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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일곱 재앙(질문, 대댑, 설명)0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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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9-03-09 04:42 조회8,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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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일곱 재앙

 

3월 16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40분

 

● 연구 범위 : 계 15:1, 7:1~3, 14:9~10, 16:1~12, 17:1, 단 5장, 계 16:16, 살후 2:9~12

 

● 기억절 :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 15:4).

 

계 11:18은 아마겟돈 직전에 세상에 일어날 사건들을 요약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이러한 지상의 상태는 마지막 날들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과 일치한다(눅 21:25). 그리고 이후로 하나님의 진노가 따르며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일곱 재앙의 형태로 그분의 심판이 임한다(계 15:1).

계 15장은 일곱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재앙을 쏟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계 15:1~4). 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계 15:2) 이기고 유리 바다와 같은 곳에 서서 모세와 어린 양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모든 것은 홍해 바닷가에 서서 애굽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승리를 송축했던 히브리 백성들을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이다(출 15장). 이렇게 승리한 성도들은 계 14:1~5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인들과 같은 무리로 불린다. 그들은 짐승의 표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곱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재림의 날에 그들의 죽을 몸은 불멸의 몸으로 변화함을 입고(고전 15:51~54), 부활한 성도들과 연합하여 능력과 영광 가운데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것이다(살전 4:17).

 

학습목표

깨닫기 : 일곱 재앙과 아마겟돈 전투의 의미를 이해한다.

느끼기 :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서 어린 양의 노래, 모세의 노래를 부를 날을 기다리며 매일 구원의 기쁨을 경험한다.

행하기 : 최후의 영적인 쟁투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님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의에 끝까지 의지한다.

 

➋ 일곱 재앙은 각각 어떤 내용입니까?(계시록 16장)

※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이다. 땅, 바다, 강 샘, 해, 짐승의 보좌, 아마겟돈, 우박 등이다. 천연계가 땅을 망하게 한 자들에게 역공하는 것이다. 

➌ 일곱 재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절대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회개할 기회가 지나갔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졌기 때문이다. 

➍ 유브라데 강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된다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계 16:12)

※ 바벨론이 붕괴하여 재림하시는 주님의 길이 예비된다는 뜻이다. 

➎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갈멜산 대결을 참고했을 때 아마겟돈 전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계 16:16, 왕상 18장)

※ 경배의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➏ 최후의 영적인 쟁투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보존하는 방법들은 무엇일까요?(계 16:15)

※ 오직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 있는 것이다.

 

결론 :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자들 위에 최후의 재앙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그분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마지막 영적인 결전을 준비하겠지만 어린 양의 편에 완전히 속한 자들은 그분의 피와 말씀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것입니다.

 

 

첫째 날 3월 10일(일) 일곱 재앙의 의미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계 15:1).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 편에 설지 아니면 바벨론 편에 설지 결정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묶여있던 사탄의 분노의 폭풍이 풀리고(계 7:1~3) 일곱 재앙이 이어진다. 

 

1. 계 15:1을 출 7~11장과 함께 읽어보라. 일곱 재앙의 배경으로 간주되는 애굽의 열 재앙은 그 목적과 의미에 있어서 얼마나 교훈적이었는가?

[계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출7장~11장] 애굽에 내린 열 재앙에 대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답: 바로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고 애굽이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처럼 마지막 재앙도 악의 잔이 차고 넘쳤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들이 이 재앙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우주 앞에 드러낸다. 

 

일곱 재앙은 지구 역사의 가장 마지막 시기에 일어나기 때문에 ‘마지막’ 재앙이라고 불린다. 반대로 일곱 나팔의 재앙은 기독교 전 역사를 포괄하며 그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그것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중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 실행된다(계 8:2~5, 10:8~11:14). 일곱 나팔에는 은혜가 섞여있고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원수들을 회개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반면 일곱 재앙은 재림 직전에 부어진다. 그것들은 바로처럼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에 마음을 굳게 닫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쏟아진다(참고 계 16:11).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들이 선택한 결정에 따라 주어지는 공의로운 심판이며(참고 롬 1:26~28), 그때 멸망을 당할 자들은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거둘 것이다.

 

2. 계 15:5~8을 출 40:34~35, 왕상 8:10~11과 함께 읽어보라.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8)는 진술은 일곱 재앙이 내리는 시기에 대해서 무엇을 암시하는가?

