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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예언의 몇 가지 원칙(질문, 대답, 설명) 0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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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3-28 10:05 조회9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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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예언의 몇 가지 원칙

(4월 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58분)

 

연구 범위: 렘 29:23, 24; 시 139:1-6; 단 12:4; 계 22:10; 딤후 3:15-17; 히 4:12

 

기억절: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성경의 여러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처럼 예언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의 주장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성경 예언을 연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서로 다투고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신자들조차 요한계시록과 같은 성경의 어떤 책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예언을 연구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목회자의 권면까지 더해져 그들은 예언서를 읽는 대신 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역사의 초기 1800여년 동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을 잘 받아들였고, 예언의 핵심 기별이 무엇인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의견이 일치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이번 주에 우리는 예언에 대해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이해를 가져다주는 몇 가지 원칙을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예언을 연구하는 원칙을 따를 때에 예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느끼기: 예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겸손히 받는다. 

행하기: 성경이 성경을 설명하도록 연구하며 예언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해한다.  

 

TMI 위로

2. 성경을 보면서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렘 9:23)

*답: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사도들이 복음을 설명할 때 예언을 들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딤후 3:15) 

*답: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을 되었기 때문이다.

4. 마지막에 지식이 증가할 것이라는 다니엘의 말씀은 어떤 모습으로 성취되었습니까? 

*답: 예언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모습으로 성취되었다.

5. 성경을 연구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어떤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까?(눅24:27)

*답: 모든 성경에서 답을 찾는 방식이다.

6. 베드로는 왜 로마를 바벨론이라 언급했습니까? 이는 예언을 이해하는 데 무엇을 알려줍니까?(벧전 5:13) 

*답: 당시 로마 통치에서 바로 그렇게 말하면 교회에 더 큰 핍박이 올 것이기 때문에 상징을 썼다.

7.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계 1:1)

*답: 계시라는 말은 열어놓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론: 예언을 연구하는 원칙을 따르지 않을 때 예언을 잘못 이해하게 되고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하나님의 진리 앞에 굴복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읽을 수 있다. 성경이 성경을 설명하도록 연구할 때 맥락 없이 성경을 사용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재림교회는 이 원칙을 통해 태동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언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이를 통해 구원의 계획을 더 잘 알게 하신다. 

 

3월 30일(일)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기독교 서점에 가서 성경 예언에 관한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라. 당신은 이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은 누구도 요한계시록 같은 책이 말하는 바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는 없으며 은유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적그리스도가 여전히 미래에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적그리스도는 이교도 로마 제국 시대에 있었던 어떤 것 혹은 누군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성경은 오래된 바이올린과 같아서 당신이 원하는 곡을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성경은 하나님께서 헛되이 말씀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을 기대하고 성경을 읽으라고 권한다. 

 

마태복음 24:15, 요한계시록 1:3, 마태복음 11:29, 예레미야 9:23, 24를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당신의 의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렘9:23,2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답: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는 깨달을 것이고, 깨닫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깨닫는 자는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한다.

 

많은 대학에서 “문학으로서의 성경” 또는 이와 비슷한 이름의 강좌를 제공한다. 그 수많은 강의에서 교수가 마치 이교 신화를 읽는 것처럼 성경을 읽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신자의 입장에서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런 자세는 성경 속에 도덕적 '진리'의 핵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야기는 사람이 마음대로 지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교수들에게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 받았다는 생각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을 읽고 가르치지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않는다. 일부는 성경의 기별과 명백하게 반대되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주님께 굴복하지 않고, 진리를 배우려는 열린 마음 없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성경의 기별을 놓칠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신 성품을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을 행하기 쉽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올바른 방법과, 무엇보다 중요한 올바른 태도 없이 그저 성경을 읽는 것은 해로울 수도 있다. 

