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의 믿음 - 1부 (7월 9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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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06-22 14:17 조회2,020회 댓글0건본문
7월 9일 안식일 남수단
전장에서의 믿음 - 1부
마크 이가 모나
- 남수단 직할 지역(SSAT)은 2015년에 조직되었고, 동중앙 아프리카 지회 소속입니다.
- 남수단 직할 지역(SSAT)은 그레이터바르엘가잘 지역, 그레이터이쿼토리아 지역, 그레이터어퍼나일 지역의 세 지역을 관할합니다.
- 남수단에는 전체 24,092명의 재림교인들과 59개의 재림교회가 있습니다.
편집자 주 : 그레이터어퍼나일 지역의 지역장인 마크 모나 목사는 1인칭 시점의 다음 이야기를 통해 그레이터어퍼나일 지역 사무실이 위치한 도시인 말라칼에서 내전이 한창일 때 그가 직접 겪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말라칼 도시에 대한 추가 정보나 사진들은 다음 영문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bit.ly/Malakal
2013년 12월에 저는 동중앙 아프리카 지회 주최로 르완다에서 있었던 성경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말라칼을 떠났습니다. 르완다에서 저는 남수단 수도 주바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2월 15일에 정부 회의 도중 부통령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추종세력들이 충돌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 다음 반군들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전쟁은 12월 24일 저의 고향인 말라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제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 포화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침대 밑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반군들이 도시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그런 다음 정부군이 들어와 반군들을 몰아냈습니다. 전쟁은 잠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귀국
저는 수도 주바에 도착했고 아내와 10살, 7살, 4살 자녀들의 피난을 돕기 위해 말라칼로 가고 싶었습니다. 주바에서 말라칼까지 유엔 비행기를 타고 저는 2014년 1월 13일 일요일에 드디어 그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도시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일강 건너편 어딘가로 도망쳤습니다. 반군들은 그 도시를 다시 점령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정부군 차량들 이외에 다른 교통수단은 없었으므로 저는 집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시장을 찾아갔고 그가 저를 아내와 자녀들에게 데려다 주었지만, 우리 가족이 피난을 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반군들이 도착했고 오후 2시쯤 그들은 말라칼을 재점령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며 3일 동안 침대 밑에서 서로 꼭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목요일 오후에 우리 교인 중에 반군들과 같은 부족 출신인 교인 한 명이 저와 제 가족들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저희에게 유엔 주둔지로 가라고 했지만, 저희끼리는 갈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반군 부족의 언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위험한 지역을 통과할 때 저희를 인도해주기로 했습니다. 집을 떠나면서 저는 컴퓨터와 약간의 옷을, 그리고 자녀들도 몇 가지 짐들을 챙겼습니다. 저희가 떠나고 우리 집은 약탈을 당해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약탈자와 살인자
우리 교단의 그레이터어퍼나일 지역 사무소를 지나치면서 저는 반군들이 그곳을 약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기들을 가져가고 부수고 파괴했습니다. 그런 다음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총을 가졌습니다.
그날 밤 저희는 ‘매튜 비 콜’이라는 반군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매튜는 그 지역에 재림교회를 개척했었고, 저희를 안전한 곳까지 인도한 사람은 바로 그의 딸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매튜와 같은 부족민들이 찾아와 우리를 죽이게 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매튜는 반군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저희를 보호했습니다. “그들을 죽이지 마십시오. 그는 우리 목사님입니다.”
아침에 매튜는 차를 가져왔고 즉시 유엔 주둔지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직접 운전을 해서 가는 동안, 저희는 길을 따라 놓여 있는 시체들을 보았고 저희 생명을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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