[계15:5~8]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출40:34,35]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왕상8:10,11]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답: 성전에는 오직 하나님 외에 아무도 있을 수 없다. 그때는 은혜의 시기가 끝났기 때문에 속죄를 위한 중보가 끝났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무도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8)는 표현은 은혜의 시기가 끝났음을 가리킨다(계 22:11). 그리스도의 하늘 중보 봉사가 마치면, 회개할 기회의 문은 영원히 닫힌다. 그러므로 일곱 재앙은 아무도 회개로 이끌지 않을 것이며 단지 바벨론 편에 서기로 선택한 자들의 굳은 마음을 드러내고 심지어 하나님을 더 심하게 증오하게 할 것이다(계 16:9, 11).

 

<부가설명> 예수님도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한 분이시기 때문에 이때에 성소에 계실 수 없다는 말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의 성소봉사 사건은 지상성소에서 보여주신 모형과 그림자의 봉사의 실제적인 것을 상징적 형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서 봉사하는 대제사장의 위치에서 봉사하시는 분으로 계시된 것이다. 출애굽기나 열왕기상에 기록된 것은 대제사장이 들어올 수 없는 상태에 대하여 보여준 역사적 사실이다. 그와 같이 하늘성소봉사에서도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이 봉사를 끝내시고 나오셨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하여 이해할 때에 말씀하나님 여호와로서 예수님이 아니고 지성소봉사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봉사를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16장 1절에는 성전에서 큰 소리가 나서 대접을 갖다 쏟으라고 하는데 성전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지성소봉사가 끝났기 때문에 지성소 시은좌에 좌정하신 예수를 믿은 사람들에게 의롭다고 선고하신(롬8:33,34, 3:30) 그 하나님께서 이제 모든 봉사가 끝났기 때문에 그 존재를 상실해야 할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선고된 내용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곱 대접인 일곱 재앙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은혜를 베푸실 수 없다는 것을 온 우주에 드러내는 것이다. 섞인 것이 없이 부은 진노의 포도주이다. 

 

교훈 : 일곱 재앙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쏟아지는 마지막 재앙이다. 그들을 위한 은혜의 시기가 끝났으므로 이 재앙으로 회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둘째 날 3월 11일(월) 마지막 재앙이 쏟아짐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계 16:1).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중보 사역이 끝나면 각 개인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복음을 거절했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남김없이 쏟아질 때가 왔다.

일곱 재앙은 애굽에 임했던 열 재앙을 반영한다(출 7~11장). 열 재앙은 애굽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껴갔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련의 때에 보호를 받을 것이다(시 91:3~10, 참고 각 시대의 대쟁투, 629~630). 애굽에 임한 재앙은 바로의 강퍅한 마음을 드러냈고 애굽인들에게 그들의 신들이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재앙은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없는 바벨론의 무력함을 드러낼 것이다.

 

1. 계 16:1~11을 읽어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며 그것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계16:1~1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답: 첫째 대접부터 다섯째 대접까지 내용이다. 1. 땅에 쏟으니 종기재앙, 2. 바다가 피가 됨, 3. 강물과 물 근원이 피가 됨, 4. 해가 사람을 태움, 5. 짐승의 보좌 있는 곳이 어두워짐. 이 모든 것은 천연계의 이변인 것을 알 수 있다. 땅, 바다, 강과 샘, 해, 짐승의 보좌는 천연계가 아니지만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은 역시 천연계 현상이다. 

 

처음 네 개의 재앙은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지상의 거민들은 완전히 전멸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28). 첫째 재앙은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고통스럽고 역겨운 종기가 나게 할 것이다. 둘째와 셋째 재앙은 바다와 강과 샘들이 피로 변하게 한다. 마실 물이 없어 반역적인 인류는 생존할 수 없게 된다. 넷째 재앙은 태양에 영향을 주어서 사람들에게 화상을 입혀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게 한다.

재앙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인류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거나 그들의 반역적인 태도가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재앙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욕한다. 아무도 회개하지 않는다.

우리는 계 16:10~11에서 다섯째 재앙이 짐승의 보좌를 치는 모습을 본다(참고 출 10:21~23 참고). 짐승에게 보좌를 넘겨준 자는 사탄이었다(계 13:2).

