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에서부터 선교 현장까지(2월 28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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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25-12-22 11:25 조회5회 댓글0건본문
2월 28일 안식일 피지
피지에서부터 선교 현장까지
조던
- I Will Go(나는 가겠습니다) 운동은 모든 교회 구성원의 참여를 촉구하는 외침입니다. 이 운동은 각 교회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은사를 활용하여 예수님을 전하고 봉사하며 세상에 나아가도록 격려합니다.
모든 것은 제 마음속에 타오르던 불길, 외면할 수 없었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 제 이야기를 팟캐스트(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나눈 뒤, 저는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몇 달 뒤, 저는 신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섬길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의 첫 지원은 통가(Tonga) 선교부의 목회 보조직이었습니다. 2주 후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을 때, 저는 벅찬 마음으로 짐을 싸며 확신에 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첫 공식 선교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곧 닫혀버렸습니다. 선교부가 결정을 다시 고려하면서, 결국 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재림교회 기관의 선교직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낙심했고,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조용한 지혜의 말씀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 교수님이셨던 타부아 투이마 박사님께서 제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피지에서 네 사역을 시작해라.” 그 말씀은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피지 선교부의 목회부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선교부에 공식적인 요청서를 보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저는 간단한 이력서를 제출하며, 피지 원주민들과 함께 봉사하고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2024년 3월 말,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는 도시 안에 있는 세 교회를 맡아 돌보게 되었습니다. 직함도, 월급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과 기꺼이 헌신하는 마음, 그리고 사명이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큰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언어 장벽은 제가 반드시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저는 피지어로 설교하고, 기도하며, 사역하는 법을 빠르게 배워야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장로님의 아내이신 집사님이 조용히 제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는 목사님이 영어로 설교하셔서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어요.” 또 어떤 이들은 왜 선교부가 이렇게 젊은 사람을 보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그 말들은 마음을 깊이 상하게 했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제 자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 기도했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제 일정은 정말 빡빡했습니다. 안식일은 마치 마라톤 같았습니다. 한 교회에서는 안식일학교를, 다른 교회에서는 예배를, 세 번째 교회에서는 청년 예배를 인도해야 했습니다. 평일에도 기도회, 청년 프로그램, 소그룹 사역으로 하루하루가 꽉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쁜 시간들 속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제 언어가 되었고, 그들의 신뢰는 저의 가장 큰 보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5월에 제게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방송국인 Hope FM 피지에서 전국 아침 방송(Coast to Coast Breakfast Show)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형편없었습니다. 말은 더듬거렸고, 장비를 다루는 것도 서툴렀으며, 늦은 밤 사역으로 인한 피로와 싸워야 했습니다. 문자와 이메일로 부정적인 댓글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배우고, 경청하며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제 목소리는 피지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방송 중에는 간증을 나누고, 교회의 원칙을 탐구하며, 성경 말씀을 풀어 설명하고, 청취자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이 끝나면, 저는 개인적인 폭풍 속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수입이 전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습니다. 16살 여동생의 학비를 지원했고, 어려움으로 학교를 떠난 사촌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세 학기 동안 그들의 등록금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며,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 번도 굶은 적은 없었습니다. 교회의 장로님이 가끔 차로 데려다주시면서, 슬쩍 작은 선물을 건네주시곤 했습니다. 그분의 조용한 친절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하루뿐인 휴일인 월요일조차도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노인 요양원에서 자원봉사하며 겸손을 배우길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섬긴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과 지혜로운 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기초 수화 과정에 등록해서, 6개월 동안 주 2회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11월, 그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마침 그 달에는 여동생과 사촌의 학비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동부, 동자바(East Java)에 있습니다. 고향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저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이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갖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힘들고 외롭습니다. 눈앞에는 교회가 없지만, 매일 저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곳이 너의 선교지야.” 저는 예수님이 늘 제 곁에 계신 가장 친한 친구임을 믿습니다.
저는 ‘I Will GO’ 운동의 일원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내 가족에게 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에 응답하셔서, 어머니를 중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나는 내 이웃에게 가겠습니다:
학교를 그만두었던 사촌이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나는 내 일터로 가겠습니다:
미디어와 글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제 목소리와 시간을 드렸습니다.
나는 땅끝까지 가겠습니다:
지금 저는 예수님의 이름을 자유롭게 전할 수 없는 곳에서 사역하고 있지만, 믿음을 담대하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믿음과 섬김, 그리고 헌신의 여정입니다. 피지에서 동자바(East Java)까지, 하나님께서 매 순간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드린 13째 안식일 헌금의 일부는 남태평양 지역의 Hope Channel TV와 Hope FM 라디오 사역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번 기에도 13째 안식일 헌금 덕분에, 솔로몬제도와 바누아투의 아동 건강 사업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던이 선교사로 있는 피지와 인도네시아 동자바(East Java)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세요.
* 관련 사진은 Facebook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bit.ly/fb-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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