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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창세기의 기초- (깊이 있는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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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04-07 13:51 조회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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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창세기(創世記)의 기초(基礎)

        (04월 12일 (안) / 일몰: 오후 7시 4분)  


<기억절(記憶節)>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개요(槪要)>

(Q)~이번 주 제2과의 주제(主題)인 ”창세기(創世記)의 기초(基礎)”라는 주제(主題)로 공부(工夫)하게 됩니다.


(A)~<◉.성경의 첫 번째 책(冊)인 창세기(創世記)는 성경의 구원적(救援的)이고 예언적(豫言的)인 메시지의 핵심(核心)을 포괄(包括)하는 기초적(基礎的)인 진리(眞理)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혼돈(混沌)과 공허(空虛)함을 생명으로 바꾸신 창조(創造)의 우주적(宇宙的) 이야기(창세기 1, 2장)부터 하나님께서 악(惡)한 행동(行動)으로부터 구원(救援)의 결과를 이루신 요셉의 이야기(창세기 50:20)까지, 창세기(創世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救援計劃)을 증거(證據)합니다. 창세기 중간에 있는 이삭의 묶음 이야기(창세기 22:17~18)는 이 신성(神聖)한 계획의 기본주제(基本主題)를 제시(提示)한다.>


⑴.이번 주 수업(授業)에서는 극적(劇的)인 ”아케다“사건(이삭의 묶음)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救援計劃)의 다양(多樣)한 주제(主題)를 알아볼 것이다.

<첫 번째 주제>는 "사랑"으로, 여기에서 나머지 모든 하나님의 행동(行動)이 유래(由來)합니다.


⑵.<성경(聖經) 속 아케다(Kedah)사건의 이야기로>

   (창세기 22장)의 사건(事件)을 ”아케다“ 사건(事件)이라고 부릅니다. '아케다'란 히브리어로 '묶는다'라는 뜻으로 이삭을 결박(結縛)했다는 내용에서 유래(由來)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결박하는 일은 정상(正常)이 아닙니다. 결박하는 아버지도 결박당하는 아들도 몸과 마음 모두 자유롭지 못합니다.


⑶.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결박(結縛)하여 제물(祭物)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이삭을 대신 숫양으로 바꿉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10가지 시험 중 마지막 시험(試驗)이었습니다.


⑷.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 하나님이 지시(指示)한 산(山)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祭壇) 나무 위에 올려놓습니다. 여기서 '결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묶음'이라는 뜻의 '아케다'입니다.


⑸.이 이야기에서 히브리어 단어(單語) '아합(ahab), "사랑"은 성경(聖經)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구체적(具體的)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을 언급(言及)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용되었다. (창세기 22:2).


⑹.“아케다”의 (두 번째) 주제(主題)는 아들의 희생(犧牲)을 통한 하나님 사랑의 표현으로, 이는 이삭이 어린 양(羊)과 동일시(同一視)함으로써 예고(豫告)되었다. (창세기 22:7~10).


⑺.(세 번째) 주제(主題)는 역사(歷史)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실제적(實際的) 표현(表現)으로, 구체적(具體的)으로는 "씨앗"을 뱀에 대항(對抗)하게 하고 "씨앗"이 악(惡)과 죽음에 대한 승리(勝利)로 끝날 대쟁투(大爭鬪)에서 나타납니다. 이 사건(事件)은 "숫양"의 예상(豫想)치 못한 등장(창세기 22:13)에서 설명되며, 이는 속죄일(贖罪日)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사건을 예고(豫告)한다.


⑻.요한계시록의 몇 가지 큰 개념(槪念)은 창세기(創世記)에 기초(基礎)한다. 그것은 이후의 성경에서 확대(擴大)하여 설명되며 더 많은 빛을 준다.


⑼.예언(豫言)을 이해(理解)하는 열쇠는 사랑의 본질(本質)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 자기희생(自己犧牲)의 사랑이 예언(豫言)과 대쟁투(大爭鬪)의 핵심(核心)이다. 


