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교회 목사에게 침례받은 진리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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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0-06-28 10:47 조회4,744회 댓글0건본문
이단교회 목사에게 침례받은 진리교회 집사?
대전동부교회 담임목사 이재천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어머님과 함께 성결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5남 2녀를 두신 어머님께서는 해가 더할수록 교회에 대한 열심이 깊어지셨습니다.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마는 다섯 아들 중에 한 아들은 주의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단다!” 이러한 어머님의 말씀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기도의 응답이 되겠다며 나서는 아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특히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고등부에 출석하는 횟수가 줄기 시작하여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2학년 때부터는 공부를 핑계로 교회출석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 3학년이 되어 대학예비고사를 치르고 서울지역에 있는 대학에 응시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계신 둘째 형님께서 서울 지역에 있는 두 곳의 대학입학원서를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삼육대학 입학원서였습니다. 그런데 일반대학교의 입학원서와는 다르게 추천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추천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담임목사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당진재림교회였고 그 당시 저에게 추천서를 써 주신 분이 박정일 전도사(현 천안중앙교회 담임목사)님이셨습니다.
삼육대학교에 입학하여 3개월 만에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재림성도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1981년 5월 16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침례받기 바로 전 날 밤에 혼자서 삼육대학교 호수에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 호숫가 오른쪽 작은 동산에 세워진 십자가 밑에서 주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를 주의 종으로 써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우리 어머님께서 저를 위해 드리고 있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1995년 3월 27일에 충청합회 지내리교회에 부임하면서 만 14년 만에 응답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쁨 너머에는 또 다른 시련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성결교회 목사가 되라고 기도했더니 이단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몹시 슬퍼하시고 후회하시는 우리 어머님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던 성결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로부터 몹시 안타까워하시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화가 나신 저희 어머님은 저희 집에 오시는 것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단교회 목사 아들이 아니라 진리교회 목사 아들이 된 것을 감사하며 함께 재림교회 성도가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재림교회 목사가 된지 12년 그리고 재림성도가 된지 26년만인, 2007년 9월 8일에 당진교회 한효수 목사님의 배려로 이단교회 목사인 제가 진리교회 집사이신 어머님에게 침례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단교회 목사가 아닌 진리교회 목사로 인정되었고 우리 어머님은 이단교회 성도가 아닌 진리교회 성도가 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러한 저의 간증을 통하여 얻은 교훈은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그 응답이 있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고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학교 모든 학생들이 안식일학교에 출석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시간이 개인기도 시간입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학생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무릎을 꿇고 안식일학교의 발전과 그날의 순서자 그리고 참석할 모든 학생들과 구도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것은 안식일학교 학생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전동부교회 담임목사 이재천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어머님과 함께 성결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5남 2녀를 두신 어머님께서는 해가 더할수록 교회에 대한 열심이 깊어지셨습니다.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마는 다섯 아들 중에 한 아들은 주의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단다!” 이러한 어머님의 말씀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기도의 응답이 되겠다며 나서는 아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특히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고등부에 출석하는 횟수가 줄기 시작하여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2학년 때부터는 공부를 핑계로 교회출석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 3학년이 되어 대학예비고사를 치르고 서울지역에 있는 대학에 응시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계신 둘째 형님께서 서울 지역에 있는 두 곳의 대학입학원서를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삼육대학 입학원서였습니다. 그런데 일반대학교의 입학원서와는 다르게 추천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추천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담임목사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당진재림교회였고 그 당시 저에게 추천서를 써 주신 분이 박정일 전도사(현 천안중앙교회 담임목사)님이셨습니다.
삼육대학교에 입학하여 3개월 만에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재림성도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1981년 5월 16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침례받기 바로 전 날 밤에 혼자서 삼육대학교 호수에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 호숫가 오른쪽 작은 동산에 세워진 십자가 밑에서 주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를 주의 종으로 써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우리 어머님께서 저를 위해 드리고 있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1995년 3월 27일에 충청합회 지내리교회에 부임하면서 만 14년 만에 응답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쁨 너머에는 또 다른 시련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성결교회 목사가 되라고 기도했더니 이단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몹시 슬퍼하시고 후회하시는 우리 어머님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던 성결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로부터 몹시 안타까워하시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화가 나신 저희 어머님은 저희 집에 오시는 것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단교회 목사 아들이 아니라 진리교회 목사 아들이 된 것을 감사하며 함께 재림교회 성도가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재림교회 목사가 된지 12년 그리고 재림성도가 된지 26년만인, 2007년 9월 8일에 당진교회 한효수 목사님의 배려로 이단교회 목사인 제가 진리교회 집사이신 어머님에게 침례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단교회 목사가 아닌 진리교회 목사로 인정되었고 우리 어머님은 이단교회 성도가 아닌 진리교회 성도가 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러한 저의 간증을 통하여 얻은 교훈은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그 응답이 있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고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학교 모든 학생들이 안식일학교에 출석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시간이 개인기도 시간입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학생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무릎을 꿇고 안식일학교의 발전과 그날의 순서자 그리고 참석할 모든 학생들과 구도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것은 안식일학교 학생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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