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부활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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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8-04-10 16:42 조회3,371회 댓글0건본문
십자가와 부활하심
<순서 설명>
안식일학교의 순서를 통해 예수님의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을 진지하고 조용하게 명상의낭독과 찬양으로 엮어가는 주제별 낭독을 위한 찬양 안식일학교 프로그램이다.
<연출 메모>
▶ 낭독 I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굵고 설득력 있는 남자 목소리로 하고 낭독 II '주님의 사랑'은 부드럽고 호소력 있는 여자의 목소리로 한다.
▶ 네 번의 찬양 순서를 위해 소합창, 복사중창, 독창과 여성 중창 등의 음악 순서를 다양하게 준비한다.
▶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찬양곡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므로 각 교회 별로 합창곡이나 중창곡에서 선정하여 결정한다.
<추천곡>
'우리의 질고를 지셨도다' '부활의 주'(찬미가 387장), '저 먼 언덕위에'(찬미가109장)
'그 무한하신 사랑 인하여서'(찬미가760장)
<'싱 얼롱‘ 시간에는 부록에 수록된 '누구를 위함인가' 의 복음성가를 배운다.>
<프로그램>
▶ 기도 및 교장인사
▶ 찬양 1
▶ 찬양 2
▶ 낭독 I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 찬양 3
▶ 낭독 II ('주님의 사랑')
▶ 찬양 4
▶ 목사님의 기도
<낭독 내용>
[낭독 I]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무덤이 열리고 영광으로 다시 일어나실 때 생명은 죽음을 누르고 의심과 고난은 믿음과 기쁨으로 허무와 절망은 확신과 용기로 바뀌었습니다.
그 먼 길 그 험한 길을 마치셨습니다. 땀과 피로 얼룩진 십자가는 뜨거운 눈물과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고요한 정적만이 남은 겟세마네의 침묵 속에서 주님은 조용히 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한 가닥 연결마저 끊어진 듯한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우시던 예수님, 운명의 급격한 그 긴장의 순간, 그 쓴잔을 거두시지 않으시려 핏방울을 떨구며 고뇌하시던 주님…
영원히 결정지어질 아슬아슬한 이 세상의 운명이 저울대에 놓여졌던 급박하던 그 순간에, 우리가 받아야할 우리의 죄의 결과를 우리에게 그냥 놔두시고 하늘의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실 수 있으셨던 주님…
그분은 이제 승리하셨습니다.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그분은 승리하셨습니다.
동정과 연민의 위로도 없이 그 외로운 참혹함의 고통 속에서 상사의 명령을 따라 아무 것도 모른 채 못을 박는 로마의 군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며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그분께서 마침내 승리하신 것입니다.
피의 상처와 쓰라린 아픔 중에서도 하늘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던 그분의 인내가 이제 그 영광의 승리를 더욱 완전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모든 것이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고 주님의 다시 사심으로 우리의 부활도 영원히 보장되었습니다.
모형과 약속으로 보여주신 예언들이 부활의 성취의 모습으로 완성되었고 우리를 사망에서 다시 건지시겠다는 주님의 위로가 분명하게 보장된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단지 사사로운 침묵의 한 순간일 뿐, 영원한 깨어남을 보여주신 그분의 열린 무덤은 다시 오실 주님의 그 날에 사랑하던 자들이 누워있던 무덤이 다시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영원한 승리의 서사시가 될 다시 살아나는 불멸의 그 장면을 떨리는 가슴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낭독 II] '주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하늘의 별의 수만큼 바다의 파도만큼 그렇게 셀 수 없는 모습으로 주님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거친 밀물을 헤치고 영원히 머물 수 있는 평화롭고 고요한 피난처, 그분의 사랑은 삶의 넓은 바다에 떠있는 섬인가요?
고난의 물결이 깊은 심연의 절망 속으로 우리를 집어 삼키려할 때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성… 그분의 사랑은 거친 싸움터의 견고한 요새인가요?
무모하고 헛된 것을 좇는 삶의 투쟁과 긴장을 모두 잊을 수 있는 곳 그분의 사랑은 정령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는 항구인가요?
너무나 깊은 죄의 계곡에서 최후의 절망으로 눈물 흘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시기 위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셨고, 죄의 심연의 암흑에서 잔인한 고통으로 돌아가셨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못 박으라고 배반의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 모습에는 우리 자신의 얼굴도 보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기나긴 세월의 쪽배를 타고 가면서 수도 없이 그분을 거절하고 헤아릴 수 없이 그분을 저울질했었는데 주님께서는 왜 아직도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실까요?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한없이 허물어져 내릴 때 그분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치르신 대가에 가슴아파할 때 그분의 사랑이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어두운 긴 밤의 절망과 염려가 다시 밝아오는 새벽 미명의 붉은 빛으로 환히 바뀔 때 하늘의 소망과 환희가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죽은듯한 기나긴 겨울의 추위와 허기가 투명하게 채색된 서쪽 하늘의 해질녘 황금빛으로 말끔히 사라질 때 하늘의 약속과 위로가 우리의 곁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넉넉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그분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순서 설명>
안식일학교의 순서를 통해 예수님의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을 진지하고 조용하게 명상의낭독과 찬양으로 엮어가는 주제별 낭독을 위한 찬양 안식일학교 프로그램이다.