⑽.하나님이 우리의 대속자(代贖者)인 어린 양(羊)이며 이것은 인류(人類)의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답(答)을 준다. 이 개념(槪念)들은 인간(人間)의 본성(本性)과 하나님의 속성(屬性) 그리고 대쟁투(大爭鬪)의 본질(本質)에 대한 중요한 교훈(敎訓)을 준다. 


(04월 06일) (일) <“첫 번째 언급(言及)”의 원칙(原則)>  


(Q)~“첫 번째 언급(言及)의 법칙(法則)”이란 무엇을 말하며, 성경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약화(弱化)시키는 것은 무엇이며, 사탄은 어떤 교묘한 방법으로 진리를 흔들고 있습니까? (이사야 40:7~8, 말라기 3:6, 히브리서 13:8)


(A)~<언급(言及)의 법칙(法則)>-성구(聖句) 사전(辭典)을 약간만 살펴보면, 어떤 주제(主題)는 성경(聖經)에 매우 자주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聖靈)께서 어떤 주제에 대한 진리를 다양(多樣)한 방식(方式)으로, 그리고 여러 시대(時代)에 걸쳐 계시(啓示)하셨음이 분명하다. 성경주제(聖經主題)의 언급(言及)을 평가(評價)할 때 3가지 기본원리(基本原理)가 있다. <①.처음 언급의 법칙. ②.계속 언급의 법칙. ③. 전부 언급의 법칙.>이 있다.


⑴.<①.처음 언급(言及)의 법칙(法則)>-무슨 주제(主題)든지 성경에서 처음 언급(言及)되었을 때가 매우 중요하다. 성령(聖靈)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그 주제가 성경 전체에서 어떤 위치(位置)를 차지하며, 얼마만큼의 중요성(重要性)이 있는지에 대해 암시(暗示)해 주신다. 


⑵.<②.계속(繼續) 언급의 법칙>- 하나님께서는 진리(眞理)를 성경에서 점진적(漸進的)으로 계시(啓示)하시며, 사람을 영적(靈的) 유아기(乳兒期)를 거쳐 신약(新約)에 있는 진리(眞理)와 성숙(成熟)된 관계(關係)로 양육(養育)시키시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계시(啓示)가 진전(進展)되는 속도(速度)가 다양(多樣)할 뿐이다. 구약(舊約)에서는 그 정도가 대체로 느리고 약 400년간의 중단(中斷)으로 끝난다. 신약에서는 계시의 진전(進展)이 빠르기 때문에 세기(世紀)가 아닌 연(年) 단위(單位)로 측정(測定)해야 할 정도이다. 계시방법(啓示方法)은 이사야 서에 나와 있다.


⑶.<③.전부 언급(全部 言及)의 법칙(法則)>-믿음과 영적생활(靈的生活)에 관한 필수적(必須的)인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 가운데서 여러 방면(方面)의 교훈(敎訓)으로 그 문제(問題)를 이해(理解)할 수 있도록 언급(言及)해 놓으셨다. 예(例)를 들어 '혀(舌)'에 관한 교훈(敎訓)(야고보서 3장), 미래에 일어날 일들(마 24~25장), 사랑(고전 13장), 부활(고전 15장), 교회(엡 2~3장), 이스라엘의 회복(롬 11장), 그리스도의 본질(히 1~2장), 믿음으로 의롭게 됨(롬 3~4장), 율법(律法)(출 20장), 믿음으로 행함(히 11장) 등이 그러하다.


⑷.일반적인 성경연구(聖經硏究)와 성경예언(聖經豫言) 모두에서 나타나는 원칙(原則)은 하나님께서 기본적(基本的)인 개념(槪念)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漸進的)으로 그 개념(槪念)을 확장(擴張)시키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過程)은 수년(數年), 심지어 수 세기(數世紀)에 걸쳐 진행(進行)될 수도 있다. 


⑸.성경(聖經)이 어떤 개념(槪念)을 말할 때 기본개념(基本槪念)을 말한 후 그것을 점차(漸次) 확대(擴大)하여 설명하는 양상(樣相)이 나타난다. 이 과정(過程)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빛을 발견할 수 있다. 


⑹.일반적(一般的)으로 성경에서 어떤 개념(槪念)이나 상징(象徵)이 처음 언급될 때, 특히 창세기(創世記)의 첫 장(章)들에서 언급되면 그 개념에 대한 기본적(基本的)인 이해를 형성(形成)하며, 이는 이후에 해당개념(該當槪念)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이해(理解)하는 데 도움이 된다. 


