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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 교장 인사에 쓸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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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오선 작성일08-04-08 01:47 조회11,0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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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학교 인사에 쓸만한 글들입니다.


그 사람의 중심을 보자.(나아만 장군 이야기)

사람들은 자기의 신앙의 잣대로 남을 재고 정죄하는 일이 허다하다. 상대편의 입장과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어떤 교리, 자신이 깨달았다고 하는 어떤 성구를 인용하여 상대방을 정죄하기도 한다. 이것이 과연 바른 것일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나아만 장군에 대해서 기억한다. 그는 불행하게도 문둥병이 걸렸다.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였다. 백약이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언제인가 이스라엘을 정복하려 갔다가 포로로 끌고 온 소녀가 있었다. 참으로 귀엽고 성실하고 밝은 표적을 늘상 갖고 있는 소녀였다. 그에게서 평소에 은연중에 많은 무엇인가 감화를 받곤 하였다. 일반 포로들은 때로는 반항도 하고 늘 우울한 표정을 갖고 있었으나 이 이스라엘에 잡아온 포로인 소녀는 그렇지가 않았다. 어떤 알지 못하는 그녀만이 갖고 있는 확신 속에서 늘상 명랑한 소녀였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녀였다. 그의 말인즉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어서 그에게 가면 분명히 불치병인 어떤 병도 낳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아만 장군은 그 소녀의 말을 믿었기에 결국 엘리사를 만났고 그를 통해서 문둥병이라는 무서운 병에서 놓여났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그는 하나님을 모시기로 마음을 굳게 다짐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념으로 이스라엘 땅의 흙을 가져가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크나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의 나라는 우상숭배의 나라이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그 나라에는 우상의 신전있었는데 그는 그의 나라의 임금을 보좌하여 신전에 들어가야 했다. 따라서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다음의 성구를 읽어보자!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왕하5:18공동번역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한 가지 야훼께 용서를 빌 일이 있습니다 저는 왕께서 림몬 신전에 예배하러 가실 때에 부축해 드려야 하고 왕께서 림몬 신전에서 예배할 때 같이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만은 야훼께서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나아만 장군에게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을까? "평안히 가라."였다. 마음이 중요하다 외적인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고 하나님께서 마음의 안정을 주셨다. 이토록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실상은 그 중심 사상 즉 마음이라는 것이다. 마음의 동기를 더 중하게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바리새인들은 외모를 더 중하게 보았다. 우리도 외모보다는 마음을 중하게 보는 습관을 갖고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관용의 그리스도인이 되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요.."라는 말 뒤에는
"친해지고 싶어요"라는 말이 줄어 있어요

"나중에 연락할께"그 말 뒤에는
"연락 기다리지 마세요"라는 말이 숨어있죠

"나 갈께.."라는 말 뒤에는
"제발 잡아줘"라는 말이 숨어있어요

"사람은 참 좋아"그 뒤에 말줄임표에는
"다른 건 다 별로지만" 이 말이 포함돼 있죠

"어제 필름이 끊겼나봐" 그말 귀에는
"챙피하니까 그 얘긴 꺼내지마"란 말이 줄어 있어요

"왜 그게 궁금하세요?"그 뒤에 말 줄임표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을 삼키고 있을 거예요

사람의 말 뒤에는 또 다른 말이 숨어 있을 때가 있죠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치거나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스스로 구차해 지고 싶지 않다면.
말 뒤에 있는 진심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사탄의 유혹


사탄이 어느 날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열 개의 병을 보이면서 "이중 아홉 개의 병에는 꿀 물이 들었고
한 개에만 독약이 들어 있는데 열 개 중에 하나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지만 생명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계속 유혹했습니다.
청년의 눈앞에는 산더미 같은 돈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래, 딱 한 번만 하는 것이다.
이번 한 번이면 평생을 고생 안 해도 될 테니까!"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한 병을 골라 마셨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설마 이것이 독약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다시는 이 짓을 말아야지." 중얼대던 청년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번에 언제라도 아홉 개 중의 하나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오랜 방탕 생활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사탄을 불러내기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고민했으나 나중에는 어느 병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백발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딱 두 병이 남았습니다.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돈이냐, 죽음이냐!" 노인은 마침내 마지막 잔을 마셨습니다.
노인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노인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탄은 남은 마지막 한 잔을 훅하고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독약이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
라는 나의 독약에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돈만 알도록
최고의 바보로 만들었지. 너는 이제 영원히 죽게 된다."

