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핵심 Q&A)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0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핵심 Q&A)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12-02 08:35 조회259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10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12월 07일(안)/일몰: 오후 5시13분)  


<기억절(記憶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獨生)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길(The Way)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심에 대한 = 핵심(脈)>

⑴.그리스도 시대(時代)의 성경적 문화(聖經的文化)에서 머리는 몸의 가장 고귀(高貴)한 부분을 나타내고 발(足)은 가장 비천(卑賤)한 부분을 나타냅니다.


⑵.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고귀(高貴)한 머리를 낮추어 추종자(追從者)들의 더러운 발을 씻으신 ​​것은 그분이 추종자(追從者)들의 최악(最惡)의 상황(狀況)을 돕기 위해 최선(最善)을 다하려는 의지(意志)를 생생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⑶.유다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王)이 되기를 바랐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그 정도로 낮추는 것을 원망(怨望)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반면에 자신의 주인이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한 종의 역할(役割)을 하는 것을 보고 겸손(謙遜)해졌다. 


⑷.베드로는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제안(提案)을 거부(拒否)했고, 전혀 합당(合當)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相關)이 없느니라"(요 13:8)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즉시 긍정적(肯定的)으로 대답했다. 베드로는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과의 중요한 관계(關係)를 위태(危殆)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베드로는 (요 13:9)에서 재빨리 그분께 "주님, 제 발(足)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십시오!"라고 말했다.


⑸.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준비(準備)된 특별한 저택(邸宅)이나 궁전(宮殿) 때문에 하늘에 있기를 원(願)하고, 다른 사람들은 금(金)으로 포장된 거리 때문에 하늘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어(헬라어)에서 이 본문은 "저택(邸宅)"이 아니라 방(房)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소유(所有)하거나 차지할 물리적 공간(物理的空間)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과 교제(交際)하며 즐기는 것을 의미(意味)할 수 있다. 그분의 사랑은 항상 함께함을 추구(追求)하기 때문입니다.


⑹.예수는 하나님을 직접 본 유일(唯一)한 분이며, 다른 어떤 인간도 주장할 수 없는 분이시다.


⑺.예수께서는 아버지와의 관계(關係)를 주장할 때 자신의 신성(神性)을 확언(確言)하신다." "아버지를 본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자 외(外)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6:46).


⑻.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가장 심오(深奧)한 표상(表象)이었음에 대해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아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特權)이다. 그분을 아는 것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⑼.그분을 따르는 길에서 우리는 그분과 함께 걸으며 그분의 진리를 배우는데, 그 진리는 풍요로운 삶과 영원한 삶으로 이끕니다.


⑽.예수님은 단순히 지혜(智慧)와 교훈(敎訓)을 전수(傳受)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마음에 각인(刻印)시키는 살아있는 교훈(敎訓)으로 그분의 진리(眞理)를 설명하셨다.


(12월 01일) (일) <내가 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Q)~선생이며 주님인 그분(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신 것은 어떤 교훈(敎訓)을 가르치시고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3:1~20)


(A)~<길(The Way), 진리(眞理), 생명(生命)(요 14:5~6) 이 세 단어의 순서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우리가 걸을 때,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진리(眞理)를 배우고, 결국 이 세상(世上)에서 그리고 다가올 영원한 세상에서 풍성(豊盛)한 삶으로 이끕니다.> 


⑴.선생(先生)과 주님인 예수님께서 즉 하나님의 권위(權威)와 능력(能力)의 뜻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섬김과 겸손으로 믿음에 굳게 서도록 제자(弟子)들의 발을 씻기시므로 서로 용서(容恕)하고 서로 섬기는 삶을 가르치기를 위하여 이러한 겸손(謙遜)의 제자(弟子)가 되라는 권면(勸勉)의 기별이다.


⑵.모든 길이 하나님께 이르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분은 의(義)로우시고 우리의 죄(罪)를 없애실 수 있는 유일(唯一)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唯一)한 길이다.


⑶.그분(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영생(永生)으로 대체(代替)하실 수 있는 유일(唯一)한 분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의(義)로움과 생명(生命)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⑷.그분(예수님)은 용서(容恕)와 죄 사(罪赦)하면 둘 다 소유(所有)하고 계시기 때문이며, 이 세상에서 그 둘을 소유하거나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⑸.예수님은 선생이며 주님으로서 자신을 따라 권위와 능력을 섬기는 데 사용하라고 하셨다. 


