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못 할 자들을 용서함 - 1부 (8월 27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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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06-22 14:20 조회2,087회 댓글0건본문
8월 27일 안식일 르완다
용서 못 할 자들을 용서함 - 1부
이삭 은드와니예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삭 은드와니예 목사일 것입니다. 이삭 목사는 온 가족을 잃었습니다. 아내와 9명의 자녀들, 아버지와 어머니, 3명의 누이와 1명의 형제, 1명의 처남까지 모두 르완다 대학살 기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수를 꿈꾸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삭 목사는 용서의 모본을 보이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더 열정적으로 설교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빨리 다시 보고 싶습니다!”
2부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에서 이삭 목사는 대학살의 암울한 나날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큰 어려움
저희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르완다 사람들은 함께 평화롭게 살아왔지만, 1994년에 이웃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우리를 죽이는 것을 보고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것으로 저는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나중에 남 르완다 지역으로 불리게 될 곳의 출판 부장이었습니다. 사무실, 교회, 학교, 교역자 사택들과 무고네로 병원이 모두 르완다 키부예 지역에 위치한 선교 본부 내에 있었습니다.
1994년 4월 6일, 저는 키갈리에 있는 르완다 연합회의 출판부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르완다 대통령의 전용기가 격추되었고, 대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 무고네로 병원 직원에게서 전화가 와서 14살인 제 아들이 살해되었고, 아내와 나머지 자녀들은 교회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 선교 본부는 안전할 것이라 듣고 그곳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목사들과 그들의 가족들, 교인들, 모두가 선교 본부에 모여들었고, 특별히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교회로 모였습니다.
살인자들이 오다
4월 16일 안식일, 그곳 선교 본부 회장과 그곳 병원장 의사인 그의 아들이 살인자들을 그곳에 들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제가 어릴 때 목사님인 제 아버지도 그와 함께 일했었습니다. 그 회장과 저도 함께 일했지만, 저는 그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저를 더 슬프게 만든 것은 제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있던 목사들이 그 회장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희를 죽이러 올 것입니다. 저희가 구조 받을 수 있게 콩고로 갈 수 있는 배를 마련해주세요.” 그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으므로 그 편지는 교회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던 한 군인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불행히도 회장은 하나님도 이제는 그들을 도울 수 없다고 회신했습니다.
그들을 죽이려고 르완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살인자들 가운데 일부는 재림교인도 있었습니다. 수류탄, 정글도, 칼 등 그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가지고 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폭도들은 먼저 그 목사를 총으로 쏴 죽였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내와 자녀들은 도움을 구하러 회장 사택으로 도망쳤지만, 그는 그들을 내쫓았습니다. 병원으로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정글도를 들고 기다리던 폭도들에게 잡혔습니다. 선교 본부 안에서 살인은 여러 날 계속되었습니다. 밤낮으로 폭도들은 혹시 모를 도망자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개를 데려다가 덤불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날 저에게 힘이 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제 가족들과 다른 목사 가족들이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성경을 연구하며 보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 사람들 서로가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었고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제가 언젠가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므로 저에게 계속 살아갈 힘을 줍니다. 저는 전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다가 언젠가 깨어날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저는 가족들과 동료 목사들은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난민 캠프에서
그러한 학살 때문에 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키갈리에서 저는 살해 표적이 된 사람들과 반란군으로부터 구출된 사람들과 함께 안전한 북부 지역의 난민 캠프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저와 함께 계셨고 저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난민 캠프 근처 도시를 걷던 저는 버려진 가톨릭교회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문제가 있을지 그곳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캠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그 교회로 오라고 초청했습니다.
저는 그 난민 캠프에서 유일한 목사였으므로, 슬픈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옳은 일을 하느라 바쁠 때, 그것이 그 사람에게 일어난 나쁜 일들을 잊게 해준다는 사실을 저는 배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강하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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