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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어린 복음 전도자(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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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3-14 10:22 조회3,0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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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안식일 트리니다드

나이 어린 복음 전도자

니콜라 잉글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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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 카리비안 대학교는 재림교단 소유의 학교로 과거 카리비안 유니언 대학으로 알려진 학교입니다. 2006년 이 대학이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입학생 수가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 이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수가 재림교인들입니다. 나머지 학생들의 종교는 개신교, 가톨릭교, 힌두교, 회교, 무교 등 다양합니다. 2006년 기도주일 동안 약 200명가량의 비 재림교인 학생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 교정에 새로운 기숙사들과 함께 세워질 예배당들은 형식별, 특정 언어별 예배 등을 포함한 좀 더 폭넓은 범위의 예배들을 가능케 해 줄 것입니다. 또한 이 예배당들은 목회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목회 역량을 향상시켜줄 특별한 기회들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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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여 청년이나 십대 소녀가 이 이야기를 소개하도록 하십시오.]
저는 가이아나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13살 때 제 사촌이 저를 재림교회의 어떤 프로그램에 초대했습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이 좋았고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안식일학교반에서는 제가 그 교회 교인이 아니었는데도 저를 그들의 활동에 참여시켜 주었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재림교인이 되겠다고 할 때까지는 재림교회에 다니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이상한’ 교회의 교인이 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반대하셨습니다. 제가 교회가 아니면 디스코 클럽에나 다니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비로소 어머니는 제가 그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제 가족들이 바베이도스 섬으로 이사했을 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가이아나에 남았습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갔을 때, 저는 그들에게 저와 함께 교회에 다니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2년 후에 제 가족 8명이 모두 교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인이 된 것은 모두 저의 모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저의 증언과 생활방식이 그들의 삶에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신이 납니다.
제 부모님은 가족들 중에 제가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저를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트리니다드에 있는 삼육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하필 신학이니?”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저는 복음을 사랑하고 목사로서가 아닌 선교사로서 사람들을 섬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제 부모님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들은 제가 삼육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십대 복음 전도자
그러고 나서 2학년 학기 중반쯤에 바베이도스에 있는 교회에서 저에게 그 교회에 와서 2주 동안 전도회를 열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중요한 수업들에 빠져야 했지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바베이도스로 가서 3일 후 안식일에 저는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8일 동안 매일 밤 설교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했고 당일 설교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시는 지에 대해 전할 때, 사람들이 그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놀라운 희생을 알게 될 때 그들에게 교리들이 쉽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저에게 힘든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맡기신 책임에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차 안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저는 그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니콜라,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너는 단지 강단에 서서, 내가 너를 통해 말하게 하라.” 그 깨달음이 저에게 용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실로 들어가서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오늘밤 저는 설교하지 않을 거예요.” 잠시 동안 방안은 놀라움의 침묵이 흘렀고 목사님이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밤뿐만 아니라 계속 설교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설교하실 것입니다.”라고 제가 말하자 비로소 모두들 안심했습니다. 그날 저녁 강단에 서 있던 저는 제 목소리를 들었고, 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설교는 그 동안 제가 들어봤던 어떤 설교보다 최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회 기간 동안, 저는 성경의 약속을 주장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슥 4:6). 제가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대변인일 뿐이었습니다. 그 전도회의 결과로 저는 제 자신과 제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고, 그렇게 하면 모든 사람이 저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그것이 저를 위한 것이 아닌 그분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끄는 일에 저를 사용하셨음을 아는 것은 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 전도회에서 100명을 훨씬 넘는 인원이 침례를 받았고 아직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정상으로부터 내려옴
저는 바베이도스의 전도회 기간 동안 정상에 오르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왔을 때, 사단은 저를 혹독하게 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잡아야 할 학업이 너무나 많이 밀려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10페이지짜리 숙제를 마쳤을 때, 컴퓨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모든 작업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복구가 되지 않았고 그 다음 날까지가 기한인 그 숙제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숙제를 지켜주지 않은 것에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애태우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노라.” 한 두 시간 만에 저는 숙제를 다시 마쳤고 그 숙제로 높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그 자리에 저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카리비안 유니언 대학은 2006년에 남 카리비안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입학생 수는 2배로 늘어났고 기존 시설들이 최대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숙사들은 학생들로 넘쳐나고 공부를 제대로 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잘 견디고 있습니다. 대학 측은 저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2개의 새로운 기숙사 건물 건축을 시작했고,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이 이 새로운 기숙사에 예배당들을 부설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트리니다드에 있는 이 삼육대학교의 학생들인 저희들을 생각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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