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째 안식일 순서 (12월 26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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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5-09-30 13:59 조회2,934회 댓글0건본문
12월 26일 안식일
13째 안식일 순서
시작찬미 찬미가 633장 “넓은 들에 익은 곡식”
교장인사
기 도
순 서 “첫 번째 선교 사업 : ‘핏케언’호”
헌 금
끝 찬미
마치는 기도
* * *
순서자 구성 : 해설자 1명과 낭독자 2명
준비물 : ‘핏케언’호와 다니엘 핏치의 사진 (www.AdventistMission.org/resources 에서 다운받아 사용하세요)
* 다니엘 핏치는 선교선 ‘핏케언’호의 사환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재림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 * *
해설자 : 다가오는 2016년은 우리 재림교회의 첫 번째 선교 사업인 선교선 ‘핏케언’호 마련을 위한 자금 모금을 시작했던 해로부터 1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늘은 그 첫 번째 선교 사업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낭독자 1 : 첫 번째 선교 사업
한 안식일 아침, 캐서린(가명)과 엘리샤(가명)는 그들의 작은 마을에 있는 교회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선교 헌금으로 가져온 동전이 꼭 쥐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림교회의 첫 번째 선교 헌금이었고, 그것으로 선교선이 마련될 것이었습니다. 캐서린은 엄마를 도와 빵을 구워 이웃들에게 팔았고, 엘리샤는 가게에서 진열장을 닦고 식료품을 배달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선교선 자금으로 드릴 11센트를 벌었습니다. 오늘 날 약 4천 원 이상의 가치입니다. 1886년 당시 빵 한 덩어리가 5센트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 헌금 시간이 되었을 때, 그 어린이들이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희는 판자 하나를 살만큼의 돈을 가져왔어요!” 엘리샤가 눈을 반짝이며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어린이들과 어른들도 그들의 헌금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누군가는 1센트를, 또 다른 누군가는 10센트를, 15센트까지 가져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헌금으로는 못을 살 수 있겠네요!” 한 소년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제 헌금은 돛을 위한 천을 사는데 쓰였으면 좋겠네요.” 한 소녀는 수줍게 말했습니다.
재림교회 교인들은 그 선교선이 그들의 배로 만들어져 남태평양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러 다니게 된다는 사실에 신이 나 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선교선 자금으로 15달러를 모으기 위해 엄마를 도와 수 백 개의 팝콘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장작 난로 위에서 그 많은 팝콘을 만드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동전 한 푼마다 희생과 노고가 들어갔습니다. 선교선 제작에 필요한 12,000달러를 모금하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 배에 들어간 최종 비용은 가구비치, 펌프기관 등을 포함하여 19,000달러에 이르렀습니다.
낭독자 2 : ‘핏케언’호라고 불리는 이 배에 대한 이야기는 존 테이라는 젊은이가 오래 전에 한 영국 배에서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이 그들의 무자비한 선장을 구명보트에 태워 모선에서 추방했던 사건의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은 남태평양의 ‘핏케언’이란 작은 섬을 그들의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그 반란자들은 결코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술로 인해 남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거의 모든 남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엔 존 아담스라는 선원만이 혼자 살아남아 그 섬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술을 끊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곧 그와 핏케언 섬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을 바쳤습니다.
얼마 후 핏케언 섬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존 테이는 그 섬에 재림기별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886년에 그는 배에서 일해 주는 조건으로 남태평양까지 태워다줄 배에 올랐습니다. 4개월에 걸쳐 6번의 배를 갈아타고 나서야 존 테이는 핏케언 섬에 도착했습니다.
핏케언 사람들은 테이에게 몇 주 뒤 다음 배가 올 때까지 섬에 머물러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테이는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성경 진리를 소개해주었고, 그들은 그의 기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했고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함께 연구했습니다. 몇 주 뒤 테이가 그 섬을 떠날 때까지, 사실상 핏케언 섬의 모든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희에게 침례를 주세요!” 사람들이 간청했습니다. 존 테이는 그들에게 침례를 줄 수 있는 목사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낭독자 1 : 미국으로 돌아온 테이는 핏케언 섬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곧 교회 지도자들은 핏케언 섬뿐만 아니라 다른 남태평양 섬들에도 복음을 전하러 다닐 수 있는 선교선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로 결의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적절하게도 ‘핏케언’호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재림교인이 살고 있던 북미 전역의 안식일학교 반생들이 연합하여 이 선교선 제작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푼푼이 모아진 돈으로 배가 제작되었고, 존 테이가 핏케언 섬을 처음 방문했던 때로부터 4년 뒤인 1890년에 선교선 ‘핏케언’호는 존과 그의 아내 한나 테이를 포함한 3쌍의 선교사 부부들을 태우고 출항했습니다. 이 작은 배가 핏케언 섬에 도착했을 때, 핏케언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침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몇 주 만에 82명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고 그곳에 재림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핏케언’호의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배는 도시인들이나 식인종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별을 전하며 남태평양 바다를 계속 항해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한 꿈과, 많은 노력과, 수 백 여개의 팝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낭독자 2 : ‘핏케언’호는 재림교회에서 거두어진 첫 번째 선교 헌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자금 모금에는 6개월이 소요됐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이 첫 번째 선교선 마련을 위한 모금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핏케언’호는 핏케언 섬을 떠난 뒤, 남태평양의 다른 섬들로 향했습니다. 존 테이와 그의 아내는 피지에 머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그곳에 사는 식인종들에게 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존 테이는 5개월 뒤에 세상을 떠나 그 섬에 묻혔습니다.
해설자 : 첫 번째 선교 헌금이 드려진 1886년 이후로, 전 세계 재림교회는 선교 헌금으로 22억 달러(오늘 날의 미화로 133억 달러 이상의 환산 가치)이상을 헌신적으로 드렸습니다. 이번 기에 우리는 남아프리카 인도양 지회를 선교지로 주목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은 다른 중등학교들은 있지만 더 어린 어린이들을 위한 삼육학교가 없는 북보츠와나에 절실히 필요로 되는 삼육초등학교 건축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삼육교육의 가치는 훌륭한 시민 양성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보츠와나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삼육학교에 다니는 많은 학생들이 침례를 받기로 결심하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츠와나에 새로 생기는 삼육초등학교가 모든 가족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선교적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낭독자 1 : 보츠와나의 게이트웨이 삼육초등학교 건축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선교 헌금은 매일 너무 좁은 식당으로 인해 붐비는 짐바브웨의 솔루시 대학교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1894년에 설립된 이후로 이 학교는 엄청나게 성장했고, 현재 14,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솔루시 대학교는 짐바브웨의 첫 번째 사립 고등교육 기관이었습니다. 이 대학교 구내식당이 더 많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그 시설을 확장하는데 오늘 우리의 선교 헌금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낭독자 2 : 건강 선교 사업도 중요한 우선순위이므로, 오늘 우리의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은 짐바브웨의 궤루 삼육건강센터 설립을 돕는 일에도 사용될 것입니다. 이 외래병원은 그 지역사회의 저소득층부터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또한 그 지역의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소아병동도 운영될 것입니다.
해설자 : 오늘, 선교 사업을 후원하기 위해 자유롭게 헌금하는 이 훌륭한 전통을 계속 이어나갑시다. 보츠와나와 짐바브웨 형제자매들을 돕기 위한 여러분의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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