 

<교훈> 성경을 잘못 읽거나 반대되는 결론을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주님께 굴복하고 진리를 배우려는 태도로 읽을 때 성경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려 준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사람이 상상의 글이 아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읽을 때 그 뜻을 깨닫게 된다. 믿음으로 읽을 때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세상의 실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학문을 할 때도 믿음이 지식보다 선행한다. 신뢰가 없으면 공부하는 것이 지식으로 자리잡지 못한다.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배우고 공부할 때는 먼저 마음에 배우고자 하는 정신과 정직하게 깨달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것 없이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의심과 비판의 정신으로 읽고 배우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성경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음으로 안다고 계시하였다(히11:3). 저자가 지적한 사실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 깨달으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정신으로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면 마치 퍼즐이 맞추어지듯이 성경의 모든 말씀이 아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런 새로운 세계에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교과를 배우면서 이런 경험을 모두 하세 되기를 기대한다. 

 

3월 31일(월)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알기 원하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의 병원이나 약국에서 긴급하게 의사소통이 필요할 때만큼 답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력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어휘력이나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은 우리가 아는 것과 하나님이 아시는 것을 비교하며 무엇을 말하는가? 

[시편139:1-6]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편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요일3: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답: 하나님과 사람은 비교 불가능한 지식과 지혜의 간격이 있다. 

 

사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그분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창조세계의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인데 어떻게 우리가 창조주를 온전히 알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결코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딤후 3:14, 15). 사도들이 청중에게 복음을 설명할 때 그들은 자주 예언의 성취를 가리켰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예언의 핵심 목적 중 하나가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성경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예수님과 그분이 모든 인류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으로 인도해야 한다.

결국,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골 1:16, 요 1:1-3 참조)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모든 인간의 죄, 심지어 가장 추악한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주님은 흉악한 죄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 알기를 분명히 원하신다. 예언은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다.

 

<교훈> 우리의 이해력은 제한적이어서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십자가의 희생과 계획을 알기 원하시며, 예언을 통해 구원을 알려주신다. 

 

<부가설명> 성경은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다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나타내주셨는데, 그것이라도 알기를 원하신다. 이 사실은 성경이 분명히 계시하였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문제는 감추어놓은신 일을 알려고 하다가 알지 못할 때 인간의 상상과 지식과 한없이 제한된 그 지혜로 하나님을 재보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다. 창조와 영생과 영혼에 관한 것들을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살 사람을 죽을 자리로 몰아넣는다. 오늘날 어떤 과학이라는 학문이 그렇고 신학도 그런 실수를 과감하게 범하고 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그러므로 말씀을 연구할 때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말씀이 기록한 대로 받고 성령님 감화로 깨닫도록 굴복하면 성령님의 지혜로 하나님께서 알기를 원하는 대로 성경을 깨달을 것이다.

 

4월 1일(화) 다니엘 – 이 말씀을 닫아두라 

 

다니엘 12: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주님은 다니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계 22:10과 대조)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계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답: 다니엘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을 마지막 때, 곧 지식이 더하여 질 때까지 인봉해두라. 계시록은 그때에 인봉이 풀릴 것을 계시했다. 

 

설교자들이 다니엘 12:4을 사용하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이 가까울 때에 기술과 과학 지식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언을 말하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또 많은 사람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일어난 교통수단의 비약적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이 구절을 사용하며 다수의 재림교회 서적이 이와 같은 해석을 적용하고 있다. 분명히 합리적인 해석이지만 이 구절에는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라. 천사가 다니엘에게 내린 지시는 “이 책을 닫아 놓고 봉인해 두어라”(쉬운)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이 구절은 다니엘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말에 놀랍게 증가하는 그 지식은 다니엘서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일 수 있을까? 

요한에게는 그의 책을 인봉하지 말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과 무언가 차이가 있다(계 22:10). “때가 가까우니라”라고 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알아야 하는 책이었다. 반면에 다니엘서는 먼 미래의 어느 시점에야 더 명확하게 이해될 것이었다. 

수세기 동안 많은 훌륭한 기독교 학자들이 다니엘서를 설명하려고 시도했고, 어떤 이들은 큰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니엘서에 대한 이해는 1798년에 마쳐진 1,260년의 예언이 끝난 후에 세계의 수많은 해석자들이 1843년경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은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로, 그의 설교로 19세기에 재림운동이 시작되었고 '남은' 교회와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한 밝은 이해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세계적 운동인 재림교회의 탄생이야말로 “마지막 때”에 “지식이 증가할 것”이라는 다니엘서의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 

그들의 구원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기독교 세계의 대부분이 ‘어둠’ 속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가장 근본이 되는 에덴에서 제정된 제칠일 안식일조차 무시되거나 폐기된 채, 로마 이교에 뿌리를 둔 일요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 죽음에 대한 심각한 무지는 얼마나 깊은가?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죽은 사람이 즉시 다른 존재가 되어 올라간다는 이교도적인 생각을 믿으며, 이는 어떤 이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입장은 이와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진리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 앞에 겸비하게 된다. 