이제 사탄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좌도 이러한 재앙의 영향에서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며 바벨론이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반항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끔찍한 재앙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부가설며> 일곱 재앙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로 주신 천연계를 사람들이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 것에 대한 천연계의 반항을 보여준다. 땅, 바다, 샘과 강물, 태양, 짐승의 보좌는 루시퍼가 흑암의 존재였다는 것을 드러내보여주는 재앙인데 첫 재앙의 고통이 그때까지 계속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사탄은 세상을 어둡게 하고 망하게 한 것 외에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천연계가 선포하는 것이다. 이런 재앙이 내릴 때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라. 고도로 발달한 과학의 힘을 빌리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쓸 것인가? 그리고 정부나 의료계나 과학자들에 대한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온 세상이ㅣ 원망으로 넘칠 것이며 재앙이 국지적이기 때문에 재앙이 없는 곳으로 피난가려는 인파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종기가 나지 않는 지역, 피가 되지 않는 바다 샘 강물이 있는 지역, 해가 뜨거워지지 않는 지역, 주위가 캄캄해지지 않는 지역을 찾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동할 것인가. 그 자체로도 커다란 재앙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바벨론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부르짖을 것이다. 그 부르짖음에 응답으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이적활동을 하여 그들의 부르짖음을 재우면서 그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을 것이고 그들은 즐겨 모일 것이다. 

 

교훈 : 첫 네 개의 재앙은 지구 거민들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의 큰 고통을 야기한다. 그들은 바벨론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함을 깨닫지만 회개하지는 않는다.

 

 

셋째 날 3월 12일(화) 유브라데 강을 마르게 함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계 16:12).

 

1. 계 16:12을 계 17:1, 15과 함께 읽어보라. 유브라데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일곱 재앙의 문맥에서 유브라데 강이 마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계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계17:1,15]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답: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며, 마른다는 것은 바벨론이 망한다는 의미이다. 

 

구약성경에서 유브라데 강은 앗수르, 바벨론 같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중요한 생존 수단이었다. 그 강은 바벨론을 관통하여 흘렀고 그 물로 백성들은 곡물을 재배하고 식수를 얻었기 때문에 그 도성에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바벨론은 유브라데 강 없이는 생존할 수 없었다.

계 17:1은 마지막 때의 바벨론이 아마도 유브라데를 가리키는 듯한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참고 51:13). 계 17:15은 바벨론이 앉아 있는 물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백성들, 곧 그 조직을 지지하는 범세계적인 시민, 대중, 정치 세력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세력들은 마침내 그들의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여섯째 재앙은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의해서 고대 바벨론이 함락되는 모습을 반영한다(참고 단 5장). 고대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벨사살 왕과 그의 신하들이 연회를 즐기고 있던 밤에 페르시아 군대는 유브라데 물줄기를 돌린 후에 강바닥을 걸어 바벨론으로 침투해서 도성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계 16:12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된 마른 유브라데 강은 마지막 때에 바벨론의 붕괴를 초래한다. 계시록에서 유브라데 강은 바벨론을 지지하는 전 세계적인 시민, 대중, 정치 세력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것의 마름은 그들의 지지 철회와 바벨론의 멸망을 야기하는 그들의 공격을 상징한다. 세상 백성들은 생태계의 대변동을 보고(계 16:3~9) 바벨론의 보호를 바란다. 그러나 다섯째 재앙이 바벨론의 권위의 보좌를 치자(계 16:10~11), 도움을 바라는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바벨론으로부터 등을 돌려서 그것이 파멸에 이르게 한다(계 17:16).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하여 여전히 강퍅한 상태에 머문다. 그래서 그들은 온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그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 위해 하나로 연합하자고 설득하는 사탄의 마지막 미혹의 밑거름이 된다.

 

<부가설명> 교과에 설명했듯이 바벨론이 망할 때에 고레스는 유프라테스 강의 물길을 돌려서 바벨론 성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의 수위를 낮추어서 물이 들어가는 길로 군사를 들여보내 성을 점령했다. 여섯째 재앙 때에 유프라테스 강이 마른다는 것은 바벨론이 망할 것을 상징한다. 동방에서 오는 왕은 고대 바벨론 멸망할 때 고레스가 동방에서 오는 왕이었다. 그러첨 바벨론을 멸망시킬 분이 오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분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이시다. 바벨론은 다급해진다. 그래서 재앙으로 피폐하고 원망이 하늘까지 사무친 사람들을 연합시키기 위하여 개구리 같은 영을 활동하게 하여 재앙으로 엉망이 된 세상을 이적으로 치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은 고통에서 면하게 되면서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경배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래서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아마겟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이적을 행한 그들에 대한 신뢰가 클수록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커질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성경의 하나님을 모르고 용의 세력을 하나님인줄 믿고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성경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원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말씀에 굳게 서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진리대로 굳게 서야 할 것이다.

 

교훈 : 바벨론을 신뢰했던 자들은 그것이 멸망하도록 등을 돌리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려는 사탄의 마지막 미혹에는 끝까지 동조한다.

