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1월 31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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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25-12-22 11:19 조회4회 댓글0건본문
1월 31일 안식일 피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
모아페
- 피지에 처음으로 온 재림교인 선교사는 존 I. 테이로, 1891년 선교선 피트케언호를 타고 도착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병에 걸려 몇 달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 1895년, J. M. 콜이 당시 피지의 수도였던 레부카에 도착하였고, 피지의 여러 섬들이 하나의 선교 지부로 조직되었습니다.
- 1900년경, 오스트랄라시아 연합회가 남태평양 지역 선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 1908년, 첫 번째 피지인 해외 선교사인 베니 타보디가 뉴기니로 파송되었습니다.
- 1940년, 수도 수바 근처에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로 풀턴 삼육대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모아페는 해가 뜰 무렵 일어납니다. 77세의 나이에도 그의 아침 일과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에 바닥에 발을 딛고, 속삭이듯 기도한 후, 곧장 하루 일을 시작합니다. “저는 직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걸 좋아해요,” 그가 웃으며 말합니다. “하나님께 제일 좋은 시간을 드려야 하니까요.”
모아페는 피지의 라(Ra) 지역의 거친 해안가에서 자랐습니다.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모아페에게 그물을 고치는 법, 예배당 바닥을 쓸고 닦는 법,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모아페는 회상합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학생 시절, 그는 플루메리아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언덕 위의 풀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공부하고, 기도하고, 학생 인쇄소에서 무거운 롤러를 밀며 일했습니다. 손가락은 잉크로 물들었지만, 그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 금요일, 그는 수바 교회의 나무 강단 옆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함께 사역할 동반자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인을 제게 보내 주세요,” 그가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친절한 교열가 메레와 결혼해 세 딸을 함께 키웠습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들의 첫 사역지는 수바에 있는 트랜스퍼시픽 출판사였습니다. 모아페는 새벽마다 종이를 옮기고, 인쇄기를 조정하며, 복음 소책자들이 가지런히 쌓여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모아페가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을 때, 인쇄소 소장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인쇄소에 그냥 남게,” 그가 권했습니다. “자네가 인쇄하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어떤 설교보다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어.” 그 말은 모아페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조용한 사람인 나도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가 말합니다.
모아페는 인쇄소에서 9년 동안 일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는 기계공, 현장 감독, 그리고 재무 담당자로 승진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조용히 앞으로 밀어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1978년, 인쇄기가 멈췄습니다. 노조가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모아페에게 풀턴 대학의 회계 업무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가족은 몇 안되는 짐을 챙겨 산 위로 차를 몰고 올라갔습니다. 깔끔한 교직원 숙소를 기대했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지붕이 새고 벽이 벗겨진 낡은 오두막이었습니다.
모아페의 아내 메레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수바로 돌아가요.” 그녀는 애타게 말했습니다. 모아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우린 편안함을 위해 여기 온 게 아니에요. 주님을 위해 온 거예요.” 부부는 벽 위로 햇빛이 비쳐 반짝일 때까지 오두막을 닦고, 페인트칠하며 곳곳을 수리했습니다. 그 집은 나중에 방문하는 지도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안 좋았던 집을 가장 좋은 집으로 바꿔주셨어요.” 메레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습니다. 학생들은 모아페에게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고, 아이들은 망고나무 아래에서 뛰어놀았습니다. 회계장부는 한푼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춰졌습니다.
어느 날 오후, 타히티 출신의 옛 제자가 멋진 정장을 입고 찾아왔습니다. “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해요. 운영을 맡아 주세요. 월급은 세 배로 드리고, 차와 새 집도 제공할게요.” 그 제안은 아주 매력적이었지만, 모아페는 망설이지 않고 눈을 들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을 위해 은퇴할 때까지 봉사하기로 결심했어. 돈으로 그 결정을 바꿀 수는 없어.” 방문자는 한숨을 쉬며 서류를 접었고, 다음 날 피지를 떠났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모아페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시련이 저를 하나님께 더 의지하게 했어요.” 그가 말합니다.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매일의 기도였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빵나무 옆에서, 한낮에는 비어 있는 교실에서, 그리고 저녁에는 작은 등잔불 아래서 가족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52년의 봉사를 마친 모아페는 대학 금고를 마지막으로 잠그고, 저물어 가는 노을 속을 걸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그는 수바에서 종이를 나르던 날렵한 청년은 아니었지만, 미소만은 더 넓어졌습니다. 아내가 문 앞에서 그를 맞이했고, 딸들과 손주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카사바를 요리하고 찬미가를 부르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아페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어떤 깨달음을 심어 주었을까요? 그는 주저하지 않고 어릴 때 배운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간단한 당부를 덧붙입니다: “매일 아침, 모든 선택에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두세요. 비록 낡은 오두막이나 시끄러운 인쇄소에서 시작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있어야 할 자리로 이끌어 주실 겁니다.” 해가 라(Ra) 위로 지고, 하늘은 주황빛과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내일, 첫 닭이 울기 전, 모아페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이끌어 주신 그분을 위해 가장 먼저 일터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2000년 1기 13째 안식일 헌금의 일부는 풀턴 삼육대학교 도서관 확장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번 기의 13째 안식일 헌금은 솔로몬제도와 바누아투에서 진행되는 아동 건강 사업을 지원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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