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콤(지하 묘소)의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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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8-04-16 14:05 조회3,951회 댓글0건본문
성 극
카다콤(지하 묘소)의 순교자
◆ 등장 인물
마셀라스 ----------- 근위대 장교
루셀라스 ----------- 근위대 장교
호노리우스 --------- 크리스천 장로
폴리오 ------------- 크리스천 소년
세실리아 ----------- 크리스천, 폴리오의 어머니
알마 --------------- 크리스천, 모래 파는 일꾼
메사 --------------- 크리스천, 투사
황제, 근위대사령관, 투사A, 그 외 병사1, 2 , 성도1, 2, 3
◆ 배경
때: 기독교 박해가 심하던 테시우스 황제 당시 (제위 A.D. 249-251)
장소: 로마 시
* 극중의 찬송은 송영 내지 바로크 시대의 성곡 중에서 주제에 맞게 선택.
제 1 장
원형 경기장, 왼쪽 중앙에 황제가 앉아 있고 우편에 근위대사령관, 좌편으로 마셀라스와 루셀라스가 서 있다. 관중들의 소음 속에 무대 한 가운데서는 투사 메사와 투사 A가 레슬링을 하고 있다. 메사가 상대방을 들어 쓰러뜨린다.
(관중들의 함성, 음향효과)
(황제, 유쾌히 웃으며 메-사에게로 나온다. 사령관도 그 옆에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 나온다.
황제: 잘 싸웠다. 그래, 네 이름이 뭔고?
메사: 메사라고 합니다.
사령관: 이번에 새로 아시아에서 포로로 잡아 왔는데 끝내 주는 녀석입죠. 아마 지금 있는 투사들 중에 제일 셀겁니다.(으쓱하며) 바로... 제가 잡아 왔습니다.
황제: 자,그럼 진짜 끝내 주도록 하라.
(사령관의 칼을 뽑아 메-사 가까이 바닥에 던져준다.)
메사: (칼을 보고 괴로운 듯) 테시우스 황제여, 제가 꼭 이 사람을 죽여야만 합니까?
황제: (놀라운 표정) 죽여야만 합니까라니? 사람 죽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사령관: 예 맞습니다. 폐하, 그런데라면 제가... 또 일가견이 있습니다.
(황제는 줄곧 사령관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메사: 그러나 황제여, 전 크리스천입니다.
황제: (놀라운과 분노로) 뭐, 크리스천이라구?
메사: 그렇습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살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큰 죄악입니다.
황제: (큰소리를 버럭지르며) 또 또... 저놈의 예수 그리스도,여호와 하나님, 이 세상에 그따위 신이 어디 있어? 신은 오직 나, 이 로마 황제 밖에는 없단 말이야.
사령관: 예, 맞습니다. 황제 폐하. 저 따위 미친 녀석의 말은 들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황제: 메사, 자 네가 저자를 죽이지 않으면 오히려 네가 죽는다. 그래도 죽이지 않겠는가?
메사: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황제: 바보 녀석, 크리스천들은 모두 다 미친놈들이야. (거친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가 앉으며) 누가 저런 녀석을 잡아 왔지?
(사령관이 당황하여 슬그머니 물러서는 사이, 관중들의 함성이 다시 터진다. 쓰러졌던 투사가 칼을 들고 메사의 등 뒤로 다가간다.)
메사: (하늘을 보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투사가 메-사를 칼로 치는 순간 조명과 함께 함성이 꺼진다. 잠시 후 불이 켜지면 경기장엔 모두 퇴장하고 마셀라스와 루셀라스 두 사람만 남아 있다.)
루셀라스: 어때 마셀라스, 오늘 좋은 구경했지? 자넨 오랫동안 변방에만 있다 왔으니까 이런 구경은 처음 했을 거야.
마셀라스: 좋은 구경이라구? 이따위 짓은 도무지 내 성미에 맞지 않아.
루셀라스: 아니, 왜?
마셀라스: 내가 보고 싶었던것은 규칙을 지키는 두 검사간의 깨끗한 시합이었어. 그러나 대 경기장에서 행하고 있는 것은 시합이 아니라 도살이야. 메사, 그 사나이는 용감했다. 왜 그를 죽여야만 했단 말인가?
루셀라스: 그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지.
마셀라스: 도대체,크리스천들이 무엇을 했단 말이야? 왜 그들은 저렇게 억울하게 칼을 맞고,또 어린아이나 여자까지 사자에게 뜯어 먹혀야 하는 거지?
루셀라스: 나도 확실히 잘 알지는 못해. 그들의 종교 활동은 항상 비밀에 쌓여 있거든. 그러나 내가 아는 바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오직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고, 우리의 신은 절대로 섬기지 않는다는 거야.
마셀라스: 예수 그리스도? 그가 누군데?
루셀라스: 그는 유대인인데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지.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그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믿는거야.
마셀라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저들을 미워하고 죽일 순 없지 않은가?
루셀라스: 또 그들은 전쟁은 죄악이라고 가르치며,우리의 명예로운 병사를 최하등 인간으로 여긴다.그래서 병사들은 칼을 내던지고 제국은 쇠퇴해 가는 거지.
마셀라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로마를 쇠퇴케 하는 것은 로마사람 자신들 같아. 그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옛날 명예로운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오히려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사자에게 뜯기는 것이나 보고 좋아하는 동물들이야.
루셀라스: 쉬.... 함부로 그런 얘기 말게,출세에 지장이 있으니. 그리고 크리스천들에 대한 나쁜 소문은 여러 가지 있지. 그들은 은밀한 다락방 같은 데 숨어서 제사를 드리며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 식인종들이라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을 저주하는 마법의 노래를 부른다고도 하지.
마셀라스: 그런 소문은 나도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 오늘 죽은 메사와 다른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니 그 소문에도 의심이 간다. 하여튼 언젠가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기회가 있겠지.
루셀라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오, 마셀라스. 자네에게 바로 그런 기회가 왔네.
마셀라스: 기회라니?
루셀라스: (품속에서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건네주며) 자, 황제의 위임장일세. 자네는 이제 크리스천들을 수색해서 잡아내는 대장으로 승진됐네.
마셀라스: 뭣이? 크리스천을 잡는 대장?
(두루마리를 뺏듯 받아 읽는다. 표정이 굳어진다.)
루셀라스: 자넨 승진소식이 기쁘지 않는 모양이군.
마셀라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일은 불쾌해. 대항할 힘도 없는 연약한 노인이나 어린 아이를 잡아다 사자 밥이 되게 하는 일 같은 건 명예롭지 못하거든.
루셀라스: 그러나 자네는 군인이야, 상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일세.
마셀라스: 나도 알고 있어. 싫은 걸 거절할 수도 없으니 더 불쾌한 일이 아니겠나? 그나저나 크리스천들이 숨어 있다는 지하묘소가 어디 있는지 좀 가르쳐 주게.
루셀라스: 지하묘소? 그건 로마 시 바로 밑에 뚫어져 있는 거대한 지하갱도를 말하는 것인데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그 크기도 알 수가 없어. 크리스천들은 위험을 느끼면 모두 지하묘소로 도망쳐 들어간다네. 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거기에 묻지. 로마 군인들은 무서워서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네.
마셀라스: 그곳에 들어가는 입구는 어딘가?
루셀라스: 입구는 헤아릴 수없이 많지.그렇기 때문에 우리 군인들 숫자만 가지고는 잡기 어려운 거야.
마셀라스: 어딘가 특히 수상한 곳은 없는가?
루셀라스: (잠시 생각) 음, 아피안 도로로 한번 가보게. 그곳은 지하묘소에서 모래를 파는 일꾼들이 많이 사는 곳이지. 언젠가 거기서 동료들의 시체를 몰래 운반해가는 크리스천들을 본적이 있네. 거기 가면 무슨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마셀라스: 아피안 도로?
루셀라스: 자, 자, 우리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기분전환이나 하러 가세. 하하.........
(둘이 퇴장할 때 불이 꺼진다.)
제 2 장
한 옆에 아피안 도로라는 팻말이 있다. 군복을 입은 마셀라스가 등장하자 거리의 두어 행인들이 그의 눈치를 살핀다. 한쪽에서 소년 폴리오와 짐을 든 인부 알마가 등장한다. 인부는 핼쓱한 얼굴에 눈이 깊이 들어간 모습이다.
마셀라스: (인부를 향해) 잠깐 멈춰라.
알마: 아니 왜 그러십니까? 나으리?
마셀라스: 너는 지하묘소에서 모래를 파는 인부지?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알마: 전, 모래 파는 인부가 아닌뎁쇼.