<연출 메모>
▶ 낭독 I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굵고 설득력 있는 남자 목소리로 하고 낭독 II '주님의 사랑'은 부드럽고 호소력 있는 여자의 목소리로 한다.
▶ 네 번의 찬양 순서를 위해 소합창, 복사중창, 독창과 여성 중창 등의 음악 순서를 다양하게 준비한다.
▶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찬양곡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므로 각 교회 별로 합창곡이나 중창곡에서 선정하여 결정한다.
<추천곡>
'우리의 질고를 지셨도다' '부활의 주'(찬미가 387장), '저 먼 언덕위에'(찬미가109장)
'그 무한하신 사랑 인하여서'(찬미가760장)
<'싱 얼롱‘ 시간에는 부록에 수록된 '누구를 위함인가' 의 복음성가를 배운다.>
<프로그램>
▶ 기도 및 교장인사
▶ 찬양 1
▶ 찬양 2
▶ 낭독 I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 찬양 3
▶ 낭독 II ('주님의 사랑')
▶ 찬양 4
▶ 목사님의 기도
<낭독 내용>
[낭독 I]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무덤이 열리고 영광으로 다시 일어나실 때 생명은 죽음을 누르고 의심과 고난은 믿음과 기쁨으로 허무와 절망은 확신과 용기로 바뀌었습니다.
그 먼 길 그 험한 길을 마치셨습니다. 땀과 피로 얼룩진 십자가는 뜨거운 눈물과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고요한 정적만이 남은 겟세마네의 침묵 속에서 주님은 조용히 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한 가닥 연결마저 끊어진 듯한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우시던 예수님, 운명의 급격한 그 긴장의 순간, 그 쓴잔을 거두시지 않으시려 핏방울을 떨구며 고뇌하시던 주님…
영원히 결정지어질 아슬아슬한 이 세상의 운명이 저울대에 놓여졌던 급박하던 그 순간에, 우리가 받아야할 우리의 죄의 결과를 우리에게 그냥 놔두시고 하늘의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실 수 있으셨던 주님…
그분은 이제 승리하셨습니다.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그분은 승리하셨습니다.
동정과 연민의 위로도 없이 그 외로운 참혹함의 고통 속에서 상사의 명령을 따라 아무 것도 모른 채 못을 박는 로마의 군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며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그분께서 마침내 승리하신 것입니다.
피의 상처와 쓰라린 아픔 중에서도 하늘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던 그분의 인내가 이제 그 영광의 승리를 더욱 완전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모든 것이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고 주님의 다시 사심으로 우리의 부활도 영원히 보장되었습니다.
모형과 약속으로 보여주신 예언들이 부활의 성취의 모습으로 완성되었고 우리를 사망에서 다시 건지시겠다는 주님의 위로가 분명하게 보장된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단지 사사로운 침묵의 한 순간일 뿐, 영원한 깨어남을 보여주신 그분의 열린 무덤은 다시 오실 주님의 그 날에 사랑하던 자들이 누워있던 무덤이 다시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영원한 승리의 서사시가 될 다시 살아나는 불멸의 그 장면을 떨리는 가슴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낭독 II] '주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하늘의 별의 수만큼 바다의 파도만큼 그렇게 셀 수 없는 모습으로 주님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거친 밀물을 헤치고 영원히 머물 수 있는 평화롭고 고요한 피난처, 그분의 사랑은 삶의 넓은 바다에 떠있는 섬인가요?
고난의 물결이 깊은 심연의 절망 속으로 우리를 집어 삼키려할 때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성… 그분의 사랑은 거친 싸움터의 견고한 요새인가요?
무모하고 헛된 것을 좇는 삶의 투쟁과 긴장을 모두 잊을 수 있는 곳 그분의 사랑은 정령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는 항구인가요?
너무나 깊은 죄의 계곡에서 최후의 절망으로 눈물 흘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시기 위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셨고, 죄의 심연의 암흑에서 잔인한 고통으로 돌아가셨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못 박으라고 배반의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 모습에는 우리 자신의 얼굴도 보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기나긴 세월의 쪽배를 타고 가면서 수도 없이 그분을 거절하고 헤아릴 수 없이 그분을 저울질했었는데 주님께서는 왜 아직도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실까요?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한없이 허물어져 내릴 때 그분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치르신 대가에 가슴아파할 때 그분의 사랑이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어두운 긴 밤의 절망과 염려가 다시 밝아오는 새벽 미명의 붉은 빛으로 환히 바뀔 때 하늘의 소망과 환희가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죽은듯한 기나긴 겨울의 추위와 허기가 투명하게 채색된 서쪽 하늘의 해질녘 황금빛으로 말끔히 사라질 때 하늘의 약속과 위로가 우리의 곁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넉넉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그분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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