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 - 3부 (12월 10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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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09-21 11:09 조회1,918회 댓글0건본문
12월 10일 안식일 프랑스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 - 3부
리차드
마누엘의 장례식에 참석한 저는 그곳에 온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는 그 목사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에게 재림교회 신앙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했고, 저에게 성경 공부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해주겠다고 했고 릴리안과 저는 그와 함께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부모님께 전함
릴리안과의 사이가 더 깊어졌으므로, 저는 우리 사이를 부모님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유대인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므로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하지 마라. 너는 젊고, 다른 여자들도 많단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단념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른 계획을 세웠습니다. “캐나다 유학을 가지 않겠니? 내가 비용을 대줄게.” 8명의 고모들이 캐나다에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가게를 찾아간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캐나다로 갈게요. 돈을 주세요.” 릴리안에게 아무 말도 없이 저는 비행기 표를 끊고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녀가 매우 슬퍼했고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달래주느라 애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캐나다에서 제가 머물고 있던 고모집의 주소를 알아내 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곳에서 지낸지 3주 만에 저는 그 편지를 받았고 그것을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다시 비행기 표를 끊고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는 저를 단념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우리 사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았을 때, 그는 릴리안을 집으로 불러 그녀를 유대교로 개종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재림교회로 서서히 개종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조상님들이 많은 나라에서 모든 것을 잃은 것은 그들이 개종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네가 개종을 하겠다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는 모든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박해자가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여러 랍비들을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기독교인이 되지 않도록 저를 설득시키기로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서로 다른 랍비들이 매일 저녁 집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거짓 선지자야.” 그들은 갖가지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저를 집에서 내쫓기로 했습니다.
“너는 이제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마치 제가 죽은 것처럼 저를 위해 애도했습니다.
“제 마음을 바꿀 수 없어요”
저는 재림교회 목사님 집으로 갔고 에꼴 호텔에서 회계사로 일했습니다. 2주가 지나고 아버지가 직장으로 저를 보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제 마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라고 애원했습니다.
“제 마음을 바꿀 수 없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그는 빌었습니다.
논쟁 끝에 그는 떠났고, 저는 10년 동안 다시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좀 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아버지가 저를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저를 만나러 가면 이혼하겠다고 그녀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시장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저는 가끔 그곳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성경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뒤에, 릴리안과 저는 침례를 받고 결혼을 했습니다. 저희는 금요일에 민간 결혼식으로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침례를 받았고, 일요일에 재림교회에서 종교의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저희는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에서 3주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저는 그 나라 전체에 재림교인 수가 5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 목사님이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유대인에게 그 어떤 복음 전도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저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을 보았을 때 저는 울었습니다. 릴리안이 그런 저를 위로할 때,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곳의 목사가 될 거야.” 당시 저는 아직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었음으로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한 이후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특별히 유대인들을 위한 목사로 부르시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후기
리차드 엘로퍼는 꼴랑주에 있는 삼육대학교를 다녔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유대인들을 위한 사역과 그곳에 유대인-재림교인 교제 센터를 세우는 일을 맡기 위해 돌아오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 수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학교 헌금 가운데 일부가 이 새로운 센터를 위한 부동산 구입을 돕는 일에 사용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적인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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