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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배도와 중보(질문, 대답, 설명) 09/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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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9-05 03:43 조회7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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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배도와 중보

(9월 1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3분)

  

연구 범위: 출 32:1-6; 시 115:4-8; 사. 44:9, 10; 롬 1:22-27; 출 32:7-32; 사 53:4. 

 

기억절: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 32). 

 

모세가 진영을 비운 지 40일이 지났을 뿐인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인간이 만든 금송아지를 숭배했다. 그토록 많은 권능의 표적과 기적을 겪고도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것이고, 그 답 중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던가? 아니면 그들의 육체적이고 죄악된 욕망이 하나님과의 생생한 경험을 덮어서 가리웠는가? 주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일상의 걱정과 뿌리 깊은 죄된 사고방식으로 생각이 흐려지고 훼손되었을까? 그들을 대신해서 행하신 자비로운 행동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하나님의 능하신 행적을 너무 빨리 잊어버렸던 것인가?(시 106:13, 21-23) 아니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신 9:20)신 것을 볼 때 이 모든 것이 아론의 실패 때문인가? 

이 끔찍한 배도의 이유가 무엇이든,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죄된 본성에 대한 것만 아니라 그런 죄악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심각한 죄에 빠졌지만 모세는 생명을 걸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였다. 

느끼기: 우상숭배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며 하나님을 멀리 하게 하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제이다.   

행하기: 우리 죄를 대신 지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의지하며 유혹하는 죄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TMI 위로

2. 죄악된 욕망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출 32:4) *답: 우상을 여호와라고 말하도록 왜곡할 수 있다

3. 우상숭배가 심각하게 악한 이유는 무엇에 있다고 생각합니까?(사 42:17) 

*답: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선지자 에스겔이 우상숭배를 강력하게 정죄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겔 8:1-18)

*답: 여호와 하나님을 인전하지 않고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아론은 어떤 특권을 누렸고, 이스라엘은 어떤 영예를 얻었는데 다 멸망할 지경이 되었습니까?(출 32:11) 

*답: 아론은 하나님을 보았고 그분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지도자의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배도한 백성들에게 굴복했다.

6.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모세의 중보기도는 우리의 구원과 용서에 대해 무엇을 말합니까?(출 32:32) 

*답: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구속을 표상한다.

7. 모세의 중보기도는 주께서 우리 기도보다 넘치도록 행하신다는 진리를 어떻게 나타냅니까?(엡 3:20)

*답: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과 자비와 생명을 우리에게 배푸신다.

 

결론: 죄는 생각과 판단을 왜곡시켰다. 우상숭배는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이끌었다. 이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며, 생각보다 심각하고 가까이 있는 문제이다. 그들은 놀라운 특권을 누렸지만 쉽게 저버림으로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배도한 자를 심판하고 다른 이를 파멸로 이끌지 않게 하신다. 모세는 백성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하였고, 그의 모본은 우리를 위해 대속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9월 7일(일) 실패한 지도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셨다. 모세에게는 40일 밤낮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을지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항상 함께하던 지도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혼란에 빠졌고 조급하며 두려운 중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할 눈에 보이는 신,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이집트에서 평생을 보아왔던 그런 '신들'을 원했다. 

 

출애굽기 32:1-6을 읽어 보라. 아론의 지도력은 어떻게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하게 되었는가?

[출32:1~6]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답: 안론이 철저히 원칙에 서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수의 압력에 굴복했다. 지도력을 상실한 것이다.

 

아론은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하지 못했다. 그는 바르게 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주님을 신뢰하기보다는 다수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출 32:1)라는 그들의 요구에 아론은 동의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금을 바쳤고, 아론은 이를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이 금을 가져오도록 권했다. 그다음 그는 이 거짓 신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신상이 만들어지자 백성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 참으로 죄악에 찬 사악하며 근시안적인 일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우상을 만들고서는 바로 그 우상이 자신들을 구원했다고 주장하였다. 죄악된 욕망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우상을 찬양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인간성과 도덕성이 훼손된다.

"그런 위기에는 확고부동하고 결단성이 있고 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 곧 하나님 높이기를 대중의 호감이나, 개인의 안전, 심지어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아론은 무기력하게 백성들에게 항의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준 그의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은 오히려 백성들을 더욱 완고하게 만들었다. 소란은 더욱 거세졌고 눈멀고 이성 없는 광기가 무리를 사로잡은 듯했다. 언약에 충실한 이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이 배도에 가담했다. 아론은 자신의 안전을 염려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당히 맞서는 대신 군중의 요구에 굴복했다"(부조와 선지자, 316), 

 

<교훈> 모세의 공백을 핑계로 그들은 큰 악을 저질렀다. 이를 막아야 할 아론은 하나님을 높이며 그의 영광을 위해 당당히 맞서는 대신 군중의 요구에 굴복했다. 