⑹.그분(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며 연결 고리이시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며,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⑺.그분(예수님)은 진리(眞理)이시므로 세상의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모든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요 14:6)


⑻.겸손 예식(세족식(洗足式))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다른 이들을 겸손(謙遜)하게 섬기는 것에 대해 가르치신 것이다. 


⑼.겸비(謙卑)를 쓰신 그분(예수님)께서 하신 마지막 교훈(敎訓) 가운데 하나는 겸손(謙遜)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⑽.제자(弟子)들이 약속의 왕국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냐에 대해 싸우고 있었을 때, 그분(예수님)자신은 종처럼 차리시고, 주님이요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셨다.” (교회증언 4권, 373). 


(12월 02일) (월) <내가 반드시 다시 오리라> 


(Q)~예수님께서 “내가 반드시 다시 오리라”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約束)을 확신(確信)할 수 있는 근거(根據)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1~3)


(A)~<헬라어 동사(動詞) "오다"(ἔρχομαι 엘코마이 erchomai)는 현재 진행형(進行形) 또는 미래형 현재시제(現在時制)입니다. 예수님의 장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한 약속에 내포된 것은 그것이 현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재림(再臨)은 너무나 확실(確實)해서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간주 된다. (요 14:1~3)


⑴.두려워하는 제자(弟子)를 위한 재림(再臨)의 약속(約束)은 죄로 인한 비극(悲劇)이 완전히 끝나는 때이다. 예수님을 신뢰(信賴)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 약속도 이루어질 것을 믿을 수 있다


⑵.그분은 또한 소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그들에게 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세상에 왔고, 그대들을 위하여 일해 왔다. 떠나간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대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 와서 나 자신을 그대들에게 나타냄은 그대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 곧 그대들의 아버지께로 가서 그대들을 위하여 아버지와 협력하리라. (A.A 21.2)


⑶.구주(救主)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떠나시려 할 때 다시 임(臨)하시겠다는 보증으로 슬퍼하는 그들을 위로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Mar 21.4) 


⑷.우리 구주께서는 친히 그 제자들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고 약속하셨다. 제자들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 그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주목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 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11) 는 음성을 들었다. 


⑸.그 천사의 말을 듣자 제자들의 희망은 새로워졌다.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눅 24:52, 53). 그들은 예수님께서 저희를 떠나가셨고, 저희만으로 세상의 고난과 시험을 대항하여 싸우게 되었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천사의 보증을 들었기 때문에 기뻐하였다. (G.C 339.2)


⑹.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 3)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그 사실을 더욱 자세하게 우리에게 알려 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8). 그리고 그는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라고 부언한다. (G.C 548) 


⑺.하늘에 가는 데는 많은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이 자기 나름의 길을 택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부조(父祖)들과 선지자(先知者)들이 구원(救援)을 얻은 그 길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접근(接近)할 수 있는 길이시다. (DA 663)


⑻.예수님의 재림(再臨)이 없다면 예수님의 초림(初臨)과 십자가(十字架)의 돌아가심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⑼.예수 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주께서 호령(號令)과 천사장(天使長)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喇叭)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降臨)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계1:7; 살전 4:16; 마 25:31)


⑽.우리는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진리에 대한 실재성(實在性)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반도 믿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을 따라 실행에 옮길 것이다. 온 세계에 이 시대를 위한 징조들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맑고 뚜렷하며 분명한 경고들을 전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우리들이 그 아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할 하나님께서 정하신 조건들을 연구해야 하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1. S.M 93) 


그 약속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성경 예언의 성취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요한복음 14:3은 재림의 약속에 대한 다른 근거를 제시한다. 이 구절에서 '내가 올 것이다'(I will come)의 원문은 헬라어로 현재 시제이다(내가 오고 있다). 이것은 헬라어 문법에서 미래적 현재형을 사용한 것인데 마치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같이 묘사될 만큼 성취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말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12월 03일) (화) <나는 길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니> 


(Q)~도마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에 대한 질문을, 빌립은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예수 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가요? (요한복음 14:5~11)


(A)~“하늘에 가는 데는 많은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이 자기 나름의 길을 택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조(父祖)들과 선지자(先知者)들이 구원(救援)을 얻은 그 길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接近)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길이다.”(소망, 663)


⑴.갈 길을 묻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당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 연결(連結) 고리이시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의 이해(理解)에는 한계(限界)가 있다. 