 

 

넷째 날 3월 13일(수) 사탄의 최종적인 큰 미혹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계 16:3).

 

계 16:12에 따르면 유브라데 강이 말라야 하는 이유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을 예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고레스와 그의 군대는 북방에서 내려와 동쪽으로부터 바벨론에 접근했다(사 41:25). 그들이 바벨론을 정복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땅으로 귀국할 수 있게 된다(사 44:27~28).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유브라데 강의 마름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에게 구원을 제공하기 위해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을 예비한다.

계 16:12에서 말하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하늘 군대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분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계 19:14) 곧 죄 없는 천사의 옷을 입은 천군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실 것이다. 하늘 군대를 대동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계 17:14이 설명하듯이 당신의 백성을 박해했던 사탄의 군대를 무찌르신다(비교 마 24:30~31).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에 대항하는 이 최후의 대결이 바로 재림의 서곡이 되는 아마겟돈 전쟁이다.

 

1. 계 16:13~14을 읽어보라.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 더러운 영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사탄은 그것들을 통해서 어떻게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을 위조하는가?

[계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답: 셋이라는 숫자로 모방하여 이적을 행하여 그들이 경배 받을 참 하나님인 것처럼 가장한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영으로 활동한다.

 

은혜의 시기의 종결로 이어지는 마지막 사건들을 통해서 모든 인류는 아마겟돈의 전투에서 양 진영 중 어느 편에 속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이 영적인 전쟁의 전조로 요한은 개구리를 닮은 세 악한 영을 본다. 사탄이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미혹에는 거짓을 말하는 악령들이 가담한다. 용(이교주의와 강신술)과 바다 짐승(로마가톨릭)과 거짓 선지자(배교한 개신교)는 사탄의 명령 아래 연합한다(참고 계 13:11~12).

사탄은 양같이 생긴 짐승에게 능력을 주어 영들의 출현을 포함한 기이한 표적을 행하게 한다(참고 계 13:13~17). 이러한 표적은 세상으로 하여금 참하나님보다 자신을 따르라고 설득하기 위한 사탄의 마지막 기만술의 일부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증오심으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진 세상의 지도자들은 달콤한 종교의 탈로 위장한 사탄의 거짓말들을 선뜻 믿는다(살후 2:9~12). 마침내 그들은 하나가 되어서 세상의 종말로 이어질 최후의 전투에 나서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이들이 셋인 것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가 삼위인 것을 모방하는 것이다. 용은 성부를 모방하고 바다짐승은 성자를 모방하고 땅의 짐승은 성령을 모방한다. 계13장을 잘 연구하면 이들의 모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적을 행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이적처럼 보이게 할 것이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제자들을 통하여 행한 이적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어쩌면 종기도 치료하고 피가 된 바다도 맑게 하고 해가 태울 정도로 뜨거운 것을 어느 정도 막아서 견딜만하게 할는지도 모른다. 사탄이 이 지상에 일어난 사태에 대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그런 일들을 해서 사람들의 환심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거짓 이적이다.(살후2:9,10) 그들이 진리를 모르고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나님의 이적으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를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이 인정된 자로 일하라고 권하였다.(딤후2:15) 우리는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진리의 정로를 힘차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려는 세력을 분별해서 오직 성경의 하나님만을 따른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사탄은 하늘 군대를 이끌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대항하기 위하여 더러운 영들에 미혹된 세상 사람들을 최후의 영적인 전쟁, 아마겟돈에 결집시킨다.

 

 

다섯째 날 3월 14일(목) 아마겟돈 전쟁터로 결집함

 

1. 계 16:16을 읽어보라. 사탄의 마지막 기만술은 세상 백성들을 아마겟돈의 전쟁터로 집결시키는 데 얼마나 성공적일 것인가?

[계16: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답: 세상의 통치자들이 다 모이게 된다.

 

사탄의 기만적인 이적들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둘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저버린 백성들은 기만적인 이적을 수반하는 거짓말을 믿을 것이다(참고 살후 2:9~12). 그들은 히브리어로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겟돈에 집결함으로써 서로 연합할 것이다. 므깃도는 산이 아니라, 갈멜산 자락 끝에 있는 이스르엘 계곡(또는 에스드라엘론 평원)에 위치한 요새로 그 성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에스드라엘론 평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참고 삿 5:19, 6:33, 왕하 9:27, 23:29~30). 계시록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악의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최후의 큰 아마겟돈 전쟁을 묘사했다. 세상 백성들은 사탄을 따르는 이러한 동맹에 이끌려 모인 군대로 묘사되었다.