마셀라스: 거짓말 해도 소용없어.햇빛을 못 받아 창백한 자네의 얼굴과 눈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인부 천천히 마셀라스를 올려다보더니 별안간 짐을 버리고 뛰어 달아나 사라진다. 주위 사람들도 급히 사라진다. 폴리오도 달아나려는 것을 마셀라스가 붙잡아 무대 앞쪽으로 나온다.)
폴리오: (애원하는 표정으로) 아저씨 제발 놔 주세요. 날 잡아가면 우리 엄만 죽을지도 몰라요.
마셀라스: 꼬마야. 난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다만 몇 가지 물어 보려는 것뿐이란다.
폴리오: 난 아무것도 몰라요.
마셀라스: (달래는 시늉으로) 자...... 아는대로만 말해주렴.먼저 네 이름은?
폴리오: 폴리오
마셀라스: 집은 어디냐?
폴리오: 로마시내
마셀라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왔지?
폴리오: 난 심부름 왔어요.
마셀라스: 그럼 아까 그 남자는?
폴리오: 모래 파는 인부인데 내 짐을 들어 주었어요.
마셀라스: 짐 속엔 무엇이 들었니?
폴리오: 먹을 것.
마셀라스: 그걸 누구에게 주려고?
폴리오: (마셀라스를 외면하고는 말이 없다.).......
마셀라스: 자, 폴리오. 무서워하지 말고 말해 봐. 그걸 지하묘소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갖다 주려는 거지?
폴리오: 아...아니예요.전 지하묘소 같은 건 알지도 못해요.
마셀라스: 거짓말 하면 안돼.
폴리오: 저... 정말.... 이라니까요. (이때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온다.)
마셀라스: 벌써 저녁기도 시간이군. 자, 폴리오. 나를 따라 오너라. 저 쥬피터 신전에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자.
폴리오: 난 바빠요. 그냥 가게 해 주세요.
마셀라스: 안돼, 넌 내 포로야. 나는 지금껏 여러 신들을 예배하는 일에 한번도 게을러 본 적이 없다. 너도 같이 가서 거들어 줘야 할 게 있어.
폴리오: (완강하게) 안돼요.
마셀라스: (분명한 태도에 위축된 듯) 어째서지?
폴리오: 난 크리스천이거든요.
마셀라스: (입가에 미소르 띄우며) 그렇게 나올줄 알았다.
폴리오: (고개를 떨구고 잠자코 있다.)
마셀라스: 자,이제 나를 지하묘소 입구로 안내해라.
폴리오: 부탁이예요. 아저씨. 그것만은 할 수 없어요. 친구들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셀라스: 배신하지 않아도 돼. 지하로 통하는 수천 개의 입구 중에서 하나쯤 가르쳐 준다해 봤자 아무것도 아니지 않니? 그리고 우리 군인들이 입구를 하나도 모르고 있는 줄 아니?
폴리오: 그래도 안돼요. 이 밑엔 내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어요. 안내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고 말겠어요.
마셀라스: 흠, 용감하구나. 그렇지만 넌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폴리오: 모른다구요? 크리스천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난 많은 친구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매장하는 것도 거들었지요. 아저씨, 난 안내하지 않을 거예요. 날 감옥으로 데려가 주세요.
마셀라스: 그렇지만 꼬마야, 내가 널 잡아가면 네 친구들 마음이 어떻겠니? 또 엄마는 어떡하구.
폴리오: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며) 엄-마.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한다.) (이 때 한편에서 노인 호노리우스가 등장한다.)
호노리우스: 여보시오, 군인 양반.
마셀라스: 누구요 당신은?
호노리우스: 난 호노리우스라는 크리스천 장로올시다.
폴리오: (울음을 그치고 노인을 본다.) 아, 장로님. 왜 나오셨어요? 어서 피하세요.
호노리우스: (폴리오를 달래며) 걱정마라 폴리오. (마셀라스를 보며) 군인 양반, 제발 이 아이를 돌려보내주시오. 아직 어린것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대신 이 늙은이를 잡아 가시구려.
폴리오: (노인에게 매달리며) 안 돼요, 장로님.
마셀라스: 호노리우스, 난 이 아이를 잡아 가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 안내해 달라는 것뿐이었소.
호노리우스: 우리 크리스천들은 친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마셀라스: (답답한 듯) 글쎄 지금 난 크리스천들을 잡으러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호노리우스: 당신은 근위대장 마셀라스지요? 우린 당신이 크리스천을 잡는 대장으로 임명 받았다는 정보도 이미 들었습니다.
마셀라스: 그렇지만 호노리우스, 내가 만약 크리스천들 잡으러 왔다면 이렇게 무기도 없이 혼자만 왔겠소? 내가 이런 몸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내가 여러분의 포로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호노리우스: 그렇다면 당신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침범하려는 것입니까?
마셀라스: (숙연하게 무대중앙으로 나온다.) 나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선행과 도덕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신들을 두려워하고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죠. 그러나 로마군인이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보고 책을 통해 공부하는 사이에 로마이 신들을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나 자신보다도 훌륭하지 못하며 오히려 뒤져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난 플라톤과 킬케고르를 통해 이 세상엔 정말 선하신 오직 하나의 참 신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게 되었죠. 그리고 내 영혼은 그 신을 찾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호노리우스: 그런데 우리를 찾아오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마셀라스: 난 이전에 크리스천들에 대한 소문을 여러 곳에서 들어 왔지만 병영에 매여 있는 몸이라서 직접 그들과 대면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난 로마에 온 뒤 처음으로 원형경기장엘 갔었죠. 거기서 메사라는 사나이를 본 것입니다. 나는 그가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았소.
호노리우스: (고개를 끄덕인다.).....
마셀라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또 어린 소녀들이 야수에게 찢기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을 때까지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찬미 1이 흘러나온다.)
호노리우스: (고개를 떨구고 두 손을 모은다.)
마셀라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죽음이 정복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 로마군인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엊그제 저들은 어린이까지도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난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과연 저들이 찬송하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저들에게 죽음을 이기게 하고 숭고한 용기와 기쁨을 주는 이는 누구인가? 이런 의문으로 내 머리는 꽉 차버린 것입니다. 호노리우스, 부탁이요. 오늘의 일 때문에 당신들을 불리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게 크리스천의 신앙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시오.
호노리우스: (기쁜 표정으로)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소. 당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형제여 나를 따라 오시오.(마셀라스와 폴리오는 기뻐하며 호노리우스 뒤를 따라 퇴장한다. 음악과 함께 불이 꺼진다.)
제 3 장
로마 근위대 막사. 무대엔 의자가 두개 있고 그중 하나에 루셀라스가 앉아 있 다. 한쪽에서 근위대사령관이 등장한다.
사령관: (신경질적으로)루셀라스!
루셀라스: (일어나 경례를 하며) 예, 사령관 각하.
사령관: 도대체 마셀라스 그 친구는 어딜 갔길래 콧배기도 안 보이는 거지? 벌써 나흘이나 지났는데 말이야.
루셀라스: 아마 어디선가 크리스천들을 수색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령관: 수색하는 데 뭐 이리 시간이 많이 걸려? 요즘은 잡혀온 크리스천들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원형경기장이 놀고 있단 말이야. 황제 폐하께서 얼마나 성화를 부리는 줄 알아? 만약 내일도 크리스천을 못 잡아오면 날 대신 원형경기장에 집어넣어 사자 밥이 되게 하겠다는 거야. 알겠어?
루셀라스: 예, 알겠습니다.
사령관: 알긴 뭘 알아. 거기 서 있지만 말고 당장 가서 마셀라스를 찾아오지 못 해!
루셀라스: 예, 알겠습니다.(경례를 붙이고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사령관: (의자에 앉으며 혼자말로) 날 대신 경기장에 집어 넣겠다구? 정신나간 늙은이 같으니라구. 살코기는 지가 더 많은데 왜 날더러 사자 밥이 되라는 거야?
(이 때 마셀라스가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뛰어 들어온다.)
마셀라스: (웃음을 띄우고 큰소리로)루셀라스! (그러다 사령관임을 알아채고 부동자세를 취한다.)
사령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오호라, 드디어 왔군. 자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경에 빠졌는 줄 알아? 그래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잡아 왔나?
마셀라스: 크리스천들은 하나도 못 잡아왔습니다.
사령관: 아니 그럼, 나흘 동안이나 도대체 어디서 무얼 했단 말인가?
마셀라스: 지하묘소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사령관: 지하묘소에? (갑자기 만면에 웃음을 함빡 띄우며) 오호라, 그러니까 크리스천들 속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는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가지고 왔군. 역시. 역시 자넨 천재야. 자, 그럼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그놈들을 몽땅 잡아오라구. 아마 황제 폐하께서 자네에게 푸짐한 상을 내릴 걸세. 그리고 이 작전 누가 짰느냐고 물으시거든 (낮은 소리로) 내가 짰다고 말 좀 해 주게. 응?
