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리 꿩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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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03-15 13:14 조회4,442회 댓글0건본문
수꿩은 어느 한 산에 한 마리밖에 살지 않는다.
일부다처이긴 하지만 자신이 행세하는 영역 밖에 사는 남의 각시 꿩들을 넘보거나 추파를 던지는 법이 없다. 이렇게 남녀유별하다 하여 시어(詩語)에서 꿩을 덕조(德鳥)라 곧잘 읊었던 것이다.
만약 바람기 있는 암컷이 옆산의 남의 서방 꿩에 추파를 던지는 일이 있으면 수놈끼리 피투성이의 결투를 벌인다. 어느 한쪽이 죽거나 두 마리 다 죽거나 하는 사생결단이지, 약세라 하여 도중에 도망치거나 하는 법이 없다 한다.
옛날 무신들이 머리에 꿩 깃을 꽂고 다닌 이유는 바로 사생결단하는 수꿩의 용기를 숭상하고 본뜨기 위한 것이라 한다. 또한 자신이 활동하고 지배하는 영역을 보호 사수하는 영역 감각이 대단한 속성도 무신이 꿩 깃을 꽂고 다니게 한 요인이라고도 한다.
옛 병법에 보면 수꿩이 지배하는 영역 그대로를 요새화하면 난공불락이라 하여 치성(雉城)들을 많이 쌓고 있기도 하다.
꿩이 우리 한국인의 인상에 좋게 아로새겨진 데는 그 밖에 강인한 모성애 때문이기도 하다.
산불 속에서 제 새끼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면 그를 구하러 날아들어 타 죽거나 알을 품고 있는 중에 산불이 나면 불에 타 죽을지언정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알려진 꿩의 습성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은혜를 입으면 보은한다는 새로도 알려져 있다. 구렁이한테 감겨 죽어가고 있던 꿩을 살려준 한 서생에게 그 꿩이 죽음으로써 보은한 설화에서 치악산(稚岳山)이란 산 이름과 상원사(上院寺)가 연기(緣起)되고 있다.
그런 꿩을 가로 세로 겨우 7-8 미터 남짓한 방에 가두어놓고 석궁을 쏘아 살생하는 가두리 꿩 사냥이 성행하고 있다고들 한다.
장마가 지면 길에 나다니는 벌레를 밟더라도 죽이지 않게 하고자 오합혜(五合鞋)라는 느슨하게 삼은 짚신을 신고 나들이했던 우리 선조요, 피를 빠는 이를 잡더라도 죽이지 않고 보살통(菩薩筒)이라는 대통에 담아 나뭇가지에 매어두었을 만큼 살생에서 초연한 조상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를 가진 동방의 예의지국의 그 후손들의 동물 학대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그 충격이 더 크다. 짐승을 가두어 놓고 쏘는 가두리 사냥을 한 사람은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연산군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사냥을 삼가 하길 상소하는 소문에 보면, 짐승은 가두어 놓고 쏘지 않으며, 불을 지르거나 물을 등지게 하고서 몰지 않으며, 새끼와 더불어 있으면 쏘지 않으며, 쫓겨 가다가 지쳐 도망치기를 멎고 돌아보고 서 있으면 쏘지 않으며, 떼지어 있으면 놀라게 하여 분산시킨 다음 한 마리만 쫓는 것이 엽도(獵道)라고 했으니 너무나 인간적인 사냥 정신이 우리에게 계승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병든 소를 도축하고 죽여서는 안될 짐승들을 마구 잡아 들여 먹고 그 심성이 악하여 지고 피폐해졌다.
온 세상이 자연 환경과 동식물 보호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 이 시점에 그 못된 짓을 자행하다니 말이다.
동식물에 대한 보호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착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일부다처이긴 하지만 자신이 행세하는 영역 밖에 사는 남의 각시 꿩들을 넘보거나 추파를 던지는 법이 없다. 이렇게 남녀유별하다 하여 시어(詩語)에서 꿩을 덕조(德鳥)라 곧잘 읊었던 것이다.
만약 바람기 있는 암컷이 옆산의 남의 서방 꿩에 추파를 던지는 일이 있으면 수놈끼리 피투성이의 결투를 벌인다. 어느 한쪽이 죽거나 두 마리 다 죽거나 하는 사생결단이지, 약세라 하여 도중에 도망치거나 하는 법이 없다 한다.
옛날 무신들이 머리에 꿩 깃을 꽂고 다닌 이유는 바로 사생결단하는 수꿩의 용기를 숭상하고 본뜨기 위한 것이라 한다. 또한 자신이 활동하고 지배하는 영역을 보호 사수하는 영역 감각이 대단한 속성도 무신이 꿩 깃을 꽂고 다니게 한 요인이라고도 한다.
옛 병법에 보면 수꿩이 지배하는 영역 그대로를 요새화하면 난공불락이라 하여 치성(雉城)들을 많이 쌓고 있기도 하다.
꿩이 우리 한국인의 인상에 좋게 아로새겨진 데는 그 밖에 강인한 모성애 때문이기도 하다.
산불 속에서 제 새끼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면 그를 구하러 날아들어 타 죽거나 알을 품고 있는 중에 산불이 나면 불에 타 죽을지언정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알려진 꿩의 습성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은혜를 입으면 보은한다는 새로도 알려져 있다. 구렁이한테 감겨 죽어가고 있던 꿩을 살려준 한 서생에게 그 꿩이 죽음으로써 보은한 설화에서 치악산(稚岳山)이란 산 이름과 상원사(上院寺)가 연기(緣起)되고 있다.
그런 꿩을 가로 세로 겨우 7-8 미터 남짓한 방에 가두어놓고 석궁을 쏘아 살생하는 가두리 꿩 사냥이 성행하고 있다고들 한다.
장마가 지면 길에 나다니는 벌레를 밟더라도 죽이지 않게 하고자 오합혜(五合鞋)라는 느슨하게 삼은 짚신을 신고 나들이했던 우리 선조요, 피를 빠는 이를 잡더라도 죽이지 않고 보살통(菩薩筒)이라는 대통에 담아 나뭇가지에 매어두었을 만큼 살생에서 초연한 조상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를 가진 동방의 예의지국의 그 후손들의 동물 학대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그 충격이 더 크다. 짐승을 가두어 놓고 쏘는 가두리 사냥을 한 사람은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연산군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사냥을 삼가 하길 상소하는 소문에 보면, 짐승은 가두어 놓고 쏘지 않으며, 불을 지르거나 물을 등지게 하고서 몰지 않으며, 새끼와 더불어 있으면 쏘지 않으며, 쫓겨 가다가 지쳐 도망치기를 멎고 돌아보고 서 있으면 쏘지 않으며, 떼지어 있으면 놀라게 하여 분산시킨 다음 한 마리만 쫓는 것이 엽도(獵道)라고 했으니 너무나 인간적인 사냥 정신이 우리에게 계승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병든 소를 도축하고 죽여서는 안될 짐승들을 마구 잡아 들여 먹고 그 심성이 악하여 지고 피폐해졌다.
온 세상이 자연 환경과 동식물 보호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 이 시점에 그 못된 짓을 자행하다니 말이다.
동식물에 대한 보호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착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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