 

<교훈> 다니엘서는 닫아둔 책이었기에 오랫동안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때에 이 책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며, 재림운동도 이 예언의 성취로 탄생했다.   

 

<부가설명> 성경은 때에 관한 예언이 많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때에 맞추어 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니엘서의 예언이 깨달아질 때가 있다는 것을 단12:4이 가르친다. 예수님은 마태 24:15에서 다니엘서를 읽으면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깨달아질 때가 계10:1과 22:10에 예언되어 있다. 인봉이 풀리는 것은 재림의 때가 가까울 때라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때가 되기 전에는 풀릴 것 같지만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의 이런 계시에도 불구하고 미리 알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 결과는 엉뚱한 해석과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 헤매게 되었다. 오늘날도 서점에 가서 다니엘 계시록 해석을 보면 중구난방이다. 이번 교과로 우리가 어떻게 예언으로 주신 진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는지 확실히 배우면 좋겠다. 재림교회는 예언의 신의 증언까지 있어서 정말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받았다. 우리는 겸손히 자아를 굴복하고 주신 도리를 따라 예언의 진상을 깨다는 은혜를 누리자.

 

4월 2일(수) 말씀을 연구함 

 

재림교회는 성경 예언에 대한 이해에 있어 윌리엄 밀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다니엘 8:14과 같은 주요 구절에 대한 그의 이해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의 방법론은 재림교회의 마지막 때 남은 무리 운동의 태동을 위한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마태복음 5:18, 디모데후서 3:15-17, 누가복음 24:2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우리가 성경 예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딤후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답: 성경 말씀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대해야 하며 모세의 글, 선지자의 글 등 모든 성경에 쓴 것을 찾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어떤 면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커다란 조각 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두세 조각만으로는 전체 그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중 몇 조각에서 말이 보인다면 어쩌면 말 그림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개를 더 살펴보면 닭과 소도 보이고, 그렇게 수백 개의 조각을 맞추면 마침내 도시, 농장, 멀리 있는 산맥을 포함하는 풍경화를 맞추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일부 신자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주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특정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속담이나 격언집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포켓성경 앞부분에 있는 간단한 주제 성구 목차를 통해 여러 주제에 대한 유용한 구절을 찾아보고, 그것이 이 주제에 대한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나타낸다고 생각해 버린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언에 대해서도 동일한 접근을 취한다. 특정 본문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성경의 나머지 부분이 아닌 현재의 사건과 비교한다. 바로 이런 접근 방식 때문에 예언에 관한 현대 서적들이 몇 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증보해야 하는데, 그것은 무슨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잘못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한 몇 가지 특정 본문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또 그것이 말하는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문맥과 관계없이 구절을 뽑아내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용하는 일이 매우 빈번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교훈>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밀러의 연구방법은 재림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경의 맥락과 관계없이 성구를 자기 뜻대로 사용하는 것은 흔한 오류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모세의 글로 시작하여 선지자와 시편에 기록한 것을 찾아 제자들엑 말씀을 증거하셨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24:44,45). 27절에서 모든 성경에서 쓴 것을 가르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는데, 다시 44, 45절에서 구약성경 전체에서 기록된 것을 찾아 증거 하시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도록 하셨다. 우리도 이 경험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성경을 올바르게 깨닫고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증거 해야 한다. 예언 연구는 더더욱 이 지침을 따라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고 그와 비슷해 보이는 성구를 선택하여 자기 견해가 옳은 것처럼 주장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4월 3일(목) 문자적인가, 상징적인가 

    

예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루어야 할 핵심 문제는 성경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일지 상징적으로 받아들일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이다. 성경 기자가 상징적 언어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으며, 그것이 상징이라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겠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중요한 방법은 상징이 현대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그 표상, 즉 상징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는 상징인 곰이 오늘날 러시아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러시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예언의 상징을 해석하는 건전하고 안전한 방법이 아니다. 