사탄은 유유히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사단의 유혹은 교묘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십시오.
- 정명식(장로교) -

어느 날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가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나라의 꿈을 꾸었다.
그가 황금 유리가 깔린 찬란한 보석길을 따라 하늘나라에 도착했을 때
천국의 수위천사가 정중하게 마중하여 주었다.
웨슬레는 마음에 궁금해하던 한 질문을 수위 천사에게 던졌다.

"천사님,
나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감리교 운동을 하던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얼마나 왔습니까?"
웨슬레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천사의 답을 기다렸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천사는 한참이나 하늘나라 명부를 훑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감리교인 명단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웨슬레는 이루말할 수 없는 충격과 실망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나의 신앙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선교활동은 결국 실패한거야.
그렇다면, 칼빈의 교리가 맞았나 보다. 천국은 온통 칼빈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겠구나'
웨슬레는 천사에게 힘없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장로교인은 얼마나 있습니까?"

천사는 다시금 생명책을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 사람도 없소."

'장로교인도 천국에 없다니, 그렇다면 우리들의 종교개혁은 실패를 해 버렸구나.
결국 하늘나라는 천주교인으로 가득 찼겠구나.
그 어려운 종교개혁을 이루었는데 어찌된 일인가'
기가막힌 웨슬레는 다시 천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는 모두 천주교인들만 있습니까?"

"여기 이 생명책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천주교인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드디어 웨슬레는 흥분되었고 천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렇다면 천국에는 도대체 누가 있단 말이오?
불교인입니까? 아니면 회교도들입니까?"

천사는 조용히 펼쳤던 생명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요한 웨슬레를 바라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여기는 그리스도인들 뿐이오!"
천사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펌)

하늘나라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저..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정녕 그리스도를 주인과 왕으로 모시고 사는가?
돈 보다, 나 자신보다 (욕심이나 자존심이나 체면이나 명예보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에서나 주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어느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부인이 그림 구경을 왔다가
물감을 그 치마에 흘려버렸습니다. 아주 값 나가는 치마였기에,
부인은 너무나 낙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화가는 그 물감을 먹은치마에다가 그 물감을 그대로 두고, 그 물감을 바탕으로 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수와 수많은 결점으로 그 인생을 자주 망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망친 인생을 가지고 더 아름답게 장식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인간의 약점이나 실수나
범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화가의 이름이 생각 나지 않아서, 이 이야기는 곧 찾아서 올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안다.

미국 오페라계에 헐 버튼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2층에서 창 밖을 내다보다가 자기
아이와 이웃집 아이가 놀면서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이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 우리 아빠는
사장님과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사장님이랑 골프 치러 가셨어..』
그러자 자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 우리 아빠는 하나님을
잘 알고 계셔.. 우리 아빠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 .』
그 말을 듣던 헐 버튼은 창가에 서서 커튼을 잡고 소리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해 준 아들이
너무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속에
하루도 말을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말에는 빈말이 있고
실속이 있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말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으나
노력하고 애써서 좋은 말을 사용한다면
지혜로운 자라 칭찬 받을 것입니다.
지혜 있는 칭찬을 해주도록 노력해 봅시다.


밤하늘의 별

마음이 몹시 피로할 때, 시련에 무겁게 눌릴 때,
장애물을 이길 수 없는 듯이 생각될 때,
인생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고
그 아름다운 희망이 그림의 떡처럼 허무해지는
그런 처지와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혼란 없는 정숙함으로
각기 길을 달리는 별들의 교훈을 통하여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 교육 105 페이지)


장차의 생애에서는

장차의 생애에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실망케 했던 신비들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던 것으로 보였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희망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미확인)


나의 하는 것을 이후에는 알리라

자비하시고 성실한 하나님께서는
동정과 도움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연약한 동료 인간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우리의 무기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 임을 알려주기 위하여
때때로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실망을 당하도록 허락하신다.
진실하고 겸손하고 이기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자.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사무쳐있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을 아신다.
모든 것이 어둡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라. (출처 미확인)


예수님은 당신을 아십니다.

