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방문 (6월 26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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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21-03-12 11:07 조회885회 댓글0건본문
6월 26일 안식일 멕시코
집집방문
애쉴리(20세)
- 스페인어는 멕시코의 공용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60여개의 토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베라크루스주의 와스테크어(Huastec), 유카탄반도의 마야어(Maya), 메사센트럴 지역의 마자와어(Mazahua), 나와틀어(Nahuatl), 오토미어(Otom), 타라스텍어(Tarastec), 토토나카어(Totonac), 치아파스주의 트셀탈어(Tzeltal)와 초질어(Tzotzil), 오악사카주의 사포텍어(Zapotec), 미스텍어(Mixtec), 마자텍어(Mazatec) 등이 포함됩니다.
- 멕시코는 많은 생물 종들의 이주 패턴에 빠질 수 없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무수한 오리와 거위들이 매년 가을마다 멕시코의 산으로 날아듭니다. 매년 수백만 마리의 멸종 위기에 처한 제왕나비들이 멕시코 미초아칸주 동부의 우거진 숲 봉우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미국에서 이주합니다. 미초아칸주의 제왕나비 생물권보전지역은 200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멕시코시티의 오염과 벌목활동은 나비와 그들의 보금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 멕시코 국기의 세 가지 색깔은 이 나라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녹색은 희망과 승리를 상징하고, 흰색은 순결을 의미하며, 빨간색은 이 나라 영웅들이 흘린 피를 나타냅니다.
이 모든 일은 제가 미국 텍사스 주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멕시코 마을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동급생인 켓지와 저는 친한 친구가 되었고 저는 그녀가 재림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캠핑 및 다른 교회 활동에 함께 가자고 저를 반복해서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 내내 거절했습니다.
“난 갈 수 없어.” 저는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
그러나 저는 부모님께 허락을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녀의 초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때때로 켓지와 저는 안식일에 대해 사이좋게 토론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것을 말했고 저는 그녀에게 제가 믿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제가 무엇을 믿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반대를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어쨌든 저는 아버지로부터 예배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켓지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는데, 저는 대학에서 떨어졌습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잊으셨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1년 동안 슬퍼하던 중에 켓지가 저를 캠핑에 초대했고 저는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 캠핑을 좋아했습니다. 야영객들은 친절하게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3일간의 캠핑은 선교 사역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강을 청소했고 한 낡은 재림교회를 보수했습니다. 집집방문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찬미를 부르거나 성경 구절을 읽어주면 사람들의 얼굴이 빛났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그들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 사역을 해본 적이 없었던 저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이런 걸 더 많이 하고 싶다. 난 항상 이런 걸 해야 해!”
그 주말 캠핑으로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저의 모든 슬픔이 사라졌습니다. 제 삶에 목적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부모님께 그 캠핑에 대해 말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안식일에 저는 교회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환영했고 교회 활동에 저를 참여시켰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후 매 안식일마다 교회에 갔습니다.
캠핑이 끝난 지 정확히 한 달 후에 몬테모렐로스 대학교 신학과 학생이 일주일간의 전도회를 위해 교회를 찾았습니다. 저는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그는 제 가족과 성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던 그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침례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와, 이 말이 듣고 싶었어!”
저는 즉시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님과 켓지는 3일 후 제가 침례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한 달이 지났고 저는 몬테모렐로스 대학교에서 열린 패스파인더 캠포리에 참석했습니다. 간증 시간에 주최측은 저를 무대로 불렀습니다. 제 간증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감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간증이 끝났을 때 한 주최자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몬테모렐로스의 학생이 되고 싶어 합니다.”
사실 저는 그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고, 게다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등록금을 벌기 위해 문서전도자로 일하며 그 여름을 보내자는 한 교수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학교 근처로 집집방문을 나갔을 때 저는 제 믿음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캠핑에서 집집방문을 다니고 싶었던 저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문서전도 활동에 푹 빠졌습니다.
그 여름이 끝났을 때, 부모님이 저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문서전도자로 등록금을 계속 벌기 위해 대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서전도자로 일하도록 저를 감동시키신 것임을 이제야 실감합니다.
결국 저는 부모님께 대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으면 제 스스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화를 내며 저를 대학교에 태워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내려주고 갈 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는 힘들었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과 저뿐입니다.”
부모님과 연락 없이 한 달이 지났고 저는 제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려던 차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돌아오지 말고 거기 있어라. 엄마와 내가 재림교회에 입교하려고 한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심하게 우는 바람에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서전도자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저의 결심에 부모님이 몹시 놀랐었다는 것을 저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를 대학교에 내려준 후에 그들은 재림교회를 더 알아보기 위해 교회에 가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성경 공부를 했고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내내 저는 그들이 저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 후 6주가 지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17살 남동생과 13살 여동생과 함께 침례를 받았습니다. 문서전도자로 일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가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두 침례를 받았습니다.
제 고향인 산페르난도는 작은 마을이어서 우리 가족이 재림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간증으로 많은 가족들이 우리 교회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번 기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은 중앙아메리카 지회에 있는 몬테모렐로스 대학교와 12곳의 재림교회 고등교육기관들에 선교사 훈련 센터인 감화력센터 개설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분의 풍성한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 여 청년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이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십시오.
* 다음 링크에서 애쉴리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은 페이스북(bit.ly/fb-mq)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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