 

다음 구절을 찾아보면서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설명할 수 있도록 있도록 해 보라. 각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예언적 상징은 무엇이며, 성경은 그 상징이 무엇을 나타낸다고 말하는가?

 

[단7:7]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단8:3]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단7:24]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답: 짐승은 나라를 상징하고 뿔도 나라를 상징하는데 큰 나라에서 분열된 나라다.

[계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답: 입에서 나오는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계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엡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렘6: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답: 해를 옷 입은 여자는 하늘 예루살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한다.

 

성경이 스스로 그 용어를 정의하도록 하는 간단한 원칙을 따르면 예언적 상징 뒤에 숨겨진 대부분의 신비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예를 들어, 뿔은 정치 세력이나 국가를,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자는 교회를 상징할 수 있다. 이런 구절에서 우리는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설명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께서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상징으로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5:13에서 베드로는 왜 로마라는 도시를 바벨론이라고 비밀스럽게 언급했을까?

하나님께서 예언을 상징으로 말씀하신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약 교회의 경우에, 요한계시록에서 만약 로마를 그토록 많은 악의 가해자로 분명하게 가리켰다면 이미 극심했던 교회에 대한 박해가 더 심해졌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가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교훈> 성경이 자체의 용어를 정의해야 한다는 규칙을 따르면 예언적 상징주의의 대부분의 신비는 해결된다. 우리는 성경이 성경을 설명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해석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것을 찾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상상이나 해석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해석은 것을 반드시 찾아서 깨달아야 한다. 예언적 상징만이 아니다. 성경의 중요한 단어들도 그렇다.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본질을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중심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인간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든지 예수께서 행하신 의로운 행위에 맞추어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전가해 주신다는 해석에 안주하면 안 된다. 성경을 잘 찾아서 원만한 해석을 찾아서 바른 해석에 이르러야 한다. 성경은 예수께서 행하신 한 행위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신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롬5:18).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것을 찾아 깨닫는 인내와 성령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4월 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18장 “근대의 종교 개혁자”를 읽어 보라. 

“목사들과 신도들은 예언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시대에 성취될 사건에 관하여 선지자 다니엘의 말을 지적하시면서 이를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계시록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는 주장은 ‘계시록’이라는 책의 이름과 정반대의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 지시하신 것이라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1-3).”

“영감의 증언에 비추어볼 때, 사람이 어찌 감히 요한계시록을 그저 신비한 것이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 말로 계시된 신비요, 공개된 글이다. 요한계시록의 연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니엘서의 여러 가지 예언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은 다 같이 세상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교훈을 나타내준다.”

“요한에게는 장차 교회가 경험할 심오하고 황홀한 여러 가지 장면들이 전개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취할 입장, 위험, 갈등 그리고 최후의 구원을 보았다. 그는 하늘 창고에 들여질 곡식단으로 거두어지던지, 멸망의 불에 던져질 삭정이가 되는지가 결정되는 세상의 추수를 위한 마지막 기별을 기록하고 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주제가 그에게 계시되었는데, 특별히 마지막 교회를 위해 오류에서 진리의 길로 돌아서야할 사람들에게 그들 앞에 놓은 위험과 투쟁을 가르치기 위한 해 투쟁과 위험에 관한 교훈들이 주어졌다. 누구든지 장차 세상에 일어날 일들에 관하여 무지한 가운데 있을 필요는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341).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예언을 연구하는 것은 어떻게 당신의 믿음을 크게 성장하게 할 수 있는가? 수천 년 전에서부터 수백 년 후, 또 수천 년 후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 기록한 어떤 예언이 성경에 대한 당신의 신뢰와, 더 중요한 성경에 영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답: 예언된 사실이 역사에서 성취된 것을 읽고 보고 알 때 믿음은 크게 성장할 것이다.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 한치의 어김도 없이 성취된 것은 모든 예언이 그처럼 성취될 것을 보증한다.

2. 예언을 해석하려는 많은 무모하고 충동적인 시도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답: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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