마셀라스: 사령관님. 크리스천들은 잡을 수도 없지만 잡지도 않겠습니다.
사령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셀라스: 전 이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사령관: 뭐라구, 크리스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마셀라스, 정신 나갔군 자네. 크리스천들을 잡으라고 보냈더니 오히려 포섭당하고 와?
마셀라스: 포섭당한 것이 아니고 제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령관: 멍청이 같으니, 크리스천이 되면 앞으로 어찌되는지 모르는가?
마셀라스: 모든 걸 각오하고 있습니다.
사령관: 마셀라스, 정신 차리게. 도대체 왜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저주받은 크리스천이 되겠다는건가?
마셀라스: 그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령관: (벌떡 일어나며 마셀라스의 말문을 막는다.) 그만, 그만, 요술을 피워서 나까지 크리스천으로 만들려는 수작이지? 난 그따위 수법엔 안 넘어가. (독백조로) 하여튼 크리스천들이란 귀신같은 놈들이야. 몇일 사이에 그 충실하던 군인을 이렇게 획 돌게 하다니. (마셀라스를 향해) 자넨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잠시 후에 자네의 앞으로의 거처에 대해 명령서가 내려올 걸세.(총총걸음으로 무대 밖으로 나가며 혼잣말로) 나도 크리스천을 만들려구? 휴....하마터면 진짜로 원형경기장에 끌려갈 뻔 했네. (사령관이 나가자마셀라스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묵상기도를 한다. 이 때 문 쪽에서 루셀라스가 뛰어 들어온다.)
루셀라스: (반가운 표정으로) 마셀라스!
마셀라스: (고개를 들어 친구를 본다.) 루셀라스!
(일어나 둘이 반갑게 굳은 악수를 한다.)
루셀라스: 방금 사령관한테서 자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오는 길이네. 근데 얼굴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군.
마셀라스: 응, 그 동안 줄곧 지하묘소에 있었거든.
루셀라스: 그런데 자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게 사실인가?
마셀라스: 물론이야. 난 자네 말대로 아피안 도로에 가서 폴리오라는 아이와 크리스천 장로 호노리우스를 만났다네. 그리고 지하묘소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보고 크리스천의 교리를 배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아 알았다네.
루셀라스: 한낱 유태인의 죽음이 어찌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마셀라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셔. 그의 부활이 이 사실을 증명하지.
루셀라스: 아...알겠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닐세. 사령관이 나에게 명령서를 주었네.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자네도 짐작하겠지?
마셀라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루셀라스: 자네를 체포해 내일 아침 사형에 처하라는 거야. 그래도 아직 십자가에서 죽은 유태인을 따를 텐가?
마셀라스: 난 이제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네. 죽음은 하늘나라의 문이요, 더 좋은 부활의 약속이기 때문이지.
루셀라스: 정말 너무나 달라졌군, 마셀라스.그러나 자네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 아직 시간은 있네. 달아나게. 내 손으로 가장 친한 친구를 체포하지 않게 해 주게. 어서.
마셀라스: (천천히 망또를 풀어 바닥에 놓는다.)루셀라스. 자네의 우정은 평생 잊지 못할 걸세. 실은 자네와 함께 도망가고 싶지만 안 되겠지? 자넨 나보다 더 충성스런 군인이니까. 자, 부디 잘있게.
(둘은 굳은 악수를 하고 마셀라스는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루셀라스: (독백) 마셀라스 잘 가게. 자네 후임으로 내가 크리스천을 잡는 대장이 되었다네. 아 정말로.... 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제발 내 친구를 내 손으로 잡지 않게 해 주소서.
(심상찮은 음악과 함께 막이 내린다.)
제 4 장
막이 오르면 지하묘소. 몇 사람이 둘러앉은 가운데 촛불 두어 개만이 켜져 있다. 뒤쪽 중앙엔 조그만 십자가가 서 있다. 사람들 앞에 책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조용한 찬송을 부르고 있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두루마리를 펴 읽는다.
호노리우스: 미쁘다 이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왕노릇 할 것이라.너희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회중: 아멘.
호노리우스: 형제 여러분, 박해가 점점 더 심하여져 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로마 군인들이 지하묘소까지 침입을 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급히 몸을 피해 무사했으나 크리시피스 노인은 미처 피하지 못해 저들의 칼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검문검색도 더욱 심해져 친구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 것도 힘들게 되었습니다.(회중들 괴로운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주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세실리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장로님, 우리 폴리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늦은 적이 없었는데........
호노리우스: 걱정 말아요. 세실리아. 아마 마셀라스 형제와 함께 시체를 운반하러 갔을 것입니다.
세실리아: 그렇지만 둘 다 너무 늦어요.
(이때 마셀라스가 촛불을 들고 한편에서 등장한다.)
호노리우스: 오 마셀라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세실리아: (몸을 일으키며) 우리 폴리오는 어디 있죠?
마셀라스: 폴리오요? 전 못 봤는데요.
(세실리아,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주저 앉는다.)
호노리우스: 아니, 폴리오가 자네와 함께 가지 않았나?
마셀라스: 아니요. 폴리오가 아직 안 돌아왔습니까?
세실리아: (얼굴을 감싸며) 오, 폴리오.
마셀라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아인 혼자 다니는 일이 보통입니다.
세실리아: 걱정하지 말라구요? 요즘처럼 걱정스러운 때는 아직껏 없었답니다.
(다시 얼굴을 가리운다.)
호노리우스: 마셀라스,우린 자네도 걱정하고 있었네. 그래 지금껏 어디 있었나?
마셀라스: 전 시체를 운반하러 갔다가 바알바 부근에서 검문을 당했습니다. 전 곧 짐을 버리고 강으로 도망쳐 빠져 나왔지요.
호노리우스: 위험천만이었군. 조심하게. 자네의 목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으니까.
마셀라스: 그러나 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린 것이니까요.
호노리우스: 마셀라스, 자네의 믿음과 용기를 통해 오히려 우리가 힘을 얻네.
(이때 한사람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다. 전에 아피안 거리에서 폴리오와 함께 가던 인부 알마이다. 여자들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호노리우스: 누...누구요?
알마: 접니다. 장로님...(바닥에 기진해서 주저앉는다.)
호노리우스: 오 알마 형제. 휴 우린 로마군인인 줄만 알았지 뭔가. 그런데 무슨 일인가?
알마: 포....폴리오가...
세실리아: (놀라서) 우리 폴리오가 어떻게 됐어요?
알마: 로마 군인에게 ..... 잡혀 갔습니다.(세실리아 그대로 졸도한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세실리아를 부축한다.) 정보를 수집하다가 불심검문에 걸린 겁니다.
호노리우스: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오 주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어느 때까지 침묵하시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눈물양식으로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로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치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잠시 침묵)
마셀라스: (알마에게) 폴리오를 잡아간 대장이 누군 줄 압니까?
알마: 예, 그는 루셀라스라는 자입니다.
마셀라스: 루셀라스?
(마셀라스. 얼굴을 떨구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어 나간다.어두운 음악과 함께 촛불이 껴진다.)
제 5 장
원형경기장. 루셀라스 혼자 서서 경기장 한 가운데를 바라보고 있다. 경기장 한 가운데는 기둥이 하나 서 있다. 이때 조심스럽게 마셀라스가 등장한다.
마셀라스: (낮은 목소리로)루셀라스.
루셀라스: (심히 놀라며) 아니, 마셀라스 (둘이 굳은 악수를 한다.) 자네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나? 여긴 위험해. 자네 목엔 현상금이 걸려 있단 말이야.
마셀라스: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에게 급한 부탁이 있어 왔네.
루셀라스: 자네 목숨보다 급한 일인가?
마셀라스: 그래 이건 내 목숨보다 급해. 어제 자네 부하들이 아피안 거리에서 폴리오라는 아이를 잡아 왔지?
루셀라스: 응, 그 보고는 들었네.
마셀라스: 그래서 부탁하는 걸세. 제발 그 아이를 놓아 줄 수 없겠나?
루셀라스: 아니, 마셀라스. 자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로마군대의 규칙을 잊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그건 절대로 안돼. 차라리 날더러 자살을 하라고 부탁하게.
마셀라스: 규칙은 잘 알아. 그러나 루셀라스, 그 아이는 아직 12살 밖에 안 된 어린애야.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로마 귀족의 마지막 혈통이며 가엾은 한 어머니의 외아들이라네.
루셀라스: 로마 귀족의 마지막 혈통이라구:
마셀라스: 그래, 명문 셀비리 집안이야.
루셀라스: 셀비리 집안? 그럼 어머니라고 한 사람이 세실리아 부인인가?
