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별 (1월 3일 안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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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4-12-22 17:41 조회3,018회 댓글0건본문
1월 3일 안식일 알래스카
안내 별
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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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 원주민에는 알류트족, 에스키모인, 인디언 그룹이 포함됩니다.
- 알래스카는 1959년 1월 3일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 알래스카 주는 텍사스 주의 두 배가 넘는 크기로 미국에서 가장 큰 주입니다. 이 주의 크기는 남북으로 1,400마일, 동서로 2,700마일입니다.
- 알래스카 주의 1/3이 북극권 안에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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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서부 워싱턴 주 험프튤립스강 근처 마을 주민들의 삶은 힘들었습니다. 그곳 올림픽 반도에 위치한 마을에서 생계를 위해 애쓰는 어부들의 경기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무디 가족은 그곳에서의 생활이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무디 부인의 오빠를 따라 알래스카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빠 말에 따르면 그곳은 물고기도 잘 잡히고 돈도 벌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6명의 이 가족들은 짐을 싸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를 거쳐 미국 알래스카 주 딜링햄 도시의 서쪽 국경에 접한 캐나다 유콘준주를 통과하는 4천여 킬로미터의 대장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딜링햄에서 우드 강을 향해 더 나아가다가 마침내 알레크나기크 호숫가 외딴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알레크나기크란 말이 유피크(에스키모인) 언어로 “집으로 가는 잘못된 길”이란 뜻이었지만, 무디 가족은 그 호숫가 옆에 정착할만한 좋은 장소를 발견했고 그곳에 작은 통나무집을 지었습니다. 무디와 그의 큰 아들은 그들의 대형 고깃배를 세계에서 가장 큰 연어 어장인 브리스틀만에 띄웠고, 무디 부인은 집에서 3명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새로운 집에 정착한 지 몇 달 만에 비극이 무디 가족에게 닥쳤습니다. 무디와 큰 아들이 딜링햄에 다녀오던 길에 어찌된 일인지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무디 부인이 혼자 두 어린 아들과 딸을 키워야 했습니다.
믿음의 가족
믿음의 가족이 되고 나서 무디 부인은 항상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가족들을 모았고, 안식일에는 그녀의 오빠와 그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주중에 무디 부인은 14살 아들 로이드와 13살 아들 롤랜드의 도움을 받아 가업인 어업 일을 했습니다.
“저희는 빨리 철이 들었습니다.” 롤랜드가 회상합니다. “저희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로이드와 롤랜드는 집 근처에서 어부 일을 하느라 학교에 다닐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덧 그들은 더 이상 십대청소년이 아니었고, 그 두 청년은 그때까지도 그 시골의 공립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20살이 된 롤랜드는 매일 이른 아침 그 학교의 장작 난로에 불을 피워 교실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마다 롤랜드는 교실을 따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학교의 젊고 아름다운 재키 선생님을 알아갈 기회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 해 연말에 그들은 결혼을 했고 알레크나기크 호수 가까이에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북극성 (안내 별) 야영장
롤랜드와 재키는 결혼 후 그들 주변의 토착민들로 이루어진 알래스카 공동체의 선교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호숫가 그들의 땅에 삼육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그 학교를 “미션 스쿨”이라고 불렀고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을 제공했습니다. 학생들과 부모들은 기뻐했고, 이 미션 스쿨에 다니기 위해 멀리 알래스카 주 북서부 항구도시인 놈(Nome)에서도 어린이들이 왔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2개의 기숙사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무디 가족은 재림교회 예배소를 시작했고, 첫 번째 알레크나기크 재림교회를 세웠습니다.
학교가 발전하면서 롤랜드와 재키는 그들의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은 야영장을 시작했습니다. “저희에게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활동들을 제공해줄 만한 장소가 없었을 뿐입니다.” 롤랜드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어디든 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 새로운 장소를 북극성의 안내하는 빛을 따라 “북극성 야영장”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롤랜드는 폐업한 통조림 공장의 오래된 조립식 건물들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이 건물들을 바지선에 실어 브리스틀만을 건너 알레크나기크까지 날랐고, 그런 다음 호수 위쪽으로 12마일 떨어진 북극성 야영장까지 옮겼습니다. 그 후 60년 이상 이 오래된 통조림 공장 건물들은 계속 서부 알래스카의 어린이들에 의해 매 여름마다 야영장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야영장 선교활동
수십 년간 롤랜드와 재키는 어린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을 바지선에 태워 야영장까지 데려다 주는 일에 즐거워했습니다. 매년 야영장의 마지막 안식일에는 전체 알레크나기크 재림교회가 어린이들을 위한 축제를 준비하여 북극성 야영장까지 90분간의 보트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 야영객들과 함께 특별한 안식일을 즐겼습니다. 재키가 세상을 떠난 후 롤랜드는 베벌리와 결혼했고 그녀도 계속 북극성 야영장 일을 도왔습니다.
수년에 걸쳐 이 야영장은 서부 알래스카 청소년들을 위한 필수적인 선교활동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야영장을 찾는 많은 어린이들이 이상적인 환경과는 거리가 먼 가난하고, 알코올 중독과 학대가 있는 가정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 야영장에 오게 된 것이 그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소리 높여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그들은 사랑 받고 인정받고 관심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안내 별
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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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 원주민에는 알류트족, 에스키모인, 인디언 그룹이 포함됩니다.