‘므깃도의 산’이라는 말은 고대에 므깃도 성이 있었던 계곡 위에 높이 솟아오른 갈멜산을 또렷하게 연상시킨다. 갈멜산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참선지자(엘리야)와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 엄청난 대결이 펼쳐졌던 장소이다(왕상 18장). 이 비장한 결전은 “누가 참하나님이신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시며 경배 받으실 유일한 분임을 입증했다. 아마겟돈 전투의 영적인 쟁점 곧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중 누구를 섬길 것인가?’의 문제는 재앙 전에 결정되며,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편에 선 자들은(계 16:1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유다가 그랬던 것처럼[눅 22:3]) 완전히 마귀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패배할 편을 선택했기 때문에 산들에게 무너져 자신들을 숨겨달라고 부르짖는 자들 중에 있을 것이다(계 6:16, 살후 1:7~8). 그러나 계 13:13~14은 재앙이 쏟아지기 전에 땅의 짐승이 세상을 속이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다른 영에 의해 일어난 거짓 부흥과 같은 그러한 사탄의 위장술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게 할 것이다. 아마겟돈은 중동의 어느 지역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의 군사적인 전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전 세계적으로 악의 세력과 맞서는 영적인 대결이다(참고 고후 10:4). 결과는 갈멜산의 대결과 같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둠의 세력을 누르고 이기실 것이다.

 

<부가설명> 아마겟돈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근래에는 므깃도의 산이라는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여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투쟁을 역사적 배경으로 종말 사탄과 예수님 사이의 마지막 투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교과에 말했듯이 므깃도 골짜기인 이스르엘 평야는 비옥한 지역이다. 이스르엘 평원에서 지중해 쪽에 솟아 있는 산이 갈멜산이다. 해발 546미터인 산이다. 높이로 말하면 한국의 롯데 타워보다 낮다. 그러나 거기서 참 하나님이 누구시며 누구를 경배하는 것이 옳은가를 드러내는 투쟁이 있었다. 아마겟돈 전쟁도 누가 참으로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신가 하는 것이 투쟁의 핵심이다. 용과 바다짐승과 땅의 짐승으로 표상된 거짓선지자의 연합이 가짜 삼위일체인가를 판가름하는 투쟁이다. 19장에 백마를 타고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싸우시는 예수님이 승리하신다. 19장에 아마겟돈 전쟁의 종결에 대한 기록이 있다. 16장 마지막 재앙인 우박 재앙으로 그들은 지리멸렬하고 세 갈래로 갈라지며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거게 될 것이다. 모든 결정은 스스로 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증거와 기회를 주셨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살후2:10) 우리는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인가?

 

교훈 : 아마겟돈은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대결했던 갈멜산을 연상시킨다. 전 세계적인 이 영적인 전쟁에서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완전하게 무찌르실 것이다.

 

 

여섯째 날 3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의 진리로 마음을 견고히 방어한 자들 외에는 아무도 최후의 대쟁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이 이르러 올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날을 내다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딤후 4:3)리라. 그때가 분명히 이르렀다. 성경의 진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욕망을 방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그들이 좋아하는 속임수를 제공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성경, 오직 성경만을 모든 교리의 기준과 온갖 개혁의 기초로 삼아 지지하는 백성을 가지실 것이다. 학자들의 의견, 과학의 이론, 종교 회의에서 정한 신조나 결정은 사람들이 대표하는 교회와 다수의 의견에 따라 다양하여 일치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종교적 신앙에 관하여 그 찬반을 결정할 때는 위에 열거한 것들의 전부나 그 하나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떤 교리나 교훈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것이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하는 분명한 말씀에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큰 기만적 연극의 주역으로서 사탄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가장할 것이다. 이것은 강력하고 거의 압도적인 기만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94~595, 62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아마겟돈 전투를 앞두고 삽입된 계 16:15에서 예수님이 주신 훈계를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호소할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계 3:18). 이는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함을 보여줍니까? 이 기별은 어떤 방식으로 그대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됩니까?

※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확실해 진다. 우리는 진정으로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어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깨닫기를 원하는 대로 깨닫고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야 할 것이다. 

 

➋ 계시록에서 희고 깨끗한 옷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합니다(계 3:4~5, 19:7~9).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은 자들만이 마지막 때에 굳게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옷을 어린 양의 피로 희고 깨끗하게 빨 수 있을까요?(계 7:14)

※ 말씀과 기도로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15:3)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 말씀을 사모하고 연구하며 충성하지 않으면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믿음을 잃게 될 것이다.(계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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