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를 위한 학교 (7월 4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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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20-06-24 15:15 조회839회 댓글0건본문
7월 4일 안식일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를 위한 학교
달링턴(59세)
- 1889년 10월 24일자 대총회 일일회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최근 진리를 받아들인 라이베리아 출신의 가스톤 형제가 그의 일가친척들에게 소중한 진리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893년 1월 대총회 회기 모임에서 그의 1892년 서아프리카 방문 내용을 보고하면서 로렌스 C. 채드윅은 “가스톤 형제의 집이나 그 근처에” 미션 본부를 열도록 선교사 파송을 호소했습니다(1893년 1월 29일자 대총회 일일회보 5:2). 그러나 라이베리아는 그 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재림교회 선교사들을 33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 1930년 4월 30일, 라이베리아 최초로 네 명의 재림교회 개종자들이 세안(Seahn)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나중에 최초의 라이베리아 출신 안수 목사가 된 윌리 헐빅이 있었습니다.
- 라이베리아 인구의 약 85.5%가 기독교를 실천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도는 인구의 12.2%를 차지하는데, 대부분이 말리크계 수니파이며 꽤 많은 시아파와 소수의 아흐마디야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링턴은 아버지가 집사로 있었고 어머니는 아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던 한 기독교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교회에 매우 헌신적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부족 종교에 속해 있었고, 달링턴이 7살이었을 때, 그는 아들에게 부족 종교를 따를 것을 권유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아, 너의 증조할아버지와 다른 조상님들도 이 종교의 일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었을 때 나를 대신할 수 있도록 네가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달링턴은 부족 종교를 따르는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 종교의 일원들이 라이베리아의 산에서 죽은 조상들을 숭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종종 아버지는 조상들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마을에서 산까지 4시간을 걸어갔습니다. 농작물을 심을 때가 되면 아버지는 “조상님, 농장을 경작하려 합니다. 농장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아버지는 “조상님, 아이를 가진 여인을 드리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병이 마을을 휩쓸었을 때, 그는 “조상님, 우리 마을에 퍼진 질병 때문에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닭 한 마리를 잡아 흰쌀밥과 함께 조상에게 바쳤습니다. 그는 그릇들과 닭고기를 바닥에 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그릇을 가지러 돌아가서 음식이 없어진 것을 보면 그는 조상들이 그의 기도를 받아 주기로 했다고 믿었습니다.
달링턴은 그 부족 종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발언권이 있었고, 그녀는 노골적으로 거절했습니다. 아버지가 산에 갈 준비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른 마을로 데려갔습니다.
“나는 이 아이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달링턴은 매주 일요일에 주일 학교에 다녔지만 성경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청년이었을 때 마을에 재림교회 전도사가 와서 제칠일안식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달링턴은 처음으로 성경에서 안식일에 대해 읽었고, 주일 목사에게 토요일과 일요일 중에 어느 날이 올바른 날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주일 목사는 일요일 예배를 지지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주일 목사는 “일곱째 날이 안식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달링턴은 성경을 따르고 싶었으므로 재림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침례가 앞으로 그가 조상을 결코 숭배하지 않을 것을 의미함을 알았으므로 그 결정에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달링턴은 목사가 되기를 갈망했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라이베리아에는 재림교회 신학교가 없었으므로,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나 또는 나이지리아로 가야 했습니다. 부모님께 자신을 도와줄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학비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내전은 그런 그의 노력을 방해했고, 1990년대에 그는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외국에서 신학을 공부할 돈을 모을 수 없다면, 적어도 라이베리아에 삼육 신학교를 세워 청년들이 그곳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선 1년 후, 그는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에 서아프리카 삼육대학교(AUWA)를 만드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의회에서 6년간 활동한 그는 뇌물을 받으라는 압력과 부족 종교에 들어오라는 강한 압박 가운데 사퇴했습니다. 그는 서아프리카 삼육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오늘날, 달링턴은 목사이자 남동부 라이베리아 미션의 회장입니다. 이 미션은 뷰캐넌 시에 6학년제(K-6) 학교 건축을 위해 이번 기 13째 안식일학교 헌금 가운데 일부를 받게 됩니다.
“주께서 저를 부르셔서 그분의 곧 다시 오심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에 그분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매우 감사합니다.”라고 달링턴은 말했습니다.
라이베리아의 뷰캐넌에 내전으로 파괴된 학교를 대체할 초등학교를 건축할 수 있도록 풍성한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을 계획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다음 링크에서 달링턴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은 페이스북(bit.ly/fb-mq) 또는 다음 링크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 다음 링크에서 13째 안식일학교 특별 선교 계획 사진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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