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위한 사람 (2월 20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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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9-12-22 09:17 조회2,781회 댓글0건본문
2월 20일 안식일 르완다
하나님을 위한 사람
알폰쉬 무기리아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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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는 아프리카의 불어 사용 지역을 위해 1984년 르완다에 세워졌습니다.
- 1994년 대학살 사건 이후, 이 대학이 위치한 지역이 불안정해지자, 정부는 결국 이 대학 교정을 인수받고 우리 교회에 대학교를 다시 지을 수 있게 수도인 키갈리에 있는 땅과 보상금을 주었습니다.
- 오늘 날 이 대학교는 교실들과 행정 사무실이 함께 있는 하나의 대형 건물만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재림교인인 아닌 2,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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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분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발표합니다.]
제 이름은 알폰쉬이고 르완다에 살고 있습니다. 제 초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이 재림교인이었습니다. 저희는 자주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했고, 성경도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가 멀리 이사를 간 후에도 저는 성경을 계속 읽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발견했고,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재림교인 친구들이 저를 교회에 초대하여 그곳에 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제 궁금증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그 교회에 참석했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15살이었습니다.
시험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제가 재림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 아버지는 저에게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십대청소년이었고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신앙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함을 알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제가 교회에 가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제 신앙을 아버지께 전하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만약 침례를 받으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심을 확신시켜 드렸고, 아버지는 자주 제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제 신앙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침례를 받아도 된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도록 교회 장로님을 불러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허락했고, 장로님과 여러 교인들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께 말씀을 전했고 예수님을 믿는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고 그날 아버지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책임
순식간에 저는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십대 가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국가시험을 치렀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주어야 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돈으로 동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3년이 지나서 제대를 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교회 장로인 제 친구가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는 저에게 수도인 키갈리로 가서 직장을 구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수 보조로 일을 하다가 경비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 고용주는 제가 낮 동안은 삼육대학에 다니고 밤에 경비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 월급은 학비로 다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제 고용주가 그의 고국인 케냐로 돌아가게 되었고 저는 갑자기 직장을 잃었습니다. 직장 없이는 공부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저는 친구들에게 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은 그에 대해 신실하게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 말하면서 저를 격려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억했고 그분의 약속에 매달렸습니다.
제 친구들은 저에게 학교 총장님께 제 문제를 말씀 드려보라고 했습니다. 총장님은 제 이야기를 듣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제가 공부를 하는 동안 학교 경비 일을 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저는 학교 근처 한 작은 방에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월급은 제 학비와 방세를 낼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책값과 식비를 위해 많이 기도했고 하나님은 항상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가능한 적은 돈이라도 모으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때는 하나님이 돈을 마련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소명인 교사가 되기 위해 저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고생스럽지만 하나님이 저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기도와 믿음을 통해 저는 불가능했던 꿈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봅니다.
호소
제가 다니고 있는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는 대학살 사건 이후 수도인 키갈리에 새로운 교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2,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곳에 다니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재림교인이 아닙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 가운데 일부가 학교 중심부에 교회 겸용 다목적관을 짓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전도를 위한 이 대학교에 도움을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위한 사람
알폰쉬 무기리아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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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는 아프리카의 불어 사용 지역을 위해 1984년 르완다에 세워졌습니다.
- 1994년 대학살 사건 이후, 이 대학이 위치한 지역이 불안정해지자, 정부는 결국 이 대학 교정을 인수받고 우리 교회에 대학교를 다시 지을 수 있게 수도인 키갈리에 있는 땅과 보상금을 주었습니다.
- 오늘 날 이 대학교는 교실들과 행정 사무실이 함께 있는 하나의 대형 건물만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재림교인인 아닌 2,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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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분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발표합니다.]
제 이름은 알폰쉬이고 르완다에 살고 있습니다. 제 초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이 재림교인이었습니다. 저희는 자주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했고, 성경도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가 멀리 이사를 간 후에도 저는 성경을 계속 읽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발견했고,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재림교인 친구들이 저를 교회에 초대하여 그곳에 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제 궁금증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그 교회에 참석했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15살이었습니다.
시험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제가 재림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 아버지는 저에게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십대청소년이었고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신앙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함을 알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제가 교회에 가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제 신앙을 아버지께 전하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만약 침례를 받으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심을 확신시켜 드렸고, 아버지는 자주 제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제 신앙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침례를 받아도 된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도록 교회 장로님을 불러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허락했고, 장로님과 여러 교인들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께 말씀을 전했고 예수님을 믿는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고 그날 아버지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책임
순식간에 저는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십대 가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국가시험을 치렀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주어야 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돈으로 동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3년이 지나서 제대를 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교회 장로인 제 친구가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는 저에게 수도인 키갈리로 가서 직장을 구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수 보조로 일을 하다가 경비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 고용주는 제가 낮 동안은 삼육대학에 다니고 밤에 경비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 월급은 학비로 다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제 고용주가 그의 고국인 케냐로 돌아가게 되었고 저는 갑자기 직장을 잃었습니다. 직장 없이는 공부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저는 친구들에게 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은 그에 대해 신실하게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 말하면서 저를 격려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억했고 그분의 약속에 매달렸습니다.
제 친구들은 저에게 학교 총장님께 제 문제를 말씀 드려보라고 했습니다. 총장님은 제 이야기를 듣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제가 공부를 하는 동안 학교 경비 일을 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저는 학교 근처 한 작은 방에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월급은 제 학비와 방세를 낼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책값과 식비를 위해 많이 기도했고 하나님은 항상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가능한 적은 돈이라도 모으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때는 하나님이 돈을 마련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소명인 교사가 되기 위해 저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고생스럽지만 하나님이 저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기도와 믿음을 통해 저는 불가능했던 꿈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봅니다.
호소
제가 다니고 있는 중앙아프리카 삼육대학교는 대학살 사건 이후 수도인 키갈리에 새로운 교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2,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곳에 다니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재림교인이 아닙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 헌금 가운데 일부가 학교 중심부에 교회 겸용 다목적관을 짓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전도를 위한 이 대학교에 도움을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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