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의 한 형제 (2월 27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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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9-12-22 09:18 조회2,809회 댓글0건본문
2월 27일 안식일 르완다
하나님 안의 한 형제
피에르, 데오, 에스드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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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재림교인이 아닌 2,20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와 기타 대형 집회들을 개최할 만한 강당이 없어 그 선교사역에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 이 절박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해 새로운 교회 겸용 다목적관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 가운데 일부가 이 건물 완공을 돕는 일에 사용되어 모든 학생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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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 피에르는 붉은 흙 길 위를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를 쫓고 있는 죽음의 위협을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피에르가 9살 때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나 80만 명의 르완다인들이 죽고, 그때까지의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목사님이었던 피에르의 아버지는 그의 9명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만약 너희가 살아남는다면 항상 하나님 안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너희의 신앙을 잊지 말아라.”
군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 가족은 교회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피에르는 아직도 그때 그 연기 냄새와 그의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그 건물을 빠져 나온 그는 다행이 총에 맞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피에르는 다른 피난민들을 따라 이웃나라인 부룬디로 도망쳤습니다. 그는 르완다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난민촌에서 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한 번 더 그는 흙 길을 따라 걸어서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 마을에 도착한 그는 그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서 잿더미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뼛조각들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만 살아남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말씀이 그의 귓가에 울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라.”
새로운 희망, 새로운 슬픔
이웃나라 우간다에 살고 있던 이모가 피에르의 가족들을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피에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들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찢어지는 아픔도 시간이 지나자 무뎌졌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모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피에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14살이었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믿음뿐이었습니다.
르완다 정부가 대학살 생존자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했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피에르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역시 대학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에스드라스와 데오라는 2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3명의 소년들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피에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르완다의 한 국립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그가 받는 대학살 생존자 혜택으로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키갈리에 있는 삼육대학교에 다니고 싶었습니다. “너 미쳤구나!” 그의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그 장학금을 받아야지!”
하지만 피에르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그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에스드라스와 데오도 피에르의 확고한 결심을 보고 삼육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역시 그들은 한 형제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삼육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들은 대학교 근처에 한 작은 방을 얻어 생활합니다. 그들은 서로 돈을 모아 생활하지만 결코 풍족하지 못합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때때로 그들의 부족한 음식을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예수님을 알고 모름의 차이
에스드라스와 데오는 그들의 예전 선생님들과 삼육대학교에 있는 사람들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삼육대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필요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었고 함께 고민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조언해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기도는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이 학교 활력의 근원이었습니다.
피에르는 에스드라스와 데오에게 안식일과 주중에 있는 예배에 참석할 것을 권했습니다. 예배를 드릴만한 교회 건물이 없었으므로 큰 예배는 캠퍼스 내의 야외 경기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곧 그들은 왜 피에르의 삶 속에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열린 기도주일 동안, 에스드라스와 데오는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고 지금 침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피에르는 비극으로 맺어진 그의 형제들이 이제 죽음보다 강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맺어진 형제로 거듭남을 인해 기뻐하고 있습니다.
피에르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르완대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다른 수천 명의 사람들처럼,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도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르완다 정부가 여전히 불안정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원래 대학교 교정을 인수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교회에 수도인 키갈리의 한 언덕 위 부지와 그곳에 대학교를 다시 짓도록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오늘 날 2,200명의 학생들이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재림교인이 아닙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 가운데 일부가 이 교정에 교회 겸용 다목적관을 세우는데 사용됩니다. 이 건물에서 학생들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깊이 돌보시고 계심을 알아가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의 한 형제
피에르, 데오, 에스드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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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재림교인이 아닌 2,20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와 기타 대형 집회들을 개최할 만한 강당이 없어 그 선교사역에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 이 절박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해 새로운 교회 겸용 다목적관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 가운데 일부가 이 건물 완공을 돕는 일에 사용되어 모든 학생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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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 피에르는 붉은 흙 길 위를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를 쫓고 있는 죽음의 위협을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피에르가 9살 때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나 80만 명의 르완다인들이 죽고, 그때까지의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목사님이었던 피에르의 아버지는 그의 9명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만약 너희가 살아남는다면 항상 하나님 안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너희의 신앙을 잊지 말아라.”
군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 가족은 교회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피에르는 아직도 그때 그 연기 냄새와 그의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그 건물을 빠져 나온 그는 다행이 총에 맞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피에르는 다른 피난민들을 따라 이웃나라인 부룬디로 도망쳤습니다. 그는 르완다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난민촌에서 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한 번 더 그는 흙 길을 따라 걸어서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 마을에 도착한 그는 그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서 잿더미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뼛조각들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만 살아남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말씀이 그의 귓가에 울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라.”
새로운 희망, 새로운 슬픔
이웃나라 우간다에 살고 있던 이모가 피에르의 가족들을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피에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들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찢어지는 아픔도 시간이 지나자 무뎌졌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모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피에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14살이었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믿음뿐이었습니다.
르완다 정부가 대학살 생존자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했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피에르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역시 대학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에스드라스와 데오라는 2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3명의 소년들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피에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르완다의 한 국립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그가 받는 대학살 생존자 혜택으로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키갈리에 있는 삼육대학교에 다니고 싶었습니다. “너 미쳤구나!” 그의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그 장학금을 받아야지!”
하지만 피에르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그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에스드라스와 데오도 피에르의 확고한 결심을 보고 삼육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역시 그들은 한 형제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삼육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들은 대학교 근처에 한 작은 방을 얻어 생활합니다. 그들은 서로 돈을 모아 생활하지만 결코 풍족하지 못합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때때로 그들의 부족한 음식을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예수님을 알고 모름의 차이
에스드라스와 데오는 그들의 예전 선생님들과 삼육대학교에 있는 사람들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삼육대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필요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었고 함께 고민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조언해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기도는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이 학교 활력의 근원이었습니다.
피에르는 에스드라스와 데오에게 안식일과 주중에 있는 예배에 참석할 것을 권했습니다. 예배를 드릴만한 교회 건물이 없었으므로 큰 예배는 캠퍼스 내의 야외 경기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곧 그들은 왜 피에르의 삶 속에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열린 기도주일 동안, 에스드라스와 데오는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고 지금 침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피에르는 비극으로 맺어진 그의 형제들이 이제 죽음보다 강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맺어진 형제로 거듭남을 인해 기뻐하고 있습니다.
피에르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르완대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다른 수천 명의 사람들처럼,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도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르완다 정부가 여전히 불안정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원래 대학교 교정을 인수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교회에 수도인 키갈리의 한 언덕 위 부지와 그곳에 대학교를 다시 짓도록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오늘 날 2,200명의 학생들이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재림교인이 아닙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 가운데 일부가 이 교정에 교회 겸용 다목적관을 세우는데 사용됩니다. 이 건물에서 학생들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깊이 돌보시고 계심을 알아가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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