방 없다고 거절당하고 짐승 곁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당신의 외로움과 쓸쓸한 시간을 아십니다.
폭군 헤롯에게 쫓겨 애굽으로 피난했던 아기 예수님은
당신의 적막한 나그네의 길을 아십니다.
가난한 시골의 목수의 집에서 태어나 자라신 예수님은
당신의 고생과 땀흘린 피로를 아십니다.
여우도 공중의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머리둘 곳 없으시던 예수님은
집없고 의지할 데 없는 당신의 불안을 아십니다.
친구들의 배신과 가까운 이들의 버림을 체험하신 예수님은
혼자서라도 굳세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당신을 아십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예수님은
당신이 남몰래 베푼 친절과 희생을 아십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부르짖던 예수님은
당신의 실패와 연약한 마음을 아십니다.
갈바리 언덕을 피 흘리시며 올라가신 예수님은
남몰래 흘린 당신의 상처와 눈물을 아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무지가운데 죄를 짓고 있는 당신을 아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하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은
자녀를 돌보는 일에 지쳐버린 당신의 한숨을 아십니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당신의 소원을 아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던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당신의 절망을 아십니다.
"내가 목마르다", 고 괴로워하시던 예수님은
영혼의 기갈에 목이 타는 당신의 갈증을 아십니다.
"다 이루었다", 고 큰 소리로 외치시던 예수님은
인생의 목적에 고민하는 당신의 영혼의 소리를 아십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고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임종을 앞둔 당신의 캄캄한 마음을 아십니다.
무덤 속에서 부활해 나오신 예수님은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당신의 절규를 아십니다.
"내가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죄의 세상이 계속되는 것에 아연실색하는 당신의 질문의 답을 아십니다
(출처 불명)

실패의 의미.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새로 배웠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용감히 시도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출발 해야할 더 좋은 이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포기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더 열심히 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결코 해낼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임을 의미한다.

실패는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더 좋은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실패에 주저앉는 것은 악마적이다. (출처 불명)


한 개의 못

주님 저를 벽에 단단히 박힌
한 개의 못이 되게 해 주소서
아주 흔하고 작지만
이 못에 주님의 밝은 그림이 걸리어
지친 길손들이 거기 머물러
사랑스런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주님의 영광과 은혜로 아로새겨진
아무도 지울 수 없는
그 형상으로 인해
모든 얼굴이 환하여지도록...
주여!
아무도 저를 생각지 않도록...
오직 주님의 그림만이 보이도록 해 주소서. (출처 불명)


십자가만은 그의 것

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셨을 때
그의 미리 눕혀 둘 침대는 빌려 온 것
성내로 내려오실 때 타고 오신 나귀는
산 마을 길가에서 빌려온 나귀.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 십자가만은 그의 것.

산기슭 풀밭에서 무리를 먹이실 때
주님께서 떼신 떡은 주어오신 조각 떡
모인 무리 배불리신 물고기 한 접시는
어린 아이 도시락에서 주어오신 몇 마리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 십자가만은 그의 것

무리를 가르치고자 올라가신 그 배는
바닷가 어부들에게서 빌려오신 작은 배
집도 가정도 없으셨던 우리 주님
쉴 만한 휴식처도 빌려 받은 작은 방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 십자가만은 그의 것

유월절 어린 양 잡히시기 전날 밤
무덤으로 가시는 길에 방 한 칸 빌리셨네.
그의 무덤 위하여 동굴하나 빌린 그들
그의 시체 감아드릴 세마포도 빌렸네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 십자가만은 그의 것 (노래 가사로 압니다.)


