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본의 능력 (1월 21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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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12-20 15:44 조회1,895회 댓글0건본문
1월 21일 안식일 아일랜드
모본의 능력
엘리자베스, 메르차
- 아일랜드 국민의 90%가 로마 가톨릭교도이지만, 30%만이 교회에 다닙니다.
- 아일랜드 정치인이자 첫 번째 동물권리 보호 운동가인 리차드 마틴에 의해 1824년에 동물 학대 방지 협회 (RSPCA)가 설립되었습니다.
- 아일랜드에 있는 가장 긴 장소 이름은 골웨이 주에 있는 Muchanaghederdauhaulia 입니다.
“저는 9 자매 가운데 장녀로 첫 번째로 결혼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말합니다. “그런 제가 한 3개월 만에 남편과 이혼한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아버지는 제 남편이 저를 학대한 것을 이해해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이혼녀 딸이 있다는 것을 불쾌해 했습니다.”
“1980년에 제가 플루트를 연주하던 그 지역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위해 미국에 갔습니다. 저희는 71일 동안 똑같은 아일랜드 음악 콘서트를 63번이나 하며 버스로 2만 마일(약 32,000km)이상을 이동했습니다! 제가 오케스트라에 새로 들어온 바이올린 연주자인 메르차를 만난 것이 바로 그 순회공연에서였습니다.
“저희는 같이 살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에 저희 세 자녀 가운데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불행한 어린 시절로부터 벗어나 메르차와의 멋진 관계를 알게 된 그 때는 정말 황홀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가족들을 방문하고 올 때마다 그녀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가는 이유가 뭐야?” 메르차가 물었습니다. “그곳에 갔다 올 때마다 당신은 기분이 좋지 않자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부모님과 사회와 가톨릭교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종교가 누군가에게 그들의 자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이라면, 나는 그런 종교를 원하지 않아.’ 엘리자베스는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기성 종교와 관련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부모님이 자기를 대하는 것과 메르차의 부모님이 아들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너무 대조적인 차이를 눈치 챌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메르차가 재림교회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의 부모님은 결코 그런 그나 엘리자베스를 비난하지 않았고, 그들은 언제나 받아들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당시 메르차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재림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뛰어난 외교관이었으므로 문제 해결을 위해 루마니아 각지로 보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때로 메르차의 부모님이 저희와 저희 자녀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말합니다. “그들은 묵묵히 그들의 일들을 해나가는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일처리 방식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성경을 펴고 저에게 설명을 해주었고, 그것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가 지키는 그 날이 정말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론상 가톨릭도 일요일이 안식일이지만, 미사가 끝나고 그들은 스포츠를 시청하고 술집에도 갑니다. 메르차의 부모님은 토요일에 쇼핑조차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 모습에서 매력적이고 부드러운 리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6일 그리고 그 다음에 휴식일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렵 메르차는 안식일에 대해 좀 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일하고 있었고, 안식일에 일을 계속 하면서 자신을 재림교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배낭처럼 등에 제 바이올린을 매고 있었습니다. 제가 신호등에서 멈췄을 때 한 차가 뒤에서 달려왔고, 그 차는 멈추지 않고 직진하여 저를 공중으로 약 20피트(약 6미터)를 날려 보냈습니다. 제가 대형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던 것이 아마도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등에 매고 있던 바이올린이 완충작용을 하여 제 등과 목이 부러지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바이올린은 부서졌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사실 엘리자베스도 그날 밤 그 오토바이 뒤에 타려고 했었지만, 여동생이 찾아와 그렇게 하지 않고 함께 어머니를 방문했었습니다. 메르차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수많은 골절상을 입고 거의 다리를 잃을 뻔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경종이었습니다.” 죽거나 식물인간으로 살았을지도 몰랐을 것을 실감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2007년에 그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침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남편에게는 그의 결심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맺어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만약 그녀가 다시 종교로 돌아서게 된다면 그것은 메르차의 부모님의 종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종교는 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그녀에게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교의 부정적 언어와 거대한 죄책감 등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2014년 마크 핀리 목사님과 마이클 하젤 박사가 ‘놀라운 발견’ 및 성서 고고학 세미나를 열기 위해 아일랜드로 왔습니다. 메르차가 엘리자베스를 그 집회에 초청했습니다.
“저는 그 강의들이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말합니다. “그 강의들은 매우 재미있었고 저는 매일 밤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진리들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음에 놀랐고, 계속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결심을 했고 2016년 2월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개심이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엘리자베스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홍보는 바로 모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메르차의 부모님은 그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저에게 가장 큰 모본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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