마셀라스: 그렇다네. 그녀 역시 지하묘소의 피난민이야. 만약 자네가 그 아이를 죽이면 그 어머니도 죽을 것이고, 그러면 이후로 로마에서는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혈통을 찾아보지 못하게 될 걸세.
루셀라스: 그러나 할 수 없어. 마셀라스. 황제는 반미치광이야. 아마 그는 크리스천이라면 자기 아들도 서슴없이 죽일 걸세.
마셀라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드디어 결심한 듯) 그러면 루셀라스. 마지막으로 부탁일세. 그 아이를 현상금 붙은 범인과 교환할 수는 있겠지?
루셀라스: 교환하자구? 누구와 말인가?
마셀라스: 바로 날세.
루셀라스: 정신 나갔군. 그건 안 돼.
마셀라스: 루셀라스, 나는 홀홀단신 이름 없는 촌뜨기일 뿐이다. 사람이란 어차피 한번은 죽는 것인데 값지게 죽는 편이 옳지 않겠나? 주님 말씀에도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네.
루셀라스: 그러나 마셀라스. 내게 있어 자네는 내 목숨처럼 귀한 존재야. 그리고 소년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어. 바로 잠시 후에 그 아이를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네.
마셀라스: 잠시 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오 주여!
루셀라스: (친구의 등을 어루만지며)마셀라스, 왜 그렇게 위험한 모험을 자처 하는가? 진정 옛날의 자네로 돌아올 수는 없는가? 아니 돌아오지 않아 도 되네. 다만 자네의 신앙을 잠시만 숨기게. 얼마 안 있으면 황제도 죽을 것이고 그러면 신앙의 자유도 다시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우리의 신들에게 절하는 척 해 달란 말일세.
마셀라스: (루셀라스를 바라보며)루셀라스, 나 역시 옛날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네. (이때 트럼펫 팡파레가 울리며 함성이 터진다.)
루셀라스: 황제가 나온다. 들키기 전에 어서 피하게.(둘이 무대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황제가 근위대사령관과 등장하여 자리에 앉는다. 다시 함성이 터진다. 소년 폴리오가 끌려 나와 기둥에 묶인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폴리오에게 가까이 간다. 그 뒤로 근위대 사령관이 뒤따른다.)
황제: 흥, 요 꼬마 녀석 꽤 야무지게 생겼는데.
사령관: 예, 요 녀석이 바로 마커스 셀비리 장군의 외아들입니다.
황제: 뭣이? 마커스 셀비리 장군이라면 앗시리 전쟁에서 전사한.......
사령관: 맞습니다. 폐하.
황제: 아니 그런 명문 집안에서 이런 크리스천이 나왔단 말인가?
사령관: 글쎄 말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유분수지.
황제: 개천에서 용이 나다니? 거꾸로 됐어. 용에서 개천이 났다고 말을 해야지.
사령관: 아 예, 맞습니다. 폐하.
황제: (폴리오에게) 꼬마야, 너 죽는 게 무섭지?
폴리오: (약간 겁을 먹은 표정이다.)
황제: 그 예순지 뭔지 다시는 안 믿겠다고 한마디만 해라. 그러면 살려줄게. 응?
폴리오: (완강하게) 싫어요.
황제: 어허, 너의 아버지를 한 번 생각해 봐라. 네가 이렇게 죽으면 네 가문의 망신이야. 그까짓 그리스도가 네 집안보다 뭐 그리 중하냐? 안 그래?
폴리오: 싫어요.
사령관: 이놈 싫다니. 어른이 시키면 예, 알겠습니다하고 공손히 순종해야지.
폴리오: 싫어요.
사령관: 가정교육이 형편없는 아이입니다. 폐하.
황제: 아냐 그건 가정교육 때문이 아니야. 바로 그리스돈가 뭔가가 저 녀석의 혼을 빼버린 거야. 크리스천들은 한번 미치면 어른도 모르고 임금도 모른다. 자, 더 이상 시간 끌 것 없다. 노여워하시는 아폴로 신은 제물을 원하신다. 사형을 집행하라.(황제, 자리로 돌아간다. 사형집행 군사들이 나와 폴리오 근처에 연기를 피우기 시작한다. 관중들의 함성이 커진다.)
폴리오: (고통을 참는 듯한 음성으로) 예수님, 예수님, 날 인도하소서. (폴리오가 고개를 떨구자 다시 관중의 함성이 커진다. 이때 뒤에서 마셀라스가 나오며 외치기 시작한다.)
마셀라스: 죽음이여, 너의 이김이 어디있느냐? 죽음이여,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도다.
(관중들의 격노한 음성, 루셀라스가 당황하여 마셀라스를 붙잡는다.)
루셀라스: 마셀라스, 죽고 싶어 그래?
마셀라스: 루셀라스, 미안하다. 그러나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셀라스: 도망쳐라 마셀라스. 어서.
마셀라스: 아니 그럴 순 없다. 그러면 자네가 오히려 벌을 받게 된다.
(다시 격노한 관중들의 함성)
황제: (일어서며) 저 미치광이는 누구지?
사령관: 저 자는 바로 현상 붙은 죄인 마셀라스입니다.
황제: 근위대장 마셀라스? 오 아폴로 신을 노하게 한 장본인이구나. 여봐라. 사령관!
사령관: 예, 폐하.
황제: 당장 저놈을 잡아다 불살라 버려라.
(관중들 “끌어내라” “죽여라” 는 야유가 섞여 커진다. 사령관이 손짓하자 군인들이 마셀라스를 끌어 내린다. 죽은 폴리오는 옮겨나간다. 마셀라스가 폴리오에게 나아가려다 군병에게 저지당한다. 마셀라스, 폴리오가 묶였던 기둥에 묶인다. 관중들 함성이 커진다.)
황제: (발악적으로) 죽여-죽여 버려! 크리스천들은 몽땅 죽이란 말야.
사령관: (황제 흉내) 죽여-죽여 버려! 크리스천들은 몽땅 죽이란 말야.
(병사가 연기를 피우자 함성은 더 커진다.)
마셀라스: 나는 이미 피를 뿌린 제물이 되었고...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었도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도다. (큰소리로) 승--리!
(고개를 숙인다. 장엄한 찬송과 함께 불이 꺼진다.)
제 6 장
카다콤(지하묘소 안)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앉아 있다. 침울한 음악이 흐른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말을 시작한다.
호노리우스: 형제들이여, 오늘 또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소년 폴리오와 형제 마셀라스가 처형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였고 주님은 그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고통도 없고 숨을 필요도 없이 주 안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슬픈 음악. 이때 밖에서 인부 알마가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오, 알마. 그래 시체를 가져왔소?
알마: 예, 이것이 폴리오의 남은 몸입니다.
세실리아: (눈물을 흘리며 상자를 끌어안는다.) 오 폴리오, 폴리오! (다른 성도들이 그녀를 부축하고 위로한다.)
호노리우스: 마셀라스의 시체는?
알마: (뒤에 손짓을 하며) 이리 오십시오. (루셀라스가 상자를 들고 등장한다.)
호노리우스: 당신은 누구십니까?
루셀라스: 난 마셀라스의 친구 루셀라스입니다. 이것이 마셀라스의 몸입니다. (상자를 호노리우스에게 맡긴다.)
알마: 이 분이 시체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 주셨지요.
호노리우스: 루셀라스 감사합니다. 마셀라스는 항상 당신 이야기뿐이었습니다.
루셀라스: 전 내 친구를 내 가족의 무덤에 묻어 주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성대하게 장사 지내고 싶었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의 형제 마셀라스는 아마도 그의 새로운 신앙에 의한 간소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친구의 바람이라고 생각헤서, 여기로 가져왔습니다.
호노리우스: 감사합니다. 루셀라스. 마셀라스 형제는 죽었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항상 우리에게 용기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루셀라스: 호노리우스,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호노리우스: 무슨 부탁입니까?
루셀라스: 제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호노리우스: 좋고 말구요. 루셀라스. 당신은 휼륭한 분입니다. 마셀라스가 당신의 좋은 친구였듯이 당신도 우리의 좋은 친구입니다.
루셀라스: 감사합니다. 호노리우스.
호노리우스: (회중들을 향해) 많은 우리의 형제들이 환란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계속해서 남은 자들을 격려하시며 거룩한 순교자들의 피 위에 또 다른 믿음의 후손을 꽃 피우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찬송을 부른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폴리오의 관과 마셀라스의 관을 가지런히 놓는다. 루셀라스는 마셀라스의 관 가까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앉는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두루마리 책을 편다.)
호노리우스: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기가 한량없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리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에게 장막을 치시도다. 이제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며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도 상하지 아니할찌라.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
(밝고 힘찬 음악과 함께 막이 내린다.)
