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교회 (4월 4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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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5-03-20 13:16 조회3,249회 댓글1건본문
4월 4일 안식일 남한
호떡 교회
신씨 가족
- 한국연합회는 1919년에 처음 조직되어 1984년에 재편되었습니다.
- 한국연합회는 5개의 합회와 1개의 대회, 그리고 1개의 직할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한국연합회에는 714개 교회에 234,584명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북한을 합쳐 한국연합회 지역의 전체 인구는 74,940,000명입니다.
이 모든 일은 어느 안식일 아침에 한 십대 소녀가 방문을 잠가놓고 울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씨 부인은 딸의 방문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너무 슬퍼요.” 웅얼거리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안식일은 너무 슬퍼요. 저는 교회에 가기 싫어요! 그곳에 제 또래는 한 명도 없단 말이에요.”
신씨 부인은 한 동안 그녀의 15살 딸인 보화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학교에서 보화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지냈지만, 교회에서는 유일한 십대 청소년이었습니다.
호떡 계획
엄마와 딸은 함께 그런 상황에 대해 기도했고, 얼마 후 신씨 부인은 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매일 아침 그녀는 매우 일찍 일어나 2천 개의 호떡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 지역 고등학교 바로 건너편에 가게를 열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녀는 학생들에게 호떡을 팔았습니다. 하지만 호떡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그녀는 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요즘 어때?” 그녀는 학생 손님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녀의 어린 고객 대부분이 자신들에게 이런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준 누군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신뢰감을 느낀 학생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와 집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결손가정이나 학대를 받는 상황에도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단계
신뢰가 깊어지자 신씨 부인은 그들의 우정을 그 다음 단계로 이끌기로 결심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뭐하니?” 그녀는 단골손님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해요.”란 반응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럼 나와 같이 노인들을 방문해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러 다니지 않을래?” 그녀가 물었습니다.
먼저 신씨 부인은 그 지역 주민센터를 찾아가 그곳에서 돌보고 있는 가족이 없는 노인들의 이름과 주소를 받았습니다. 매 안식일 오후마다 남편과 그녀와 딸 보화는 수많은 고등학생들과 함께 그 노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 활동은 즉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방문 활동이 끝나면 부인은 학생들을 그녀의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학생들은 신씨 가족의 온정과 관심을 느끼며 편하게 음식을 즐겼습니다. 보화는 많은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것에 기뻐했습니다.
육신을 위한 음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은 학생들에게 기도하는 법, 찬미하는 법,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한 주 동안 신씨 부인은 호떡을 팔면서 혼자 사는 학생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학생들을 방문했습니다. 특별히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그 학생을 집으로 데려와 자기 자식처럼 보살폈습니다.
안식일 오후 모임은 그녀의 65평 아파트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그룹은 근처 그녀 남편의 전기 가게에서 임시로 모이다가 이웃 가게 주인들의 불평이 시작되어 더 이상 모일 수 없었습니다.
신씨 가족은 계속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곧 그들이 더 많은 청소년들을 “입양”할 수 있도록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안식일 오후 모임을 위한 더 넓은 장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호떡 교회 개척
얼마 후 그들의 “가정 교회”는 개척 교회로 성장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공식적으로 하나의 재림교회로 조직하는 것이 그들에게 최선임을 알고 난 뒤, 그 가족은 교회로 봉헌할만한 알맞은 건물을 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씨는 그의 집과 같은 도로에 있는 낡고 오래된 주택이 매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건물 벽에 손을 대고 그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집을 저희에게 주셔서, 저희가 이 집을 주님의 영광을 위한 집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곳을 구입하기 위해 600만 원 정도가 모금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그룹은 함께 그 건물을 예배에 적합한 장소로 만들기 위한 수리와 보수를 시작했습니다. 한편 그들에게는 새로운 교회를 위한 목사님이 필요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그들의 학업을 계속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용기를 주고자 신씨는 모본을 보였습니다. 비록 45세의 나이지만 그는 그들이 원한다면 기꺼이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신씨는 삼육대학교에 입학했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와 그의 딸 보화, 그리고 “입양”한 3명의 아이들 모두 대학교를 졸업했고, 거기에 들어간 모든 자금은 신씨 부인의 호떡 가게 수익금이었습니다!
1998년 교회가 개척된 이후로, 4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거의 전체가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이 교회의 교인들은 39개의 선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시아 국가들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캄보디아, 홍콩, 필리핀, 대만으로 선교 여행을 갔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이 남한의 나주에 청소년들을 위한 새벽이슬 선교학원을 세우는 일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은 특별한 훈련을 받으면서 교회 개척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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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한국연합회에 1개의 대회가 있다는 말은 과거에 북한 지역에서 조직된 대회를 일컫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