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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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2-30 15:21 조회3,155회 댓글0건본문
참된 위대함
입장교회 담임목사 박찬일
어렸을 때 읽어야 하는 추천 도서로는 주로 위인전이 많았습니다. 국내외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그와 같은 품성과 인격을 닮기를 희망하는 선생님들과 부모들의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지도자의 가장 탁월한 지도력은 무엇일까요? 지도자론에서 결론지어 말하고 있는 것은 좋은 품성입니다. 품성이야 말로 지도자가 연마해야 할 첫 번째 지도력으로 꼽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도력은 가정에서 시작해 국가 혹은 세계를 상대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지도력,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지도력, 그리고 대통령의 지도력은 이 사실을 더욱 힘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살고 있던 당시의 왕은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그의 교만과 인간의 권위는 세계를 통일한 업적에 빗댈 만큼 크고 자랑스러웠지만 하나님은 왕으로서의 위대함을 유지하기 위해 꿈을 통해 거듭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위대함은 퇴색되었고 압정과 폭정으로 일관되었을 때, 마침내 들청초 가운데 7년을 지내게 됨에 따라 다시 위대한 왕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왕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참된 위대함은 참된 인자함에 있다.”(선지자와 왕, 345) 어짐과 사랑스러움, 참 좋은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인자한 왕이 위대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제패한 지도자의 위대함이 인자함이라면 한 가정의 지도자의 위대함은 무엇일까요? 인자한 아버지, 인자한 어머니, 인자한 목사님, 인자한 장로님, 인자한 집사님, 인자한 선생님, 정말 듣기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머물고 있는 모든 공동체에서 이런 칭호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참된 위대함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은 그 아버지의 인자함이 아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말이 아닐까요? 신붓감을 고를 때, 그 신부의 어머니를 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 어머니의 인자함을 만인이 인정한다면 그 신부는 볼 것 없이 데려와야 한다는 지당한 말씀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자함의 대명사는 예수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소경과 절뚝발이 그리고 각종 병자들이 문둥병을 가지고 중풍병을 가지고 심지어 거품을 물고 귀신들려 찾아 왔을 때, 예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물리친 적 없이 영접하셨습니다. 간음 중에 그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예수님께 끌려왔을 때, 예수님의 용서와 여인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신 이야기는 위대함, 즉 참된 인자함의 명장면을 보여줍니다.
재림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업장, 그리고 이 사회가 우리의 인자함을 통해 위대한 가정과 교회, 위대한 학교와 사업장, 위대한 사회가 되도록 합시다.
입장교회 담임목사 박찬일
어렸을 때 읽어야 하는 추천 도서로는 주로 위인전이 많았습니다. 국내외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그와 같은 품성과 인격을 닮기를 희망하는 선생님들과 부모들의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지도자의 가장 탁월한 지도력은 무엇일까요? 지도자론에서 결론지어 말하고 있는 것은 좋은 품성입니다. 품성이야 말로 지도자가 연마해야 할 첫 번째 지도력으로 꼽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도력은 가정에서 시작해 국가 혹은 세계를 상대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지도력,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지도력, 그리고 대통령의 지도력은 이 사실을 더욱 힘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살고 있던 당시의 왕은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그의 교만과 인간의 권위는 세계를 통일한 업적에 빗댈 만큼 크고 자랑스러웠지만 하나님은 왕으로서의 위대함을 유지하기 위해 꿈을 통해 거듭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위대함은 퇴색되었고 압정과 폭정으로 일관되었을 때, 마침내 들청초 가운데 7년을 지내게 됨에 따라 다시 위대한 왕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왕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참된 위대함은 참된 인자함에 있다.”(선지자와 왕, 345) 어짐과 사랑스러움, 참 좋은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인자한 왕이 위대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제패한 지도자의 위대함이 인자함이라면 한 가정의 지도자의 위대함은 무엇일까요? 인자한 아버지, 인자한 어머니, 인자한 목사님, 인자한 장로님, 인자한 집사님, 인자한 선생님, 정말 듣기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머물고 있는 모든 공동체에서 이런 칭호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참된 위대함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은 그 아버지의 인자함이 아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말이 아닐까요? 신붓감을 고를 때, 그 신부의 어머니를 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 어머니의 인자함을 만인이 인정한다면 그 신부는 볼 것 없이 데려와야 한다는 지당한 말씀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자함의 대명사는 예수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소경과 절뚝발이 그리고 각종 병자들이 문둥병을 가지고 중풍병을 가지고 심지어 거품을 물고 귀신들려 찾아 왔을 때, 예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물리친 적 없이 영접하셨습니다. 간음 중에 그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예수님께 끌려왔을 때, 예수님의 용서와 여인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신 이야기는 위대함, 즉 참된 인자함의 명장면을 보여줍니다.
재림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업장, 그리고 이 사회가 우리의 인자함을 통해 위대한 가정과 교회, 위대한 학교와 사업장, 위대한 사회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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