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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첫 번째 선교사업 (4월 7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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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2-03-22 09:44 조회3,2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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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안식일                                                100주년 특별기획

출항 : 첫 번째 선교사업

핏케언

                                                                    
- ‘핏케언’호는 재림교회에서 거두어진 첫 번째 선교헌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자금 모금에는 6개월이 소요됐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한결같이 첫 번째 선교선 마련을 위한 모금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 ‘핏케언’호는 핏케언 섬을 떠난 뒤, 남태평양의 다른 섬들로 향했습니다. 존 테이와 그의 아내는 피지에 머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그곳에 사는 식인종들에게 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5개월 뒤에 생을 마감하고 그 섬에 묻혔습니다.
- 오늘날 남태평양 섬들의 재림교인 비율은 26명 당 한 명의 비율입니다.
                                                                    

한 안식일 아침, 캐서린과 엘리샤는 그들의 작은 마을에 있는 교회의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습니다. 캐서린은 3개의 동전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 어린이들은 특별 선교헌금을 내기 위해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일을 해서 16센트(1886년 당시 빵 한 덩이의 가격이 5센트가 되지 않음)를 벌었습니다. 캐서린은 엄마를 도와 빵을 굽고 그것을 이웃들에게 팔았고, 엘리샤는 가게에서 창문을 닦고 물건 배달을 도와 돈을 벌었습니다.
드디어 목사님이 선교헌금에 대해 광고했습니다. 그 어린이들이 그들의 헌금을 특별 헌금함에 넣을 때, 목사님은 모두에게 그 헌금이 선교선 제작에 쓰여질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희는 판자 하나를 살만큼의 돈을 벌었어요!” 엘리샤가 눈을 반짝이며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헌금을 가지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제 헌금으로는 못을 살 수 있겠네요!” 한 소년이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제 헌금은 아마도 돛을 위한 천을 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작은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동전들이 모여 헌금함은 무거워져 갔습니다.

세상에 나가 전하는 일에 연합함
재림교회 교인들은 신이 나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나가서 팔 수 있도록 빵과 케이크를 구웠습니다. 한 소년은 ‘핏케언’ 선교선 자금으로 15불을 모으기 위해 엄마를 도와 나무로 불을 지피는 스토브 위에서 많은 팝콘을 튀겼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교선 제작을 위한 돈을 모금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교선 제작에 필요한 12,000불을 모금하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릴 적 꿈
한 배가 ‘핏케언’호라고 불리기 오래 전, 존 테이라는 젊은이가 한 영국 배에서 일어난 승무원들의 반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배의 한 승무원이 무자비한 선장에 대해 반기를 들고 그 선장과 일부 그의 선원들을 해상에서 구명보트에 태워 모선인 ‘바운티’호에서 추방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은 남태평양의 ‘핏케언’이란 작은 섬을 그들의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그 섬은 아주 작은 섬이고 항로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섬이었으므로 선원들은 그들이 결코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 선원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여자들의 소망처럼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안에 그 섬사람들은 술로 인해 남자들 가운데 싸움이 일어나 거의 모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엔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 가운데 존 아담스라는 선원만이 혼자 살아남아 그 섬에서 4명의 여자들과 23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술을 끊고 인생지침서로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곧 그와 더불어 핏케언 섬의 모든 여자들과 아이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발견
얼마 후 핏케언 섬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세상에 알려졌고, 존 테이는 그 섬사람들에게 재림교회 기별을 전하기 위해 그 섬을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목수로서의 그의 재능을 그를 남태평양으로 데려다 줄 배의 뱃삯 대신으로 거래했습니다. 4개월에 걸쳐 6번의 배를 갈아타고 나서야 존 테이는 핏케언 섬에 도착했습니다.
테이는 섬사람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성경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섬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몇 년 전에 배에 실려 섬으로 들어온 전도지를 통해 그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테이가 들어오고 그 다음 배가 그 섬에 도착하여 정박하기 전까지, 사실상 핏케언 섬의 모든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희에게 침례를 주세요!” 사람들이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존 테이는 목사님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그들에게 침례를 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침례를 줄 목사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열정을 나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테이는 핏케언 섬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의 열정은 신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결국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핏케언 섬뿐만 아니라 다른 남태평양 섬들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선을 제작하는 자금을 모으기로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재림교인 거의 대부분이 살고 있던 북아메리카 전역의 안식일학교 반생들이 연합하여 ‘핏케언’호라는 알맞은 이름이 붙은 그 선교선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았습니다.
테이가 핏케언 섬을 처음 방문했던 때로부터 4년 뒤인 1890년에 ‘핏케언’호는 존과 그의 아내 한나 테이를 포함한 3쌍의 선교사 부부들을 태우고 핏케언 섬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1달 뒤에 핏케언 섬에 이 작은 배가 도착했습니다. 그 재림교인 방문자들이 얼마나 따뜻한 환영을 받았을까요! 특별히 존 테이는 더 했을 것입니다. 수 일 안에 82명의 핏케언 섬 주민들이 침례를 받았고 그곳에 재림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이 핏케언 섬에 처음 발을 디딘 후 100년 만에, 사실상 핏케언 섬 주민 전체가 재림교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헌금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세계 방방곳곳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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