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에서 (11월 13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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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0-09-30 10:07 조회3,102회 댓글0건본문
11월 13일 안식일 아이티
폐허 속에서
세바스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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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 삼육병원은 1978년에 한 의료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1977년의 13째 안식일 헌금이 이 시설 건축을 위한 후원 자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이 병원은 아주 튼튼하게 건축되어 병원이 위치한 지역을 강타한 이번 지진에도 아주 최소한의 피해만 입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병원, 대학, 그리고 여러 개의 교회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로마린다 대학교 의과대학은 아이티 삼육 병원과 제휴를 맺고 의약품과 장비 지원뿐만 아니라 병원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자 제공까지 돕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협약 덕분에 로마린다는 지진이 일어난 후 며칠 만에 이 병원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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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의 세바스티앙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고, 어머니는 그가 7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기 위해 포르토프랭스로 갔습니다. 2010년 1월 12일, 땅이 격렬하게 흔들릴 때, 그는 집에서 친구와 놀고 있었습니다. 지진으로 벽이 갈라지고 위층이 내려 앉아 엄청난 잔해 밑에 그들은 깔리고 말았습니다.
구조 작업
세바스티앙의 이모는 그녀의 네 자녀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다음, 세바스티앙과 그의 할머니가 살고 있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건물 잔해 더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 안에 있던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바스티앙의 이모는 자신의 어머니와 조카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이틀 뒤에 한 이웃 남자가 건물 잔해 곁을 지나가다가 그 속에서 들리는 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돌들과 콘크리트 더미 아래 누군가 살아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고 바로 세바스티앙이었습니다.
“너 혼자니?” 그 남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와 제 친구도 같이 있어요.” 세바스티앙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죽은 거 같아요. 제 다리는 돌에 끼어있어 빼낼 수가 없어요.” “기다려라!”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너를 꺼내주마.” 그 소년을 구조하기 위해 남자 여러 명이 모여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작업 속도는 너무 더뎠습니다.
세바스티앙의 이모가 자신의 조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남자들이 세바스티앙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작업하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그 둘째 날 해가 질 때까지도 그에게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그들은 작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세바스티앙은 누군가 그곳에 남아 달라고 잔해 속에서 애원했습니다. 그는 혼자 남겨지기 싫었습니다.
마침내 탈출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두 남자가 소년을 구하기 위해 잔해 속을 파고 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에 한 남자는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안쪽의 공간이 두 사람이 있기에 너무 좁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두 번째 남자가 그의 팔에 세바스티앙을 안고 그 폐허 속에서 비틀거리며 나왔습니다. 그의 이모가 그의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는 세바스티앙이 받아야 할 치료를 해줄 수 없었으므로, 그의 이모는 그를 아이티 삼육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다리에 너무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가 살려면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세바스티앙이 깨어나 그의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를 교회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목사님이 그의 다리가 다시 자라날 수 있게 기도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천막집
세바스티앙과 그의 이모는 의사들이 회복실이라고 이름 붙인 병원 부지 내에 있는 한 천막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다른 나라들과 다른 단체들로부터 자원해서 온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들이 있었고 그들은 세바스티앙의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았습니다. 그에게 목발이 주어졌고 그는 한 쪽 다리로 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세바스티앙은 잘 적응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따스한 웃음이 사라지는 유일한 시간은 붕대 교체 시간이나 지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의료진들과 수다를 떠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그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아 사진가에게 그가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보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병원 앞 난민촌에서 사는 것은 그 미래가 불확실함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줍니다. 지금은 세바스티앙의 이모가 그를 돌보고 있지만, 그녀는 그녀의 네 자녀들을 돌보면서 어떻게 세바스티앙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그녀는 지진으로 집과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입할 돈도 직장도 없습니다.