⑺.마귀(魔鬼)는 결코 어떠한 "영향력(影響力)'이 아니다. 전(全) 우주(宇宙)에서 하나님을 제외(除外)한 가장 강력(强力)한 존재(存在)이다.


⑻.(베드로전서 5:8~9) 정신(精神)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對敵) 마귀(魔鬼)가 울부짖는 사자(獅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對敵)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苦難)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⑼.성경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범위(範圍) 안에 있지만, 진정(眞正)으로 그것을 생애(生涯)의 원리(原理)로 받아들이는 자(者)는 극(極)히 적다.


⑽.영감으로 기록된 위대한 창조의 진리, 인류의 타락, 속죄,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성은 소위 기독교계의 많은 사람에 의해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사실상 거부되고 있다”(대쟁투, 583). 


(04월 07일) (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Q)~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왜 그리 중요(重要)하며, 성경의 예언(豫言)을 이해(理解)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22:1~13)


(A)~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데 있어서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식(知識)을 초월(超越)합니다"(엡 3:18~19).


⑴.하나님의 사랑은 자기희생(自己犧牲)의 사랑이며 이것을 밝히는 것이 예언(豫言)과 대쟁투(大爭鬪)의 핵심(核心)이다. 


⑵.아합'(ahab)이라는 동사(動詞)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사랑, 즉 아브라함이 그의 "외아들" 이삭을 사랑한 것(창 22:2)과 관련하여 등장(登場)한다는 사실은 중요(重要)합니다.


⑶.아브라함이 그의 독특(獨特)한 아들을 사랑한 특별한 맥락(脈絡)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질(質)이 "시험(試驗)" 되어 드러났다(창 22:1절(節)과 창 22:12 절 비교). 하지만 시험받아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⑷.아브라함의 개인적 경험(個人的經驗) 동안, 하나님의 사랑도 아브라함에게 계시(啓示)되었다. 아브라함은 그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이해(理解)했다.


⑸.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命令)하신 것은 그의 마음에 복음(福音)의 현실성(現實性)을 각인(刻印)시키고 그의 믿음을 시험(試驗)하기 위해서였다. (PP 154)


⑹.그 무서운 시련(試鍊)의 어두운 날들에 그가 견뎌낸 고뇌(苦惱)는 그가 자신의 경험(經驗)을 통해 무한(無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救援)을 위해 치르신 희생(犧牲)의 위대(偉大)함을 어느 정도 이해(理解)할 수 있도록 허락(許諾)되었다


⑺.(창세기 l22:1~14절)의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그의 경험이 하나님의 무한(無限)한 연민(憐愍)과 사랑에 대한 더 강력(强力)한 증거(證據)가 있을 수 있을까?


⑻.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분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哲學的), 신학적(神學的) 또는 심리적(心理的) 설명(說明)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무한(無限)한" 수준에서) 견뎌야 할 것을 (자신의 유한(有限)한 수준에서) 견뎌내도록 허락(許諾)하기로 선택하셨다.


⑼.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바친 것과,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요한복음 5:20) 외아들을 바친 하나님 사이의 이러한 유사점(類似點)은 요한이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에서 같은 언어(言語)(상호 텍스트성)를 사용하여 지지(支持)합니다.


⑽."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절(節)과 요한일서 4:9절 비교).


(04월 08일) (화) <이삭의 질문(質問): 어린 양(羊)은 어디에 있나이까>  


(Q)~(창세기 22:7~8절)의 이삭의 어린 양(羊)에 대한 질문(質問)에 성경은 어떻게 대답(對答)하고 있으며 거의 희생 제물(犧牲祭物)로 드려질 뻔했던 이삭의 이야기는 양(羊)이 어떻게 상징적(象徵的)으로 사용(使用)되는지를 이해(理解)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창세기 22:7~8, 출애굽기 12:3~13, 요한계시록 5:5~10)


(A)~<성경에서 어린 양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창 22:7)라고 이삭이 질문하는 장면에서다. 아주 흥미롭게도 성경의 이후 기록은 이 질문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답한다. 구약성경의 나머지 38권은 점점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점진적으로 이삭의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 즉(卽) 성경은 어린 양(羊)이 우리의 대속자(代贖者)임을 밝힌다. 이 사실(事實)은 요한의 계시(啓示)에 나타난 어린 양(羊)을 더 잘 이해(理解)하게 해줍니다.> 


⑴.요한은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라는 칭호(稱號)를 사용하여 예수를 식별(識別)합니다.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 죄(罪)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로다!'"(요한복음 1:29 절(節)과 요한복음 1:36 절 비교).


