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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갈급함 -1부- (7월 26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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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6-30 16:33 조회2,7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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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안식일                                                  부차, 우크라이나

말씀에 갈급함 -1부-

블라디미르
                                                                    
- 현재 우크라이나에 등록된 종교단체의 97% 이상이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러한 단체들 가운데 약 절반가량이 동방정교회 소속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뉩니다.
-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4,559만 명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글 읽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이 나라는 국민 중 글을 아는 사람들의 비율이 99.7%에 이르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깁니다.
                                                                  

태어날 때 저는 탯줄이 목에 감겨 죽을 뻔 했지만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첫 숨을 들이킬 수 있었습니다. 3살이 될 무렵,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그 이후로 저는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와 어머니에게 있어 인생은 매우 고달팠고, 그녀는 종종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 걱정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저를 고아원에 보내고 자살을 할 계획도 세웠지만,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저에게 자신이 계획한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저 저를 끌어안고 울기만 했습니다.
며칠 뒤 전기 요금을 낼 수 없었던 우리의 작은 아파트의 전기가 끊어졌습니다. 매우 추웠지만, 전기가 없어 우리는 물도 끓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주 굶주린 채 학교에 갔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몇 년을 더 살았고, 제가 12살이 될 무렵 어머니는 자살을 위한 그녀의 결심을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어머니의 친구 한 분이 그녀를 그리스도 탄생 기념 음악회에 초대했습니다. 그 음악회는 재림교회에서 열리는 것이었고 어머니는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그곳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음악회에서 그녀는 예수님의 탄생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저에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그분은 우리가 살기를 바라시고 행복하기를 바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그녀가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특별히 저희만의 성경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구할지 몰랐습니다. 당시가 1998년으로 공산주의가 무너진 다음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경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성경책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그 가격이 거의 우리가 2주를 벌어야 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일주일에 2달러 정도밖에 벌지 못했습니다. 그 금액으로는 우리가 먹고 지낼 음식을 겨우 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아,” 그녀가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습니다. “성경책을 갖는 대신에 2주 동안 굶을 수 있겠니?” 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그녀는 성경을 구입했고 그것을 읽기 시작하면서 저는 어머니의 행동에 어떤 변화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녀는 저를 덜 혼내기 시작했고, 저와 더 많이 이야기했고, 물론 그렇게 함으로 저도 더 행복해졌습니다!
몇 달 동안 어머니는 재림교회에 계속 다녔습니다. 저희 주변 이웃들 사이로 저희가 이단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고 갑자기 제 친구들이 저를 적대시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저와 함께 축구를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밖에 나가면 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저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담배를 피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재림교회 목사님이 당분간 그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도록 저희를 초대했습니다. 예배시간 동안 목사님은 저를 위해 기도했지만, 제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진정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일지, 내가 나의 오랜 친구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할지에 대한 맹렬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갈등이 매우 강렬했으므로 저는 목사님이 저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자리를 떠나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침례공부를 하면서 그녀는 종종 저에게 그녀가 배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일, 그리스도의 생애, 등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주 저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변화를 보는 것과, 그녀가 저에게 전하는 성경 진리들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그녀와 목사님의 기도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다음 해에 저는 우크라이나의 키로보그라드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더 많은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제가 소위 “이단”이라 불리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알고 저를 그의 방으로 불러 저에게 제 서류들을 주며 학교를 나가라고 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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