 

<부가설명> 지도자의 자리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자기가 지도해야 하는 길과 목적에 관한 지식이 확실해야 하고 그것을 이루려는 의지가 확고해야 할 것이다. 아론은 모세를 통하여 진행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바로 앞에서는 대변인 노릇도 했다. 그런데 의지가 약했던 것 같고 겁이 많았던 것 같다. 그가 배운 진리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현실의 압력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고 진리였어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두려움의 핵식은 사망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망의 두려움으로 공격한다.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직접 이런 일을 당하면 베드로의 태도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순간순간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도록 주장해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하며 성령님의 주장을 간구한다.

 

9월 8일(월) 우상 숭배와 악

  

출애굽기 32:6을 읽어 보라. 우상숭배는 그들을 어떤 길로 신속히 이끌었는가? (시 115:4-8, 시 135:15-18, 사 44:9, 10 참조)

[출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시115:4~8]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135:15~18]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16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18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사44:9,10]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답: 백성이 먹고 마시며 뛰놀았다. 애굽에 본대로 한 것이다. 우상과 만든자가 똑 같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금송아지는 이집트의 황소 신 아피스(Apis) 또는 소 신 하토르(Hathor)와 닮은 모양이었다. 이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노골적으로 어긴 것이었다(출 20:3-6). 이러한 위반은 살아 계신 주님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파괴한 것이기에 처벌 없이 넘어갈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대신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말하지도 돌보지도 사랑하지도 인도하지도 못하는 자기 손으로 만든 피조물을 숭배했다. 

창조의 질서가 뒤집혔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은 자신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드는 것보다도 더 나쁘게 동물의 형상으로 신을 만들었다. 이것이 그들이 섬기고자 했던 신이었단 말인가? 그들은 주님께 큰 죄를 지었다(사 31:7, 사 42:17). 

 

금송아지 배도는 로마서 1:22-27에 기록된 내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롬1:22~27]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답: 짐승과 같이 이성 없는 짐승처럼 마음의 정욕대로 거침없이 행동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신학적 이해를 부정한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허물고(전 5:2) 그분과의 연결을 끊어 버린다. 그것이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것이든, 마음속에 숨겨진 것이든 우상숭배는 우리와 주님 사이의 관계를 속히 깨뜨리고 도덕적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들이 다음 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후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엘렌 화잇은 “이것은 애굽의 우상 숭배 축제를 모방한” 것이라고 묘사했다(부조와 선지자, 320). 

인간은 자신만의 우상을 만드는 데 타고났다. 그들은 자신만의 신을 만든 나쁜 일도 모자라, 결국 그 신들을 섬기기까지 한다. 창조주는 어느새 도덕적 타락으로 이끄는 것들로 대체된다. 

 

<교훈> 우상숭배는 주님과의 관계를 속히 깨뜨리고 도덕적 타락으로 떨어뜨린다. 이는 자신의 신을 만들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것을 섬기게 만든다. 

 

<부가설명> 우상은 아담이 범죄한 후부터 이어오는 모든 시대에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를 따라 우상을 만들었다. 신화는 사람이 범죄로 잃어버린 창조주께서 주신 능력을 상상속에 극대화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신화 속의 신들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을 대리만족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은 망상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것을 우상으로 만들고 섬기는 것으로 자기 욕망의 만족을 누리려고 할 뿐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만드는 자도 우상과 똑같다고 성경이 지적했다. 우상 숭배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 자기 숭배다. 이것은 루시퍼가 자기를 섬기도록 한 그 반역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재미를 따르고 쾌락을 따르는 것은 자기 숭배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사탄은 이것을 충동한다. 성경을 진리로 믿고 배우고 깨달아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도록 순간마다 자아를 타일러야 할 것이다. 

 

9월 9일(화) 스스로 부패함

 

출애굽기 32:7, 8을 읽어 보라. 주님은 왜 모세를 이스라엘 진영으로 다시 보냈는가?