⑵."어린 양(羊)"에 대한 언급(言及)이 이삭의 결박(結縛) 이야기의 맥락(脈絡)에서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登場)하여 "번제(燔祭)"의 희생(犧牲)을 언급(言及)한다는 것은 흥미(興味)롭고 의미심장(意味深長)합니다. (창세기 22:7). 그러나 어린 양(羊)이 희생(犧牲)으로 사용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⑶.아벨은 번제물(燔祭物)로 어린 양을 바쳤습니다(창세기 4:4절(節)과 민수기 18:17 절 비교). 그러나 "어린 양(羊)"이라는 단어(單語)인 seh가 명확(明確)하게 언급(言及)된 것은 (창세기 22:7) 처음이다. 


⑷.또한,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聖經)에서 seh "어린 양(羊)"이라는 단어(單語)가 명확(明確)한 유일(唯一)한 구절(句節)입니다. 이 단어가 포함(包含)된 다른 모든 성경 구절(句節)은 이 단어를 불확실(不確實)한 의미(意味)로 사용합니다. (민수기 18:17)


⑸.(창세기 22:7~8절)의 독특(獨特)한 사례(事例)는 특별하고 독특한 적용(適用)을 증명(證明)합니다. 이삭(아브라함과 함께)은 다른 모든 것을 초월(超越)하는 독특한 어린 양(羊)을 언급합니다.


⑹.요한이 그의 복음서(福音書)(요한복음 1:29, 36)에서, 특히 그의 요한계시록(啓示錄)(23회)에서 "어린 양(羊)"이라는 명확한 의미(意味)로 "어린 양(羊)"이라는 단어(單語)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요한이 이삭의 질문(質問)인 "어린 양(羊)은 어디에 있습니까?"(창세기 22:7)의 "어린 양"을 암시(暗示)하고 있음을 시사(示唆)합니다. 


⑺.이러한 문맥간(文脈間) 관계(關係)를 통해 우리는 이삭의 "어린 양(羊)"이 요한이 이해(理解)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고 추측(推測)할 수 있다. 사실, 이 해석(解釋)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질문(質問)에 대답(對答)한 것에서 확인(確認)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돌보실 것입니다.


⑻.아브라함의 진술(陳述)의 첫 구절의 구조는 (창세기 22:8)에서 특히 의미심장(意味深長)합니다. 히브리어는 일반적으로 동사(動詞)를 먼저 놓고 그다음에 주어(主語)를 두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單語)가 동사형(動詞形) 앞에 문장(文章)의 시작 부분에 놓여 해결책(解決責)이 오직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强調)합니다. 즉 보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⑼.(창세기 22:8)의 이 첫 구절(句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개(紹介)하는 구절(句節)인 lek leka, "너 스스로 가라"와 같은 반사적(反射的) 구조(構造)로 되어있다. (창세기 22:2, 저자의 문자적 번역; 창세기 12:1과 비교). 이 경우 (창세기 22:8)의 구절(句節)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⑽.(창세기 22:8)의 구절(句節)은 다음과 같이 번역(飜譯)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自身)을 어린 양(羊)으로 보실 것이다"(동격)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 양으로 제공하실 것이라는 의미(意味)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羊)은 하나님으로 식별(識別)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는 어린 양(羊)은 이삭이 생각했던 단순한 물리적(物理的) 동물(動物)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04월 09일) (수) <죽음의 문제(問題)>   


