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들과의 취침 (10월 29일 안식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09-21 11:07 조회1,841회 댓글0건본문
10월 29일 안식일 오스트리아
비버들과의 취침
퍼디낸드
- 자신의 밭에서의 완두콩 실험으로 유명해진 그레고어 멘델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습니다. 그의 실험은 현대 유전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그는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알파인 또는 활강 스키는 오스트리아에서 100년 이상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 2016년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에서는 생리의학상으로 7명, 화학상으로 6명, 물리학상으로 3명, 평화상으로 3명, 경제학상으로 1명, 문학상으로 1명까지 총 2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퍼디낸드가 항상 비버들과 함께 잠을 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도시 빈에서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잘 안되고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퍼디낸드는 사회를 등지고 거리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침낭을 움켜쥐고 집을 나온 퍼디낸드는 빈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다뉴브 강의 남쪽 지류이자 1598년 이후로 수로 역할을 하는 도나우 운하를 따라 걸으며 잘 곳을 찾았습니다. 퍼디낸드가 비버와 친해지게 된 곳은 운하 옆의 풀로 덮인 한 경사면이었습니다.
평소 그들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어느 날 밤 퍼디낸드는 그의 머리 근처에서 무엇인가 긁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비버 한 마리가 ‘저의’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퍼디낸드는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 비버가 계속 그 나무를 갉아 먹자 퍼디낸드는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나무는 내가 가진 마지막 나무야. 다른 나무로 해줘. 부탁이야.” 그러자 비버는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몇 주 뒤, 정부의 공공 정원사들이 비버를 잡으러 왔을 때, 퍼디낸드는 얼마 전 그 동물의 호의에 보답했습니다. “제가 그 비버는 다른 장소로 갔다고 하자, 그들은 그를 잡을 수 없었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퍼디낸드의 하루는 근처 우물에서 찬 물로 빠른 세수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무료 커피를 받으러 지역 쉼터를 방문한 뒤, 시립 도서관으로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습니다. 저녁에 그는 무료 저녁식사를 받으러 다른 쉼터를 찾아갔습니다. 그 후에 그는 잠을 자러 도나우 운하 옆 그의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날에도 이 일과는 반복되었습니다.
노숙자 공동체는 매우 사회적입니다. 음식과 의복과 같은 필요한 것들을 어디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지에 관한 말들이 신속히 전해집니다. 퍼디낸드가 처음 재림교회와 연결된 것도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빈에 있는 아드라 센터에 최상의 옷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퍼디낸드는 아드라 센터를 방문했고 좋은 옷들뿐만 아니라 따뜻한 점심도 대접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재림교회 목사 에발트도 만났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저를 찾으세요. 하지만 먼저 결심을 하세요.” 에발트 목사가 퍼디낸드에게 말했습니다. 퍼디낸드는 그 목사의 어떤 강요도 없는 접근에 고마웠습니다. 그는 계속 아드라 센터를 찾았고, 오래지 않아 그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그 후 6년 동안 퍼디낸드와 에발트는 삶, 종교, 하나님에 대해 수많은 활발한 토론을 즐겼습니다. 서서히 퍼디낸드의 생각은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의 생활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다시 사회에 융화되는 것에 좀 더 마음을 열게 되었고,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어느 날, 에발트 목사가 물었습니다. “퍼디낸드, 우리가 노숙자들을 위해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이 자신의 생각을 물어봐준 것에 행복해 하면서, 퍼디낸드는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한 프로젝트를 결정하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런 다음 9월에 저희는 그것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에 목사님은 아드라-오스트리아 부장인 마르셀 와그너를 만나 퍼디낸드와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들, 그리고 지도력에 대한 그의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마르셀 부장은 퍼디낸드를 만났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만남 뒤에 저는 그가 이 대도시 선교센터에 대한 비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희는 그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도록 격려했고 이곳에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현재 정식 아드라 프로젝트 매니저로 급여를 받는 우리 직원 중 한 명입니다.”
퍼디낸드의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사항이 포함되었습니다. “저희는 노숙자들에게 일요일 아침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가 토요일 오후에 시작한 성경공부에 그들을 초청하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퍼디낸드의 지도 아래, 이 대도시 선교센터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단 몇 달 만에 센터는 그 서비스를 노숙자, 난민, 그리고 기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했습니다. 또한 일요일 아침 식사와 안식일 오후 성경공부와 더불어 화요일과 목요일에도 따뜻한 점심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남성들에게, 수요일에는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의복을 나누어 줍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삶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존엄성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마르셀 부장이 설명합니다. “그는 직접 거리 생활을 했었고 그들의 필요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압니다. 그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 오기를 좋아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다툼이나 싸움도 없습니다. 이곳은 일부 다른 쉼터들과 비교해 볼 때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퍼디낸드는 빈에 있는 한 재림교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센터를 돕기 위해 찾아오는 65명의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의 또 다른 부분은 교회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자원봉사자로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퍼디낸드는 말합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비재림교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봉사합니다.”
“퍼디낸드가 오기 전에는 교회들로부터 팀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오곤 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섞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봉사를 합니다.” 마르셀 부장이 덧붙여 말합니다. “그는 목회자들에게 교회 가족을 뛰어 넘어 함께 봉사하기를 호소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