⑵.“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다.”(소망, 663)


⑶.내가 아버지를 증거(證據)하려고 왔다는 사실을 너는 믿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다. 


⑷.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되셨을 때라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일을 그치지 않으셨다. 

비록 그분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을지라도 신성(神性)은 여전히 그분의 것이었다. 


⑸.그리스도께서만 인간(人間)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었으며, 제자(弟子)들은 삼 년 동안이나 그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특권(特權)을 가졌다.


⑹.구주(救主)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約束)은 시대의 종말(終末)에 처한 그분의 교회에 하신 약속(約束)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속(救贖)하는 주의 놀라운 계획이 다만 보잘것없는 결과만을 성취하도록 계획(計劃)하지 않으셨다.


⑺.인간은 자력(自力)으로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고 그(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믿고 일을 하기 위하여 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약속 성취를 확실히 깨달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선언하셨다.


⑻.주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때로 갈 길을 모르는 것처럼 방황(彷徨)하고 고민(苦悶)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의 이해(理解)는 한계(限界)가 있기 때문이다.


⑼.예수님은 당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요 1:1~18절)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의 친밀(親密)한 관계(關係)를 강조(强調)하고 있다.


⑽.예수님은 길, 진리(眞理), 생명(生命)이라는 세 개의 용어(用語)를 하나로 묶으셨다. 결과적으로 에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 또는 통로(通路)이시다. 진리(眞理)와 생명(生命)은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主要主題)다


(12월 04일) (수) <나는 진리(眞理)요> 


(Q)~ 예수님이 진리(眞理)라는 말씀은 진리(眞理)의 어떤 성격(性格)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까? (요한복음 1:14, 17, 요 8:32, 요 14:6, 요 15:26)


(A)~<성경(聖經) 전체가 진리(眞理)를 증거(證據)한다. 성경은 일관(一貫)되고 응집력(凝集力) 있는 전체(全體)이다. 왜냐하면 구약(舊約)과 신약(新約) 모두 같은 저자, 즉 성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 같은 진리는 예수의 시대에 있었던 증거에도 적용(適用)됩니다.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모세를 강력히 믿는다고 주장했지만, 예수에 대한 그의 증거(證據)는 믿지 않았다. (요한복음 5:46 참조) 지도자(指導者)들은 구약(舊約)을 믿는다고 주장했지만, 그저 동의(同意)하기만 하면 영생(永生)이 보장(保障)된다고 생각했다.


⑴.진리(眞理)는 단순한 사실(事實), 개념(槪念), 구조(構造)가 아닌 도덕적(道德的) 측면을 포함한다. 그에게 진리는 인격(人格)이며, 그분이 진리라는 것은 모든 것이 그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뜻한다. 

즉 진리(眞理)는 지식(知識)이 아니라 인격(人格)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⑵.유대인 지도자(指導者)들의 성경에 대한 좁은 관점(觀點)은 그들을 성경의 핵심(核心)에서 멀어지게 했고, 예수님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⑶.유대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이스라엘과 세상의 소망(所望)에 대한 구약(舊約)의 선지자(先知者)들과 예언(豫言)들의 성취(成就)를 무시(無視)한 듯했다. (요 5:39 참조) 


⑷.그들이 구원(救援)을 찾는 과정에서 그들의 소망(所望)과 삶의 주님을 거부(拒否)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죽음만 있고, 그분을 통해서만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⑸.예수님은 우리 주변(周邊)의 모든 진리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거짓과 혼란(混亂)의 어둠을 몰아내고 우리가 모든 것을 올바른 관점(觀點)에서 볼 수 있게 하십니다. 


⑹.관용적(慣用的)이고 다원적(多元的)인 사회에서 진리는 움직이는 표적(表迹)입니다. 왜냐하면 진리(眞理)는 계속 변화(變化)하고 진화(進化)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⑺.오늘의 진리(眞理)가 반드시 내일의 진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문장(文章)으로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며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고 선언(宣言)하십니다.


