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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제안순서 2- 활동하는 재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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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0-05-29 15:55 조회3,4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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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제안순서 ② 활동하는 재림 여성


◈ 주제 : 하나님을 위해 생애를 바쳤던 재림 여성들과 그 영향력에 대해 배운다.

◈ 순서자료
1) 여성은 하나님의 사업에서 항상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밀러주의 재림 운동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예로, 루시 마리아 허시(Hersey)는 18세에 개종하였고, 주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느낌을 받았다. 1842년 루시는 밀러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곧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뉴욕 주 세넥타디(Schenectady)로 여행을 떠났다. 그 곳의 한 신자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비재림신자 무리에게 와서 자기 믿음의 증거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여자가 말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반대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말을 못하게 된 것이다.긴 침묵 속에 주인은 루시가 그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녀의 간증이 좋은 반응을 얻자, 큰 강당을 빌어서 청중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후에 재림 설교자가 된 몇 명의 남성들을 개심시키는 열매가 풍성한 봉사의 시작이었다.
더 성공적인 경우는 올리브 마리아 라이스(Rice)였다. 1842년 밀러주의를 받아들인 그녀는 “기도회를 돕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주께서 준비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843년 3월 하나님께서는 수백 명의 개심자를 얻는 복을 주셨다. 그녀는 하임즈에게 편지하였다. “늘 한 번에 보통 네다섯 곳에서 제게 봉사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라이스가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일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선포하였다. “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일을 그만 둘 수 없다. 남자들이 비난하고 정죄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다고 느끼며, 동료 인간을 경고하는 일에 내 임무를 다하는 기쁨을 기대한다.”
엘비라 파셋(Elvira Fassett)은 남편의 반대를 극복해야 하였다. 그녀는 여자가 공공석상에서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요청에 결국 굴복하였고, 파셋은 주께서 자기의 일에 복을 주심을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개심자는 그녀의 남편이었는데, 그는 아내의 설교의 능력을 보고는, 요엘 2장의 예언 속에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신을 젊은 여성에게 부어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파셋 부부는 목회 팀을 이루어 재림 기별을 전하였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뜻에 굴복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2) “그 여성은 지난 2년 동안 우리 주에서 다른 어떤 목사보다도 더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본인은 룰루 와이트먼 자매에게 목회할 수 있는 자격증을 주는데 찬성합니다. 그리고 남편인 와이트먼 형제가 능력을 갖추고 아내와 함께 사역하며 성공적인 목회를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그에게도 목회자 자격증을 주는데 찬성합니다.” 1897년 S. M. 콥(S. M. Cobb) 목사는 뉴욕 합회장에게 이상과 같이 편지를 썼다.
재림교회 사역 활동은 꾸준히 남성들이 주도해 왔기 때문에 교단은 목사로서 또는 기타 교단 직원으로서 교회에 공헌한 여성들의 공로를 인정하는데 인색하였다. 물론,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의 설립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교단이 비록 화잇 부인을 정식 목회자로 안수를 주지는 않았지만, 1872년에 벌써 안수 목사로 인정하였다. 화잇 부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다고 믿었으므로 인간에 의한 안수 여부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잇 부인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사역한 목사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목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교단의 많은 여성들이 목사로 임명되어 사역하였다. 여성 중에서 처음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은 1872년에 임명된 사라 린지(Sarah Lindsay) 목사다. 재림교회 연감에 의하면, 1884년과 1904년 사이에 임명된 여성 목사는 20명이 넘는다. 이 기간은 연감이 출판된 첫 20년의 기간이다. 이들 여성 목회자들은 가끔 차별도 받았으나 교회에 큰 공헌을 한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미니 사이프(Minie Sype) 목사는 적어도 10개의 교회를 세웠다. 사이프 목사는 복음을 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침례는 물론 결혼식 주례도 서고 장례식도 거행하였다. 한번은 여자의 몸으로 설교를 한다고 비난 받자 사이프 목사는 예수님이 부활한 후 마리아로 하여금 제자들에게 그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리게 했다고 말하였다. 사이프 목사는 자신이 마리아의 본을 따라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린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를 택하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선교다. 교회 안에 살아나신 구주의 사역을 담당하는 여성과 남성이 더 많아진다면 교회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3) “어제 미주리 주 하원은 와이트먼 여사를 초청하여 하원에서 ‘미국 내 종교 자유의 발전’에 대해 강연하도록 결의하였습니다. 본인은 미주리 주 의회의 이번 결정이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주리 의회의 이런 결정을 통하여 우리는 재림교단에서 가장 성공적인 목회를 수행한 여성 목회자로 손꼽히는 룰루 와이트먼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적어도 17개의 교회를 개척한 와이트먼 목사는 당시 대부분의 남성 목회자보다 더 활발한 사역을 하였다.
성령에 감동된 또 한 사람의 여성은 제시 와이스 커티스(Jessie Weiss Curtis)인데, 이 여성은 최초의 전도회 기간 동안 80명을 개심시키고 침례를 받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펜실바니아 주 드럼스(Drums) 교회가 설립되었다. 커티스 목사는 합회에서 일할 인턴 목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하였다. 당시 커티스 목사의 지도를 받은 젊은 목회자 지망생 중에는 다우어(N. R. Dower)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대총회 목회부장이 되었다.
목회자로 사역한 여성들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단에서 봉사한 분들이 많다. 물론 대부분은 전통적인 여성 직업인 교사와 간호사로서 일하였지만, 비관습적인 직책을 가진 여성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플로라 플러머(L. Flora Plummer)라는 여성은 1897년에 아이오와 주 합회 사무국장이 되었으며, 1900년에는 얼마 동안 합회장 서리를 맡기도 했었다. 그녀는 1901년에 새로 조직된 대총회 안식일학교부 서기가 되었다. 그리고 1913년에는 대총회 안식일학교부장이 되어 그 후 23년 간 봉직하였다.
그리고 남부 흑인들을 대상으로 재림교회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 아나 나이트(Anna Knight)라는 여성도 있다. 그녀는 미국에서 인도로 파견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선교사로 유명하다.
다른 수많은 재림교단 여성들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합회 재무나 합회 서기, 교육부 책임자, 안식일학교부서 책임자와 같은 선출 직책을 맡으며 봉사하였다. 그 외에도 각 재림교회의 대들보로서 드러나지 않게 봉사한 수백만 명의 여성 성도들이 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맡긴 사역은 아직도 수행되고 있다. - 어찌 우리 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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