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은 지친 영혼에게 새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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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8-03-14 10:40 조회4,077회 댓글0건본문
6월 14일 안식일
찬양은 지친 영혼에게 새 힘을 준다
서울영어학원교회 부목사 전승국
교회에서 잘 준비된 찬양이 수백 편의 설교보다 더 호소력 있게 영혼들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서 죽어 가는 영혼에게,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에게 잘 준비된 찬양은 힘이요, 용기요, 즐거움입니다.
제가 2004년도에 백혈병 치료를 위해 1차 항암 치료하러 병원에 들어가서 처음에 교회 음악을 준비해 가지고 들어가질 못해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MP3 플레이어에 ‘주께 가오니’라는 찬양이 딱 한 곡 들어 있었습니다. 병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이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주님께서 그 노래의 가사처럼 나를 새롭게 하시고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감 같이 올라가게 하시며 주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가사의 내용이 구구절절이 제 가슴속에 파고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제 아내는 제가 이어폰을 귀에 꽂기만 하면 우니까 왜 울어, ‘그렇게도 백혈병에 걸린 게 슬퍼’ 하고 자꾸 물어 봤습니다. 저는 찬양에 감동되어서 우는데...
찬양은 이렇게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 찬양사역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자신에게 달란트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찬양사역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달란트나 시간적 여유보다 중요한 것은 헌신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지금까지는 달란트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찬양사역을 위해 준비된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능력을 주실 것이고 시간 또한 그렇게 해 주실것이라 믿습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을 곡을 붙여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즐거운 일이 있으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게 되고 얼굴도 싱글벙글 하듯이 말입니다.
지역 교회에서 음악적인 요소 때문에 찬양대나 혹은 찬양팀을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감동은 전문적인 요소보다는 준비된 찬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자면 휘경동에 큰 교회들 사이에 작은 서울일본어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찬양대를 위하여 헌신하는 선생님 한분과 교인들의 헌신으로 작은 교회지만 찬양대가 잘 운영되는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찬양대를 지휘하는 선생님은 이쪽 분야 전공이기 보다는 관심과 남다른 열정 때문에 최선을 다합니다. 교인들도 교회가 작지만 찬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매주 안식일 찬양대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매년마다 찬양경연대회에 꼭 나가고 있습니다. 이때는 무려 2-3달 전부터 준비를 해서 나가는데 ‘전 교인의 찬양대화’가 어울릴 만큼 찬양사역에 교회가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찬양대를 구성하는 대원들도 나이와 직업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큰 교회들을 물리치고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 찬양사역에 물론 전문적인 요소도 필요하지만 열정과 헌신 앞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앞에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찬양을 하게 되면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노래 부르고 노래를 듣는 것 자체가 인간관계에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아울러 찬양은 사람들의 마음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어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봉사로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성도님 여러분! 시편 92편 1절에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라는 말씀처럼 오늘 안식일부터 함께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시면 어떨까요? 준비된 찬양이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찬양은 지친 영혼에게 새 힘을 준다
서울영어학원교회 부목사 전승국
교회에서 잘 준비된 찬양이 수백 편의 설교보다 더 호소력 있게 영혼들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서 죽어 가는 영혼에게,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에게 잘 준비된 찬양은 힘이요, 용기요, 즐거움입니다.
제가 2004년도에 백혈병 치료를 위해 1차 항암 치료하러 병원에 들어가서 처음에 교회 음악을 준비해 가지고 들어가질 못해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MP3 플레이어에 ‘주께 가오니’라는 찬양이 딱 한 곡 들어 있었습니다. 병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이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주님께서 그 노래의 가사처럼 나를 새롭게 하시고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감 같이 올라가게 하시며 주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가사의 내용이 구구절절이 제 가슴속에 파고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제 아내는 제가 이어폰을 귀에 꽂기만 하면 우니까 왜 울어, ‘그렇게도 백혈병에 걸린 게 슬퍼’ 하고 자꾸 물어 봤습니다. 저는 찬양에 감동되어서 우는데...
찬양은 이렇게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 찬양사역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자신에게 달란트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찬양사역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달란트나 시간적 여유보다 중요한 것은 헌신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지금까지는 달란트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찬양사역을 위해 준비된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능력을 주실 것이고 시간 또한 그렇게 해 주실것이라 믿습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을 곡을 붙여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즐거운 일이 있으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게 되고 얼굴도 싱글벙글 하듯이 말입니다.
지역 교회에서 음악적인 요소 때문에 찬양대나 혹은 찬양팀을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감동은 전문적인 요소보다는 준비된 찬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자면 휘경동에 큰 교회들 사이에 작은 서울일본어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찬양대를 위하여 헌신하는 선생님 한분과 교인들의 헌신으로 작은 교회지만 찬양대가 잘 운영되는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찬양대를 지휘하는 선생님은 이쪽 분야 전공이기 보다는 관심과 남다른 열정 때문에 최선을 다합니다. 교인들도 교회가 작지만 찬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매주 안식일 찬양대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매년마다 찬양경연대회에 꼭 나가고 있습니다. 이때는 무려 2-3달 전부터 준비를 해서 나가는데 ‘전 교인의 찬양대화’가 어울릴 만큼 찬양사역에 교회가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찬양대를 구성하는 대원들도 나이와 직업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큰 교회들을 물리치고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 찬양사역에 물론 전문적인 요소도 필요하지만 열정과 헌신 앞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앞에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찬양을 하게 되면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노래 부르고 노래를 듣는 것 자체가 인간관계에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아울러 찬양은 사람들의 마음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어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봉사로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성도님 여러분! 시편 92편 1절에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라는 말씀처럼 오늘 안식일부터 함께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시면 어떨까요? 준비된 찬양이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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