(Q)~죽음에 대해서, 죽음의 사건(事件)과 왜 사람이 죽는지?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解決責)이 무엇인지,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 성경(聖經)이 말하는 죽음은 어떤 차이(差異)가 있습니까? (창세기 2:15~17, 창세기 4:8~15, 고린도전서 15:15~19, 요한계시록 1:18)


(A)~<성경의 본질적(本質的)인 죽음은 존재(存在)를 영원히 상실(喪失)하는 것이다. 죽음은 당연한 순리(順理)가 아니며 생명이신 창조주(創造主)에게서 단절(斷切)된 고통스러운 대가(對價)이다. 죄에 빠진 인류가 당면(當面)한 죽음과 그 해결책(解決責)은 예언(豫言)의 중요한 초점(焦點)이다.> 


⑴.죽음은 우주(宇宙)의 유일(唯一)한 생명(生命)의 근원(根源)인 창조주(創造主)로부터 단절(斷切)된 우리가 지불(支拂)해야 하는 형벌(刑罰), '죄(罪)의 삯'이다.


⑵.창조주(創造主)로부터 분리(分離)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의 가장 참혹(慘酷)한 점은 모든 삶의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이 어느 순간(瞬間)이든지 치고 들어올 준비(準備)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⑶.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봉사하시는 기간 동안에, 죽은 사람들을 살리셨다. 주님께서는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부활시키셨으나 이들은 모두 불멸의 옷을 입지는 못하였다. 살아난 후에도 저들은 역시 계속적으로 죽음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復活) 때에 무덤에서 나온 사람들은 영생(永生)으로 일으킴을 받았다. 저들은 죽음과 무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전 기념(勝戰記念)으로서 주님과 함께 승천(昇天)하였다. (1 SM 304)


⑷.생명의 시여자(施與者)께서 무덤의 족쇄를 깨기 위하여 오신다. 그분은 포로(捕虜)들을 이끌어 내시며 “나는 부활(復活)이요 생명이니” (요 11:25)라고 선언(宣言)하신다. 부활(復活)한 무리들이 일어선다. 마지막 기억(記憶)은 죽음과 그 고통(苦痛)이었다. 그들이 가진 마지막 생각은 무덤에 대한 것이었으나 그들은 이제 “사망(死亡)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死亡)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하고 외친다. 사망의 고통(苦痛)은 그들이 느낀 마지막 것이었다. (3 SM 430)


⑸.하늘 성소(聖所)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進行)되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仲保事業)은 구원(救援)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상(十字架上)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 일은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되었다. 


⑹.우리는 믿음으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 (히 6:20) 신 그 휘장(揮帳)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구속(救贖)의 오묘(奧妙)를 더욱 밝히 살펴볼 수 있다. 


⑺.인류의 구원(救援)은 하늘에서 무한(無限)한 값을 치르고 완성(完成)된다. 거기에 치러지는 희생(犧牲)은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범(犯)한 데 대한 최대한(最大限)의 요구에 해당(該當)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보좌(寶座)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진정(眞正)한 소망(所望)도 그분의 중보(仲保)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上達)될 수 있다. (GC 489)


⑻.만일 그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復活)로써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우리는 흑암(黑暗)의 공포(公布)와 절망(絶望)의 불행(不幸)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은총(恩寵) 받고 축복받은 현 상태로서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 데서 건져냄을 받았는지 이해(理解)할 수 없다. 


⑼.만일 예수님께서 동정(同情)과 사랑의 팔, 그분 인간의 팔로 우리를 안아 주시고 우리를 끌어올려 주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우리의 고통(苦痛)이 얼마나 더 크고, 우리의 불행(不幸)이 얼마나 더 심했을 것인지 우리는 헤아려 볼 수 없다. (5T 316)


⑽.그 죽음의 현실(現實)과 그보다 더 중요(重要)한 해결책(解決責)을 찾는 것은 성경예언(聖經豫言)에서 중요(重要)한 부분(部分)이다. 그 해결책(解決責)은 오직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復活)에서만 찾을 수 있다.


(04월 10일) (목) <뱀 >


(Q)~성경이 사탄을 뱀으로 묘사(描寫)한 것은 어떤 의미(意味)가 담겨 있습니까?. (창세기 3:1~5과 요한계시록 12:1~9)


(A)~<성경에는 사탄이 온 세상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두 개의 기록이 있다. 