- 알래스카는 1959년 1월 3일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 알래스카 주는 텍사스 주의 두 배가 넘는 크기로 미국에서 가장 큰 주입니다. 이 주의 크기는 남북으로 1,400마일, 동서로 2,700마일입니다.
- 알래스카 주의 1/3이 북극권 안에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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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서부 워싱턴 주 험프튤립스강 근처 마을 주민들의 삶은 힘들었습니다. 그곳 올림픽 반도에 위치한 마을에서 생계를 위해 애쓰는 어부들의 경기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무디 가족은 그곳에서의 생활이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무디 부인의 오빠를 따라 알래스카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빠 말에 따르면 그곳은 물고기도 잘 잡히고 돈도 벌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6명의 이 가족들은 짐을 싸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를 거쳐 미국 알래스카 주 딜링햄 도시의 서쪽 국경에 접한 캐나다 유콘준주를 통과하는 4천여 킬로미터의 대장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딜링햄에서 우드 강을 향해 더 나아가다가 마침내 알레크나기크 호숫가 외딴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알레크나기크란 말이 유피크(에스키모인) 언어로 “집으로 가는 잘못된 길”이란 뜻이었지만, 무디 가족은 그 호숫가 옆에 정착할만한 좋은 장소를 발견했고 그곳에 작은 통나무집을 지었습니다. 무디와 그의 큰 아들은 그들의 대형 고깃배를 세계에서 가장 큰 연어 어장인 브리스틀만에 띄웠고, 무디 부인은 집에서 3명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새로운 집에 정착한 지 몇 달 만에 비극이 무디 가족에게 닥쳤습니다. 무디와 큰 아들이 딜링햄에 다녀오던 길에 어찌된 일인지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무디 부인이 혼자 두 어린 아들과 딸을 키워야 했습니다.
믿음의 가족
믿음의 가족이 되고 나서 무디 부인은 항상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가족들을 모았고, 안식일에는 그녀의 오빠와 그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주중에 무디 부인은 14살 아들 로이드와 13살 아들 롤랜드의 도움을 받아 가업인 어업 일을 했습니다.
“저희는 빨리 철이 들었습니다.” 롤랜드가 회상합니다. “저희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로이드와 롤랜드는 집 근처에서 어부 일을 하느라 학교에 다닐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덧 그들은 더 이상 십대청소년이 아니었고, 그 두 청년은 그때까지도 그 시골의 공립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20살이 된 롤랜드는 매일 이른 아침 그 학교의 장작 난로에 불을 피워 교실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마다 롤랜드는 교실을 따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학교의 젊고 아름다운 재키 선생님을 알아갈 기회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 해 연말에 그들은 결혼을 했고 알레크나기크 호수 가까이에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북극성 (안내 별) 야영장
롤랜드와 재키는 결혼 후 그들 주변의 토착민들로 이루어진 알래스카 공동체의 선교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호숫가 그들의 땅에 삼육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그 학교를 “미션 스쿨”이라고 불렀고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을 제공했습니다. 학생들과 부모들은 기뻐했고, 이 미션 스쿨에 다니기 위해 멀리 알래스카 주 북서부 항구도시인 놈(Nome)에서도 어린이들이 왔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2개의 기숙사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무디 가족은 재림교회 예배소를 시작했고, 첫 번째 알레크나기크 재림교회를 세웠습니다.
학교가 발전하면서 롤랜드와 재키는 그들의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은 야영장을 시작했습니다. “저희에게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활동들을 제공해줄 만한 장소가 없었을 뿐입니다.” 롤랜드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어디든 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 새로운 장소를 북극성의 안내하는 빛을 따라 “북극성 야영장”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롤랜드는 폐업한 통조림 공장의 오래된 조립식 건물들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이 건물들을 바지선에 실어 브리스틀만을 건너 알레크나기크까지 날랐고, 그런 다음 호수 위쪽으로 12마일 떨어진 북극성 야영장까지 옮겼습니다. 그 후 60년 이상 이 오래된 통조림 공장 건물들은 계속 서부 알래스카의 어린이들에 의해 매 여름마다 야영장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야영장 선교활동
수십 년간 롤랜드와 재키는 어린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을 바지선에 태워 야영장까지 데려다 주는 일에 즐거워했습니다. 매년 야영장의 마지막 안식일에는 전체 알레크나기크 재림교회가 어린이들을 위한 축제를 준비하여 북극성 야영장까지 90분간의 보트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 야영객들과 함께 특별한 안식일을 즐겼습니다. 재키가 세상을 떠난 후 롤랜드는 베벌리와 결혼했고 그녀도 계속 북극성 야영장 일을 도왔습니다.
수년에 걸쳐 이 야영장은 서부 알래스카 청소년들을 위한 필수적인 선교활동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야영장을 찾는 많은 어린이들이 이상적인 환경과는 거리가 먼 가난하고, 알코올 중독과 학대가 있는 가정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 야영장에 오게 된 것이 그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소리 높여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그들은 사랑 받고 인정받고 관심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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