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된 무도장 (4월 14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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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8-03-20 13:40 조회1,694회 댓글0건본문
4월 14일 안식일 마셜제도
학교가 된 무도장
노잡 르마리(66세)
- 수천 개의 매우 작은 섬들과 수백 개의 아주 작은 저지대 섬들로 이루어진 29개의 환초가 두 개의 평행 열도인 라타크(일출) 열도와 랄리크(일몰) 열도 형태로 마셜제도에 포함됩니다.
- 마셜제도의 전국 평균 해발 고도는 7피트(2.1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 매우 낮은 고도 때문에, 마셜제도는 해수면 상승의 잠재적인 영향으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일부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와 연계되었다고 하는 범람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큰 위험에 처한 나라입니다.
[여성이 이 1인칭 시점의 간증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1980년 재림교회가 미국 정부와 에베예 섬의 유일한 병원을 관리 감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을 때 이 섬에 거주하는 재림교인은 없었습니다.
인구 12,000명인 태평양의 먼지 같이 작은 에베예 섬은 당시 미국령 미크로네시아의 일부였고, 저는 그 병원의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제 남편 렐롱은 에베예 경찰서장이었고, 저희는 주요 부족의 지주로서 이 섬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4년 동안 병원을 운영한 재림교회는 최고 경영자, 의사, 간호사 팀을 데려왔습니다. 새로운 수간호사인 제리 휫랜드는 저와 남편에게 성경 공부를 제안했습니다. 저희는 동의했고 그는 매일 저녁 저희 집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재림교회 목사인 저의 사촌 토미 킬마와 괌에서 온 두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섬에 도착했고 제 남편에게 재림교회와 학교를 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남편은 다른 부족 지도자들과 이야기하고 그의 건물 가운데 하나를 학교로 만들기로 동의를 받았습니다. 그 건물은 무도장과 빙고 게임장이었고, 집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남편과 저는 그 사업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1980년 가을에 그 건물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문을 열었고, 저의 장남 알디가 첫 번째 유치원 학생 가운데 한 명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집에서 3년 동안 성경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때로는 수간호사가 공부를 가르쳤고, 어떤 때는 병원 경영자나 병원과 관련된 다른 재림교인이 공부를 이끌었습니다.
저는 엄격한 일요일 준수 가정에서 자랐고, 제 아버지는 저의 고향인 나무(Namu) 섬에서 목사님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회중을 이끌던 교회 집사였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저는 성경에서 진리를 배우고 있음을 알았고, 1983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에베예 섬의 첫 번째 재림교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의 새로운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침례를 받고 1년쯤 지나서, 저는 고향 섬을 찾았고 일요일에 아버지가 교회에서 돌아왔을 때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니?”라고 그는 물었습니다. “너는 요즘 백인들과 어울리며 일요일에 일하면서 십계명을 어기고 있지 않니?”
저는 성경을 펴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의 2개의 성경절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마 28:1을 제가 읽었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그런 다음 저는 눅 23:54을 펴서 읽었습니다.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그 후로 아버지는 제가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안식일의 주님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에베예 섬이 위치한 마셜제도는 1986년에 독립했고, 그 다음 해에 저희는 가족 소유의 창고였던 더 큰 건물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학교는 유아원부터 12학년까지 맡을 수 있게 교육 과정을 확장했습니다. 제 아들 알디는 이 학교에서 12학년 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항상 웃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묻습니다. 몇 번의 시련을 겪어봤지만 장애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1987년에 남편은 폐의 농양을 응급 치료하기 위해 하와이로 공수되어 가야 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기도했고 남편은 5일 만에 걸어서 퇴원했습니다! 그는 아주 건강했습니다. 그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는 67세의 나이로 201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의 건강이 위협받은 지 몇 년 후에, 저희는 또 다른 건강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에베예 섬의 재림교회 장로인 제 남동생에게 남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머리가 점점 커져서 저희는 병원으로 그를 급히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그의 머리에 체액이 차서 하와이로 공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벽 3시에 비행기가 호놀룰루에 착륙했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에 기도하자.” 저희는 비행기에서 기도했습니다. 저희는 병원에서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시 기도했습니다. 의사가 아이를 진찰했을 때, 그는 아이에게서 아무런 체액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머리는 원래 크기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는 치료가 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 때문에 웃습니다. 저는 그분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저는 그분께서 모든 것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66세의 노잡 르마리는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은퇴했고 에베예 섬 재림교회의 주요 후원자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학교 헌금 가운데 일부가 1987년에 노잡과 그녀의 남편이 기부한 낡은 학교 건물의 시급한 보수 공사 비용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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