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만나자 (4월 30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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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22-03-30 15:39 조회621회 댓글0건본문
4월 30일 안식일 나미비아
천국에서 만나자
오크레인(31세)
- 나미비아 최초의 재림교회 사역은 1937년과 1938년에 J. 반 데르 메르위가 빈트후크에서 전도회를 개최하고 5명이 침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54년 남서아프리카 선교지가 조직되고 남서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유일한 목사인 J.J. 베커가 회장으로 임명될 때까지 더 이상의 사역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붓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메리!”라고 그가 소리쳤습니다.
저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화난 채로 집에 와서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저는 5살이었고, 4명의 형제와 함께 나미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부모님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약 35km 떨어진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방학 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바빴습니다. 그녀의 등에는 저의 두 살배기 남동생 토미가 보자기에 싸매어 있었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부엌문에 나타났습니다.
“저녁 식사 준비가 왜 안 된 거야?”라고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뒷문으로 달려가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의붓아버지는 큰 막대기를 들고 따라갔습니다. 느닷없이 그는 막대기를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어머니는 피했으나, 그 막대기에 어린 토미가 맞았습니다.
토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뜨리자 어머니가 멈췄습니다.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어!”라고 그녀는 울부짖었습니다. 동정심 많은 이웃들이 그녀를 둘러쌌고,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들이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또한 경찰들은 의붓아버지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를 감금했습니다.
병원에서 토미는 두개골 골절로 응급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의사는 아이가 뇌 손상을 입어 오른편이 마비될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병실에서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와 가족 친구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구석에서 한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도해도 될까요?”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하늘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엘리야가 아닙니다. 제가 이 방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보호를 받아 이곳에 서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그들의 극심한 고통을 들어주세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가 끝난 후 병실은 조용했습니다. 저는 평안을 느꼈습니다. 저는 천국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남자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2주 후, 어린 토미는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의사 말대로 그는 오른편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그는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몇 달 동안, 저는 그 병원에서의 기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저는 비슷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갈망했습니다. 1년이 지난 6살 때, 저는 사촌과 함께 안식일마다 재림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동안, 저는 교인들이 병원에서의 그 남자처럼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 토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가 12살이고 제가 15살이던 어느 날, 저희는 할머니께서 점심을 차려 주시기를 기다리며 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토미가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린 그가 “내가 죽어가고 있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조용해진 채 숨을 멈췄습니다. 할머니는 미친 듯이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저는 심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기도했던 남자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평안을 원했습니다. 제 기도는 간단명료했습니다. “저는 어립니다. 이 고통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토미의 죽음을 준비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세요.” 제가 “아멘.”이라고 말하는 순간 토미는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가 세 번 재채기를 하자, 할머니는 “살았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10년이 지났고, 저는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로 이사하여 하나님을 아는 성도들이 기도하는 교회인 재림교회에 입교했습니다.
어느 날, 여동생으로부터 토미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간절했던 저의 옛 기도가 생각나 “이제 때가 되었구나. 내가 빌린 시간이 지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남동생의 병원까지 1,200km를 여행했습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그는 평안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어.”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어. 나는 형을 천국에서 만날 거야.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해.”
3일 후, 토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제 귓가에 울립니다. “나는 형을 천국에서 만날 거야.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해.”
저는 대학교에서 라디오 제작 부문 학위를 받고 현재 나미비아 세계라디오방송(AWR)에서 방송국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천국에서 토미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날까지, 하나님을 계속 믿으세요!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복음을 나미비아와 남아프리카 인도양 지회 전역에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분의 선교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 남청년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이 내용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 사진은 페이스북(bit.ly/fb-mq)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 오크레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림교회의 “I Will Go” 선교전략계획의 “개인과 가족들을 제자화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한다.”는 영적 성장 목적 5번이 성취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계라디오방송(AWR)에서의 그의 사역을 통해,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기관들을 강화하여 예수님을 통한 자유와 전인건강과 희망을 북돋으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을 하도록 한다.”는 선교 목적 4번을 성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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