세바스티앙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세바스티앙처럼 지진으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많은 원조기구들이 있습니다. 지진을 겪으며 세바스티앙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는 앞으로 의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선교 헌금은 아이티 삼육 병원과 위기의 시기에 병원을 계속 운영해준 의료진들을 후원하는 일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13째 안식일 헌금은 아이티의 교회 기반을 재건하는 일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전 세계 선교를 위한 여러분의 지속적인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폐허 속에서
세바스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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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 삼육병원은 1978년에 한 의료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1977년의 13째 안식일 헌금이 이 시설 건축을 위한 후원 자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이 병원은 아주 튼튼하게 건축되어 병원이 위치한 지역을 강타한 이번 지진에도 아주 최소한의 피해만 입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병원, 대학, 그리고 여러 개의 교회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로마린다 대학교 의과대학은 아이티 삼육 병원과 제휴를 맺고 의약품과 장비 지원뿐만 아니라 병원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자 제공까지 돕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협약 덕분에 로마린다는 지진이 일어난 후 며칠 만에 이 병원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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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의 세바스티앙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고, 어머니는 그가 7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기 위해 포르토프랭스로 갔습니다. 2010년 1월 12일, 땅이 격렬하게 흔들릴 때, 그는 집에서 친구와 놀고 있었습니다. 지진으로 벽이 갈라지고 위층이 내려 앉아 엄청난 잔해 밑에 그들은 깔리고 말았습니다.
구조 작업
세바스티앙의 이모는 그녀의 네 자녀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다음, 세바스티앙과 그의 할머니가 살고 있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건물 잔해 더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 안에 있던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바스티앙의 이모는 자신의 어머니와 조카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이틀 뒤에 한 이웃 남자가 건물 잔해 곁을 지나가다가 그 속에서 들리는 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돌들과 콘크리트 더미 아래 누군가 살아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고 바로 세바스티앙이었습니다.
“너 혼자니?” 그 남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와 제 친구도 같이 있어요.” 세바스티앙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죽은 거 같아요. 제 다리는 돌에 끼어있어 빼낼 수가 없어요.” “기다려라!”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너를 꺼내주마.” 그 소년을 구조하기 위해 남자 여러 명이 모여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작업 속도는 너무 더뎠습니다.
세바스티앙의 이모가 자신의 조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남자들이 세바스티앙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작업하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그 둘째 날 해가 질 때까지도 그에게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그들은 작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세바스티앙은 누군가 그곳에 남아 달라고 잔해 속에서 애원했습니다. 그는 혼자 남겨지기 싫었습니다.
마침내 탈출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두 남자가 소년을 구하기 위해 잔해 속을 파고 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에 한 남자는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안쪽의 공간이 두 사람이 있기에 너무 좁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두 번째 남자가 그의 팔에 세바스티앙을 안고 그 폐허 속에서 비틀거리며 나왔습니다. 그의 이모가 그의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는 세바스티앙이 받아야 할 치료를 해줄 수 없었으므로, 그의 이모는 그를 아이티 삼육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다리에 너무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가 살려면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세바스티앙이 깨어나 그의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를 교회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목사님이 그의 다리가 다시 자라날 수 있게 기도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천막집
세바스티앙과 그의 이모는 의사들이 회복실이라고 이름 붙인 병원 부지 내에 있는 한 천막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다른 나라들과 다른 단체들로부터 자원해서 온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들이 있었고 그들은 세바스티앙의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았습니다. 그에게 목발이 주어졌고 그는 한 쪽 다리로 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세바스티앙은 잘 적응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따스한 웃음이 사라지는 유일한 시간은 붕대 교체 시간이나 지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의료진들과 수다를 떠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그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아 사진가에게 그가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보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병원 앞 난민촌에서 사는 것은 그 미래가 불확실함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줍니다. 지금은 세바스티앙의 이모가 그를 돌보고 있지만, 그녀는 그녀의 네 자녀들을 돌보면서 어떻게 세바스티앙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그녀는 지진으로 집과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입할 돈도 직장도 없습니다.
세바스티앙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세바스티앙처럼 지진으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많은 원조기구들이 있습니다. 지진을 겪으며 세바스티앙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는 앞으로 의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선교 헌금은 아이티 삼육 병원과 위기의 시기에 병원을 계속 운영해준 의료진들을 후원하는 일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13째 안식일 헌금은 아이티의 교회 기반을 재건하는 일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전 세계 선교를 위한 여러분의 지속적인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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