카다콤(지하 묘소)의 순교자
◆ 등장 인물
마셀라스 ----------- 근위대 장교
루셀라스 ----------- 근위대 장교
호노리우스 --------- 크리스천 장로
폴리오 ------------- 크리스천 소년
세실리아 ----------- 크리스천, 폴리오의 어머니
알마 --------------- 크리스천, 모래 파는 일꾼
메사 --------------- 크리스천, 투사
황제, 근위대사령관, 투사A, 그 외 병사1, 2 , 성도1, 2, 3
◆ 배경
때: 기독교 박해가 심하던 테시우스 황제 당시 (제위 A.D. 249-251)
장소: 로마 시
* 극중의 찬송은 송영 내지 바로크 시대의 성곡 중에서 주제에 맞게 선택.
제 1 장
원형 경기장, 왼쪽 중앙에 황제가 앉아 있고 우편에 근위대사령관, 좌편으로 마셀라스와 루셀라스가 서 있다. 관중들의 소음 속에 무대 한 가운데서는 투사 메사와 투사 A가 레슬링을 하고 있다. 메사가 상대방을 들어 쓰러뜨린다.
(관중들의 함성, 음향효과)
(황제, 유쾌히 웃으며 메-사에게로 나온다. 사령관도 그 옆에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 나온다.
황제: 잘 싸웠다. 그래, 네 이름이 뭔고?
메사: 메사라고 합니다.
사령관: 이번에 새로 아시아에서 포로로 잡아 왔는데 끝내 주는 녀석입죠. 아마 지금 있는 투사들 중에 제일 셀겁니다.(으쓱하며) 바로... 제가 잡아 왔습니다.
황제: 자,그럼 진짜 끝내 주도록 하라.
(사령관의 칼을 뽑아 메-사 가까이 바닥에 던져준다.)
메사: (칼을 보고 괴로운 듯) 테시우스 황제여, 제가 꼭 이 사람을 죽여야만 합니까?
황제: (놀라운 표정) 죽여야만 합니까라니? 사람 죽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사령관: 예 맞습니다. 폐하, 그런데라면 제가... 또 일가견이 있습니다.
(황제는 줄곧 사령관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메사: 그러나 황제여, 전 크리스천입니다.
황제: (놀라운과 분노로) 뭐, 크리스천이라구?
메사: 그렇습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살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큰 죄악입니다.
황제: (큰소리를 버럭지르며) 또 또... 저놈의 예수 그리스도,여호와 하나님, 이 세상에 그따위 신이 어디 있어? 신은 오직 나, 이 로마 황제 밖에는 없단 말이야.
사령관: 예, 맞습니다. 황제 폐하. 저 따위 미친 녀석의 말은 들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황제: 메사, 자 네가 저자를 죽이지 않으면 오히려 네가 죽는다. 그래도 죽이지 않겠는가?
메사: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황제: 바보 녀석, 크리스천들은 모두 다 미친놈들이야. (거친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가 앉으며) 누가 저런 녀석을 잡아 왔지?
(사령관이 당황하여 슬그머니 물러서는 사이, 관중들의 함성이 다시 터진다. 쓰러졌던 투사가 칼을 들고 메사의 등 뒤로 다가간다.)
메사: (하늘을 보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투사가 메-사를 칼로 치는 순간 조명과 함께 함성이 꺼진다. 잠시 후 불이 켜지면 경기장엔 모두 퇴장하고 마셀라스와 루셀라스 두 사람만 남아 있다.)
루셀라스: 어때 마셀라스, 오늘 좋은 구경했지? 자넨 오랫동안 변방에만 있다 왔으니까 이런 구경은 처음 했을 거야.
마셀라스: 좋은 구경이라구? 이따위 짓은 도무지 내 성미에 맞지 않아.
루셀라스: 아니, 왜?
마셀라스: 내가 보고 싶었던것은 규칙을 지키는 두 검사간의 깨끗한 시합이었어. 그러나 대 경기장에서 행하고 있는 것은 시합이 아니라 도살이야. 메사, 그 사나이는 용감했다. 왜 그를 죽여야만 했단 말인가?
루셀라스: 그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지.
마셀라스: 도대체,크리스천들이 무엇을 했단 말이야? 왜 그들은 저렇게 억울하게 칼을 맞고,또 어린아이나 여자까지 사자에게 뜯어 먹혀야 하는 거지?
루셀라스: 나도 확실히 잘 알지는 못해. 그들의 종교 활동은 항상 비밀에 쌓여 있거든. 그러나 내가 아는 바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오직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고, 우리의 신은 절대로 섬기지 않는다는 거야.
마셀라스: 예수 그리스도? 그가 누군데?
루셀라스: 그는 유대인인데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지.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그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믿는거야.
마셀라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저들을 미워하고 죽일 순 없지 않은가?
루셀라스: 또 그들은 전쟁은 죄악이라고 가르치며,우리의 명예로운 병사를 최하등 인간으로 여긴다.그래서 병사들은 칼을 내던지고 제국은 쇠퇴해 가는 거지.
마셀라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로마를 쇠퇴케 하는 것은 로마사람 자신들 같아. 그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옛날 명예로운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오히려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사자에게 뜯기는 것이나 보고 좋아하는 동물들이야.
루셀라스: 쉬.... 함부로 그런 얘기 말게,출세에 지장이 있으니. 그리고 크리스천들에 대한 나쁜 소문은 여러 가지 있지. 그들은 은밀한 다락방 같은 데 숨어서 제사를 드리며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 식인종들이라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을 저주하는 마법의 노래를 부른다고도 하지.
마셀라스: 그런 소문은 나도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 오늘 죽은 메사와 다른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니 그 소문에도 의심이 간다. 하여튼 언젠가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기회가 있겠지.
루셀라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오, 마셀라스. 자네에게 바로 그런 기회가 왔네.
마셀라스: 기회라니?
루셀라스: (품속에서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건네주며) 자, 황제의 위임장일세. 자네는 이제 크리스천들을 수색해서 잡아내는 대장으로 승진됐네.
마셀라스: 뭣이? 크리스천을 잡는 대장?
(두루마리를 뺏듯 받아 읽는다. 표정이 굳어진다.)
루셀라스: 자넨 승진소식이 기쁘지 않는 모양이군.
마셀라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일은 불쾌해. 대항할 힘도 없는 연약한 노인이나 어린 아이를 잡아다 사자 밥이 되게 하는 일 같은 건 명예롭지 못하거든.
루셀라스: 그러나 자네는 군인이야, 상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일세.
마셀라스: 나도 알고 있어. 싫은 걸 거절할 수도 없으니 더 불쾌한 일이 아니겠나? 그나저나 크리스천들이 숨어 있다는 지하묘소가 어디 있는지 좀 가르쳐 주게.
루셀라스: 지하묘소? 그건 로마 시 바로 밑에 뚫어져 있는 거대한 지하갱도를 말하는 것인데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그 크기도 알 수가 없어. 크리스천들은 위험을 느끼면 모두 지하묘소로 도망쳐 들어간다네. 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거기에 묻지. 로마 군인들은 무서워서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네.
마셀라스: 그곳에 들어가는 입구는 어딘가?
루셀라스: 입구는 헤아릴 수없이 많지.그렇기 때문에 우리 군인들 숫자만 가지고는 잡기 어려운 거야.
마셀라스: 어딘가 특히 수상한 곳은 없는가?
루셀라스: (잠시 생각) 음, 아피안 도로로 한번 가보게. 그곳은 지하묘소에서 모래를 파는 일꾼들이 많이 사는 곳이지. 언젠가 거기서 동료들의 시체를 몰래 운반해가는 크리스천들을 본적이 있네. 거기 가면 무슨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마셀라스: 아피안 도로?
루셀라스: 자, 자, 우리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기분전환이나 하러 가세. 하하.........
(둘이 퇴장할 때 불이 꺼진다.)
제 2 장
한 옆에 아피안 도로라는 팻말이 있다. 군복을 입은 마셀라스가 등장하자 거리의 두어 행인들이 그의 눈치를 살핀다. 한쪽에서 소년 폴리오와 짐을 든 인부 알마가 등장한다. 인부는 핼쓱한 얼굴에 눈이 깊이 들어간 모습이다.
마셀라스: (인부를 향해) 잠깐 멈춰라.
알마: 아니 왜 그러십니까? 나으리?
마셀라스: 너는 지하묘소에서 모래를 파는 인부지?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알마: 전, 모래 파는 인부가 아닌뎁쇼.