⑻.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眞理)이시기 때문에 그는 진리를 가르칠 수 있으셨다. 그리스도의 사상(思想)과 인격(人格)과 생활 경험(生活經驗)은 모두 에수님의 가르침 속에 구체적(具體的)으로 나타나 있다.


⑼.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개인적 경험을 통해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실물교훈, 43). 


⑽.진리(眞理)는 계속해서 예수님, 그의 아버지, 성령(聖靈)과 연결(連結)된다. 진리는 예수님, 말씀, 그리고 어둠과 대조되는 빛과 연결되어 있다. (요 1:1~14, 요 3:19~21). 


(12월 05일) (목) <성경(聖經)과 진리(眞理)> 


(Q)~예수님께서 성경(聖經)과 진리(眞理)에 대해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說明)해 주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5:38-40, 히 11:3)


(A)~<성경(聖經)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리고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고 증언하며 감동하게 하기에 진리다. 성경에 대한 오역(誤譯)이나 오해(誤解), 오류(誤謬), 혹은 그것을 잘못 해석(解釋)하거나 자의적(恣意的)으로 설교(說敎)하는 것 등은 모두 사람의 죄성(罪性)에서 나온 결과(結果)들이고 그 사람 자신이 감당(堪當)해야 할 몫이다.>


⑴.‘진리(眞理)’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메트’ 로서 이는 ‘지지하다’(support), '신뢰하다‘(trust), '의지하다’(rely upon) 는 뜻의 동사 ‘아만’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서 우리는 ‘진리(眞理)’가 믿고 의지(意志)할만한 것, 또는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뒷받침해 주는 어떤 것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또한 ‘진리’ 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데이아‘도 히브리어의 ’에메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⑵.성경(聖經)은 진리(眞理)이다. 하나님이 진리(眞理)이시고 그분의 말씀이기에 성경은 진리이다. 동시에 성령(聖靈)의 깨우침과 감동(感動)하게 하심이 있어야만 성경을 진리로 믿을 수 있기에 그 내용(內容)들은 진리다.


⑶.성경은 그 자체로 자신의 진리성(眞理性)을 증명(證明)하는 말씀들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태초(太初)에 말씀이 계셨다. (요 1:1)은 증언(證言)과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쓰였다는 말씀(딤후 3:16),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는 것(벧후 1:21)과 성경이 빛이시자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야고보서 1:17)이라는 사실 등이다..


⑷.오늘의 진리가 반드시 내일의 진리(眞理)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문장(文章)으로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며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고 선언(宣言)하십니다.


⑸.구약(舊約)에서는 진리(眞理)를 여호와의 속성(屬性) 중의 하나로 설명한다. (창 32:10, 시 25:10, 사 65:16). 이것은 여호와의 언약(言約)에 있어서, 또는 말씀에 있어서 절대 변개(變改)치 않으시고 흔들림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누구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리의 여호와이시라는 것이며 여호와의 뜻과 계명(誡命) 등을 가리켜서도 말한다.


⑹.귀중(貴重)한 진리의 보석(寶石)을 가진 성경은 학자(學者)만을 위하여 기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평범(平凡)한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⑺.성령(聖靈)의 도움을 받은 평범(平凡)한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해석(解釋)이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와 가장 잘 조화(調和)를 이루게 된다. 


⑻.구원(救援)을 위한 위대(偉大)한 진리들은 대낮과 같이 분명하므로 분명(分明)히 계시(啓示)된 하나님의 뜻 대신에 자기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실수하거나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증언 5권, 331). 


⑼.성경이 나에게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진리(眞理)는 내가 성경(聖經)을 통해 사랑과 구속(救贖)의 원리(原理)를 배운 중요한 진리(眞理)가 정리되어있다. 


⑽.성경(聖經)은 진리(眞理)의 문(門)을 여는 열쇠, 세계(世界)를 볼 수 있게 하는 빛이다. 성경(聖經)은 예수님을 알려주며 인간(人間)과 하나님의 관계(關係)와 삶의 의미(意味)와 미래(未來)의 소망(所望)을 볼 수 있게 한다. 


윤리적(倫理的)인 의미에서 선(善)하거나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호와의 백성들의 삶 전체에 있어서 가장 확실하고 흔들림이 없는 삶의 기준(基準)이 되기 때문에 진리(眞理)라고 하는 것이다. (수 24:14, 삼상 12:24, 시 51:6, 사 59:14-15).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