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다가 되찾음 (5월 21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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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03-25 11:10 조회2,235회 댓글0건본문
5월 21일 안식일 뉴질랜드
잃었다가 되찾음
폴
- 뉴질랜드는 호주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두 개의 큰 섬과 여러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뉴질랜드 인구는 4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들 대부분이 북섬에 살고 있습니다.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의 인구는 140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 뉴질랜드의 원 정착자들은 남태평양의 다른 섬들로부터 온 폴리네시아인들입니다. 마오리족으로 알려진 이 사람들은 오늘 날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이 이야기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민감한 주제를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매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감안하여 희망과 치유, 그리고 선교 사역에 대한 잠재력으로 이끄시는 지를 보여줍니다.
폴은 사모아 제도 가정 출신이지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뉴질랜드였습니다. 그는 7형제 중 장남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그가 설교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부모님이 그를 주님께 봉헌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간절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폴의 어린 시절은 정신적 충격으로 얼룩졌습니다. 6살부터 그는 삼촌에게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찬 폴은 학교에서 파괴적인 성향을 보였고, 집에서는 삼촌을 피해 여러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악몽과 같은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기시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박스 생활
폴은 8살 무렵 노숙자 생활을 했습니다. 9살 때는 우유와 신문배달로 일주일에 4달러를 벌었습니다. 음식을 사려고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자동차 배송용 대형 나무 박스에서 못 뽑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낮에 학교에 다니며 그곳에서 따뜻한 점심 식사를 받았습니다. 밤에는 자동차 박스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는 가끔 공공 수영장에 가서 15센트를 내고 샤워를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그는 음식, 옷, 기타 물품들을 훔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래지 않아 폴은 마약과 술을 했고, 13살에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폴은 어떻게든 스스로 자립하려고 했습니다. 17살 무렵에 그는 교회에서 알게 된 소녀인 피오나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했습니다. 슬프게도 폴은 계속 분노를 품고 있었고 자주 아내에게 그것을 풀었습니다. 스포츠는 그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고 폴은 축구와 권투, 무술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을 바꾼 초대
이 어린 부부의 인생을 바꾼 초대가 이런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피오나의 한 친구가 그들을 소그룹 성경 공부에 초대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번 거절했지만 그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성경 공부에 저희를 끈질기게 초대했습니다.” 폴은 말했습니다. “그녀를 물러나게 하려고 저희는 예의상 그곳에 갔습니다. 한 번 가고 난 다음에 저희는 그곳에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그룹은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었고, 폴과 피오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그곳을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분명히 배울게 더 있을 거야.’ 복음은 진리라고 하기엔 너무 좋았습니다.” 폴은 말했습니다. “저희는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용서받았나? 자유롭게 된 건가?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도록 그의 아들을 보내셨나? 그 은혜는 너무 커서 가늠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심오했습니다. 저희는 계속 성경을 읽었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정말로 돌아가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은 저희를 깨뜨렸습니다.”
완전한 자복
소그룹 성경 공부에 참여한 뒤로 피오나와 폴은 근처 재림교회의 장막부흥회에도 참석했습니다. “그곳 설교자는 가슴이 터지도록 진심으로 설교하며 호소했습니다.” 폴은 말했습니다. “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천막을 올려다보았습니다. 2주 후에 저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정말 깊은 울음이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렇게 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 밖으로 죄를 고백하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 저는 무릎을 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응답하셨습니다! ‘폴, 나는 네가 설교자가 되기를 원한다.’ ‘주님,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제 맘의 소리입니까?’ 저는 물었습니다. 응답이 다시 들렸습니다. ‘폴, 설교자가 되라!’”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고, 폴은 파푸아뉴기니의 퍼시픽 삼육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공부를 마친 그와 피오나는 뉴질랜드로 돌아와 13년간 북뉴질랜드 합회에서 목사로 봉사했습니다.
교회 개척 재능
공부를 더 하라는 영감을 받고 기적적으로 문들이 열리면서, 폴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폴은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있는 풀러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곳에서도 폴과 피오나는 그곳에 거주하는 2세대, 3세대 태평양 제도 사람들을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부부는 남부 캘리포니아 도처를 다니며 섬나라 출신 사람들을 찾아 방문했고, 그들에게 음식도 가져다주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이 특별한 선교 사역을 통해 많은 개척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2010년, 이 가족은 뉴질랜드로 돌아왔고 폴은 현재 북뉴질랜드 합회 목회부장과 교회 개척부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어렸을 때와 무척 다르지만, 폴은 그의 과거를 잊지 않고 한때 그가 살았던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한 특별한 선교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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