생애는 주로 위대한 희생과 놀라운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생애에 주목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것들로 말미암아 큰 선이나 악이 초래되는 수가 너무도 허다하다. 습관이 꼴지어지고 품성이 잘못 형성되는 것은 작은 것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시험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더욱 큰 시험이 올 때에, 그들은 준비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다. 오직 우리는 일상생활의 시험 중에서 원칙대로 행동함으로써만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확고하고 성실하게 설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출처 불명)

주의 기쁨

아흔 아홉 양은 우리에 편히 있어도
그 중에 하나 떨어져 길 잃고 애쓰네
아주 멀리 멀리 떠나서
제 선한 목자 잃었네
제 선한 목자 잃었네
지금 남아 있는 양떼가 넉넉지 않은가
그러나 목자 하는 말 한 양도 소중해
비록 길이 멀고 험해도
나 속히 찾아가겠네
나 속히 찾아가겠네
잃은 양을 찾아 갈 때에 저 험한 곳에서
그 양의 우는 소리를 저 목자 들었네
급히 구원하러 올라가
그 양을 찾아 안았네
그 양을 찾아 안았네
그 때 목자 크게 기뻐서 큰 소리 외치며
이 양을 도로 찾으니 내 맘이 기쁘다

모든 천사 응답하는 말
그 잃은 양을 찾았네
그 잃은 양을 찾았네 (엘리자벳 C. 클레파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봉사사업에 남녀들을 택하실 때, 그들이 세속적 재산과 학문과 웅변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신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나의 길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겸손하게 걸어가고 있는가? " (출처 미확인)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하신다(딛 3:5). 그대는 그대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내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이나 미래에 호소할 탄원의 조건은 전혀 속절없는 우리의 상태, 곧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자아를 의존하는 모든 생각을 버리고, 우리는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말할 것이다.

"내 손에는 가지고 갈 아무런 대가도 없고, 다만 주님신의 십자가에만 매달립니다"(출처 미확인)

은혜

은혜는 은혜 받기에 합당치 못한 인간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태도이다. 우리가 은혜를 찾는 것이 아니고 은혜가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유일의 이유는 우리에게 그 자비가 크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많고 타락한 사람들을 초청하시고자 온 종일 그분의 손을 뻗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영접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신다. 죄인들의 괴수를 용서해 주는 것이 그분의 영광이다. 그분께서는 사로잡힌 자를 강한 자에게서 빼앗으시고, 포로 된 자를 건져내시고, 나무토막을 붙는 불에서 꺼내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장 깊은 인간의 불행의 심연(深淵)까지 그의 자비의 황금 사슬을 내려서 죄로 병든 타락한 영혼을 끌어올리실 것이다. // 부요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자유인과 종들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다. 인류를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생명을 주신 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서 유한한 인간이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보신다. 십자가의 오묘한 영광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께서 영혼의 가치를 평가하시는 바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사람이 비록 아무리 타락하였을지라도 냉대와 모멸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리만큼 큰 값이 지불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높임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 구주의 비유에 나오는 잃어버린 은전은 비록 먼지와 쓰레기 속에 묻혀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의 은이었다. 그것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은전의 주인은 그것을 찾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각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아무리 타락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가치 있게 여겨진다. 은전이 통치자의 상(像)과 명각(銘刻)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창조 시에 하나님의 형상과 명각을 간직하게 되었다. 비록 죄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은 훼손되고 희미해졌을지라도 각 영혼에는 그 명각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의와 성결로써 그 위에 그분의 형상을 다시 새기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잘못을 지적 당하는 것은 언제나 굴욕적인 일이다. 어떤 사람도 쓸데없는 비난으로 그 경험을 더욱 쓰라리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지금껏 비난으로 개선된 일이 없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비난으로 반감을 갖게 되고,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각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부드러운 정신과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는 실수한 사람들을 구원해 내고 많은 죄를 가리워 준다.

사도 바울은 잘못을 책망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실수한 사람의 친구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하여 얼마나 신중하게 노력하였던가! 그는 자기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그들에게 얼마나 열렬하게 설명하였던가! 그는 그들에게 고통을 준 것이 그에게도 고통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는 승리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자신의 확신과 동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내가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고후 2:4).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냈었느니라…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고후 7:8~13)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의 실수를 깨달을 때, 그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무관심과 불신으로 그 사람을 낙담케 하지 말라. "그 사람이 끝까지 잘 해 나갈 것인지 본 후에 그를 신뢰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흔히 바로 그와 같은 불신이 시험받는 사람을 실족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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