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제일이라” (3월 18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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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6-12-20 15:49 조회1,969회 댓글0건본문
3월 18일 안식일 크로아티아
“하나님이 제일이라”
나움
- 아드리아 연합회 소속인 크로아티아 합회는 1925년에 조직되었습니다.
- 크로아티아에는 84개 교회와 2,796명의 재림교인들이 있습니다.
- 크로아티아의 삼육신학교는 원래 베오그라드에서 1931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 학교는 다른 장소로 위치를 옮겼다가, 현재는 마루세벡 캠퍼스에 있고 아드리아 유니온 대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움은 7살의 어린 나이에 그의 신앙을 옹호해야 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모든 학교는 토요일에 의무적으로 출석을 해야 했습니다. 나움은 어렸지만 안식일에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에 두 번 연속 결석을 한 뒤, 그 1학년생은 그를 심문하기 위해 열린 특별위원회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가 교실로 돌아왔을 때 5명의 위원들은 나움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을 모두 귀가시켰습니다. 그 7살 소년은 혼자서 학교장, 두 명의 교사, 그리고 두 명의 정복 경찰을 담대히 마주했습니다. 경찰 중 한 명은 비밀경찰로 그 지역 책임자였습니다.
“토요일에 왜 결석을 했니?”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 중 넷째 계명을 따라 저는 그분의 안식일에 학교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매 안식일에 학교가 아닌 교회에 있을 것입니다.” 라고 나움은 대답했습니다.
“너는 퇴학을 당할 것이고 다시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남자는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나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최우선이므로 교회에 갈 것입니다.”
“그럼 교회에 가서 무엇을 하지?” 심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찬양을 하고, 기도합니다.”
“한 곡 불러봐라!” 라고 위원들이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나움은 찬양을 한 곡 한 다음, 주님께 그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건강과 나라와 그곳의 위원들을 바르고 진실하게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며 짧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나움에게 혹시 아버지가 그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는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아니오.” 나움은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그 대답이 “예.”였으면 그의 아버지는 바로 감옥에 가야했습니다. 아들이 심문을 받을 것을 알았다면, 나움의 아버지는 결코 그에게 결석을 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원들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움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퇴학 여부가 곧 통보될 것이다.”
나움은 부모님께 일어난 일들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귀가했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은 제 결심이 무엇일지 알았습니다.” 라고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합니다.
위원회로부터 아무 지시가 없었으므로 나움은 안식일을 제외하고 계속 학교에 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움은 안식일을 지키겠다는 그의 확고한 결심 때문에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5살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움을 위한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의 나라에 삼육중고등학교와 대학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날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연합회에서 한 형제가 저희 교회를 방문했고, 저희에게 삼육학교가 생길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저희는 매우 기뻤습니다!”
마루세벡에 생긴 이 학교는 1969년에 45명의 학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 학교를 갖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나움은 감탄하며 말합니다. “저희가 첫 번째 세대, 실험적인 세대였습니다. 교직원들은 엘렌 지 화잇 여사의 ‘교육’ 책을 읽었고, 저희가 받은 교육은 최고였습니다!”
당시 이 학교는 인가를 받지 못했으므로, 학생들은 매 학년 말에 정부에서 주어지는 17과목의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엄격한 절차였지만 네 번째 해가 끝날 때에 저희는 공립학교 학생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최고의 학교로 여겨졌습니다.”
졸업 후 나움은 자그레브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며 불어와 라틴어를 전공했습니다. 전공을 마친 나움은 두 곳의 일자리 제의를 받았는데, 한 곳은 공산주의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이 따르는 최고로 선망 받는 정치적 자리였고, 다른 한 곳은 마루세벡에 있는 삼육학교의 교사 자리였습니다.
정부 관리와 이야기하면서 나움은 말했습니다. “제가 재림교인임을 아실 것입니다. 저는 안식일마다 교회에 갈 것입니다. 왜 저를 이 자리에 부르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정치활동에도 정직한 사람이 필요한데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저희는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움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루세벡에 있는 학교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움은 불어와 라틴어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가치관도 함께 가르치며 오랫동안 마루세벡에 있는 학생들을 성실하게 돌보았습니다.
“하나님과 구원, 이것은 제가 저의 학생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첫 번째 주제들입니다. 그 다음에 지식이 따르고, 인생을 진지하게 살 수 있게 삶의 의무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희는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소중합니다.”
오늘 날 이곳 대다수의 학생들이 비 재림교인 가정 출신이고, 심지어 무신론자 가정 출신도 있는 것을 보면서 나움은 마루세벡 지역을 선교지 그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해야할 이유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이례적으로 뛰어난 가능성이 이곳에 있습니다. 과연 세계 어디에서 날마다, 안식일마다, 저녁마다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비 재림교인 200명을 함께 모으는 것이 가능할까요?”
크로아티아, 마루세벡의 선교 사업을 후원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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