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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필 통역 (10월 15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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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09-21 11:02 조회1,9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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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일 안식일 오스트리아

 

친필 통역

모니카

 

- 비너 슈니첼은 대표적인 오스트리아의 주 요리이고, “슈트루델또는 아펠슈트루델”(사과를 채운 슈트루델)은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 디저트입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베르타 폰 주트너 남작 부인은 1905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 오스트리아의 빈 중앙묘지에는 베토벤, 브람스, 글루크, 슈베르트, 쇤베르크, 스트라우스 등의 묘지들을 포함한 250만 기 이상의 묘가 있습니다.

- 포르쉐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오스트리아의 마터스도르프에서 1875년에 태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친필 통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수석 장로인 아버지가 독일어로 설교하는 동안 모니카는 가능한 빨리 메모하면서 빠르지만 차분한 영어 통역을 제공했습니다. 이 어린 여자 주위로 5명의 필리핀 간호사들이 그녀의 이러한 수고에 감사해 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전국적인 병원 및 진료소의 인력 부족으로 필리핀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보건 인력 파송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필리핀 간호사들이 오스트리아로 왔습니다.

마리에타는 빈에 배정된 간호사 그룹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가 필리핀을 떠나기 전 그녀의 아버지는 빈에 반드시 재림교인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아침에 그녀는 같은 그룹의 다른 재림교인 간호사와 함께 옷을 차려 입고 재림교회를 찾아 그 도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찾아서

마리에타는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저희가 한 교회를 찾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매 안식일마다 저희는 교회를 찾아 헤맸습니다. 재림교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해 저희는 너무 슬펐습니다.”

그들은 1년 내내 찾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실망한 마리에타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곳에는 재림교회가 보이지 않아요!”

당시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전이었으므로, 마리에타의 아버지는 필리핀 대회 사무실에 편지를 써서 물어본 다음, 딸에게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연합회 사무실 주소를 보내 주었습니다. 마리에타와 그녀의 친구는 기뻐하며 그 다음 안식일에 바로 재림교회를 찾아 갔고 그곳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급속한 성장

몇 달 뒤, 그 간호사들은 모니카와 그녀의 부모님에게 소개되었고 모니카가 그들을 위해 친필 통역을 해주는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더 많은 필리핀 사람들과 다른 아시아 및 아프리카 나라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빈에 왔습니다. 오스트리아에 일이나 공부를 하러 온 이러한 외국인들 대부분이 교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빈교회의 영어 안식일학교반은 급속히 성장했고, 곧 모니카의 정말 고마웠던 친필 설교 통역은 더 이상 언어 지원을 필요로 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적합한 방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계속적인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이 국제 그룹은 그들만의 교회를 가져야 한다고 1987년에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교인들은 새로운 장소로 이주했고, 기존 건물은 국제 그룹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교회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 재림교회는 19874기에 19명의 교인들로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단 몇 개월 만에 정식 교인수가 40명까지 뛰었습니다. 그 외에도 매주 더 많은 손님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교회는 빈을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장소, 친교의 장소, 영적 성장 및 교제의 장소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 153명의 교인들과 매주 거의 같은 수의 손님들로 인해 이 교회는 그 본래 건물이 비좁게 되었습니다. 매 안식일마다 예배당은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꽉 찹니다. 안식일학교와 예배 이후에 매주 제공되는 친교 만찬은 특별히 빈에 있는 여러 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많은 학생들에게 큰 인기입니다.

이곳에 온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국제 교회 목사 펠릭스 메토나우가 말합니다. “기독교 배경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적어도 좋아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고 사랑받는 장소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에 오는 것을 행복해 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람들의 정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낍니다.”

 

정착율과 성장

자신의 고국에서 규칙적으로 예배를 드려왔을 재림교인들은 새로운 나라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고국의 가족과 영적 형제자매들이 그리울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펠릭스 목사가 덧붙여 말합니다. “저희는 이 교회 덕분에 그런 사람들을 교회 안에 남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외국인들은 그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재림교회를 찾기 위해 더 이상 빈 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7년 전 이 교회에 대한 웹페이지를 인터넷에 올린 이후로, 저는 매주 인터넷을 통한 연락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펠릭스 목사는 말합니다.

최근에 모니카는 그녀의 ()교회를 다시 방문하러 왔고 그녀가 본 것에 감탄했습니다. 30년 이상 된 그녀의 첫 번째 방문을 생각하며 그녀는 말했습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찬미를 부를 때였습니다. 과거 저희는 큰 방 안에 작은 그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이 교회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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