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다 돌아옴 (6월 9일 안식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8-03-20 13:44 조회1,809회 댓글0건본문
6월 9일 안식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떠났다 돌아옴
아이다 엘리자베스 데이비스(65세)
-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약 75%는 숲으로 덮여 있습니다.
-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주(州)로 공표한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유일한 주입니다.
- 그곳의 산들로 인해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때때로 “미국의 스위스”로 불립니다.
-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북부 주 가운데 최남단이자 남부 주 가운데 최북단으로 여겨집니다.
- 1896년 10월 6일 웨스트버지니아 주 찰스 타운에서 처음으로 시골지역 무료 우편배달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1947년에 웨스트버지니아 주 햄린 출신의 척 예거는 음속보다 더 빨리 비행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성이 이 1인칭 시점의 간증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베클리에서 재림교인인 저의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밤마다 성경 공부를 하라고 저를 교회에 보냈습니다. 안식일 아침마다 저는 교회까지 8블록이나 걸어가야 했습니다. 저는 가야만 했고, 교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7남매 중 막내인 저를 키워 주셨고 엄하셨습니다. 저는 짧은 드레스를 입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누구든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일요일에 다른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제 삶은 학교와 교회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14살 때, 저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살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큰 세상으로 나온 저는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저는 월스트리트의 한 보험 회사에서 회계사로 일했고 나중에는 워싱턴에서 정부 감사로 일했습니다. 저는 일요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땅을 갈고 있었습니다. 제 할머니는 그녀의 땅에 정원을 가꾸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땅을 갈곤 했는데, 그래서 잠에서 깨었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집에 가야 한다는 신호인가 보다.” 제 남편과 저는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집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 정부 직원이었던 남편은 웨스트버지니아에 집을 짓는다는 계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워싱턴에서 일하는 동안 집은 세워졌습니다.
은퇴한 후에 저는 왜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워싱턴에 모든 친구들을 두고 왔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제가 왜 이곳에 있는 건가요?”
그 무렵, 저는 성경 예언 세미나에 초대하는 전단지를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저는 저의 새로운 친구들에게 함께 갈지를 물어봤지만, 그들은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저는 혼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세미나의 네 번째 밤에 강사는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짐승들에 대해 말했고,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재림교회 전도회에 참석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는 전도회 첫 날 등록할 때나 그 이후 저녁마다 그 집회의 재림교회와의 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엄격했던 양육 과정이 기억났고 외로움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저는 혼자 앉아 있었고, 한 명의 친구도 저와 함께 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집회에 계속 오면 친구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어.”
집회가 막 시작되었지만, 저는 일어나서 빠르게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첫 날 밤, 저를 등록해 주었던 여성이 회관 뒤쪽에서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어디 가세요?” 그녀는 물었습니다.
“저는 평생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성경을 읽고 교회에 가는 것 외에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아무 것도 못하게 한 제 할머니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외로움을 느꼈고 그 전도회에 함께 할 친구를 원했습니다.
나중에 성경 사역자 ‘나오미 트리코미’라고 알게 된 그 여성은 미소를 지었고 제가 환영 받는 기분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나머지 집회들에도 계속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우정이 바로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리로 돌아왔고 나머지 한 달간의 전도회에도 계속 참석했습니다. 매일 저녁 나오미는 저를 미소와 포옹으로 반겨주었습니다. 그녀는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제 곁에 앉을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곳에 제 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설교들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것을 들으며 마치 제가 다시 어린 소녀가 된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이 침례 받고 싶은 사람들을 불렀을 때, 저는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평안을 느꼈습니다.
2015년 13째 안식일학교 헌금 지원을 받은 웨스트버지니아 주 전역에서 개최된 35개 전도회 가운데 하나인 이러한 전도회를 통해 2016년 9월에 재림교회에 입교한 16명 중 한 명이 저였습니다.
저의 65년 인생을 되돌아보며, 할머니 덕분에 교회와 성경이 늘 제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를 웨스트버지니아로 다시 부르셨는지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64세의 아이다 엘리자베스 데이비스는 현재 베클리 재림교회의 여성 선교 책임자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