[출32:7,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답: 하나님의 명령을 속히 떠나 부패한 것을 지적하고 건지기 위한 조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김으로써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참되신 하나님에게서 자신들을 분리시키고 있었다. 주님은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였”(출 32:7, 흠정역)으며, 심지어 이 신상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었다고까지 한다고 말하시며 그들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출 20:2)을 얼마나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임재와 능하신 행사를 부인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왜곡되고 완전히 타락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우상 숭배는 하나님 백성이 겪는 모든 불행의 핵심이었고, 거기에서 다른 모든 죄악이 비롯되었다(겔 8:1-18, 겔 20:1-44, 겔 22:1-12 참조). 우리는 종종 고대 신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 없이 그저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한 우상에 빠졌는지, 또 어떻게 그 잘못을 고치지 못했는지 의아해하며 우리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정말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오늘날의 우상은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비슷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상은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반복해서 우상을 숭배하곤 한다. 우상은 우리의 상상력, 애정, 시간, 마음을 하나님보다 더 많이 사로잡는다. 그것은 심지어 우리의 사고방식까지 지배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을 닮아가며, 우리가 무엇을 숭배하든 우리는 그 수준 이상으로 고상하게 될 수 없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중심에 계시지 않으면 다른 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계신 임재를 기뻐하고 그것을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무언가 또는 다른 존재를 위해 우리의 삶을 즐기고 바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우리가 찾는 것은 교만, 자기중심성, 돈, 권력, 성관계, 음식, 텔레비전, 마약, 술, 불순한 생각, 음란물, 쾌락, 일, 운동, 가족, 게임, 유튜브, 영화, 쇼핑, 사상, 정치, 음악, 지위, 직함, 성적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대상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우상을 만드는 면에서 인간은 매우 창의적이고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선하고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우상으로 바꿀 수 있다. 우상숭배는 우리의 인격, 사고방식, 감정, 사회적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우상은 우리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결국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텅 빈, 아무 의미도 없는 관계로 바꾸어 버린다.  

 

<교훈> 주님의 살아있는 임재를 기뻐하며 즐겨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위해 삶을 즐기며 바치게 되고 그것은 우리를 더 많이 사로잡아 사고방식까지 바꾸게 한다. 

 

<부가설명> 우상숭배는 결국 자기 숭배라고 앞에서 말했다. 사람은 죽는 존재다. 그러나 영생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이런 열망을 죽지 않는 영혼이라는 거짓을 믿는 믿음으로 변질시켰고, 아울러 죽지 않는 신의 세계를 생각하며 만든 것이 영혼불멸을 바탕으로 만든 종교들이며 거의가 다 짐승을 형상으로 만들어 신이라고 숭배한다. 우상을 만들면 대부분 사람보다 하등 동물인 짐승들의 형상으로 만든다. 그만큼 인간 스스로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자격지심을 가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스핑크스는 사자 몸에 인간 머리를 한 형상이다. 힘은 사라, 지혜는 사람 이런 상상이 만든 조각이다. 이렇게 우상을 만드는데 대부분이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한 것일 뿐이다. 선한 욕망을 만든 형상도 있지만 대부분 정욕과 부도덕한 욕망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가장 큰 우상은 진화론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우연으로 믿는 것일 뿐이다. 창조주께서 자기 형상대로 만든 지고한 인간이 결국 멸망하는 짐승같은 존재로 타락했다는 것을 인간이 우주에 증명하는 것들이 우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감화의 결과다. 우리는 100%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지 자주 스스로 물어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9월 10일(수)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

 

출애굽기 32:9-29를 읽어 보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뜻에 모세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출32:9~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답: 모세는 그들의 용서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올렸고 응답을 받았다.

 

모세가 아직 시내산에 있을 때, 하나님은 반역한 백성들을 제하여 버리고 모세의 후손으로 위대한 민족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며 주님께 간청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것은 모세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이끌어 내셨기에 모세는 조상들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하며 간절히 간구했다. 모세는 참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출 32:14)기로 한 후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돌아왔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던 출애굽기 34:29, 30의 기록과 달리 하나님을 대면했던 모세의 얼굴은 빛나지 않았다. 외려 그의 얼굴에는 아마도 분노가 어렸을 것이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 32:19).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이 깨어진 것은 이미 그 내용을 깨트린 것이 외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모세를 꾸짖으셨지만, 이후에 “네가 깨뜨린 처음 판”(신 10:2)을 대신할 두 돌판을 다시 깎아 오라고 명하시고 당신께서 친히 계명을 다시 기록하셨다. 

모세는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한 아론을 엄중히 책망했다.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출 32:21). 아론은 (1) 백성들을 탓하고, (2)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출 32:24)다고 말하며, 그것이 마술이었던 것처럼 자기 죄를 변명하려고 했다. 

이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 것은 아론이야말로 모세와 70명의 장로들과 함께 산에 오른 것을 비롯해 많은 특권을 누리며 하나님으로부터 큰 영예를 받은 사람이었다는 점에서였다(출 24:1). 

정말 끔찍한 모순이다. 아론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함으로써 모세를 속이려 했다. 하나의 죄가 어떻게 다른 죄로 이어지는가. 아론은 우상숭배에 더해 거짓말까지 했다. 하지만 모세는 백성들이 얼마나 지각없이 행동하는지 보았기에 아론의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 부정적인 결과는 불보듯한 일이었고 모세는 즉시 반역을 중단시켜야 했다. 