마셀라스: 거짓말 해도 소용없어.햇빛을 못 받아 창백한 자네의 얼굴과 눈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인부 천천히 마셀라스를 올려다보더니 별안간 짐을 버리고 뛰어 달아나 사라진다. 주위 사람들도 급히 사라진다. 폴리오도 달아나려는 것을 마셀라스가 붙잡아 무대 앞쪽으로 나온다.)
폴리오: (애원하는 표정으로) 아저씨 제발 놔 주세요. 날 잡아가면 우리 엄만 죽을지도 몰라요.
마셀라스: 꼬마야. 난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다만 몇 가지 물어 보려는 것뿐이란다.
폴리오: 난 아무것도 몰라요.
마셀라스: (달래는 시늉으로) 자...... 아는대로만 말해주렴.먼저 네 이름은?
폴리오: 폴리오
마셀라스: 집은 어디냐?
폴리오: 로마시내
마셀라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왔지?
폴리오: 난 심부름 왔어요.
마셀라스: 그럼 아까 그 남자는?
폴리오: 모래 파는 인부인데 내 짐을 들어 주었어요.
마셀라스: 짐 속엔 무엇이 들었니?
폴리오: 먹을 것.
마셀라스: 그걸 누구에게 주려고?
폴리오: (마셀라스를 외면하고는 말이 없다.).......
마셀라스: 자, 폴리오. 무서워하지 말고 말해 봐. 그걸 지하묘소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갖다 주려는 거지?
폴리오: 아...아니예요.전 지하묘소 같은 건 알지도 못해요.
마셀라스: 거짓말 하면 안돼.
폴리오: 저... 정말.... 이라니까요. (이때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온다.)
마셀라스: 벌써 저녁기도 시간이군. 자, 폴리오. 나를 따라 오너라. 저 쥬피터 신전에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자.
폴리오: 난 바빠요. 그냥 가게 해 주세요.
마셀라스: 안돼, 넌 내 포로야. 나는 지금껏 여러 신들을 예배하는 일에 한번도 게을러 본 적이 없다. 너도 같이 가서 거들어 줘야 할 게 있어.
폴리오: (완강하게) 안돼요.
마셀라스: (분명한 태도에 위축된 듯) 어째서지?
폴리오: 난 크리스천이거든요.
마셀라스: (입가에 미소르 띄우며) 그렇게 나올줄 알았다.
폴리오: (고개를 떨구고 잠자코 있다.)
마셀라스: 자,이제 나를 지하묘소 입구로 안내해라.
폴리오: 부탁이예요. 아저씨. 그것만은 할 수 없어요. 친구들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셀라스: 배신하지 않아도 돼. 지하로 통하는 수천 개의 입구 중에서 하나쯤 가르쳐 준다해 봤자 아무것도 아니지 않니? 그리고 우리 군인들이 입구를 하나도 모르고 있는 줄 아니?
폴리오: 그래도 안돼요. 이 밑엔 내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어요. 안내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고 말겠어요.
마셀라스: 흠, 용감하구나. 그렇지만 넌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폴리오: 모른다구요? 크리스천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난 많은 친구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매장하는 것도 거들었지요. 아저씨, 난 안내하지 않을 거예요. 날 감옥으로 데려가 주세요.
마셀라스: 그렇지만 꼬마야, 내가 널 잡아가면 네 친구들 마음이 어떻겠니? 또 엄마는 어떡하구.
폴리오: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며) 엄-마.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한다.) (이 때 한편에서 노인 호노리우스가 등장한다.)
호노리우스: 여보시오, 군인 양반.
마셀라스: 누구요 당신은?
호노리우스: 난 호노리우스라는 크리스천 장로올시다.
폴리오: (울음을 그치고 노인을 본다.) 아, 장로님. 왜 나오셨어요? 어서 피하세요.
호노리우스: (폴리오를 달래며) 걱정마라 폴리오. (마셀라스를 보며) 군인 양반, 제발 이 아이를 돌려보내주시오. 아직 어린것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대신 이 늙은이를 잡아 가시구려.
폴리오: (노인에게 매달리며) 안 돼요, 장로님.
마셀라스: 호노리우스, 난 이 아이를 잡아 가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 안내해 달라는 것뿐이었소.
호노리우스: 우리 크리스천들은 친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마셀라스: (답답한 듯) 글쎄 지금 난 크리스천들을 잡으러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호노리우스: 당신은 근위대장 마셀라스지요? 우린 당신이 크리스천을 잡는 대장으로 임명 받았다는 정보도 이미 들었습니다.
마셀라스: 그렇지만 호노리우스, 내가 만약 크리스천들 잡으러 왔다면 이렇게 무기도 없이 혼자만 왔겠소? 내가 이런 몸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내가 여러분의 포로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호노리우스: 그렇다면 당신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침범하려는 것입니까?
마셀라스: (숙연하게 무대중앙으로 나온다.) 나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선행과 도덕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신들을 두려워하고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죠. 그러나 로마군인이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보고 책을 통해 공부하는 사이에 로마이 신들을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나 자신보다도 훌륭하지 못하며 오히려 뒤져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난 플라톤과 킬케고르를 통해 이 세상엔 정말 선하신 오직 하나의 참 신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게 되었죠. 그리고 내 영혼은 그 신을 찾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호노리우스: 그런데 우리를 찾아오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마셀라스: 난 이전에 크리스천들에 대한 소문을 여러 곳에서 들어 왔지만 병영에 매여 있는 몸이라서 직접 그들과 대면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난 로마에 온 뒤 처음으로 원형경기장엘 갔었죠. 거기서 메사라는 사나이를 본 것입니다. 나는 그가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았소.
호노리우스: (고개를 끄덕인다.).....
마셀라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또 어린 소녀들이 야수에게 찢기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을 때까지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찬미 1이 흘러나온다.)
호노리우스: (고개를 떨구고 두 손을 모은다.)
마셀라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죽음이 정복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 로마군인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엊그제 저들은 어린이까지도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난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과연 저들이 찬송하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저들에게 죽음을 이기게 하고 숭고한 용기와 기쁨을 주는 이는 누구인가? 이런 의문으로 내 머리는 꽉 차버린 것입니다. 호노리우스, 부탁이요. 오늘의 일 때문에 당신들을 불리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게 크리스천의 신앙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시오.
호노리우스: (기쁜 표정으로)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소. 당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형제여 나를 따라 오시오.(마셀라스와 폴리오는 기뻐하며 호노리우스 뒤를 따라 퇴장한다. 음악과 함께 불이 꺼진다.)
제 3 장
로마 근위대 막사. 무대엔 의자가 두개 있고 그중 하나에 루셀라스가 앉아 있 다. 한쪽에서 근위대사령관이 등장한다.
사령관: (신경질적으로)루셀라스!
루셀라스: (일어나 경례를 하며) 예, 사령관 각하.
사령관: 도대체 마셀라스 그 친구는 어딜 갔길래 콧배기도 안 보이는 거지? 벌써 나흘이나 지났는데 말이야.
루셀라스: 아마 어디선가 크리스천들을 수색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령관: 수색하는 데 뭐 이리 시간이 많이 걸려? 요즘은 잡혀온 크리스천들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원형경기장이 놀고 있단 말이야. 황제 폐하께서 얼마나 성화를 부리는 줄 알아? 만약 내일도 크리스천을 못 잡아오면 날 대신 원형경기장에 집어넣어 사자 밥이 되게 하겠다는 거야. 알겠어?
루셀라스: 예, 알겠습니다.
사령관: 알긴 뭘 알아. 거기 서 있지만 말고 당장 가서 마셀라스를 찾아오지 못 해!
루셀라스: 예, 알겠습니다.(경례를 붙이고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사령관: (의자에 앉으며 혼자말로) 날 대신 경기장에 집어 넣겠다구? 정신나간 늙은이 같으니라구. 살코기는 지가 더 많은데 왜 날더러 사자 밥이 되라는 거야?
(이 때 마셀라스가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뛰어 들어온다.)
마셀라스: (웃음을 띄우고 큰소리로)루셀라스! (그러다 사령관임을 알아채고 부동자세를 취한다.)
사령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오호라, 드디어 왔군. 자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경에 빠졌는 줄 알아? 그래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잡아 왔나?
마셀라스: 크리스천들은 하나도 못 잡아왔습니다.
사령관: 아니 그럼, 나흘 동안이나 도대체 어디서 무얼 했단 말인가?
마셀라스: 지하묘소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사령관: 지하묘소에? (갑자기 만면에 웃음을 함빡 띄우며) 오호라, 그러니까 크리스천들 속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는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가지고 왔군. 역시. 역시 자넨 천재야. 자, 그럼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그놈들을 몽땅 잡아오라구. 아마 황제 폐하께서 자네에게 푸짐한 상을 내릴 걸세. 그리고 이 작전 누가 짰느냐고 물으시거든 (낮은 소리로) 내가 짰다고 말 좀 해 주게. 응?
