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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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02-01 09:39 조회3,579회 댓글0건본문
어떤 알콜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술과 노름 등 방탕한 생활로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 그에게는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 나가 버린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이와같이 형편없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자랐습니다. 가출한 어머니, 술주정뱅이 아버지, 그야말로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두 형제의 인생은 완전히 갈리고 말았답니다. 한 아들은 의과 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어 알콜 중독자들을 치료하며 '금주 운동'을 펼쳤고, 다른 한 아들은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폐인이 되었답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며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동일한 대답을 했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한 아들은 비극적인 환경을 교훈 삼아 나는 결코 그런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희망의 삶을 개척했지만 다른 한 아들은 자신의 여건에 대한 불평, 불만 속에 환경 탓만 하다가 자포자기로 인생을 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망의 늪에 빠져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과 여건에 노예가 되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의 이야기는 환경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1928년에 플레밍은 연구실에서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흔하던 부스럼의 원인인 포도모양의 병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배양된 세균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그만 깜빡 잊고 접시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연구실에서 나왔던 것이 그만 잘못되어 그 접시에 온통 곰팡이가 생겨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곰팡이가 핀 접시를 비우려고 치우다가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접시 위에 잔뜩 퍼져있던 포도모양의 세균들이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플레밍은 의아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세균을 사라지게 했을까? 세균이 이처럼 깨끗하게 사라진 걸 보면 분명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무언가가 작용했을텐데…….'
연구 끝에 플레밍은 접시 위에 생긴 푸른곰팡이가 그 효과를 낸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플레밍이 실수로 세균이 있던 접시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연구실에서 나왔던 점,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곰팡이의 포자가 깨어진 연구실 창문 사이로 날아와 그 접시에 붙었던 것이 당시까지 난치병이라고 하던 많은 질병들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페니실린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 극적이지 않습니까?
사실 푸른곰팡이의 종류 만도 650여 가지나 되고, 변형종까지하면 몇 천가지나 되지만 정작 페니실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것은 몇 종류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플레밍의 실수에 때맞춰 페니실린의 원료가 되는 푸른곰팡이가 날아왔다는 것은 인류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매우 열악하고 협소했던 그의 연구실, 깨진 유리창, 그는 그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입니다.
얼마 후 한 친구가 플레밍의 연구실을 방문하고 그 형편없는 연구실 환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만들다니… 자네에게 좋은 환경의 연구실이 주어졌었다면 자네는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해 냈을껄세" 그 때 플레밍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이 열악한 연구실이 나로 하여금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해 주었다네. 깨진 창 틈으로 날아온 먼지가 바로 페니실린의 재료가 되었던 거야!"
여러분! 복된 삶은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복된 삶과 불행한 삶은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그 고통과 시련을 불행과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나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똑 같은 환경속에서도 불행해 할 수 있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은 불행과 행복을 맞는 우리의 태도에 있음을 알고 우리의 태도를 항상 긍정적이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행을 통해서도 행복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의 손바닥의 양면과 같습니다.
불행을 뒤집으면 행복이 될 수 있고 행복을 뒤집으면 불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가 온 불행을 뒤집어 행복으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술과 노름 등 방탕한 생활로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 그에게는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 나가 버린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이와같이 형편없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자랐습니다. 가출한 어머니, 술주정뱅이 아버지, 그야말로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두 형제의 인생은 완전히 갈리고 말았답니다. 한 아들은 의과 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어 알콜 중독자들을 치료하며 '금주 운동'을 펼쳤고, 다른 한 아들은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폐인이 되었답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며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동일한 대답을 했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한 아들은 비극적인 환경을 교훈 삼아 나는 결코 그런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희망의 삶을 개척했지만 다른 한 아들은 자신의 여건에 대한 불평, 불만 속에 환경 탓만 하다가 자포자기로 인생을 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망의 늪에 빠져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과 여건에 노예가 되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의 이야기는 환경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1928년에 플레밍은 연구실에서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흔하던 부스럼의 원인인 포도모양의 병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배양된 세균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그만 깜빡 잊고 접시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연구실에서 나왔던 것이 그만 잘못되어 그 접시에 온통 곰팡이가 생겨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곰팡이가 핀 접시를 비우려고 치우다가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접시 위에 잔뜩 퍼져있던 포도모양의 세균들이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플레밍은 의아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세균을 사라지게 했을까? 세균이 이처럼 깨끗하게 사라진 걸 보면 분명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무언가가 작용했을텐데…….'
연구 끝에 플레밍은 접시 위에 생긴 푸른곰팡이가 그 효과를 낸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플레밍이 실수로 세균이 있던 접시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연구실에서 나왔던 점,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곰팡이의 포자가 깨어진 연구실 창문 사이로 날아와 그 접시에 붙었던 것이 당시까지 난치병이라고 하던 많은 질병들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페니실린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 극적이지 않습니까?
사실 푸른곰팡이의 종류 만도 650여 가지나 되고, 변형종까지하면 몇 천가지나 되지만 정작 페니실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것은 몇 종류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플레밍의 실수에 때맞춰 페니실린의 원료가 되는 푸른곰팡이가 날아왔다는 것은 인류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매우 열악하고 협소했던 그의 연구실, 깨진 유리창, 그는 그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입니다.
얼마 후 한 친구가 플레밍의 연구실을 방문하고 그 형편없는 연구실 환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만들다니… 자네에게 좋은 환경의 연구실이 주어졌었다면 자네는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해 냈을껄세" 그 때 플레밍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이 열악한 연구실이 나로 하여금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해 주었다네. 깨진 창 틈으로 날아온 먼지가 바로 페니실린의 재료가 되었던 거야!"
여러분! 복된 삶은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복된 삶과 불행한 삶은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그 고통과 시련을 불행과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나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똑 같은 환경속에서도 불행해 할 수 있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은 불행과 행복을 맞는 우리의 태도에 있음을 알고 우리의 태도를 항상 긍정적이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행을 통해서도 행복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의 손바닥의 양면과 같습니다.
불행을 뒤집으면 행복이 될 수 있고 행복을 뒤집으면 불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가 온 불행을 뒤집어 행복으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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