~35]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에발산은 신명기(신 11:29; 신 27:4, 13)와 여호수아서(수 8:30, 33)에서만 언급된다. 이 산은 그리심산과 함께 언약의 축복과 저주를 낭독하는 장소였다. 신명기 11:29과 신명기 27:4, 13은 더 구체적으로 이 산을 저주의 장소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들 앞에서 언약궤를 두고 그 양편에 서야 했다(수 8:33). 한 무리는 에발산 앞에, 다른 무리는 그리심산 앞에 섰다. 여기서 그들은 언약에 따른 두 가지 가능한 결과를 상징적으로 구현했다. 그곳에 드려진 제사는 언약의 모든 저주를 친히 짊어지심으로, 당신을 믿는 모든 이가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예수님을 가리켰다(갈 3:13, 고후 5:21). 

 

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기념비에 언약의 사본을 기록해야 했는가?(신 4:31; 신 6:12; 신 8:11, 14; 왕하 17:38; 시 78:7 참조)

[신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신6: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신8:11,14]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왕하17: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시78: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답: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그분의 율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인 우리는 쉽게 망각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일상의 요구들을 더욱더 짧은 시간 단위 안에 잔뜩 집어넣는다. 그 결과 우리는 일정한 빈도나 강도로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어쩔 수 없이 잊어버리게 된다. 성만찬 예식을 가질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주님께 다시 헌신하고 하나님께 대한 언약을 갱신하는 특별한 기회를 갖는다. 이런 기회를 개인적인 재헌신의 기회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점점 더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같은 세계관, 가치관, 믿음, 사명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속하는 것의 힘을 재발견해야 한다. 

 

<교훈> 복잡한 삶의 요구 속에 잊기 쉬운 세대를 향해 주님은 다시 헌신하고 언약을 갱신하는 특별한 기회를 갖기 원하시며 예식을 주시고 돌에 말씀을 새기셨다. 

 

<부가설명> 우리가 기억하기 쉬운 것은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등, 손해본 것들이 아니었는가? 덕을 입었거나 은혜를 받은 것들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죄와 사망의 몸(롬6:6, 7:24)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상태다. 이것을 잘 아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약점을 도와주기 위하여 돌에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말씀을 새기게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돌들도 없어졌다. 대신에 육의 심비에 새긴다고 하셨다(고후3:3).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새겨진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것을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심4:13)을 생명의 도(행7:38)라 하였고 영생이라고 했다(요12:50, 한글킹). 우리가 예수님의 영원한 그 생명을 받았으면 이 영생의 생명의 도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다. 이길을 떠나는 것은 기차가 철로에서 탈선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주저않는다. 생활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것을 설명해주셨고 여호수아는 이것을 그대로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작용으로 생활되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1월 13일(목)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함

 

여호수아 18:1, 2을 읽어 보라. 여호수아는 무엇 때문에 땅을 분배하는 과정을 중단하였는가?

[수18:1,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답: 회막(성소)을 세우는 것이 기업 분배를 계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일의 우선순위를 따라 지도했다.

 

요단강 서쪽에 자리잡은 가장 큰 두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된 영토를 말한 후, 이 구절은 그들보다 작은 남은 일곱 개의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실로에서 열린 회집을 묘사한다. 

성소, 곧 “내 성막”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를 상징하며(출 25:8; 레 26:11, 12) 이 책의 중심 주제를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하시기에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으며, 당신의 임재는 이스라엘에 지속적인 축복의 원천이 되고, 그 축복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땅에 퍼져나갈 것이다(창 12:3).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보다도 중심에 있는 더 중요한 주제이다. 성소, 또 이후의 성전의 존재는 항상 백성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과 그들이 언약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깨닫도록 도와야 했다.  

 

히브리서 6:19, 20; 히브리서 9:11, 12; 히브리서 10:19–2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실재로 임재 하시던 지상 성전이 없는 시대를 사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수아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히6:19,20]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9:11.12]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답: 하늘 성소와 거기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바라보며 잊지 말고 마음에 계명을 새겨서 계명이 생활이 되도록 할 것이다. 

 

성소의 등장은 갑작스럽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소의 주제는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언약궤를 통해 이미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언약궤는 지성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으며, 요단강을 건너며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 책의 처음 두 부분을 이끌어 왔다. 이제 여호수아서는 성소의 건립을 영토 분배의 중심에 둠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이 여호와의 지상 본부인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대속죄일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믿음, 소망, 영적 유산에 도전하는 근대주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탈근대주의)의 거인들과 싸우는 동안 우리의 시선을 하늘 성소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하늘 성소에서 이루시는 사역을 끊임없이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때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날,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계 21:3 비교). 

 

<교훈> 여호수아는 성막 세우는 일을 영토 분배의 중심에 둠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이 여호와의 지상 본부인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가설명> 성막(성소)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증표였다. 선조들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그들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늘 성소 진리를 기억하면서 어디 있든지 예배하는 곳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생활이 예배가 되는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렇게 인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막을 세우는 것 뿐만 아니라 돌에 율법을 새겨서 세웠다. 성소의 중심부에는 언약궤가 있고 거기 시은좌가 있다. 성소에는 제사장 외에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는 제사장도 지성소에는 못 들어간다. 대제사장만 들어간다. 거기 있는 돌비는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것의 사본을 돌에 새겨서 세우고 백성들이 읽고 배우고 그대로 생활할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들이 일상적 삶을 이어간다고 해도 성소 없이 돌에 새긴 말씀 없이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우상 숭배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몸이 성전이고 마음에 계명을 새긴다고 계시한 것이고 그 계명이 영생이고 생명의 도라고 계시한 것이다. 

 

11월 1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46장 “축복과 저주” 499–503을 읽어 보라. 

“모세의 지시를 따라 에발산에 큰 돌로 만든 기념비를 세웠다. 미리 석고를 발라서 준비해 두었던 이 돌들 위에 율법을 새겼는데 이 율법에는 시내산에서 반포되고 돌비에 기록된 십계명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전하시고 그가 책에 기록한 율법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기념비 곁에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여호와께 희생 제물을 드렸다. 저주가 선포된 에발산에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까닭으로 그분의 진노를 자초했음을 뜻하며 희생 제단이 대표하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었다면 그 진노가 즉시 내렸을 것임을 나타내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500).

“그러나 성만찬 예식은 슬픔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성만찬의 목적이 아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성찬대에 모일 때에 그들은 자신의 결점을 기억하고 슬퍼하지 말 것이다. 그들의 과거의 신앙적 경험이 고양되었든 낙담되었든 그것에 붙잡혀서도 안된다. 성만찬은 그들과 형제들과의 차이를 되새기는 시간도 아니다. 이러한 일들은 준비 예식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자기 성찰, 죄의 고백, 의견 충돌에 대한 화해 등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오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설 것이 아니요 구원의 빛 가운데 설 것이다. 그들은 의의 태양의 밝은 빛을 심령에 받아들여야 한다”(시대의 소망, 659).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원칙은 당신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답: 하나님고 그 나라가 내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생활해야 한다는 원칙을 항상 생각하게 한다.

2. 일상의 분주함 가운데 주님을 잊기가 얼마나 쉬운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잊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답: 생각이 성경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에 예수께 굴복하게 해야 한다(고후10:5).

3.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어떻게 꺾이지 않는 소망과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히 7:25)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지금과 같은 대속죄일의 때에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분의 사역이 얼마나 놀라운 기쁜 소식인지를 깨닫게 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답: 예수께서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것은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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