마셀라스: 사령관님. 크리스천들은 잡을 수도 없지만 잡지도 않겠습니다.
사령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셀라스: 전 이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사령관: 뭐라구, 크리스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마셀라스, 정신 나갔군 자네. 크리스천들을 잡으라고 보냈더니 오히려 포섭당하고 와?
마셀라스: 포섭당한 것이 아니고 제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령관: 멍청이 같으니, 크리스천이 되면 앞으로 어찌되는지 모르는가?
마셀라스: 모든 걸 각오하고 있습니다.
사령관: 마셀라스, 정신 차리게. 도대체 왜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저주받은 크리스천이 되겠다는건가?
마셀라스: 그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령관: (벌떡 일어나며 마셀라스의 말문을 막는다.) 그만, 그만, 요술을 피워서 나까지 크리스천으로 만들려는 수작이지? 난 그따위 수법엔 안 넘어가. (독백조로) 하여튼 크리스천들이란 귀신같은 놈들이야. 몇일 사이에 그 충실하던 군인을 이렇게 획 돌게 하다니. (마셀라스를 향해) 자넨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잠시 후에 자네의 앞으로의 거처에 대해 명령서가 내려올 걸세.(총총걸음으로 무대 밖으로 나가며 혼잣말로) 나도 크리스천을 만들려구? 휴....하마터면 진짜로 원형경기장에 끌려갈 뻔 했네. (사령관이 나가자마셀라스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묵상기도를 한다. 이 때 문 쪽에서 루셀라스가 뛰어 들어온다.)
루셀라스: (반가운 표정으로) 마셀라스!
마셀라스: (고개를 들어 친구를 본다.) 루셀라스!
(일어나 둘이 반갑게 굳은 악수를 한다.)
루셀라스: 방금 사령관한테서 자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오는 길이네. 근데 얼굴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군.
마셀라스: 응, 그 동안 줄곧 지하묘소에 있었거든.
루셀라스: 그런데 자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게 사실인가?
마셀라스: 물론이야. 난 자네 말대로 아피안 도로에 가서 폴리오라는 아이와 크리스천 장로 호노리우스를 만났다네. 그리고 지하묘소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보고 크리스천의 교리를 배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아 알았다네.
루셀라스: 한낱 유태인의 죽음이 어찌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마셀라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셔. 그의 부활이 이 사실을 증명하지.
루셀라스: 아...알겠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닐세. 사령관이 나에게 명령서를 주었네.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자네도 짐작하겠지?
마셀라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루셀라스: 자네를 체포해 내일 아침 사형에 처하라는 거야. 그래도 아직 십자가에서 죽은 유태인을 따를 텐가?
마셀라스: 난 이제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네. 죽음은 하늘나라의 문이요, 더 좋은 부활의 약속이기 때문이지.
루셀라스: 정말 너무나 달라졌군, 마셀라스.그러나 자네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 아직 시간은 있네. 달아나게. 내 손으로 가장 친한 친구를 체포하지 않게 해 주게. 어서.
마셀라스: (천천히 망또를 풀어 바닥에 놓는다.)루셀라스. 자네의 우정은 평생 잊지 못할 걸세. 실은 자네와 함께 도망가고 싶지만 안 되겠지? 자넨 나보다 더 충성스런 군인이니까. 자, 부디 잘있게.
(둘은 굳은 악수를 하고 마셀라스는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루셀라스: (독백) 마셀라스 잘 가게. 자네 후임으로 내가 크리스천을 잡는 대장이 되었다네. 아 정말로.... 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제발 내 친구를 내 손으로 잡지 않게 해 주소서.
(심상찮은 음악과 함께 막이 내린다.)
제 4 장
막이 오르면 지하묘소. 몇 사람이 둘러앉은 가운데 촛불 두어 개만이 켜져 있다. 뒤쪽 중앙엔 조그만 십자가가 서 있다. 사람들 앞에 책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조용한 찬송을 부르고 있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두루마리를 펴 읽는다.
호노리우스: 미쁘다 이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왕노릇 할 것이라.너희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회중: 아멘.
호노리우스: 형제 여러분, 박해가 점점 더 심하여져 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로마 군인들이 지하묘소까지 침입을 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급히 몸을 피해 무사했으나 크리시피스 노인은 미처 피하지 못해 저들의 칼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검문검색도 더욱 심해져 친구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 것도 힘들게 되었습니다.(회중들 괴로운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주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세실리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장로님, 우리 폴리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늦은 적이 없었는데........
호노리우스: 걱정 말아요. 세실리아. 아마 마셀라스 형제와 함께 시체를 운반하러 갔을 것입니다.
세실리아: 그렇지만 둘 다 너무 늦어요.
(이때 마셀라스가 촛불을 들고 한편에서 등장한다.)
호노리우스: 오 마셀라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세실리아: (몸을 일으키며) 우리 폴리오는 어디 있죠?
마셀라스: 폴리오요? 전 못 봤는데요.
(세실리아,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주저 앉는다.)
호노리우스: 아니, 폴리오가 자네와 함께 가지 않았나?
마셀라스: 아니요. 폴리오가 아직 안 돌아왔습니까?
세실리아: (얼굴을 감싸며) 오, 폴리오.
마셀라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아인 혼자 다니는 일이 보통입니다.
세실리아: 걱정하지 말라구요? 요즘처럼 걱정스러운 때는 아직껏 없었답니다.
(다시 얼굴을 가리운다.)
호노리우스: 마셀라스,우린 자네도 걱정하고 있었네. 그래 지금껏 어디 있었나?
마셀라스: 전 시체를 운반하러 갔다가 바알바 부근에서 검문을 당했습니다. 전 곧 짐을 버리고 강으로 도망쳐 빠져 나왔지요.
호노리우스: 위험천만이었군. 조심하게. 자네의 목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으니까.
마셀라스: 그러나 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린 것이니까요.
호노리우스: 마셀라스, 자네의 믿음과 용기를 통해 오히려 우리가 힘을 얻네.
(이때 한사람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다. 전에 아피안 거리에서 폴리오와 함께 가던 인부 알마이다. 여자들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호노리우스: 누...누구요?
알마: 접니다. 장로님...(바닥에 기진해서 주저앉는다.)
호노리우스: 오 알마 형제. 휴 우린 로마군인인 줄만 알았지 뭔가. 그런데 무슨 일인가?
알마: 포....폴리오가...
세실리아: (놀라서) 우리 폴리오가 어떻게 됐어요?
알마: 로마 군인에게 ..... 잡혀 갔습니다.(세실리아 그대로 졸도한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세실리아를 부축한다.) 정보를 수집하다가 불심검문에 걸린 겁니다.
호노리우스: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오 주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어느 때까지 침묵하시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눈물양식으로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로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치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잠시 침묵)
마셀라스: (알마에게) 폴리오를 잡아간 대장이 누군 줄 압니까?
알마: 예, 그는 루셀라스라는 자입니다.
마셀라스: 루셀라스?
(마셀라스. 얼굴을 떨구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어 나간다.어두운 음악과 함께 촛불이 껴진다.)
제 5 장
원형경기장. 루셀라스 혼자 서서 경기장 한 가운데를 바라보고 있다. 경기장 한 가운데는 기둥이 하나 서 있다. 이때 조심스럽게 마셀라스가 등장한다.
마셀라스: (낮은 목소리로)루셀라스.
루셀라스: (심히 놀라며) 아니, 마셀라스 (둘이 굳은 악수를 한다.) 자네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나? 여긴 위험해. 자네 목엔 현상금이 걸려 있단 말이야.
마셀라스: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에게 급한 부탁이 있어 왔네.
루셀라스: 자네 목숨보다 급한 일인가?
마셀라스: 그래 이건 내 목숨보다 급해. 어제 자네 부하들이 아피안 거리에서 폴리오라는 아이를 잡아 왔지?
루셀라스: 응, 그 보고는 들었네.
마셀라스: 그래서 부탁하는 걸세. 제발 그 아이를 놓아 줄 수 없겠나?
루셀라스: 아니, 마셀라스. 자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로마군대의 규칙을 잊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그건 절대로 안돼. 차라리 날더러 자살을 하라고 부탁하게.
마셀라스: 규칙은 잘 알아. 그러나 루셀라스, 그 아이는 아직 12살 밖에 안 된 어린애야.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로마 귀족의 마지막 혈통이며 가엾은 한 어머니의 외아들이라네.
루셀라스: 로마 귀족의 마지막 혈통이라구:
마셀라스: 그래, 명문 셀비리 집안이야.
루셀라스: 셀비리 집안? 그럼 어머니라고 한 사람이 세실리아 부인인가?
