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12월 5일 안식일) > 선교지 소식지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선교지 소식지 보기

선교지 소식지

집으로 (12월 5일 안식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9-09-29 15:06 조회2,955회 댓글0건

본문

12월 5일 안식일 뉴질랜드

집으로

크리스티안
-----------------------------------------------------------------------
- 뉴질랜드는 호주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두 개의 본 섬과 여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뉴질랜드 4백만 인구의 대부분이 북섬에 살고 있는데, 이 나라의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에만 11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 뉴질랜드는 온대 기후로 기름진 토양과 풍부한 광물 자원을 가진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입니다.
- 뉴질랜드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 출신인 마오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 숫자는 오늘날 뉴질랜드 인구의 1/10에도 못 미칩니다.
-----------------------------------------------------------------------

[한 여청년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이 이야기를 소개하도록 합니다.]
저는 브라질의 한 재림교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제 믿음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저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서 할아버지를 이처럼 데려 가실 수 있을까?’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교회 다니기를 멈추고 비재림교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가족들은 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저는 그들이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 마지막 해에 남자친구인 세자르와 함께 브라질에서 가능한 먼 곳으로 도망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는 뉴질랜드로 갔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저희가 상상했던 것만큼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화물차에서 지내며 겨우 음식을 사먹을 정도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호주로 이사했고 한 음식점에 취직했습니다. 저희는 공과금들을 내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했지만 저는 그렇게 사는 삶이 싫었습니다. 집이 그리웠고 가족들이 그리웠습니다. 저는 외로웠고 비참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변화
그러던 제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집에 좀 왔다가라고 간청을 했고 그래서 저는 집에 갔습니다. 저는 제가 한 행동들에 대해 사죄를 드렸습니다. 엄마는 저의 든든한 반석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다시 강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가족들과 화해한 뒤에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호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한 재림교회를 찾아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곳 교인들은 변변히 입을 만한 옷도 없어 초라하게 하고 다니는 저였지만 그런 저를 환영해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저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몇 달 후에 제 아들이 태어났고 세자르와 저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다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곧 제 영혼의 안식처가 될 작은 신자들의 모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과 새로 낳은 딸아기를 데리고 교회에 갔고 제 아이들도 그곳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으로 안식일을 감사히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단순히 안식일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로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는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고, 친구들과도 놀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앉아서 이해할 수 없는 설교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저는 안식일이 육체적으로 쉬는 날인 동시에 영적으로 성찬을 즐기는 날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인 세자르는 저와 함께 교회에 가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잘 알았으므로 저를 지지했습니다.

뜻밖의 축복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스키를 타다가 무릎을 다쳤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의사들이 제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깁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무릎은 계속 부어올랐고 저는 다시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의사들은 제 무릎이 부서졌다며 깁스를 교체하고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걸을 수도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6주 동안 깁스를 하고 아무 곳도 돌아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이 돌아가며 저를 찾아와 너무나 많은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교인들은 저녁을 준비해 주고 저희와 함께 식사를 해주었고,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자주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주중 기도회를 저희 집에서 열어 제가 참석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저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남편은 가끔 주중 기도예배에 참석했고, 교인들과 친해지면서 제 신앙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친구 한 명이 저에게 하나님에 대해 물었고, 시간이 많은 저는 그녀와 함께 성경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축복들을 보면서 무릎 부상에 대한 저의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6주 뒤 제가 깁스를 풀러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제 무릎을 진찰했고 무릎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치유되었다고 확신했지만, 의사는 사진을 보여주며 그것이 부서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사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위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그 부상을 이용하셨음을 알았습니다.

감사의 태도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매일 제게 주시는 것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움들이 다른 형태의 축복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또한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을 배웠습니다. 저는 제 남편도 언젠가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고 재림교회에서 저와 같이 예배를 드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때 조차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저를 돌보아 주고, 저를 사랑해준 교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작은 도시에 세계선교개척 교회로 세워진 작은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선교 헌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 세계 곳곳의 모든 교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바로 여러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