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두 아들 (4월 25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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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20-03-11 11:10 조회820회 댓글0건본문
4월 25일 안식일 폴란드
예기치 않은 두 아들
할리나(65세)
- 마리 퀴리는 1867년 11월 7일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1898년 여름에 고향인 폴란드의 이름을 딴 원소 폴로늄(Po)을 발견했고, 곧이어 라듐(Ra)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방사능”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1903년에 물리학에서 첫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 폴란드 요리에 대한 최초의 요리책은 1682년에 기록되었고, 그 요리들에서는 리투아니아, 타타르-터키, 독일의 영향이 짙게 나타납니다.
할리나는 폴란드에서 셋째 딸을 낳은 후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첫 손주가 태어났던 해인 42세의 나이에 그녀는 임신 5개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임신은 의사를 놀라게 했고, 의사는 할리나의 나이 때문에 아이가 장애인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폴란드는 당시 장애 아동을 양육할 시설이 부족했습니다.
의사는 낙태를 제안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연락처를 할리나에게 주었습니다.
할리나는 집에서 수술 예약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 의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연락을 포기한 그녀는 루미아에 있는 그녀의 직장인 도시 주택 부서의 회계 업무로 복귀했습니다.
한편 남편인 블라디슬라브는 딸로부터 아내가 낙태를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듣고 그녀의 직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게 내 결정이에요.” 할리나는 말했습니다. “나는 낙태를 하고 싶어요.”
블라디슬라브는 무릎을 꿇고 “제발, 그러지 말아요.”라고 애원했습니다.
할리나는 자신이 낙태를 하면 그가 이혼을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아니오.” 그는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요.”
할리나는 가슴 깊이 감동했습니다.
“좋아요, 이 아이를 낳아요.”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3개월 반 후에 건강한 아들 아담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의 주장이 아무리 강해도 그 주장이 틀릴 수 있음을 할리나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성취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분은 그 계획을 이루실 것입니다.
할리나는 남편이 재림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에서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건강한 아기로 인해 감사했고 하나님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재림교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 몰래, 그녀는 재림교회 목사와 함께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녀는 장막 집회에서 침례를 받아 남편을 놀라게 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 할리나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폴란드에 있는 삼육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수업 중에 그녀는 다운 증후군이 있는 한 남성이 장애인들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그녀는 장애 아동을 돌보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무렵, 그녀는 그녀에게 어느 고아원에 있는 10살짜리 장애인 소년을 소개시켜 준 한 물리치료사를 만났습니다.
할리나는 곧바로 그 소년 데이비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기 때 버려졌고, 고아원 측은 입양 가족을 찾지 못했습니다.
할리나는 가족들이 주말 동안 고아들을 집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하는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녀와 남편은 금요일 오후에 데이비드를 집으로 데려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고아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 데이비드는 고아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자에 매달려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할리나도 울었습니다. 그녀는 데이비드를 입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할리나는 그 결정을 알리기 위해 가족들을 모았습니다. 12세였던 막내 아담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의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가족 모임이 끝난 후 그녀는 부모님께 애정 어린 편지를 썼습니다.
“데이비드가 어떻든지 간에 저는 그를 영원히 우리 가족으로 삼고 싶어요.”라고 그녀는 썼습니다.
할리나는 데이비드에게 그녀의 모든 시간을 전념할 수 있게 조기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그녀가 5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법원 판사는 신속하게 입양을 승인했습니다.
2009년 7월 2일, 데이비드는 그녀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가 오고 몇 달 후, 그는 장애가 있는 다리에 첫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의사를 실망시켰고, 의사는 소년이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주장이 아무리 강력했어도 그는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성취하기를 원하셨다면, 그분은 그 계획을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데이비드는 네 번의 수술을 더 받았고 현재는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세의 데이비드는 하나님의 산 증인입니다. 이 가족이 외출하면 사람들은 데이비드를 보고 경탄합니다. 그들은 많은 질문을 하고 가족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이 가족은 지난 1년 동안 “각 시대의 대쟁투” 200권을 전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성경을 사랑하고 여러 장들을 암기했습니다. 그는 시편 23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시편 23장은 그의 인생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폴란드어권 국가에 복음을 널리 전하는 폴란드 호프 채널을 위한 텔레비전 스튜디오 개설에 도움이 된 여러분의 2017년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 다음 링크에서 데이비드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은 페이스북(bit.ly/fb-mq) 또는 다음 링크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 다음 링크에서 13째 안식일학교 특별 선교 계획 사진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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