마셀라스: 그렇다네. 그녀 역시 지하묘소의 피난민이야. 만약 자네가 그 아이를 죽이면 그 어머니도 죽을 것이고, 그러면 이후로 로마에서는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혈통을 찾아보지 못하게 될 걸세.
루셀라스: 그러나 할 수 없어. 마셀라스. 황제는 반미치광이야. 아마 그는 크리스천이라면 자기 아들도 서슴없이 죽일 걸세.
마셀라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드디어 결심한 듯) 그러면 루셀라스. 마지막으로 부탁일세. 그 아이를 현상금 붙은 범인과 교환할 수는 있겠지?
루셀라스: 교환하자구? 누구와 말인가?
마셀라스: 바로 날세.
루셀라스: 정신 나갔군. 그건 안 돼.
마셀라스: 루셀라스, 나는 홀홀단신 이름 없는 촌뜨기일 뿐이다. 사람이란 어차피 한번은 죽는 것인데 값지게 죽는 편이 옳지 않겠나? 주님 말씀에도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네.
루셀라스: 그러나 마셀라스. 내게 있어 자네는 내 목숨처럼 귀한 존재야. 그리고 소년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어. 바로 잠시 후에 그 아이를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네.
마셀라스: 잠시 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오 주여!
루셀라스: (친구의 등을 어루만지며)마셀라스, 왜 그렇게 위험한 모험을 자처 하는가? 진정 옛날의 자네로 돌아올 수는 없는가? 아니 돌아오지 않아 도 되네. 다만 자네의 신앙을 잠시만 숨기게. 얼마 안 있으면 황제도 죽을 것이고 그러면 신앙의 자유도 다시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우리의 신들에게 절하는 척 해 달란 말일세.
마셀라스: (루셀라스를 바라보며)루셀라스, 나 역시 옛날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네. (이때 트럼펫 팡파레가 울리며 함성이 터진다.)
루셀라스: 황제가 나온다. 들키기 전에 어서 피하게.(둘이 무대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황제가 근위대사령관과 등장하여 자리에 앉는다. 다시 함성이 터진다. 소년 폴리오가 끌려 나와 기둥에 묶인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폴리오에게 가까이 간다. 그 뒤로 근위대 사령관이 뒤따른다.)
황제: 흥, 요 꼬마 녀석 꽤 야무지게 생겼는데.
사령관: 예, 요 녀석이 바로 마커스 셀비리 장군의 외아들입니다.
황제: 뭣이? 마커스 셀비리 장군이라면 앗시리 전쟁에서 전사한.......
사령관: 맞습니다. 폐하.
황제: 아니 그런 명문 집안에서 이런 크리스천이 나왔단 말인가?
사령관: 글쎄 말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유분수지.
황제: 개천에서 용이 나다니? 거꾸로 됐어. 용에서 개천이 났다고 말을 해야지.
사령관: 아 예, 맞습니다. 폐하.
황제: (폴리오에게) 꼬마야, 너 죽는 게 무섭지?
폴리오: (약간 겁을 먹은 표정이다.)
황제: 그 예순지 뭔지 다시는 안 믿겠다고 한마디만 해라. 그러면 살려줄게. 응?
폴리오: (완강하게) 싫어요.
황제: 어허, 너의 아버지를 한 번 생각해 봐라. 네가 이렇게 죽으면 네 가문의 망신이야. 그까짓 그리스도가 네 집안보다 뭐 그리 중하냐? 안 그래?
폴리오: 싫어요.
사령관: 이놈 싫다니. 어른이 시키면 예, 알겠습니다하고 공손히 순종해야지.
폴리오: 싫어요.
사령관: 가정교육이 형편없는 아이입니다. 폐하.
황제: 아냐 그건 가정교육 때문이 아니야. 바로 그리스돈가 뭔가가 저 녀석의 혼을 빼버린 거야. 크리스천들은 한번 미치면 어른도 모르고 임금도 모른다. 자, 더 이상 시간 끌 것 없다. 노여워하시는 아폴로 신은 제물을 원하신다. 사형을 집행하라.(황제, 자리로 돌아간다. 사형집행 군사들이 나와 폴리오 근처에 연기를 피우기 시작한다. 관중들의 함성이 커진다.)
폴리오: (고통을 참는 듯한 음성으로) 예수님, 예수님, 날 인도하소서. (폴리오가 고개를 떨구자 다시 관중의 함성이 커진다. 이때 뒤에서 마셀라스가 나오며 외치기 시작한다.)
마셀라스: 죽음이여, 너의 이김이 어디있느냐? 죽음이여,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도다.
(관중들의 격노한 음성, 루셀라스가 당황하여 마셀라스를 붙잡는다.)
루셀라스: 마셀라스, 죽고 싶어 그래?
마셀라스: 루셀라스, 미안하다. 그러나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셀라스: 도망쳐라 마셀라스. 어서.
마셀라스: 아니 그럴 순 없다. 그러면 자네가 오히려 벌을 받게 된다.
(다시 격노한 관중들의 함성)
황제: (일어서며) 저 미치광이는 누구지?
사령관: 저 자는 바로 현상 붙은 죄인 마셀라스입니다.
황제: 근위대장 마셀라스? 오 아폴로 신을 노하게 한 장본인이구나. 여봐라. 사령관!
사령관: 예, 폐하.
황제: 당장 저놈을 잡아다 불살라 버려라.
(관중들 “끌어내라” “죽여라” 는 야유가 섞여 커진다. 사령관이 손짓하자 군인들이 마셀라스를 끌어 내린다. 죽은 폴리오는 옮겨나간다. 마셀라스가 폴리오에게 나아가려다 군병에게 저지당한다. 마셀라스, 폴리오가 묶였던 기둥에 묶인다. 관중들 함성이 커진다.)
황제: (발악적으로) 죽여-죽여 버려! 크리스천들은 몽땅 죽이란 말야.
사령관: (황제 흉내) 죽여-죽여 버려! 크리스천들은 몽땅 죽이란 말야.
(병사가 연기를 피우자 함성은 더 커진다.)
마셀라스: 나는 이미 피를 뿌린 제물이 되었고...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었도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도다. (큰소리로) 승--리!
(고개를 숙인다. 장엄한 찬송과 함께 불이 꺼진다.)
제 6 장
카다콤(지하묘소 안)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앉아 있다. 침울한 음악이 흐른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말을 시작한다.
호노리우스: 형제들이여, 오늘 또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소년 폴리오와 형제 마셀라스가 처형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였고 주님은 그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고통도 없고 숨을 필요도 없이 주 안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슬픈 음악. 이때 밖에서 인부 알마가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오, 알마. 그래 시체를 가져왔소?
알마: 예, 이것이 폴리오의 남은 몸입니다.
세실리아: (눈물을 흘리며 상자를 끌어안는다.) 오 폴리오, 폴리오! (다른 성도들이 그녀를 부축하고 위로한다.)
호노리우스: 마셀라스의 시체는?
알마: (뒤에 손짓을 하며) 이리 오십시오. (루셀라스가 상자를 들고 등장한다.)
호노리우스: 당신은 누구십니까?
루셀라스: 난 마셀라스의 친구 루셀라스입니다. 이것이 마셀라스의 몸입니다. (상자를 호노리우스에게 맡긴다.)
알마: 이 분이 시체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 주셨지요.
호노리우스: 루셀라스 감사합니다. 마셀라스는 항상 당신 이야기뿐이었습니다.
루셀라스: 전 내 친구를 내 가족의 무덤에 묻어 주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성대하게 장사 지내고 싶었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의 형제 마셀라스는 아마도 그의 새로운 신앙에 의한 간소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친구의 바람이라고 생각헤서, 여기로 가져왔습니다.
호노리우스: 감사합니다. 루셀라스. 마셀라스 형제는 죽었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항상 우리에게 용기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루셀라스: 호노리우스,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호노리우스: 무슨 부탁입니까?
루셀라스: 제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호노리우스: 좋고 말구요. 루셀라스. 당신은 휼륭한 분입니다. 마셀라스가 당신의 좋은 친구였듯이 당신도 우리의 좋은 친구입니다.
루셀라스: 감사합니다. 호노리우스.
호노리우스: (회중들을 향해) 많은 우리의 형제들이 환란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계속해서 남은 자들을 격려하시며 거룩한 순교자들의 피 위에 또 다른 믿음의 후손을 꽃 피우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찬송을 부른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폴리오의 관과 마셀라스의 관을 가지런히 놓는다. 루셀라스는 마셀라스의 관 가까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앉는다. 호노리우스가 일어나 두루마리 책을 편다.)
호노리우스: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기가 한량없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리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에게 장막을 치시도다. 이제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며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도 상하지 아니할찌라.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
(밝고 힘찬 음악과 함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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