①.창세기에 나타난 오직 두 사람만 존재했던 때의 일과, ②.(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에서 사탄이 “온 천하를 꾀는 자”(계12:9)로서 바다짐승의 권세(權勢)에 “온 땅”이 놀라며 따르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자로 등장하는(걔13:2~3) 때의 기록이다. 


이러한 대쟁투(大爭鬪)의 변(變)하지 않는 본질(本質)은 성경예언(聖經豫言)에서 발견되는 주제(主題)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말씀은 변(變)하지 않으며, 마귀(魔鬼)의 욕망(欲望)도 변(變)하지 않는다.>


⑴.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8:44)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정면(正面)으로 부정(否定)하는 자신(自身)의 주장(主張)을 펼쳤다. 


⑵.예배(禮拜)를 둘러싼 논쟁(論爭)은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核心主題)다. 거짓 숭배제도(崇拜制度)의 주범(主犯)이자 선동자(煽動者)는 '용(龍)'으로(계13:2-4), 이 타락(墮落)한 그룹(cherub)을 뱀으로 묘사(描寫)한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⑶.성령(聖靈)께서는 잡음(雜音)과 온갖 괴상(怪狀)한 소리들의 혼란(混亂)함 속에 거(居)하지 않으신다. 사탄은 그러한 혼란(混亂)한 음악(音樂)의 도가니 속에서 역사(役事)한다. 음악(音樂)은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 찬송(讚頌)과 영광(榮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은 그러한 음악(音樂)의 효과(效果)를 뱀의 독(毒)한 이빨처럼 사용한다. (VSS 418)


⑷.사탄은 여러 모습으로 시험(試驗)하지만, 역사(歷史)나 예언(豫言)을 종합해 보면 에덴에서 사용(使用)한 전략(戰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말씀을 믿고 준비(準備)할 때 꾀임에 속지 않을 것이다. 


⑸.사탄은 자신의 왕국(王國)을 전복(顚覆)하기 위하여 오신 하늘 왕국의 통치자(統治者)를 개인적으로 직면(直面)해야 하였다. 만일 사탄이 실패(失敗)한다면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사탄의 시험(試驗)은 승리(勝利)하느냐 실패(失敗)하느냐에 의해 운명(運命)이 결정되는 중대(重大)한 문제였다. 


⑹.“여자의 후손(後孫)이 뱀의 머리를 상(傷)하게 할 것” (창 3:15)이라는 말씀이 아담 때부터 4,000년간 선포(宣布)되어 왔다. 그 이래로 사탄은 자기의 공격전술(攻擊戰術)을 준비해 왔다. (Con 78)


⑺.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創造)하신 모든 영혼(靈魂)에게 당신을 섬길 수 있는 능력들을 주셨으나 사단은 영혼(靈魂)들을 끊임없이 유혹(誘惑)하므로 이 봉사 사업(奉仕事業)을 어렵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⑻.사단은 영적식별력(靈的識別力)을 어둡게 하여 사람들이 일반적(一般的)인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區分)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는 평생(平生)을 통하여 주님께 봉사(奉仕)한 경험으로 이 차이점(差異點)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1 SM 38)


⑼.사탄은 뱀의 교활(狡猾)로 일을 하되, 필요하다고 볼 때는 사자(獅子)의 잔인성(殘忍性)으로 한다. 영혼(靈魂)들의 파멸(破滅)이 그의 유일(唯一)한 기쁨이고, 그들의 멸망(滅亡)이 그의 유일한 일이다. 


⑽.진리(眞理)를 믿노라고 공언(公言)하는 자들이 간교(奸巧)한 원수(怨讐)의 유혹(誘惑)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 스스로를 이기적(利己的)이요 편협(偏狹)하게 만들고, 그들의 세속적(世俗的)인 유익(有益) 때문에 영혼(靈魂)들의 구원(救援)을 위한 활동이 방해(妨害)를 받도록 용납해서는 안 된다. (증언 5권, 384).

 ☞. 마귀(魔鬼) 사탄은 “옛 뱀”, 곧 에덴동산에서 여자(女子)를 유혹(誘惑)한 그 뱀을 나타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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