 

<교훈> 많은 특권과 영예에도 끔찍한 죄를 저지른 그들에게 하나님은 노하셨다. 모세는 당신의 약속을 강조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심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형벌하기보다는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오래 참으시며 구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다(벧후3:15).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원했다.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를 한 것이다. 예수께서 아담 후손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표상적 장면이기도 하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백성들이 죄를 짓기 때문에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그들을 오래 참고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도 아니다.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들이다(창3:17~19, 고전15:22). 생명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를 갈망하신다. 그냥 두면 그냥 죽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든지 아니든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살려주려고 모든 노력을 다 해도 살기를 원하지 않으니 그 얼굴을 숨기신다. 그러면 그냥 죽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신 죽어주시고 그분의 대속을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이것이 구원이고 구속이다. 옛 이스라엘의 행적을 통하여 우리가 이것을 깨닫도록 하기를 원하신다. 

 

9월 11일(목) 중보

 

출애굽기 32:30-32를 읽어 보라. 모세는 죄인들을 위한 중보기도에서 어떤 모습까지 보였는가?

[출32:30~32]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답: 자신이 백성을 대신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는 것이 낫다고 기도했다.

 

그들의 반역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비롯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출 32:28). 다음 날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출 32:30).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 32). 

모세가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죄인을 위해 중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려는 의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하실 일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죄인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모범인가! 그는 주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을 보였고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출애굽기는 이때에 모세가 산에서 주님과 함께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말하지 않지만, 신명기는 그가 이때 40일 동안 시내산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신 9:18 참조). 

출애굽기 32:32에서 “용서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짐을 지다” 또는 “나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유래했다. 이 동사는 이사야 53:4에서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신 예수님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었고, 같은 동사가 출애굽기 32:32에서 "용서하다"로 사용되었다. 이는 구원과 용서의 과정,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치르셔야 했던 대가에 대한 강력한 통찰을 보여준다. 

그렇다. 모세는 주님께 백성들의 죄를 “짊어”져 달라고 요청했고, 주님은 수천 년 후 십자가에서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출애굽기 32:32은 대속의 개념뿐만 아니라 대속을 누가 이루시는지 보여준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구절은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셨으며, 이것이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구원의 계획에 대한 참으로 강력한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우리와 온 우주에 보여주는 것이다. 

 

<교훈> 백성들을 위해 중보하면서 용서를 구할 때 모세는 주님께 백성들의 죄를 “짊어”져 달라고 요청했고, 주님은 수천 년 후 십자가에서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부가설명> 우상숭배는 창조주의 창조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종교다. 욥이 자기의 의로운 삶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을 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38:1~4)라고 물으셨는데, 이것이 사람에게 묻는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진화론이 가장 본질적 우상이라는 것이 이런 이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선행도 의가 아니다. 모든 이론도 이치를 어둡게 하는 무지함 말들이다. 우상숭배가 그 절정이다. 그들은 존재를 창조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 존재를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생활로 시인하는 것이 제칠일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겔20:20). 말씀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아담의 모든 자손을 위하여 십자가와 매장 되는 일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사람 재창조를 이루셨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모두 재창조,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의 중보의 핵심을 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얻은 생명을 잃지않게 하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9월 1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28장 “시내에서의 우상 숭배” 315-327을 읽어 보라.

이번 주 교과는 믿는 자들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행하실 수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집중하거나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상숭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새롭고 승리하는 삶으로 이끄는 능력을 주신다(빌 4:13, 유 1:24, 2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오늘날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숭배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창조주를 경배하지 않고 피조물을 경배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구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떻게 지구를 숭배하거나 우상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답: 오늘날 세상은 진화론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 그것이 우상이다. 창조주의 뜻을 따라 지구 환경 보호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잘 관리해야할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2. 상황의 중대함은 그 행동이 초래한 결과나 사건에 대한 반응의 심각성을 통해 분별할 수 있다. 모세가 하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끝까지 반역하며 회개를 거부한 자들의 처형을 명령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그분께서는 반역에 고착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인도하지 않도록 그들을 죽게 하신다. 가인의 목숨을 살려 두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처벌하지 않고 방임하는 결과가 무엇인가를 온 우주에 예증해 보여주셨다.”

3. 대속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속죄의 방법인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의 대속적 기초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속죄 이론이 심각한 신학적 오류인 이유는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2:2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자라는 사상을 어떻게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답: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아담의 죽음을 처리하지 않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아담이신(고전15:45) 예수께서 첫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을 대신 당하셨다. 그래서 대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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